구속하시는 하나님
“저희의 이 행위는 저희의 우매함이니 후세 사람은 오히려 저희 말을 칭찬하리로다(셀라) 양같이 저희를 음부에 두기로 작정되었으니 사망이 저희 목자일 것이라 정직한 자가 아침에 저희를 다스리리니 저희 아름다움이 음부에서 소멸하여 그 거처조차 없어지려니와 하나님은 나를 영접하시리니 이러므로 내 영혼을 음부의 권세에서 구속하시리로다(셀라)”(시 49:13-15).
‘저희의 이 행위’라 하는 것은 결국 제물을 의지하고 또 이 세상에서 번영하여 사람들에 의해서 추켜세워지는 그런 사람들의 행동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높아지는 것이 반드시 하나님과 원수 되는 것은 아니지만 세상에서 번영하고 성공하기 위해서 신앙을 버리고 하나님의 율법과 어긋난 길을 가는 것이라면 명백하게 하나님을 버리는 것이고 맞서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결국 이러한 행위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우매함에서 비롯되는 것인데 당시 사람들 뿐 아니라 후대 사람들에 의해서도 오히려 그러한 사람들의 말을 칭찬할 것이란 것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무지가 당대에도 또 미래에도 계속될 것이라는 보여주는 것입니다. 인간이란 존재가 결국 자신을 사랑하고 자신의 영광을 위해서 살게 되는 존재이기 때문에 그런 사람이 변화되어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영광을 위해 산다는 것은 아주 예외적인 일입니다. 그런데 항상 교회는 이렇게 예외적으로 일어날 수밖에 없는 일을 - 그런 일이 일어나는 것은 오직 성령님께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에게 믿음과 은혜를 주시므로 일어날 수 있는 일인데 - 그런 신령한 변화 없이 보편적으로 모든 사람들이 그런 신앙의 영향을 받게 하고자 하는 유혹을 늘 받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은 하나님과 마주해서 영혼이 변화되는 일 없이도 신앙을 보편화시켜보고자 노력했던 것입니다. 그 시도는 교회 역사가운데서 단 한 번도 성공을 거둔 적이 없었고 오히려 언제나 교회 문을 넓게 열어서 세속주의가 들어오게 만들고 많은 사람들이 부패하도록 만든 요인이 되었던 것입니다. 교회가 문을 활짝 열고 아무나 와도 좋다고 했던 때에 교회가 진정으로 변화된 사람들을 만들어 낸 적이 없다는 말입니다. 오히려 교회 문턱을 높여서 ‘이 정도로는 교회 회원이 될 수 없지’라고 했던 때에는 비록 소수의 사람들이 있을지라도 기독교 신앙이 많은 사람들에게 전해졌다는 말입니다. 사람이 근본이 바뀌지 않는데 끊임없이 옷을 갈아입고 이 세상에서 번영하고 성공하고 많은 재물을 소유하여 사람들을 지배하는 일들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마치 살인범에게 살인하고자 하는 본성 자체는 추호의 변화가 없는데 끊임없이 색 색깔의 옷을 갈아입히는 것에 다름이 아니지 않겠습니까? 오늘 성경에서 시인이 말하길, 저렇게 많은 사람들에 의해서 부러움을 사고 사람들에 의해 칭찬을 받는 사람이지만 하나님은 사람들의 생각과는 전혀 다른 시각에서 그들을 보신다는 것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저희를 음부에 두기로 작정하셨고 사망이 저희 목자일 것이다...” 하나님께서 침묵하시는 것 같지만 이 세상을 하나님 대신 섬기면서 그렇게 무지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하나님께서 반드시 기억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잠시 악인이 번영한 것 같지만 하나님은 그 역사의 수레바퀴를 정직한 자를 사용해서 돌리게 하십니다. 성경본문에서 “정직한 자가 아침에 저희를 다스리리니..”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아침이란 것은 밤에는 영원할 것처럼 보였던 어둠이 지나가고 필연적으로 다시 찾아오는 것입니다. 이 아침이란, 새로운 하나님의 섭리가 시작되는 시간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 때i에는 ‘정직한 자가 다스릴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서 정직한 자가 이 나라를 다스리고 이 땅을 다스리도록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통치의 권한을 넘겨주시는 것입니다. 한때에 번성했던 모든 사람들은 거처조차 없어지고 형체조차 사라질 정도로 소멸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악인의 번영을 부러워하지 않는 것이 특징입니다. 그것이 그저 스쳐가는 영광이며 더욱이 하나님을 떠나서 누리는 그 영광과 번영이 결국 오래가지 못한 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기 때문에 그 번영을 부러워하지 않는 것입니다. 성경은 악인의 번영을 벤 풀과 같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잡초가 자라 잔디에 섞여 올라와서 기계나 낫으로 모든 풀들을 베어버리고 나면 사람들은 굳이 그 풀을 모으지 않습니다. 지금은 지저분해도 한 나절만 지나면 뿌리가 잘린 잔디는 햇볕에 모두 말라서 검불이 되어 없는 것처럼 잔디 사이로 사라져버리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바로 번영하는 악인의 최후와도 같기 때문에 믿음의 사람들은 그 악인의 번영을 부러워하지 않습니다. 잠시 성하는 것 같지만 시간이 지나면 모두 사라져버릴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원래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은 없는 것에서 만들어졌고 그 성질 자체가 사라져버리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을 붙들고 그것에 소망을 두는 사람들은 함께 사라져 버립니다. 이에 비해 하나님은 영원한 분이시고 흔들리지 않고 불변하는 분이기에 그 하나님을 의지해서 사는 사람들은, 필연적으로 사라지기 마련인 육체는 세상과 함께 사라져도, 그들의 영혼은 영원을 향해서 살도록 붙들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시인은 종말의 소망 속에서 살아갑니다. “하나님을 나를 영접하시리니 이러므로 내 영혼을 음부에서 권세에서 구속하시리로다.” 그래서 악인이 번영할 때에는 경건한 자들이 하나님의 보호가 사라진 것처럼 고난을 받기도 하고 홀로 버려진 것 같지만 하나님은 반드시 당신을 의지하고 이 세상의 번영을 의지하지 않는 사람들을 영접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당신을 진실하게 의지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생사 간에 위로가 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하나님 없이 꿈꾸는 그런 번영과 욕망을 따라 사는, 세상의 성공을 꿈꾸는 사람들은 보지 못하는 하나님을 뵈옵고 그 안에서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생의 참된 행복은 하나님 면전에서 사는 것입니다. 모든 인간의 불행은 하나님 바깥에서 행복을 찾아보려는 것입니다. 그것이 이 세상에서의 가장 큰 불행이고 고통이고 괴로움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처럼 당신을 바라는 그 영혼을 잠시 어둠속에 두시는 것 같지만 언제나 악인으로부터 그를 보호하시고 부패하고 변천하는 이 세상으로부터 그를 영접하셔서 그 영혼을 음부와 같은 고통의 현실에서 구원하고 구속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방법인 것입니다, 우리는 매순간 하나님의 은혜를 의지하면 사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큰 복을 누리기를 원하시는데 바로 하나님 앞에서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사는 그 참된 행복, 비록 이 세상에서 크게 번영하지 못하고 성공하지 못해도, 하나님 앞에서 사는 진정한 기쁨과 즐거움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들은 세월이 끊임없이 흘러 우리 육체는 부패하여도 결코 사라지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