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외하는 자의 기억
“하나님이여 내 서원을 들으시고 주의 이름을 경외하는 자의 얻을 기업을 내게 주셨나이다 주께서 왕으로 장수케 하사 그 나이 여러 대에 미치게 하시리이다 저가 영원히 하나님 앞에 거하리니 인자와 진리를 예비하사 저를 보호하소서”(시 61:5-7).
아마도 이 시인은 왕이 된 다음에 지은 시다 이렇게 여겨집니다. 시인은 하나님을 경외하면서 사는 것이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백성의 본분이라고 보았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하나님과 언약을 맺으면서 그 하나님을 경외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하나님의 백성의 본분인데 하나님을 경외하면서 그 하나님과의 언약을 충실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께서 누리며 살 수 있는 기업을 주십니다. 그래서 그 기업이라는 것이 바로 다름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누리게 되는 행복이에요. 그것을 하나님께서 이미 자신에게 주셨노라고 그렇게 하나님 앞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우리들이 이미 없는 것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 간구하고 기도하는 것도 훌륭한 것이지만 없는 것 말고 이미 하나님이 자신에게 주신 것을 헤아리면서 하나님 앞에 감사하는 것은 더 훌륭한 신앙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들에 대해서 감사한 마음을 갖게 될 때 그때에 주실 것에 대해서도 하나님 앞에 바른 태도를 갖게 되는 것이죠. 그것이 바로 오늘 시인이 하나님 앞에 이미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에게 주셨고, 그리고 또 그 주신 것을 누리며 살아갈 수 있게 되는 그것이라고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이제 시인이 세 가지를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있는데 우선은 뭐냐 하면 장수를 구하고 있습니다. 지금보다도 이 당시에는 훨씬 더 전쟁과 굶주림 그리고 질병같은 것으로 사람들이 빨리 죽던 때였거든요. 그러니까 1949년도 중국의 남자들의 평균 나이가 35살이었습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였고 그러니까 35살 정도는 사람들이 죽었단 말이죠. 그러니까 옛날을 보면 아주 일찍 장가를 가잖아요. 만약에 그때에 지금처럼 이랬다가는 장가들어서 얼마 안 있다가 애 날려나, 마려나 그러다가 죽는 다는거죠. 저희 할아버지만 해도 마흔에 저를 보셨어요. 마흔살에. 그러니까 우리 할아버지 나이가 제 나이 때는 제가 중학교를. 그때까지 살아계시지도 않았지만 그러니까 그렇게 모든 인생의 시간표가 앞당겨졌던 거죠. 그러니까 장수라고 하는 이 말이 오늘 우리의 가슴에는 와 닿지 않았지만 그 당시에는 아주 절실한 문제였죠. 하나님 앞에 그것을 구하고 있는 거죠.
더욱이 왕의 장수가 매우 중요한 것은 왕이 오래 살아야지만 자손을 많이 끼치잖아요. 그래서 왕실이 번성해야 나라가 든든히 서는 것이죠. 나라가 든든해서 왕위를 이을 자식들이 많이 있어야지만 나라가 든든하죠. 물론 왕이 될 사람들끼리 쌈질을 하고 하는 경우도 있긴 하지만 그러나 일단 왕의 혈통이 끊어지고 나면 그 다음에는 정말 나라 자체가 무주 공간이 되는 거죠. 그래서 하나님 앞에 왕의 장수를 구합니다. 한 왕이 오래도록 선정을 베풀면서 나라를 통치할 때 그 나라의 기강과 모든 제도, 법 같은 것들이 온전하게 서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시인이 제일 먼저 하나님 앞에 왕의 장수를 구하는 거죠. 그러나 이것은 여기서 나오는 왕으로, 왕으로 하는 자들은 자기에 대한 또 다른 표현이라고 여겨져요. 그래서 비록 자신이 이 나라의 왕이지만 그러나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는 한 사람의 종 같은 마음으로 오히려 이것은 자기를 높이는 표현이라기보다는 하나님 앞에서 자기를 낮추고, 하나님이 자기에게 주신 임무를 마음속에 되새기는 그런 표현이에요. 그래서 하나님 앞에 간절히 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두 번째 구하는 것은 뭐냐 하면 하나님 앞에 구하는 것이기도 하고 자기의 미래에 대한 전망이기도 하지만 하나님 앞에 거할 것입니다. 여기에서 거할 살아간다는 것이죠. 잠깐 들리거나 아니면 잠깐 있다가는 게 아니라 집을 짓고 영구히 사는 형태를 가리키는 거예요. 그래서 뭐냐 하면 영원히 하나님 앞에 거할 것입니다. 그런 고백을 하나님 앞에 드리고 있는 거죠. ‘영원히 하나님 앞에 살아갈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비는 소원이 ‘인자와 진리를 예비하사 보호해 주시옵서’ 그래서 결국은 여기에서 이야기하는 인자라고 하는 것은 값없는 죄인들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총이에요. 그런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총과 그리고 진리의 말씀을 예비하사 ‘절 보호해 주시옵소서’.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사랑이 이렇게 떨어지지 않고 놀랍게 일치를 이루면서 시인의 마음과 삶속에 반영하고 함께 역사하였던 경험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에요.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마음을 반영하는 것이죠. 하나님의 마음을 반영하는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로 하여금 그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우리들이 변화 받고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거죠. 이 시인이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그 축복가운데 가장 정수에 속하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진리가 무엇인지를 깨닫고 그 깨닫는 과정을 통해서 하나님이 어떻게 자기를 사랑하시고 은총을 베푸시는 분인가 하는 것을 알아가기를 원했던 것이죠. 왜냐하면 받은 사랑이 하나님을 사랑하게 만들고, 받은 하나님의 말씀이 그 뜻대로 살아가게 만든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죠. 그래서 우리도 이렇게 하나님 앞에 인자와 진리를 예비하사 우리를 보호해 달라는 기도가 또한 시인의 기도가 아니라 우리의 기도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