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이름을 찬양할 때
“그리하시면 내가 주의 이름을 영원히 찬양하며 매일 나의 서원을 이행하리이다 ”(시 61:8).
이 시편 61편의 마지막 구절인데요. ‘그리하시면’ 이라는 것이 바로 앞의 7절에 나와 있는 내용을 받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왕으로 장수케 하고, 그리고 하나님 앞에 거하게 하셔서 그래서 인자와 진리를 베풀어 주실 때, 그렇게 될 때에 ‘나는 주의 이름을 찬양하며 매일 나의 서원을 이행하겠습니다’ 이런 고백입니다.
어떻게 보면 아주 단순하고 그리고 분명해 보이는 그런 고백이지만, 여기에는 그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그 삶이 전체가 담겨져 있는 것이죠. 그래서 그 ‘주님의 이름을 영원히 찬양할 것이며’ 입니다. ‘주님의 이름’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은 모든 이 세계에 있는 물질과는 구별되시는 분이기 때문에 ‘하늘에 계시다’ 라고 우리들이 이렇게 말하지만 하나님의 본질이 하늘에 더 많이 있는 것은 아니죠. 어디든지 안 계신 곳이 없으신 하나님이시지만, 하나님은 이 세계 안에 계시면서도 또한 이 세계와는 구별되시는 분으로 세계를 초월해 계시는 분이죠.
인간이 가장 확실하게 ‘하나님이 여기계시다’ 라고 하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은 하나님의 이름 때문이에요. 그래서 이름과 실체는 아주 밀접한 관계를 가져요. 그래서 이름 있는 곳에 사실은 그 실체도 사람들에게 지각이 되는 것이죠. 그래서 성경에서는 인간의 하나님에 대한 태도는 인간의 하나님의 이름에 대한 태도와 꼭 같은 것이에요. 그래서 어떤 사람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가 하는 것은 그가 하나님의 이름을 따라서 그가 하나님의 이름에 대해 어떤 태도를 하고 사는가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하나님의 이름에 대한 태도는 곧 하나님에 대한 태도다 이런 이야기죠.
하나님은 이 세계 안에서 높아지실 수도 없고, 낮아지실 수도 없는 분이시지만 하나님의 이름은 높아질 수도 있고 낮아질 수도 있는 거죠. 그러면 하나님의 이름이 높아질 때 사람들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면 하나님의 이름이 높아질 때 그것을 바라보며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행복해하고 하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이죠. 그리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이름이 낮아지고 멸시받는 것을 볼 때 그것을 보면서 아파하고 괴로워하고 눈물을 흘리고 그러는 것은 결국은 하나님을 향한 태도와 꼭 같은 것이에요.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이름은 하나님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사람들을 통해서 높아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아는 사람들에 의해서 높아지는 것이죠. 누군가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주고 혹은 삶으로써 ‘하나님이 이런 분이시다’ 라고 하는 것을 보여줄 때 그래서 사람들이 ‘아, 거기 하나님이 계시구나’, ‘아, 그런 분이 하나님이시구나’ 하는 것을 깊이 인식하고 그리고 진실하게 고백을 하게 될 때에 그때에 비로소 그 사람이 하나님의 이름을 높여드리게 되는 것이죠. 그런 소위 얘기하는 이름 신앙을 배경으로 오늘 여기에서 ‘하나님이 이러이러하게 은혜를 내게 베풀어 주시면 내가 주님의 이름을 이렇게 영원히 찬양할 것입니다’ 라는 고백이에요.
성경에서 ‘하나님을 찬양한다’ 라고 하는 것은 단순히 노래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찬양한다고 하는 것은 단순히 노래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찬양한다고 하는 것은 단순히 노래하는 것이 아니라 그 노래 자체가 그 마음의 가득 채우는 어떤 힘의 표현이에요. 방향의 표현이에요. 그러면 당연히 그것은 찬양하지 않아도 그 마음속에 솟구치고, 질서 지어진 어떤 방향을 따라서 삶으로 표출이 되는 것이죠. 그건 너무나 당연하지 않아요? 그렇게 솟구치고 질서 지어져서 삶으로 표출되는 그것을 인간은 이게 시간이라는 것이 있어서 저 사람 마음속에 있는 것이 밖으로 나올지 안 나올지 시간이 흘러가봐야 알지만, 하나님은 그 모든 것들을 한 번에 보실 수 있는 분이잖아요. 그러니까 이 어떤 사람이 하나님의 이름을 진실로 기뻐하며 그 이름을 찬양할 때, 그때에 그의 영혼은 아주 활발하게 움직이면서 하나님을 기뻐하는 그런 동작 속에 있게 되는 것이에요. 그것이 하나님에게는 영광이 된다라고 하는 것이죠.
우리가 어떤 사람이 나를 칭송한다고 하면 우리는 그의 달콤한 말이나 혹은 거짓스러운 표현에도 우리들이 우쭐해 질 수 있지만, 하나님은 그런 분이 아니시잖아요. 사람에 의해서 속고 만홀히 여김을 받고 그러시는 분이 아니잖아요. 그러니까 그것이 참되고 진실한 찬양일 때 그것은 반드시 삶을 동반하는 것이고, 그리고 그것이 그 사람의 영혼 안에서만 일어나는 행동이나 동작이나 움직임이 아니라 그의 정신과 신체까지 지배해서 그래서 쏟아져 나오게 하는 그러한 그 무엇이란 말이죠. 그러면 그런 하나님을 향한 그 놀라운 찬양과 경배, 그런 영광 이런 것들을 우리들이 드릴 때에, 그때 그것은 우리 자신을 하나님 앞에 다 드리는 것이 되는 거죠. 그러니까 하나님이 그것을 그렇게 기뻐하시는 거죠.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그 속에서 가장 큰 즐거움을 경험하는 거죠. 그게 성도로서 가장 아름다운 생활이에요. 그러니까 이 시인이 이렇게 자기를 다 드려서 하나님을 찬양하는데 그런 찬양 속에서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영광을 받으실 때에 시인은 그 영광을 받으시고 기뻐하시는 하나님 아래에서 진정하고 참된 기쁨을 드리게 되는 것이죠. 그것이 바로 신자의 삶이에요.
근데 그것이 언제까지? 영원히, 영원히. 사실 이런 ‘영원히’ 라는 이런 개념은 물질 속에서 둘러싸여 있고 생각이 그런 물질에 고정되어 있을 때에는 떠오르지 않는 개념이에요. 대게 인간이 이 물질을 보고 사물을 보면서 거기에 머무는 생각들은 대부분 모두 우리의 육신의 감각을 통해서 들어오는 거거든요. 이런 것들을 보면서 영원을 생각하는 것은 쉽지 않아요. 왜냐하면 그 모든 것들이 유한한 삶이고, 그것을 바라보는 것도 또한 유한한 육체의 감각으로 보는 것이기 때문에 그래요.
그렇지만 마음과 정신 안에서 일어나는 변화들, 이런 것들은 영원을 생각하게 하는데 아주 크게 이바지 합니다. 예를 들어 보십시요. 우리들이 나 보기에 어떤 싫어하는 물건이나 이런 것들이 있다고 봅시다. 그때 그것을 보면서 영원히 라는 생각은 잘 들지 않아요. 누군가를 미워하고 증오하게 될 때 그때에 그를 영원히 아주 오래도록 증오해야 되겠다는 감정들이 생겨나는 거죠. 사랑이라는 감정 같은 것은 바로 그 반대편에 있는 거거든요. 그러니까 어떤 물건을 사랑하고 또 물건이 좋다고 느껴질 때 그것을 보면서 영원을 생각하는 것은 쉽지 않아요. 다만 우리들이 사람을 볼 때, 누군가를 사랑하게 될 때 그 사랑이 계속되게 지속되고 싶은 그런 마음이 생겨나게 되는 거잖아요. 그런 모든 감정들의 특징이 뭐냐 하면 비록 보는 것은 육체의 감각으로 시작이 되었지만 그것은 계기일 뿐이고 모두 마음과 정신, 영혼, 이런 작용들로 사랑하고 미워하게 될 때에 이것은 영원이라는 개념을 함께 가지고 들어오기 아주 쉬운 거예요. 그래서 육체로 이렇게 감각하는 사물들은 영원에 대한 생각을 불러일으키기 어렵지만 우리의 영혼으로 그리고 우리의 정신으로 사물을 바라보는데 있어서는 그런 감각을 불러일으키기에 아주 충분하다는 거죠.
그렇게 하면서 하나님께서 우리의 언약 백성들에게 주신 그 사랑과 그리고 자비를 생각하면서 진리를 생각하면서 그 하나님을 영원히 찬송하고 싶다는 마음이 생겨나게 되는 거죠. 그렇게 될 때 그의 삶에 대해서 오늘 이야기하기를 ‘나의 서원을 이행하겠습니다’ 그런 고백입니다. 여기에서 서원이라고 하는 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모르겠죠. 그렇지만 이것은 일반적으로 말하자면 하나님의 계명에 순종하면서 살겠습니다. 그것이 언약백성의 매일매일 반복되는 서원이기 때문이죠. 그럴 것이지만 그러나 또 다른 의미에서 본다면 이것은 율법에 규정된 인간으로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그 무엇을 행하게 하시는 것이라기보다는 그 위에 하나님 앞에 자기가 개인적으로 약속한 것들이에요. 예를 들자면 하나님 앞에 서원의 제사를 드리죠. 그것은 하나님이 자신이 아주 곤궁하고 고통스럽고 어려운 시기를 지날 때 하나님이 이렇게, 이렇게 도와주시면 제가 이렇게, 이렇게 하겠습니다 라는 그런 약속의 형태로 잘 드러나죠. 마치 야곱이 벧엘에서 단을 쌓은 것처럼 그렇게 당신은 이렇게, 이렇게 아버지 집으로 평안히 돌아오게 해 주신다면 당신은 나의 하나님이 되고, 십일조를 드리고, 그리고 여기는 하나님의 집이 될 것입니다 라는 이런 식의 약속들을 하잖아요. 이건 뭐 율법에 규정된 것은 아니거든요. 그렇지만 하나님께 대한 감사, 간절한 탄원 속에서 하나님 앞에 무엇인가를 약속하는 거죠. 이것은 사람하고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언약을 맺는 거예요. 그것은 그 사람이 그 하나님에 대한 태도는 그 약속에 대한 태도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이죠. 그래서 만약에 누군가와 약속을 하고 그 약속을 아주 무시한다면 사실은 약속을 맺은 그 사람을 무시하는 거죠. 그 하나님과 일반적으로 개인적으로 언약을 하고 그리고 자신의 의무를 준수하지 않는 것은 이것은 하나님 앞에 하나님을 아주 공개적으로 무시하는 것이 되는 거죠. 그 하나님을 중하게 여기지 않는 것을 보여준다는 거죠.
그러면 이 시인에게도 일반적인 의미에서의 많은 서원과 특별한 의미에서 여러 서원들이 있었을 거예요. 왜냐하면 인생의 많은 고난과 역경의 시기를 지났으니까 많은 약속을 하나님 앞에 드렸겠죠. 그것을 이행하겠습니다. 결국 뭘 뜻하냐면 하나님이 내게 베풀어 주신 은혜와 진리의 말씀이 없이는 내가 하나님 앞에 곤궁했을 때 많은 것들을 약속하고 또 하나님 앞에 헌신했지만 이것을 내가 다 지키면서 살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우리로 하여금 마음이 크게 감동하여 하나님께 선한 일을 결심하게 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시고 결심한 그것을 약속대로 시행하며 살게 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에요.
그러니까 결국은 이 시인이 하나님 앞에 그런 인자와 진리를 구하는 거죠. 이게 오늘날 우리로 말하자면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은혜와 하나님의 말씀이에요. 그 하나님의 말씀과 은혜로 끊임없이 감화를 받으며 살아갈 때에 그때에 하나님의 계명을, 하나님이 내게 주신 서원을 이행할 수 있을 것입니다 라는 그런 고백이에요.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매순간 우리를 붙들어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게 하시는 주님이십니다. 여러분들이 이 말씀을 붙들고 이렇게 주님께 찬송하며 하나님이 여러분들에게 베풀어주신 은혜를 가지고 주님과의 약속을 지키며 사는 성도들이 되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