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11. 11 새벽예배
나의 반석이신 하나님
오직 저만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원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니 내가 크게 요동치 아니하리로다. (시62:2)
그러면서 시인은 하나님이 자신에게 어떤 분이신지를 은유적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첫 번째가 반석입니다. 반석……. 반석이라는 것은 바위는 바위인데 펑퍼짐하게 옆으로 쭉 퍼져있는 그런 종류의 바위이지요. 만약에 이런 반석위에다가 집을 짓는다면 굉장히 흔들리지 않는 견고한 집이 되겠지요. 그래서 건축학에서도 땅이 무르면 파일을 박습니다. 그래서 그 수없이 많은 파일을 위에서부터 바깥으로 밀어냅니다. 그래서 어디까지 박느냐하면 위의 건물을 올려놓고 밑에 있는 파일들이 그 힘을 분산해서 받을 때에 충분히 그 건물을 받혀줄 수 있겠다는 구조계산 속에서 파일의 개수를 결정하고 그리고 위에서부터 두드려서 그 파일을 박기 시작하는 것이죠. 그러나 예외가 있습니다. 파일을 받기 시작했는데 어느 한쪽에서 파일이 더 이상 안 들어가게 되는데 왜냐하면 옆에는 무른데 커다란 암석이 발견되어서 그 무른 땅을 뚫고 들어가서 그 파일이 바위와 만난 것이죠. 그러면 온 힘을 다해서 내리쳐서 파일을 바위와 만나게 한 다음에 위에는 잘라버립니다. 그냥 그렇게 해도 충분히 건물이 지탱되고 유지될 수 있기 때문이지요. 이것이 바로 반석이에요.
그러니까 주님이 나의 반석이시라는 것은 뭐냐 하면 나를 요동하지 않게끔 그렇게 나의 모든 인생에 있어서, 삶에 있어서 기반이 되시는 분이시라는 의미에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이러한 반석에 대한 일반적인 기억보다 더 뚜렷한 기억이 하나 있습니다. 그래서 이 반석을 히브리말로 ‘쭈루’라고 하는데 이 쭈루에 대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속에 사라지지 않고 잊히지 않는 강력한 기억이 하나 있어요. 그게 뭐냐 하면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할 때에 물이 없어 갈할 그 때에 모세가 반석에서 물을 내어 이스라엘 백성들을 먹이게 한 사건이었어요. 이 역시 반석에서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까 결국 이 반석은 흔들리고 요동하지 않는 삶과 신앙의 기반이시며 그리고 목말랐을 때에 그 목마름을 해갈시켜주시는 하나님의 큰 구원의 행동을 의미하는 것이죠. 그래서 성경에서 보면 하나님이 나의 반석이시라는 이 찬양의 가사들이 아주 많이 나와요. 그게 바로 하나님과 언약백성들과의 관계 속에서 하나님은 우리의 의지할 만한 반석이시라는 의미에요.
그래서 이제 이 하나님에 대한 이 인간의 이 의존이라는 것은 성경 전체 사상의 핵심이에요. 그래서 오늘날 교인들도 그렇고 교회도 그렇고 기도의 열정들이 식어가잖아요? 그런데 이것은 제가 보기에는 대세입니다. 그리고 아마 세월이 흘러갈수록 훨씬 더 심해질 것이라는 것이에요. 이게 단순히 교회가 은혜가 떨어져서 기도를 안 한다고 하는 그런 측면도 물론 있겠지만 그보다 더 큰 것은 시대의 정신이 인간이 누구를 의지하는 것 그것 자체를 매우 싫어하는 것이에요. 그런데 이게 사실은 기독교 신앙의 정수이거든요. 하나님에 대한 온전한 의존 그것이에요. 과학이 발달되기 전까지는 인간에게 있어서 이 모든 자연세계는 신비에 가득한 것이었어요. 그래서 모두 신들로 가득 찬 세계 안에서 그 신들의 움직임이라고 보았던 것이에요. 비가 오면 신이 기쁨의 눈물을 흘린다든지……. 바람이 불면 신이 화가 났다든지……. 천둥과 번개가 치면 신이 진노했다든지……. 이렇게 생각하다가 과학에 의해서 이 모든 것들의 원인이 밝혀지게 되면서부터 그것은 하나의 법칙일 뿐이라고 생각하게 되고 그리고 인간은 그것을 이용하면서 자신감도 생겼지만 또 한편으로는 교만해지게 되었던 것이죠.
이러한 것들을 보면서 깊이 생각해보게 되는 것이죠. 그래서 인간은 이제 점점 더 자기 자신을 신뢰할 존재라고 믿기 때문에 하나님을 향한 의존의 마음이 발휘될 가능성이 예전보다 점점 더 적어지는 것이죠. 아무튼 여기서 시인의 ‘저만이 나의 반석이시오.’ 하나님만이 자신의 인생과 신앙에 기반이 된다는 사실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을 잃어버리면 모든 것을 잃어버린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반석이신 주님 안에서 살아가려고 하는 것이죠. 어느 한 순간에 이런 고백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 삶이 그 고백을 끊임없이 머금으면서 살아갈 때 그 때에 자연스럽게 이런 고백이 위기와 고난 속에서도 흘러나오게 되는 것이에요. 그러면서 ‘하나님은 나의 구원이십니다.’ 라고 노래합니다. 이 구원에 대해서는 어제 여러분들에게 상세하게 말씀드렸습니다.
세 번째는 ‘나의 산성이십니다.’ 라고 고백합니다. 성은 재성과 나성으로 나뉘어져요. 그래서 축성할 때에 도시 전체를 에워싸는 성이 있고 그 다음에 그것이 아니라 일정한 특정 장소만을 보호하기 위해서 쌓는 성이 있어요. 그러니까 경우에 따라서는 성안에 성이 또 있을 수 있는 것이죠. 그런데 산성은 그 목표 자체가 공격을 받기 어렵도록 만드는 것이 목표에요. 그러니까 적의 공격을 받아서 왕의 일가와 측근들이 도망하게 되었을 때에 이 산성으로 피난하게 되는 것이죠. 그러니까 어느 나라든지 반드시 이 피난처가 있게 마련이에요. 그래서 그것을 여러 방법으로 해요.
고구려시대 때에는 해자를 팝니다. 그래서 성을 지어놓은 다음에는 성 주위를 땅을 파서 거대한 연못을 만들어요. 그리고 자기들이 건너다닐 수 있는 통로 하나만의 다리를 놓는 것이죠. 그러면 그 다리 하나를 지키든지 혹은 다리 하나를 파괴시켜버리면 그러면 이제 적군들은 할 수 없이 물을 건너야 해요. 굉장히 불리해지겠지요? 그렇죠? 그렇게 하고 또 경우에 따라서는 보통 쌓은 성은 이렇게 동그랗고 그 다음에 가운데 문이 커다랗게 나있어서 성문이 되잖아요. 그런데 그렇게 쌓지 않고 들어오는 문을 안쪽으로 이렇게 쌓아서 그래서 들어오려면 양쪽의 높은 벽이 있어요. 그 벽에 군인들이 빼곡히 수백 명이 설 수 있는 벽을 만들어놓고 거기를 길게 통과해서 들어와야 하는 것이죠. 그러면 위에서 계속해서 화살을 쏘아대는 그 공격을 맞으면서 와야 돼요. 그것이 고구려성의 특징이에요. 아주 지혜롭게 만든 것이에요. 평지밖에 없을 때는 그렇게 하지만 그 다음에는 어떻게 하느냐하면 산에다가 성을 쌓는 것이에요. 저 남한산성 같은 경우가 그런 용도로 쌓은 것이잖아요. 가서 이렇게 남한산성의 지형을 보면 정말 백 명이 달려들어도 한명을 죽이기가 어렵겠다는 느낌이 들어요. 깎아지른 절벽이나 언덕을 수 없는 돌멩이와 뜨거운 물, 뜨거운 기름, 그리고 화살의 공격을 받으면서 와야 하는데 시체위에 시체가 엎어져서 쌓이기 전까지는 넘어오기 어려운 성이에요. 그런 것이 산성이에요.
그래서 이 산성이라는 것이 우리에게 의미하는 것은 뭐냐 하면 어떠한 불행이나 큰 고통으로부터도 해를 입지 않도록 보호해주시는 주님이라는 의미에요. 하나님은 나의 산성이시라는 것이죠. 우리가 주님을 믿으며 인생을 산다고 해서 늘 승리하고 세상만사가 자기의 원하는 대로 되는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질 때도 있고 그리고 실패할 때도 있습니다. 그 때에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피할 산성이 있어요. 그래서 인생의 큰 환난과 고통의 때에 그분께로 피했을 때 오히려 그분의 품안에서 우리들은 사랑의 시간을 갖고 적들이 자신의 인생 주위에 가득한데 오히려 그 산성에 피함으로 하나님과 깊은 사랑의 교제를 나누게 되는 일은 언제든지 일어나게 되는 것이죠. 그래서 우리들이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제멋대로 막 살 때 때로는 하나님이 우리를 시련과 어려움을 만나게 하셔서 이 산성으로 도망 오게 하시는 것이죠. 그래서 주님과 독대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시는 것이죠. 그래서 주님과의 관계를 확인하고 그분의 보호하시는 은총을 입게 하시는 것이에요. 그게 바로 시인의 경험이지요.
그래서 시인이 또 다른 곳에서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주를 두려워하는 자를 쌓아두시는 은혜, 곧 인생 앞에 주께 피하는 자를 위하여 베푸시는 은혜가 어찌 그리 큰지요. 주께서 저희를 주의 은밀한 곳에 숨기사 사람의 꾀에서 벗어나게 하시고 비밀히 장막에 감추사 구설의 다툼에서 면하게 하시니 이다. 여호와를 찬송할지어다. 견고한 성에서(이 견고한 성이 바로 그런 산성을 이야기하는 것이에요.) 그 기이한 인자를 내게 보이셨음이로다. 아멘.’ 노래하게 되는 것이죠. 그러면서 하는 이야기가 그렇기 때문에 나는 크게 요동치 아니할 것이다. 그렇게 인생을 사는 그 모든 담대함이 하나님께 대한 전적인 의존에서 나온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는 것이에요.
그래서 주님을 전적으로 의존하면서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그런 성도들이 되어야하는 것입니다. 그런 주님을 향한 전적인 의존 속에서 살아갈 때에 기도하면 열렬해지고, 말씀은 절실하게 섭취하게 되고, 하나님이 무엇인가를 맡겨주시면 충성스러운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기도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