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의지하는 자의 삶
"진실로 천한 자도 헛되고 높은 자도 거짓되니 저울에 달면 들려 입김보다 경하리로다. 포학을 의지하지 말며 탈취한 것으로 허망하여지지 말며 재물이 늘어도 거기 치심치 말지어다"(시 62:9-10).
오늘 말씀에 보면 천한 자도 헛되고 높은 자도 거짓되다고 나옵니다. 이것은 시인이 인생을 살아가면서 만나는 많은 사람들과의 경험 속에서 나온 것이겠지요. 이것은 언약 백성 안에서 나오는 이야기가 아니겠습니까? 그 당시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접촉하는 사람들의 한계가 있으니까 사회적으로 지위가 높고 권세가 있는 사람들도 있지 않았겠습니까? 이 다윗이 아직 왕이 되기 전에는 그저 일개 목동에 불과했고 그리고 하나님이 기름을 부으셔서 이스라엘의 왕이 될 것이라고 세우셨지만 끊임없이 사울에게 박해를 받으면서 도망 다녔잖아요. 그런 상황에서 보면 진짜 권력이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이 힘이 없고 권력이 없는 사람들의 인생을 좌우할 수 있는지를 이 다윗이 생생하게 경험한 사람이 아닙니까? 그런 사람들, 높은 사람들, 천한 사람들도 많이 만나지요.
그런데 누가 천하고 누가 높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그저 삶의 외관일 뿐이고 하나님은 그 모든 사람들을 다시는 다시 말해서 평가하시는 하나님 나름대로의 잣대를 가지고 계시다는 것이에요. 그것이 뭐냐 하면 하나님이 가지고 계시는 독특한 저울이에요. 그것으로써 사람들을 달아보시는 것이죠. 그렇게 될 때에 하나님께서 그 저울에 사람들을 다실 때에 ‘입김보다 경하리로다.’ 그랬거든요. 그러니까 사람의 보기에 존귀해 보이고 높아보여도 하나님은 그 사람을 다시는 저울이 있어요. 사람의 영광이라는 것이 사람이 보기에 영광이고 사람이 제물을 가져서 부자라고 하는 것도 사람의 보기에 나보다 더 많은 것을 가졌으니까 귀해 보이는 것이지 하나님은 모든 명예와 권세 영광의 원천이시고 모든 이 세상의 부의 원천이신데 그것 때문에 하나님 앞에 사람이 높아질 것이라고 생각하면 그것은 사람이 사람을 보는 기준을 하나님이 사람을 보시는 기준으로 재는 것이에요. 뛰어난 미모나 학식도 마찬가지에요. 결국 인간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들은 하나님을 본뜬 것인데 무한하고 불변하고 영원하신 하나님에 비하면 인간이 본뜨고 가지고 있는 이 모든 것들이 정말 우스운 것이고 아무것도 아니라는 그런 결론에 도달하게 되는 것이에요.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제 오늘 이 시인에게 ‘저울에다가 달면 들려’ 그랬거든요. 당시의 저울이라는 것이 간칭이잖아요. 그래서 이렇게 저울추를 달고 물건을 올려놓는다든지 아니면 가로지른 막대기에 여기에다가 저울추를 놓고 여기에 물건을 계속 놓으면서 추하고 평행을 이루는 것이잖아요. 그러니까 추보다 다는 물건이 가벼우니까 들려 올라가는 것이죠. 그러니까 사람의 보기에 영광이 있고 높아보여도 하나님이 당신의 저울에 다실 때에 그것이 달면 들려 올라가는 그런 지극히 가벼운 것이 될 때에 그것이 하나님 앞에서의 그 사람의 모습이요, 하나님 앞에서 그 사람의 모양이라고 하는 것이에요. 이것이 바로 사람의 모습이고 모양이에요.
그러면서 이제 시인은 이렇게 하나님이 우리를 달아보실 때에 가볍게 들려올라가는 사람들의 특징을 여기에서 말하면서 시인의 이 가르침을 받는 사람들에게는 너희는 그렇게 하지 말라고 그렇게 권면하고 있는 것이에요. 그것을 세 가지로 이야기하는데 우선 첫째는 뭐냐 하면 포학을 의지하지 말라는 것이에요. 이 포학은 무엇입니까? 무엇인가 내가 원하는 질서대로 주위의 것들이 움직이지 않을 때에 인간을 포함해서 모든 사물들이 내가 원하는 대로 움직여지지 않을 때에 의도를 가지고 솟구치는 분노와 함께 대하는 태도에요. 그런 방식으로 자기 자신의 힘을 발산해서 그 상황을 돌려놓고 움직이려고 하는 이런 것들은 결국 자기를 의지하며 살아가는 불신앙적인 인간의 대표적인 표본을 보여주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그런 것들이 정치사 속에서 나타나게 될 때에 그것이 포학한 군주의 모습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죠. 아무리 포학한 군주라고 할지라도 모든 것들이 자기 마음먹은 대로 잘 되고 그리고 움직이고 있는 동안에는 절대로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자기가 원하는 대로 되는데 왜 그러겠어요? 그렇지요? 그러나 자기의 원하는 대로 이 모든 것들이 되지 않을 때 그 때에 이것을 급격하게 자기가 원하는 대로 돌려놓고 또 원하는 대로 되지못하도록 이바지했던 사람들을 징벌하고자 하는 의도로 솟구치듯이 쏟아져 나오는 분노와 이런 것들로 상황들을 다스리는 것이죠. 이것이 포학이에요. 이것은 가장 악한 방식으로 하나님을 본뜨는 것이고 그리고 가장 나쁜 방식으로 이 상황을 자기 마음대로 바꾸려고 하는 것이에요.
하나님의 백성은 어떻지요?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죠. 살아가면서 우리를 에워싼 삶의 질서가 항상 우리가 원하는 대로 되라는 법은 없어요. 그리고 그렇게 하면 우리 자신은 불행해지는 것이에요. 그래서 여러분들의 자녀들도 보면 부족한 것이 없이 자기가 원하는 대로 뭐든지 해준 아이들은 아주 분명하게 불행해집니다. 아주 절대적으로 불행해집니다. 아무리 훌륭한 곳에 시집을 보내도 반드시 불행해집니다. 왜냐하면 자기 부모는 그렇게 해주지만 이 세상 사람들은 부모와 같은 그런 애정을 가지고 자기가 주저앉아서 버둥거리면 해주는 것이 아니에요. 이것은 반드시 불행해지는 것이에요. 그래서 자녀들에게도 자기가 힘이 있다고 해서 모든 것들을 다 발휘해서 원하는 대로 해주는 것은 자녀를 불행의 길로 인도하는 것이에요.
제가 이렇게 말하면 어떨지 모르겠지만 나는 이렇게 청년들을 만나보면 열 명 중에 세 명은 절대로 결혼생활을 지속할 수 없는 사람들이에요. 그러니까 객관적인 기준을 가지고 보더라도 저 성품과 저 성질머리로는 절대로 결혼생활을 지속할 수 없는 사람이에요. 그러니까 그것이 결국 통계로 나오는 것 아니에요. 절반 가까이 이혼하잖아요. 그러니까 잘할 것처럼 보여도 사실 제가 점수를 후하게 준 것이지요. 못할 것 같은데 잘하는 사람보다는 잘할 것 같은데 못하는 사람이 훨씬 더 많은 것이죠. 여기에서 이제 무슨 문제가 나오느냐하면 끊임없이 언약 백성들은 이런 상황들이 자기가 원하는 대로 움직이지 않아도 하나님을 깊이 의존하고 삶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고통스러운 질서들, 혹은 평안한 질서들을 인하여서 그 하나님을 앙망하고 하나님을 바라는 그런 생활을 하도록 부름을 받고 있는 것이에요. 그래 여러분도 은혜가 떨어지면 사람이 포학해지는 것이에요. 포학해진다는 것이 꼭 무슨 소리를 지르고 폭력을 행사한다는 것이 아니라 마음 자체가 포학해진다는 것이죠. 이러한 것들을 의지하면서 사는 것은 결국은 하나님을 떠난 독립하려는 인간의 특징이라는 것이에요.
두 번째는 ‘탈취한 것으로 허망하여지지 말며’ 그랬습니다. 이것은 전쟁의 문맥에서 자주 나타나는 것이죠. 어느 나라가 전쟁을 해서 어느 나라의 것을 빼앗지요. 탈취죠. 그리고 그렇게 빼앗을 것을 함께 전쟁에 참여한 군인들에게 나누어줘요. 그때에 그들은 아주 교만해지지요. 그런데 꼭 전쟁의 문맥에서만 그런 것이 아니라 다윗은 이스라엘 백성 속에 살면서도 이렇게 악하게 힘이 없는 자의 것을 빼앗는 사람들을 많이 발견했습니다. 그렇게 포학을 의지하고 그 힘을 가지고 연약한 사람들의 것을 빼앗고 그렇게 해서 결국은 자신들이 엄청난 자원을 소유한 것처럼 그렇게 허망하여진 사람들을 많이 본 것이지요. 그래서 허망하다는 것은 뭐냐 하면 없는 것을 찾는 열심이에요. 그리고 그것이 형이상학적으로 악이에요. 사실은 없는데 그 없는 것을 찾기 위해서 마음이 허탄해지고 허무한 것에 굴복하는 그것이 바로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사는 대부분의 사람들의 모습이라는 것이에요.
마지막으로 세 번째 나오는 것이 ‘재물이 늘어도 거기에 치심치 말지어다.’ 입니다. 이 재물은 없으면 없기 때문에 마음이 궁핍 때문에 재물에 집중되고 많이 있으면 많이 있기 때문에 그것으로 인해서 마음이 집중이 되는 것이죠. 그래서 예수님도 ‘네 보물이 있는 그곳에 네 마음도 그곳에 있느니라.’ 고 말씀하시잖아요. 그러니까 재물이 늘어난다고 할지라도 그 모든 상황 속에서 하나님만을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데 이것은 사실은 환경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사랑의 문제에요. 그러면 이렇게 재물이 늘어도 거기에 치심치 아니하고 하나님을 온전히 앙망하고 의지하며 살아가는 것이 신앙인데 그런데 재물이 늘어도 거기에 치심치 아니하기 위해서는 재물보다 더 좋으신 하나님으로부터 누리는 만족이 그 사람의 영혼 안에 있어야 된다는 것 아니겠어요? 그러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겠어요? 이런 일들이 왜 일어나게 되었지요? 바로 그것이지요. 시시때때로 하나님을 의지하며 그 앞에 자기의 마음을 토하는 일이 있어야하는데 그것이 없을 때에 이렇게 될 수밖에 없는 것이죠.
인간의 마음은 따뜻한 여름날의 음식과 같아요. 우리들이 음식을 냉장고 밖에 두면서 제발 썩어라, 썩어라 하고 빌거나 거기에다가 썩는 약을 뿌리지 않아도 내버려두면 그냥 하루만 있다 오면 쉬어서 먹을 수가 없고 며칠을 외출하고 돌아오면 파랗게 곰팡이가 핍니다. 그것이 인간의 마음이에요. 그래서 신앙의 과거도 소용이 없어요. 중요한 것은 하루하루 살아가는 사람들이에요. 매일 매일 주님의 손에 붙들리고 주님을 의지하고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가운데 우리의 신앙생활을 영위해가게 되는 것이에요. 그것이 신앙생활이고 그것이 믿음생활이에요. 그것이 매일 매일 살아가는 우리의 생활이에요. 이것이 우리의 모습이에요. 그래서 우리가 이런 신앙생활의 이치를 알면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살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매 순간 매순간 절실하게 깨닫게 되는 것이죠. 그것이 바로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신앙생활이에요 .그리고 그것이 가장 농축된 형태로 표현된 핵심이 기도생활인 것이에요.
제가 분명하게 예고할 수 있는 바는 이제 기도의 유산은 교회에서 철저하게 잊히기 시작할 것이에요. 특별히 후기 근대주의가 저물어 가면 저물어갈수록 인간들은 종교적이 되어가면서도 점점 더 참된 경건하고는 멀어지는 시대가 옵니다. 이미 오늘날 우리에게 전개되고 있는 것이에요. 기독교 안에서의 진정한 종교성은 이렇게 하나님을 의지하며 그 앞에 자기의 마음을 수시로 토해놓는 그래서 하나님 한분을 온전히 의존하게 되는 이 관계를 통해서 우리들이 신앙의 도리를 배워가게 되고 거기에서 우리들이 하나님 앞에서 인간의 본분을 터득하게 되는 것이에요.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