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능과 인자가 주께 있음은
"하나님이 한두 번 하신 말씀을 내가 들었나니 권능은 하나님께 속하였다 하셨도다 주여 인자함도 주께 속하였사오니 주께서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으심이니이다"(시 62:11-12).
여기에서 시인이 62편의 끝을 맺고 있지요. 하나님이 한두 번 하신 말씀을 들었다고 했는데 이것은 아마도 하나님과의 직접적인 교통 속에서 들었던 신적인 음성을 뜻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당시에는 이렇게 하나님의 계시가 풍부하게 주어지던 시대였고 또 다윗이 왕이기는 하였지만 엄밀히 말하면 선지자 중의 한사람이었거든요. 그러니까 충분히 하나님께서 직접 하시는 말씀을 들었을 것이라고 여겨지는 것입니다. 물론 당시에도 이미 모세오경이 있었으니까 거기에도 똑같은 표현은 아니지만 그러나 이 세상을 움직일 수 있는 권능이 하나님께 속하였다는 사상과 표현들은 많이 발견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거기에서 이 시인이 말씀을 읽으면서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를 받은 것일 수도 있습니다. 아무튼 이 시인은 하나님과 교통하는 사람으로서 하나님께로부터 분명한 말씀을 들은 것이 있는데 그것이 뭐냐 하면 권능은 하나님께 속하였다고 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이 권능이라는 것은 대개 왕과 관련해서 많이 쓰이는 단어에요. 무슨 뜻이냐 하면 왕은 그 나라의 수도에 있으면서 왕은 결코 왕국의 구석구석까지 모두 돌아다니면서 통치하지는 않잖아요. 왕이 한번 행차를 한다는 것이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니까 그러니까 구석구석 돌아다니면서 왕이 직접 그 자리에 임하여 통치하는 것은 아니잖아요. 지금은 민주화시대가 되었으니까 좀 나으려나 모르겠는데 예전에 박정희대통령 시절에는 본인 자신이 그런 신변의 위협을 많이 느꼈기 때문에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들은 이야기에 의하면 예를 들어서 우리나라의 대전을 방문하고 싶다면 6개월 전부터 계획이 짜이고요, 그리고 보안에 들어가게 되는데 대통령이 묵을 방은 벌써 일주일전에 사람들이 가서 하수도구멍까지 다 조사를 하고 거기다가 봉인을 한답니다. 제가 한번 대전에 내려가서 대통령이 잤던 방에서 한번 잔적이 있는데 진짜로 오랜 세월이 흘렀는데도 도자기를 들어서 뒤집어보니까 거기에 전부다 금속탐지기로 검열했다는 봉인이 있어요. 그리고 그 문을 봉하고 경호실의 직원들이 지키고 대통령이 내려오는 그 날은 호텔직원처럼 보이는 모든 사람들이 다 경호실직원이랍니다. 똑같은 복장을 하고 딱 나타나서 호텔 전체를 접수하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현대에도 그러니 옛날의 왕이었던 시절에는 신변의 위협을 더 많이 받을 것이 아니에요. 그러니까 더욱 철저하게 이루어지는 것이죠. 그러니까 왕이 어디를 직접 현지를 지도하는 것은 어려운 것이지요. 오히려 수도에 있으면서 자기는 가보지도 않은 땅까지 모두 자기의 명령이 하달되어요.
자기의 뜻을 사람들이 복종하고 그것이 구현되도록 만드는 그 무엇, 그것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권능이에요. 혹은 권세에요. 그러니까 우리가 주기도문에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할 때 그 권세가 바로 하나님 나라를 다스리시는 왕으로서의 그리스도의 통치하시는 그 능력을 의미하는 것이죠. 그것을 깊이 인정하는 그것이 하나님의 백성 된 사람의 본분이에요. 그러한 미래에 이루어질 이 하나님의 나라의 완전한 실현과 거기에서 이루어질 하나님의 크고 완전한 통치가 구현되고 거기에 모든 인간이 온전히 복종하게 되는 것이 하나님의 나라의 비전이에요. 그리고 지금은 하나님께 불복종하고 불순종하는 이 모든 인류들이 많이 있는 가운데서도 하나님이 당신의 권세를 행사하셔요. 그렇지만 여기에는 보다 복잡한 요소들이 들어가 있어요. 왜냐하면 자율적인 인간들이 하나님을 떠나서 악을 행할 때 이 악이 하나님의 권세를 벗어난 것이 아니라 그 악까지도 하나님의 권세 속에 사용하셔서 그래서 하나님의 나라의 실현에 이바지하게 만드시는데 이것이 바로 다름이 아닌 하나님의 섭리에요. 이렇게 보든 저렇게 보든 결국 ‘권능은 하나님께 속하였다 하셨도다.’ 그랬습니다. 그러니까 그 모든 나라를 다스리는 이 권능이 주께 속한 것이에요.
그런데 이제 교회는 바로 그렇게 인간이 자율적인 존재로서 죄를 짓고 악을 행하는 것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여전히 그것들을 섭리로 사용하셔서 당신의 권능을 행사하시는 현시기속에서 하나님의 나라가 온전히 완성될 때까지 그 사이에 존재하는 것이에요. 그것을 먼저 안 사람들이 그리스도인들이에요. 그것이 바로 교회에요. 그러면 교회에 속한 모든 사람들은 이렇게 그리스도 예수의 거룩한 통치 앞에 무릎을 꿇고 그 권능을 인정하는 것이 신자의 의무이고 신자가 이런 삶을 사는 것은 미래에 이 땅에 이루어질 하나님의 나라의 한 모형이 되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그러한 하나님의 권능에 대한 복종이 없이 그렇게 불순종하고 그리고 분수에 넘게 행동하고 자기가 아직까지도 그 모든 자율적인 인간으로 살아가는 것처럼 그렇게 행동해서 하나님의 통치의 질서를 어지럽히는 것은 이것은 대단히 잘못된 것이고 그리고 하나님 앞에서 막 행동하는 것이라는 것이죠.
그래서 이 시인이 ‘권능은 하나님께 속하였다 하셨도다.’ 하였습니다. 사실 칼빈을 비롯한 많은 종교개혁자들에게 영향을 준 성경의 많은 인물이 있지만 그러나 크게 영향을 준 구약의 인물 중 한 사람이 다윗이에요. 왜냐하면 이 다윗을 통해서는 바울 못지않게 하나님의 주권사상을 발견하기 때문이에요. 그러니까 이 세상 모두를 통치하는 진정한 권세와 권한이 하나님께 있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이 그 당신의 권능을 행사하시는 방식에 대한 해설, 즉 성경말씀(성경의 계시)을 올바로 이해하고 그분께 온전히 복종하게 되는 삶을 살게 될 때에 우리는 비로소 하나님을 올바로 섬기는 사람들이 되는 것이에요. 이러한 권능이 주께 있다는 그 확신 때문에 잠시 번성하는 악인을 보고도 하나님이 어디 계시느냐고 불신앙적인 회의에 빠지지 않았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하나님이 이 세상의 역사를 움직이고 계시고 그리고 나의 인생을 굳게 붙들고 이끌고 계시다는 사실을 믿으면서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살았던 것이죠.
그러면서 시인은 ‘주여 인자함도 주께 속하였으니 주께서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으심이니이다.’ 그랬습니다. 여기서는 인자를 노래합니다. ‘인자함도 주께 속하였사오니…….’ 그러면 이 권능과 인자는 어떤 관계에 있을까요? 권능은 하나님이 이 세상 전체를 통치하시는 하나님의 통치의 방식이에요. 그런데 이 인자는 이 통치가 시행되는 방식이 언약 백성들에게는 인자한 방식으로 통치가 시행된다는 것이에요. 무슨 뜻이냐 하면 하나님이 당신이 가지고 있는 왕으로서의 권능을 이 땅에 행사하실 때에 그 권능은 자기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는 자들에게는 그 권능이 그들에게 이익이 되는 쪽으로 행사될 것이고 불복종하고 도전하는 사람들에게는 그들의 이익을 박탈하는 쪽으로 이 권능이 행사되지 않겠어요? 그런데 언약백성들에게는 이것이 이러한 원칙에 의해서 행사되면서도 그 권능을 베푸는 하나님의 마음이 말할 수 없는 자비하심으로 넘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있어서 공급과 그리고 용서, 그리고 은혜주심으로 나타나는 것이에요. 그래서 언약의 백성들에 비록 죄에 빠지고 하나님을 떠나도 여전히 하나님은 그들에게 필요한 것들을 공급하시고 또 비록 그들이 명백하게 악을 행했어도 진실로 용서를 빌고 하나님 앞에 돌아오면 하나님께서 그들을 진정으로 용서해 주실 뿐만 아니라 순종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하나님이 다시 은혜도 주시는 것이죠.
이렇게 주의 인자하심이 주님께 속해있어서 언약 백성들을 후히 대접해주시는데 시인은 ‘각 사람이 행 한대로 갚으심이니이다.’ 했습니다. 비록 악인이 잠시 번성하는 것 같다고 할지라도 그들에게 행한 그대로 갚으시는 것은 언약백성들에게는 위로가 됩니다. 왜 위로가 되느냐하면 신실한 언약백성들은 고난을 받으면서도 우리 하나님 아버지를 진실하게 따르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하나님께서 행한 대로 갚으실 때에 악인에게는 긍휼히 여김이 없으시지만 그러나 언약백성들에게는 긍휼히 여기시는 인자하심으로 대해주시기 때문입니다. 결국 시인은 이 모든 62편의 시의 마지막을 통해서 하나님만이 자신이 전적으로 의존할만한 분이시라는 사실을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고백이 우리의 고백이 되도록 살아야하는 것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