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즐거워함
“왕은 하나님을 즐거워하리니 주께 맹세한 자마다 자랑할 것이나 거짓말하는 자의 입은 막히리로다 ”(시 63:11).
음 이렇게 악인과 의인의 대조를 말한 후에 시인은 이 시편 63편의 마지막절에서 다시 한 번 그 자신의 정체를 왕으로 드러내면서 자신이 하나님을 즐거워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니까 악인들이 시인에게 고통을 주고 잠시는 시련을 당하는 것 같지만, 그러나 그 시련을 통해서도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더 잘 알게 될 것이기 때문에 그 하나님을 즐거워하게 될 것이다...그런 이야깁니다. 여기에서 즐거워한다....고 하는 것은 음 즐거워한다고 하는 것은 그 무슨 뜻이냐 하면은, 음 하나님을 더 이상 자기가 원하는 무엇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서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수단으로서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그 모든 즐거움의 궁극적인 궁극적이고 최종적인 목표로서 좋아하는 것을 가리키는 거예요. 무슨 뜻이냐 하면은 어 이런 뜻이겠죠. 어 예를 들자면 어부는 좋은 그물이나 그리고 좋은 낚시도구를 좋아하겠죠. 그 이유는 그 낚시와 좋은 고기잡는 도구들 그 자체 때문에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고기를 많이 잡으려고 하는 욕심 때문에 그것을 좋아하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맨 손으로 바닷속에 뛰어든들 아무리 많은 고기가 있어도 단 한 마리도 잡을 수 없겠지만 만약에 좋은 그물이 있다면 그러면 엄청나게 많은 고기를 잡을 수 있을 것 아니에요? 그러니까 만약에 어 그 사람이 고기를 잡을 수가 없다고 하면 그 낚시도구든, 그물이든, 그 사람에게 있어서 더 이상 즐거워하는 것이 될 수가 없잖아요. 그런 것이에요. 여기에서 이야기 하는 것은 뭐냐 하면은 하나님이 나에게 무엇을 주시기 때문에 그걸 얻기 위해서 하나님을 수단으로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즐거워하고 하나님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행복해하고 좋아하는 그 상태를 가리키는 거예요. 그러니까 모든 이 세상에 있는 만물은 끝이 아니라 그것이 모두 다 상위에 있는 것들을 향하게 되는 거죠. 그렇잖아요? 예를 들어서 이번에 북한에서 화폐개혁을 했다며요? 그래서 하루 아침에 많은 돈들이 쓰레기처럼 버려지게 되었다...그래요. 그러면 예전에는 사람들이 그 돈을 벌기 위해서 얼마나 많이 애를 썼겠어요? 다른 사람이 한 장만 달라고 그래도 아마 절대 주지 않고, 그것들을 열심히 모았을 거예요. 그러나 이제 어느 날 정부에서 발표를 하고 내일부터는 이 돈은 아무 쓸데 없다...그래서 내일이라는 날이 오게 되었죠. 그래서 인제 그 돈이 어디에 가도 통용이 되지 않게 되었어요. 그 때에 사람들이 더 이상 그 돈을 사랑하거나 좋아하겠어요? 왜? 그걸 좋아하고 사랑한 것은 그것을 가지고 자기가 원하는 재화를 바꿀 수 있기 때문에 좋아한 거죠. 근데 법적으로 그것이 불가하게 될 때 그것이 휴지조각에 불과한 거죠. 그러니까 하나님을 그렇게 그렇게 좋아하는 것은 그것은 진정한 의미에서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것이 아니다...라는 거죠. 그러니까 이 즐거워한다라고 하는 것은 결국은 사랑하는 거예요. 사랑의 형이상학적인 정의가 무엇이에요? 어떤 한 대상을 궁극적이고 최종적인 즐거움의 대상으로 생각하고 그것과 가까이 있고 그것에 고착하려는 마음과 정신의 움직이는 성향이에요. 그게 사랑이에요. 그러니까 그 사랑은 사랑을 통해서 무엇을 더 얻으려고 하는 그것이 없어요. 최종적인 끝이에요. 다른 모든 사물들은 그 끝을 차지할 자격이 없어요. 오직 하나님만 그 마지막 끝을 차지할 자격이 있는 거죠. 그것이 바로 신앙생활이에요. 그래서 오늘 이 시편은 왕은 하나님을 즐거워할 것입니다...그래요. 우리들이 이 세상에서 행복하고 편안한 것은 좋아하고 시련과 고난은 미워합니다. 그렇지만 시련도 행복도 고난도 위기도 모두 하나님이 어떠한 분이신지를 우리에게 보여주는 도구예요. 도구예요. 그래서 그 시련과 고난을 통해서 하나님의 성품과 그리고 하나님의 그 성품이 시행되는 방식들이 우리에게 전달이 되는 거예요. 그걸 통해서 우리들은 하나님의 그 사랑과 은혜가 얼마나 크고 놀라운가 하는 것을 경험하게 되는 거죠. 우리가 비록 시인 같은 경지에는 이르지 못했다고 할지라도 우리는 이러한 사실들을 인생을 살면서 많이 경험하게 돼요. 그래서 평안할 때는 몰랐던 하나님의 그 큰 사랑을 시련과 위기를 지나면서 배우게 돼요. 그래서 모든 것이 형통하고 좋았을 때에는 냉랭하던 우리의 가슴이 하나님의 크신 사랑에 뜨거워지고 만다..이런 이야기죠. 그래서 비유를 하자면 우리의 인생의 모든 상황은 말하자면은 바이올린의 줄과 같다...가느다란 줄부터 시작을 해서 굵은 줄까지 있고 또 바이올린은 금속으로 만든 줄이지만은 가야금은 명주로 만든 줄이잖아요. 기타는 플래스틱으로 만든 줄이잖아요. 줄의 종류와 굵기가 다양해요. 그런데 그것을 손을 대고 뜯거나 치면 그러면 모두 다른 소리가 나요. 그래서 우리의 서로 다른 많은 환경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 모든 환경들을 현악기의 줄처럼 사용하셔서 그래서 당신의 속성의 어떠하심과 그 속성이 시행되는 방식의 이러저러함을 우리에게 보여 주셔서 보이지 않지만 그 보이는 모든 환경을 통해서 보이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어떠하심을 우리로 하여금 알게 하시는 것이죠. 이것은 하나님이 어 하나님이 우리의 마음을 움직이시는 것과 밀접한 관계가 있어요. 우리들이 평안하고 어려움이 없을 때에는 우리들이 모르던 것들도 어려움이 오면은 깨닫게 되는 것이 반대로 없을 때에는 모르다가 많이 있게 되면서 깨닫게 되는 거 보다 더 많습니다. 지금은 뭐 다 그런 프로그램들이 없어졌고 우리는 지금 아주 비교적 풍요로운 시대에 살고 있지만 그 옛날에 보면은 그 60년대 70년대 쯤 돼서 나라가 굉장히 어렵고 힘들게 살 때, 그 때에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어 희망이었어요. 희망..그래서 우리가 이렇게 가난하고 어려운 시절을 보내도 언젠가는 잘 살 수 있다는 그런 희망이 필요했어요. 그래서 그 당시엔 뭐 텔레비전도 많지 않으니까 그 음 라디오에 그런 프로그램들을 많이 내보냈어요. 그 중에 하나가 절망은 없다, 뭐 이러한 프로그램들을 내보내요. 거기에서 인제 아주 어렸을 때도 감명깊게 들은 얘기가 나오는데 그게 뭐냐하면은 정말 너무너무 뭐 말로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그렇게 진짜 그 어 궁핍할 때는 흙을 뭐 펄벅여사의 대지에 보면은 흙을 그 물에다 빨아서 먹었다 그러는데, 하튼 그 정도로 그렇게 가난한 시절을 지냈던 사람이 있는데 그렇게 애를 쓰고 노력을 해서 그래서 재산을 모으고 그 집안이 잘 살게 되었어요. 근데 이 그 아버지가 1년에 한 번씩 자기네들이 그렇게 고생했던 한 시절을 기념하여 가장 빈궁하고 고통스럽게 살 때에 먹었던 음식으로 딱 한 끼를 차려서 자라나는 그 아이들과 모든 식구들이 그 음식을 나누는 거예요. 그러면서 과거에 대해서 생각하게 하는 거죠. 자...이런 것 아닙니까? 모든 것을 풍족하게 누릴 수 있는데도 단 하루 그것을 거절하고 그리고 옛날의 음식, 옛날의 환경으로 돌아가서 그것을 대하면서 그렇지 않았더라면 생각날 수 없는 많은 과거의 사실들에 대해서 묻고 생각하게 되는 거죠. 그 때에 일부러 만든 상황이지만 그 자체가 현악기의 줄처럼 되어서 우리의 마음에 풍족한 상태였다라면은 못 느꼈을 또 다른 정동을 불러 일으키는 거예요. 그러면서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 자신의 인생에 가장 곤고한 날에 하나님이 어떠한 성품을 자신들에게 보여주셨는지를 발견하고 깨닫고 또 알게 되는 것이에요. 그게 바로 신앙이에요. 그게 바로 믿음이에요. 그래서 오늘 성경은 말하기를 왕은 하나님을 즐거워할 것입니다...그런데 자기만 자기만 그렇게 하나님을 모든 환경 속에서 즐거워하도록 만들어 주시는 것이 아니라 주로 맹세한 자마다 그렇게 하나님을 자랑하게 될 것입니다...그러면 여기에서 주로 맹세한 자라고 하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이것은 뭐냐면 하나님을 위해서 살려고 할 때에 그 주님과 더불어 맹세한 사람들이에요. 약속의 관계죠. 넓게 바라보면 이스라엘 전체가 하나님 앞에 주로 맹세한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율법이 낭독되고 그리고 제사장이 그 맹세와 함께 피를 뿌리고 그 뿌리는 가운데서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멘 아멘 함으로써 죽기까지의 맹세로서 율법에 순종할 것을 다짐하는 사람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이에요. 이렇게 넓은 의미에서는 이스라엘 백성 전체를 가리키고 좁은 의미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 살기 위해서 하부적으로 하나님께 서원을 하는 것을 가리키는 거예요. 그러면 하나님 앞에 말씀대로 살기 위해서 서원을 한다라고 할 때 그 기준은 하나님의 율법책이 되는 거죠. 그래서 삶의 기준이 하나님의 말씀인 모든 사람마다 결국은 주님을 자랑하게 될 것입니다..어떻게? 당장은 악인에게 고난을 당하고 시련을 당하는 것 같지만 결국은 하나님이 우리를 이렇게 이렇게 인도하셨습니다....하나님이 나를 이렇게 이렇게 승리하게 하셨습니다....그래서 결국은 하나님의 이름을 자랑하게 할 것이지만 반대로 거짓말 하는 자의 입은 막히리로다...거짓말 하는 자의 입은 막히리로다...이 사람들은 하나님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거짓말 한다라고 하는 것은 우리의 모든 존재를 초월하는 절대적인 기준으로서의 하나님이 마음에 계시지 않다, 마음 속으로 그런 하나님은 계시지 않다...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 그 사람들이 바로 거짓말 하는 사람들이에요. 시편에서 나오는 의인과 악인의 대조의 전형적인 그 묘사를 보여주는 거죠. 그래서 의인은 절대적으로 선하게 살고 악인은 절대적으로 악을 행하는 사람들이 아니에요. 의인도 때로는 죄를 짓고 넘어지지만 마음 속에 하나님을 언제나 인정하게 되는 사람들, 그리고 그 하나님을 향한 인정 때문에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되는 사람들이고 악인은 모든 사상과 마음에 하나님이 없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에요. 자신이 바로 그 하나님의 위치에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에요. 이런 사람들의 입은 막히게 될 것이다...자기의 마음 속으로 생각하던 것과는 정반대의 상황이 되어서 오히려 말하는 것이 사람들 앞에 부끄러움이 될 것이다라고 하는 그러헌 상황을 오늘 시인이 말하고 있는 것이에요. 그것이 바로 시인의 상태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63편 마지막에서 결국 하나님을 의지하며 사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믿음으로 사는 사람들에게 주시는 복은 하나님이 그 사람들로 하여금 시련이든지 고난이든지 모든 환경을 통해서 하나님이 하나님이심을 즐거워하고 기뻐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신다는 사실을 여기에서 보게 되는 것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