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심하는 자의 기도
“하나님이여 나의 근심하는 소리를 들으시고 원수의 두려움에서 나의 생명을 보존하소서”(시 64:1).
하나님의 말씀은 시편 64편 1절입니다. 시편 64편 1절입니다. 하나님이여 나의 근심하는 소리를 들으시고 원수의 두려움에서 나의 생명을 보존하소서. 아멘. 다시 한 번 읽습니다. 하나님이여 나의 근심하는 소리를 들으시고 원수의 두려움에서 나의 생명을 보존하소서. 아멘.
64편은 탄원 시입니다. 하나님 앞에 올리는 간절한 탄원으로 이루어져있는 시입니다. 시인은 1절에서 근심으로 가득찰 때 하나님 앞에 기도를 올리고 있습니다. 이 근심이라고 하는 것은 마음에 밀려오는 염려죠. 현재적으로 그리고 또 앞으로 앞으로 무엇인가 자기를 둘러싼 삶의 질서가 자기가 원하는 대로 펼쳐지지 않는 것에 대한 두려움, 걱정, 이런 것들로 가득차 있는 상태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어떻게 해서 이런 근심이 생겨나는지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이 근심이라고 하는 것은 증거가 없으면은 근심이 생기지 않습니다. 우리들이 미래에 일어날 일들을 우리들이 현재의 사물들의 질서를 통해서 생각하게 되죠. 눈에 비치는 모든 환경과 모든 것들은 우리의 마음 속에서 해석되어지고 해석되어질 때 우리가 그것을 비관적인 방향으로 해석을 하거나 또 올바로 해석을 했다고 하더라도 그 결과가 나쁠 것으로 기대가 될 때 그 때 우리의 마음 속에는 근심이 생겨나게 됩니다.
그런 근심이 있게 되면 우리의 마음은 분산되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근심으로 가득하게 되면 일이 손에 잡히질 않고 공부를 해도 거기에 집중할 수 없고 또 우리가 사람들과의 관계도 올바르게 이어갈 수 없을 정도로 그렇게 지장을 받게 되는 것이죠. 그것이 바로 우리의 근심이에요. 이러한 근심이 오늘 시인의 시인의 표현에서는 소리를 들으시고...그랬으니까 근심을 하니까 많은 사람들에게 나는 근심한다고 공표하고 다닌다는 내용이라기 보다는 근심 마음이 근심에 쌓일 때 나는 소리들이 있잖아요. 신음, 한숨, 그 다음에 염려와 근심으로 인한 뒤척이는 소리, 뭐 이런 것들 아니에요? 그러한 것들이 자기 안에 많이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성도가 근심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 옳은 것이 아닙니다. 이 근심에 두 종류가 있는데 하나는 우리를 생명에 이르게 하는 근심이고 또 하나는 우리를 죽음에 이르게 하는 근심이에요.
생명에 이르게 하는 근심은 근심할수록 그 마음이 하나님을 향해 집중되게 만들어 주는 그런 종류의 근심이에요. 자 예를 들면, 하나님 앞에 자신이 온전하지 못하다는 각성에서 오는 근심, 이런 것들은 하나님을 주목하며 더 하나님께 은혜를 많이 받아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 싶다는 마음을 가져 오겠죠? 자기가 아직 회심에 이르지 못했다고 하는 근심, 이런 것들은 주님께 집중하는 마음을 갖게 만들어서 어찌하든지 하나님 앞에 구원받아야 되겠다는 열망을 불러 일으키겠죠? 주님께로부터 받은 사명을 온전히 감당하지 못한다는데서 오는 마음의 근심, 이것은 하나님 앞에 이 사명을 온전히 감당하고 싶다는 아주 절실한 몸부림을 가져오겠죠? 이러한 모든 것들은 우리에게 아주 분명한 사실을 보여줍니다. 근심 중의 어떤 근심은 우리를 생명에 이르게 한다는 것이죠. 이런 근심 속에서 하나님을 더 의지하고 집중하게 되는 거예요. 이런 근심이 있을 때, 우리의 기도는 불붙게 되는 것이죠.
두 번째로는 우리의 기도 중, 죽음에 이르게 하는 근심이 있습니다. 이 근심은 근심할수록 마음이 나뉘어지고 흩어져서 하나님을 바라보던 그 나마의 마음도 분산시켜버리는 것입니다. 이럴 때 우리는 이런 근심이 있을 때 하나님 앞에 기도할 수 없고 매달릴 수 없고 그렇게 되는 것이죠. 근심이 마음 속에 있으면 이렇게 말을 하고 이야기를 해도 생각은 다른 곳에 근심하는 곳에 가 있게 마련 아니에요? 그러니까 이런 근심이 있으면 하나님을 섬기는 것도 사실은 다른 마음으로 마음이 온전히 하나 되어서 하나님을 섬기기가 어려운 것이죠. 근심은 우리의 일생에 있어서 파도와 같애요. 끊임없이 이 파도를 넘어갑니다. 또 이 근심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의지하게 만들어 줍니다. 그래서 오늘 시인이 무슨 일인진 모르지만은 원수들로 인해서 깊이 근심하는 가운데 시인은 하나님 앞에 기도를 올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음에 근심이 쌓일 때 신자의 유일한 피난처는 하나님이에요. 그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게 신자의 피난처에요. 그래서 오늘 이 시인은 가장 근심이 자신을 두르고 있을 그 때에 하나님 앞에 근심하는 나의 소리를 들어 달라고 하나님 앞에 탄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근심의 내용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는데 그것은 원수의 두려움이었습니다.
원수들이 자기를 이길지도 모른다고 하는 큰 두려움 때문에 그는 근심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다윗은 힘 없는 사람으로서 왕이 될 때까지 혹은 왕이 되고 난 후에도 수많은 원수들에게 에워싸인 일생을 산 사람이었습니다. 사람의 이치로 보자면 벌써 죽었어야 될 사람이 그렇게 그 모든 원수들이 숲처럼 늘어서 있는 그 모든 상황들을 극복하고 그리고 하나님 앞에 이렇게 매달리며 아버지 앞에 신앙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모두 이 시인이 이런 두려움 속에서 하나님을 의지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근심과 원수의 두려움 속에서 오히려 이 시인은 하나님을 더 간절히 찾을 수 있었고 그래서 그의 생애 종종 다가왔던 이 큰 고난과 근심은 마음을 합하여 하나님을 바라보고 갈망하는 그러한 중요한 도구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그 큰 사랑을 의지해서 매순간 하나님께 간구함으로 그 근심과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가 있게 되었던 것이에요. 우리가 비록 하나님의 자녀이며 또 그 사랑을 받는 성도라고 할지라도 하나님은 눈에 보이는 분이 아니시고 이 세상은 우리의 눈에 잘 보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영향을 받고 신앙을 공고히 하기 전까지는 이렇게 이 세상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에워싸일 때 우리는 늘 하나님 없이 이 세상에 고아처럼 버려지는 사람인 것 같이 염려하고 근심하는 일들이 우리에게 일어날 수 있습니다. 염려와 근심은 마치 소용돌이처럼 우리의 생각과 정신을 빨려 들어가게 만듭니다. 큰 물이 휘돌며 소용돌이를 일으키고 한 쪽으로 그 물을 빨아들이는 것처럼 우리의 의식과 정신과 모든 것들을 빨아들여서 그래서 그 염려하고 근심하는 것에 비범하게 집중하도록 만들어 줍니다. 그래서 근심하는 마음으로는 하나님을 볼 수 없는 것이에요. 마치 처음 소용돌이 치며 물길 속으로 빨려들어가는 어떤 물질이 그 강물을 타고 다른 곳으로 흐를 수 없는 것처럼 그렇게 근심은 우리의 마음을 빨아들이는 아주 무서운 효과가 있습니다. 그래서 근심이 밀려올 때마다 우리는 우리의 마음을 잘 다스리며 하나님을 찾아야 될 때라고 자신을 타일러야 합니다. 염려가 엄습할 때마다 내가 하나님 의지하지 않고 교만할까봐 이런 걱정과 염려를 주시는 것이다...생각하고 하나님을 더 많이 의지하는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신실하신 하나님, 오늘 이 시간에도 부족한 저희들이 아버지 앞에 기도합니다. 이 세상에 사는 저희들 사랑이라는 버릇을 끊을 수 없는 저희들이기에 때때로 주님이 원하시지 않으심에도 불구하고 근심하고 염려할 때가 있습니다. 생명에 이르는 근심과 걱정은 마다하고 죽음에 이르는 근심과 걱정으로 마음을 썩여 주님을 섬길 마음이 남아있지 못 하게 만들 때가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오늘 이 시간에도 우리를 불쌍히 여겨 주시고, 하나님의 그 큰 사랑과 자비로 우리를 어루만져 주시옵소서. 우리의 근심이 변하여 주님을 향한 갈망이 되게 하시고 우리의 염려를 변하여 주님을 향한 기도가 되도록 도와 주시옵소서. 두려움이 변하여 기도가 되게 하시고 한숨이 변하여 노래가 되게 해 주시옵소서. 그래서 매순간 하나님 의지하며 주님 사랑 안에서 살 수 있도록 우리를 붙들어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