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를 의지하라
“하나님이여 주께서 저희로 파멸의 웅덩이에 빠지게 하시리이다 피를 흘리게 하며 속이는 자들은 저희 날의 반도 살지 못할 것이나 나는 주를 의지하리이다”(시 55:23).
마지막으로 시인은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로 끝을 맺고 있습니다. 기도는 두 부분으로 크게 나누어 집니다. 자기를 괴롭히는 악인들의 마지막에 대한 기도와 그리고 악인에게 그렇게 고통을 받는 자신은 그런 환경 속에 하나님 앞에 어떻게 살 것인지를 두 도막으로 나누어 하나님 앞에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우선 자신을 많이 괴롭힌 악인에 대한 기대를 보여줍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저희를 파멸의 웅덩이에 빠지게 하실 것이라는 기대입니다. 이 기대는 사실, 두 가지에 근거를 하고 있습니다. 우선 하나는 하나님의 자녀에게 끊임없이 고통을 주고 괴롭히는 그 사람의 악한 행동은 악한 행동 자체가 가지고 있는 무게 때문에, 마치 무거운 물건을 경사진 곳에 두면 흘러내리듯이 그가 그렇게 악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정하신 도덕적인 법칙에 따라서 그가 결국은 지금은 번성하는 것 같지만 파멸될 것이라는 믿음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하나님이 그 사람을 직접 징벌하심으로 하나님이 그를 파멸의 웅덩이에 빠뜨릴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자연 만물들을 다스리실 때, 당신이 정해놓으신 법칙으로도 다스리시고 당신 자신이 직접 행하심으로 다스리기도 하십니다. 법칙 그 자체가 하나님이 일하시는 법칙이시기 때문에, 물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고, 무거운 것이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것같이 하나님이 그렇게 법칙을 만드시고, 그 법칙을 당신과 상관없이 홀로두신 것이 아니라, 바로 그 법칙 안에서 법칙을 따라 하나님이 이 자연의 모든 만물들을 통치하시고 다스리는 것입니다. 봄이 가면 여름이 오고, 여름이 가면 가을이, 가을이 지나가면 겨울이 오듯이, 이 모든 자연의 순환을 하나님이 법칙을 정하시고 그 법칙으로 이 모든 것들을 움직이십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법칙에 묶이거나 메이지 않고, 바로 그 법칙 안에서 하나님이 자연의 모든 법칙과 사물들을 움직이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자연의 법칙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이 만물을 움직이는 규칙이지 하나님과 상관이 없이 별도로 존재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만물을 규칙으로 다스리지만, 하나님이 마음먹으시면 언제든지 자연의 모든 만물들을 법칙과는 상관없이 혹은 법칙을 초월해서 당신 자신이 직접 통치하실 수 있습니다. 그래서 바닷물을 갈라지게도 하시고, 또 기적이 일어나게도 하셔서 하나님께서 자연의 만물들을 다스리시는 것입니다. 도덕적으로도 만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도덕의 법칙을 만들어 놓으셨기 때문에 하나님을 안 믿는 사람들이라고 하더라도 하나님이 만드신 법을 거스려 살면 고통과 괴로움을 느끼고, 그 법에 부합하게 살면 평안을 느끼게 하나님이 다스리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 있는 시인을 괴롭히고 있는 악인들은 결국은 그러한 도덕의 법칙에서 볼 때, 결국은 그 안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이 이들을 파멸케 하실 것입니다. 또 하나님께서 직접 개입하셔서 그 모든 시인을 괴롭히는 사람들을 섭리가운데서 파멸하실 것입니다. 파멸의 웅덩이에 빠지게 하신다고 하셨는데, 사실 그것은 하나님의 자녀인 다윗을 파멸시키기위해 만들어 놓은 웅덩이요. 그리고 거기가 바로 이 악인들이 이 시인을 비롯한 하나님의 자녀들을 파멸시키기 위해 만들어 놓은 웅덩이며, 거기에 사람들을 빠트리려고 했던 그 웅덩이에 자신들이 빠질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성경을 보면, 악인의 많은 꾀는 결국은 자신을 옭아매는 밧줄이 되고 악인 파놓은 많은 함정은 결국 자신이 빠지는 그런 도구가 됩니다. 이렇게 해서 하나님의 자녀들을 하나님이 보호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시인은 악인들이 행하는 일과 그리고 그들의 미래의 불행에 대한 기대를 보여줍니다. 그것이 무엇인가 하면, 그들은 피를 흘리게 하는 자이며, 속이는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성경이 하나님의 언약백성의 특징이라 하는 가장 중요하고 고전적인 덕목 두 개를 위반한 것입니다. 그것은 사랑과 인애, 혹은 자비와 공의입니다. 미가 선지자가 하나님의 백성들이 누구인지 설명하면서 하나님의 신탁을 빈 것입니다. 공의를 행하고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이라 했습니다. 뒤에 나오는 겸손히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은 세 가지라기보다는 공의를 행하고 인자를 사랑하는 사람의 내면적인 모습이 삶속에서 그대로 드러나게 될 때. 그는 하나님을 사람을 향하여 겸손할 수 밖에 없는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공의를 행할 때, 나는 지금 공의를 행하고 사람들이 공의 속에서 살기를 원한다고 할 때, 자기는 과연 그렇게 살고 있는지를 돌아볼 때, 겸손해 질 수 밖에 없습니다. 다른 사람을 사랑할 때, 그 사랑하는 것만큼 힘들고 어려운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한사람이라도 끝까지 사랑해 본 사람은 절대로 자기 자신에 대해 낙관할 수가 없습니다. 그것이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겸손히 동행하는 것은 공의와 사랑으로 그의 내면의 세계가 가득찼을 때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삶의 발현입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같이 하나님의 백성된 사람들에게 파멸의 웅덩이를 파고, 그를 피를 흘리게 하는 그 잔인함은 결국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가장 중요한 덕목인 인자와 거리가 먼 삶입니다.
성경은 이 거짓에 대하여 철저히 탄핵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계시록 21장으로 넘어가게 되면, 거짓말하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는 일에서 제외된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의 대표적인 악이 거짓입니다. 그러면 사람들은 올바르고 정직하게 살지, 왜 거짓을 행할까요?
간단합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끝임없이 거짓을 행하고, 그래서 그 거짓이 그 사람의 인격에 베일때 까지 악을 행하는 이유는 바로 그가 하나님 안에서 하나님이 정하신 어떤 질서를 따라 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이익에 따라 그때그때 변신하며 산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여기에는 공의가 있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하나님의 백성들이 사랑이 없이 사는 것을 하나님이 탄핵하신 것은 이해됩니다. 사람들의 피를 흘리고 파멸의 웅덩이를 파서 그들을 빠뜨려 죽게만드니깐, 하나님이 그들을 미워하는 것은 이해가 갑니다. 그러나 거짓이 뭐그리 심각하 길래, 누구를 죽이거나 약탈한 것도 아닌데, 왜 그 거짓을 철저히 미워하셨을까요? 왜냐하면, 하나님의 백성의 가장 큰 죄는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백성답게 산다는 것은 사람답게 산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을 직접 볼 수 없기 때문에, 사람들은 사람다운 사람들을 보면 그 사람 뒤에 하나님다운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하나님다우심을 당신과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사람답게 만드심으로 하나님이 당신 자신을 알리십니다. 그것이 바로 거룩하심입니다. 이 세상의 나라는 그 정신 자체가 하나님을 떠난 다음부터는 하나님과 겨루는 것이 목표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끊임없이 악하게 흉내내려고 합니다. 그러므로 많은 권력을 이세사의 나라가 추구하고, 악인들이 그 권력을 탐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흉내내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끔찍하게 악을 행하면서도 그 많은 돈을 벌려고하는 이유는 많은 재물은 얼마후에 지금 당장에, 혹은 나중에든지 그렇게 자기가 원하는 모든 것을 소비할 수 있도록 만드는 자원을 제공합니다. 그것이 결국 하나님의 부요하심을 흉내내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끊임없이 건강하게 오래살고 싶어하고,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가 아니라, 이 세상 누군든지 이 세상에서 건강하고 오래 장수하기를 원해요. 하나님의 영원하심을 흉내는 것이죠. 모든 사람이 악인이든지 언약백성이든지, 시인에게 악을 행하는 인간이든지 모든 사람들이 행복하기를 원해요. 무엇이예요? 하나님의 복되심을 흉내내는 것 아닙니까? 이런 식으로 이세상의 인간들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살고자할 때, 일관되게 정직하게 살수가 없습니다. 왜? 이익의 문제가 날마다 걸려있으므로, 끊임없이 변신합니다. 그러면 그런 식의 삶을 살면, 하나님이 누구신지 보여주는데, 실패하는 것이죠. 오히려 하나님의 하나님다우심을 알리는 일에 있어서 끔찍하게 방해가 됩니다. 왜냐햐면,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비추어 볼 때,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삶의 상황들이 그 하나님의 성품에 꼭 맞게끔 진행될 때도 있지만, 그렇지않을 때가 훨씬 더 많습니다. 하나님의 법칙에 의하면. 의인은 언제나 잔치하고 기뻐하고 그리고 악인은 날마다 초상집이고 고통을 받아야합니다. 그러나 이세상의 잘못된 구조 때문에, 때로는 하나님의 섭리 속에서 어느 순간에는 이 법칙이 그대로 적용되지 않는 것처럼 보입니다. 만약에 그렇치않다면 신실하게 믿는 사람에게 고난이라는 것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때에 그런 잘못된 질서가 압박으로 가해질 때, 그때에도 정직하고 올바르게 살려고 할 때, 그것이 어두운 세상의 빛이 되는 것이고, 섞는 세상에 소금과 같은 역할을 하게 됩니다. 그러니깐, 세상의 이상, 바벨론의 가치는 하나님을 흉내내서 더 강하고 크고 행복하게, 이것이 바로 이 세상의 가치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들은 그렇지않습니다. 하나님이 하나님다우신 분임을 보여줄 때, 그것이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최고의 가치이며 행복인 것입니다. 그래서 늘 이야기하듯이 인간으로 이 세상에 태어나서 할 수 있는 최고의 의무는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의 탁월하심을 알고, 왜냐하면 그분을 통하지 않으면 하나님께로 갈 수 없기 때문에. 그리고 그 탁월하신 그리스도 앞에서 인간의 의무를 다하면서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이 보실 때, 아름다운 사람이 되어갈 때, 그때 그 아름다움을 통하여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