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변하시는 하나님 2
“태고부터 계신 하나님이 들으시고(셀라) 변치 아니하며 하나님을 경외치 아니하는 자에게 보응하시리로다”(시 55:1-9).
영원하신 하나님의 시각에서 보면 이세상이나 유구한 세월을 흐르도록 이 두주의 만물들이 하나님에게는 하루살이와 같은 게 아니겠어요. 하나님에게는 시작도 없고 끝도 없으신 무시무종하신 분이거든요. 그렇게 완전히 영원하신 하나님을 시간과 관련해서 생각해 보자면, 이 하나님은 무한히 존재의 기원을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게 하고 또 미래로 가게 하는데 이게 고정된 개념이 아니라 계속 움직이는 개념이에요. 어디가 끝이다 라고정하면 사실은 하나님은 거기에서 더, 더 멀리 계신 것이고, 거기가 끝이다 라고생각하면은 하나님은 거기서 더 멀리 계신 것이, 이게 하나님의 존재거든요. 이게 과거로만 그런 게 아니라 미래로도 그렇거든요. 그러면 우리가 아무리 긴 시간의 길이를 정하고 여기부터 여기까지다 라고 말해도, 하나님은 앞뒤로 무한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그 모든 것들은 길이에 상관없이 하나님에게는 없는 것과 같은거거든요.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하도 오래 되셨지만 수학에서 보면 무한대분의 일은 영으로 수렴한다. 이렇게 배웠어요. 무한대분의 일은 영을 향해 계속 달려가는 거죠. 그러면 그 무한대라는 분모위에 분자를 일로 올리든 천을 올리든 백억을 올리든 그 모두 똑같이 영으로 수렴하는 것이에요. 이 하나님의 존재에요. 그래서 이 하나님은 시간적으로는 그렇게 무한하신 분이예요. 그래서 우리들이 시간을 생각할 때 이 시간은, 하나님은, 인간들은 영원을 생각할 때 두 가지 생각 밖에 없어요. 직선적인 영원과 그리고 끊임없이 제자리로 돌아오는 회귀하는 영원이에요.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원을 놓고 그리고 그것을 따라 가면은 한없이 돌아도 제자리에 돌아오면서 계속 도는 거죠, 영원을 그렇게 생각하는 거죠.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불교나 힌두교의 영원관은 원적인 영원관이고 그리고 기독교의 영원관은 직선적인 영원관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 말은 전적으로 잘못된 거죠. 왜냐하면 하나님은 원적인 영원관, 직선적인 영원관 이 모든 것은 시간 안에서 일어나는 것이고 그래서 선적인 시간관이냐 혹은 원적인 시관관이냐는 이런 말은 가능하지만, 하나님은 영원자체로서 이 두 가지 모두를 초월하시는 분이시죠. 이 모든 것을 초월하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에게는 현재나 과거나 미래가 없으신 거죠. 그래서 하나님은 이러한 모든 인간들이 바라보는 시간 안에서의 개념을 뛰어 넘어서 그래서 모든 만물을 계기적인 발생, 즉 꽃을 심으면 싹이 나고 싹이 나면 잎이 나고 꽃이 피고 열매를 맺고 떨어지고 죽은 것 같이 되고 다시 살아나고 하는 이러한 계기적인 발생이 없이 하나님은 당신 자신이 그렇게 변함 없으시며 영원하신 분으로서 이 세계와 관계를 맺으시는 거죠. 그래서 하나님에게는 이 세상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도 하나님에게는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라든지 깜짝 놀랄만한 사건이라든지 하나님의 생각을 벗어난 사건이라든지, 이런 건 있을 수가 없는 일이죠. 그래서 하나님은, 아우구스티누스도 말하기를, 오래된 분이시다. 묵은 분이시다. 그래서 예전에 하나님을 만난 사람들을 만나주셨던 그 하나님이 오늘날에도 우리를 만나주시고 그 사이에 하나님이 변하셨다 던지, 성숙하셨다 던지 그건 있을 수가 없는 거죠. 그래서 오래된 분으로 묘사 되요. 그런데 이제 문제는 뭐냐면, 그러면 우리가 이 세상에서 무엇을 행하고 어떻게 살아가든지 하나님에게는 다 똑같은 것 아니겠어요. 이미 모든 걸 다 알고 계시는데, 그래서 우리가 죄에 빠지든지 하나님을 잘 공경하든지 그게 뭐 하나님에게 대단한 일이겠어요. 그러나 만약에 하나님이 그렇게만 이 세상을 바라보시고 또 대하신다면 이 세상은 하나님의 통치를 온전히 펼치는 그러한 세상, 다시 말해서 인간이 유한한 시간과 공간속에 존재하는 유한한 존재로서, 인간이 하나님께 자기를 굴복시키고 주님을 섬기고 그래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세상을 다스리고 정복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하는 이런 일에 기쁨을 느끼지 못할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은 이런 직선적인 시간관과 원적인 시간관을 모두 초월하시는 하나님이시면서 이 모든 것들을 당신 밖에 두지 아니하시고 당신 안에 가지고 계시는 하나님이에요. 그래서 하나님은 시간을 초월하시는 영원하신 하나님이시면서도 그 영원은 시간과 상반되는 어떤 존재로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시간까지도 영원 속에 포함되어 있어서 그래서 하나님이 그 모든 사물들뿐 아니라 그 사물들의 흐름을 알려주는 그 시간까지도 당신 자신 안에 가지고 계신 것이죠. 그러니 하나님이 영원히 존재하시는 분으로 하나님은 자신 안에 있지만 또한 하나님은 당신을 덕 입어 영원히 있게 하신 사물들도 당신 안에 두시고 그뿐 아니라 시간 안에서 태어났다 시간 안에서 사멸할 모든 사물들도 당신을 벗어나지 못하게 하시므로 모든 것들이 하나님 안에 있음을 드러내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시간을 초월하셔서 모든 것들을 바라보실 수도 있고 또 시간 안에서 우리를 바라보실 수도 있습니다. 당신 자신은 모든 것을 이미 알고 계시면서도 어떤 일들이 일어날 때 우리에게는 하나님이 일어난 그 일에 대해서 느끼시는 기쁨과 슬픔과 분노와 자비와 긍휼과 사랑과 이 모든 것들이 느껴지게 하심으로서 우리가 매순간 하나님께 돌아오고 하나님의 통치에 복종하는 삶을 살아가게 하신 것이죠. 이러한 하나님의 불변하시고 영원하신 성품의 빛 아래서 오늘 시인은 악인을 관찰하는 것이에요. 그 악인이 변하지 아니하며 하나님을 경외치 아니하는 사람이에요. 그 사람이 오늘 시인에게 마음 아픈 고통을 주고 그를 억압하고 그를 배신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인간이 악인이면서도 자기 가는 길을 쉬 돌이켜 하나님께로 향하지 않는 것은 악한 방식으로 하나님의 불변하심을 흉내 내는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이 변함없이 사랑이시고 자비하시고 불변하시는 것처럼 또한 악인들이 그릇된 방법으로 하나님을 본뜰 때에 자신의 악을 불변할 것처럼 지속하고 그렇게 하나님의 불변성을 흉내 내는 가운데 그 악을 통한 지속적인 기쁨을 자신 속에 누리게 됩니다. 하나님의 불변성은 하나님 자신이 불변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에 계속되는 불변성이지만 인간의 이악함의 불변함은 인간이 끊임없이 변하지 않기로 의지적인 선택을 하는 것으로서 악인이 불변하는 악에 빠지게 되는 것이죠. 그러니 악인은 그렇게 악한대로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끈임 없이 죄를 짓고 하나님 앞에 진멸당할 만한 도덕적인 보응을 받게 되는 것이죠. 하나님 앞에 올바르게 주님을 섬기며 충성스럽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렇게 충성스럽게 변함없이 흔들리지 않고 주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그 자체가 매순간 그를 격려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그 은혜에 화합하는 인간의 끈임 없는 의지적인 선택이 어우러져서 그래서 성도는 하나님 앞에 견인되는 것이에요. 여러분들이 물이 강하게 흐르는 커다란 개울이나 강에 서보신적이 있을 겁니다. 물살이 워낙 빠르게 흐를 때에는 앞으로 올라가는 것은 그만두고 제자리에 서서 그 물살을 견디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소모가 되요. 그러므로 흔들리지 않고 충성스럽게 주님을 사랑하며 서있는 사람은 그 자체만으로도, 하나님 앞에 훌륭한 상을 받을 만한 자격이 있는 것이죠. 부패한 인간으로서는 그게 불가능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은혜가 필요한 것이고, 특별한 사단의 역사가 없어도 하나님의 은혜가 제거되면, 이것은 강물처럼 떠밀려서 그렇게 파괴되는 것이에요. 그래서 하나님이 보실 때에 변하지 아니하는 이 악인들은 하나님 앞에 보응을 받을만한 사람들이었던 것이죠.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악한 길에 대하여 변하지 아니하니, 당연히 그는 하나님을 경외할 수가 없죠. 그렇게 하게 되니 그의 삶은 자기가 의도하지 않았을지라도 끈임 없이 악을 행하고 하나님을 거스르는 생활을 하게 되는 것이죠. 이런 사람들을 하나님은 보응하신다고 오늘 말합니다. 인간이 어떤 악을 행하며 끈임 없이 불변할지라도 하나님은 그 인간이 흉내 내는 불변함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탁월하게, 그리고 영원히, 그렇게 불변하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악인은 아무리 하나님 앞에 하나님의 불변을 악하게 본뜰지라도 불변하시는 그 하나님을 이길 수가 없는 것이에요. 그래서 언제나 하나님이 우리에게 돌아오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로 돌아가게 하시는 것이죠. 이러한 사실을 생각해 볼 때 우리는 눈을 들어 파란 하늘을 바라보고 지난해와 다름없이 다시 솟아나는 만물의 소생을 보면서 우리는 똑같이 하나님 앞에 신실하게 살아야할 이유를, 하나님을 사랑하면서 살지 않을 수 없는 이유를 발견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그 분의 뜻대로 살아가는 것은 영원히 있는 생명이지만 그 분을 거스르며 살아가는 것은 아무것도 남는 것이 없는, 그런 고통밖에 우리에게 주는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실을 생각하면 우리의 인생이 참, 그 우주와 연관을 해서 우리를 보면, 티끌 같고 들풀처럼 사라져가는 하찮은 인생이지만 그러나 우리의 인생이 그 모든 시간을 넘어서는 영원하신 하나님과 관계를 맺음으로서, 주님께 바치는 우리의 사랑과 헌신과 섬김이 또한 영원한 것이 되는 거죠. 하나님 이외의 모든 것들은 지나가는 것들이고 사멸하는 것들이죠. 그것들이 지나가고 사라지는 것들이니 그것을 향해 바친 사랑도 사라지고 소멸하는 것들 아니겠습니까? 그러니 요한 사도가 말한바 “이 세상도 지나가고 그 정욕도 지나가고 오직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는 영원히 있느니라” 하였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