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한 자들의 실상
“저는 손을 들어 자기와 화목한 자를 치고 그 언약을 배반 하였도다. 그 입은 우유 기름보다 미끄러워도 그 마음은 전쟁이요 그 말은 기름보다 유하여도 실상은 뽑힌 칼이로다.”(시 55:20-21).
시인은 이 본문에서 다시 한 번 악한 사람들의 정체 혹 실상이 어떠한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20절이 악한 사람들의 외적인 행위를 보여 주는 것이라면 21절은 그런 악한 행위를 하는 악인의 내적인 특성을 보여 주는 것이죠. 외적으로 그들이 시인에 대해서 한 그 행동을 보인 것으로 나타난 겁니다. 그것이 뭐냐면 ‘자기와 화목한 자를 치고’ 그랬습니다. 그러면 시인이 하나님 앞에 잘못 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섭리 속에서 징계를 받고 있는 것은 사실 이지만 그렇지만 그건 하나님 앞에서 잘못한 것이고 자기들에 대해선 이 시인 다윗이 잘못한게 없잖아요? 물론 넓게 보면 하나님의 섭리 속에 이일은 일어난 거지만 이유 없이 이 선한 다윗을 해치고 있는거 거든요. 그러면 원래는 화목 했던 사이이고 자신에게 어떤 피해도 준일이 없는데 그 사람을 미워하고 해치게 된다면 그 사람과의 관계가 깨지기 전에 먼저 그 악인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뜨려진 사람이겠죠. 그러니까 여기에 나오는 이 화목은 하나님과의 평화를 토대로 이루어 지는 언약 백성들과의 사이의 평화예요. 그러니까 이것을 이유 없이 깨뜨렸으니까 사실은 다윗과 이미 깨뜨려져 있었던 것입니다. 그랬기 때문에 일어나 일이거든요. 그렇다면 지금 이 악한 사람들의 정체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뜨려진 사람이란 말이죠. 그것이 시인이 바라보던 정체예요.
그래서 그 뒤에 구체적으로 나오는데 그게 뭐냐면 ‘언약을 배반 하였도다’ ‘그 언약을 배반 하였도다’ 그 언약이라는 것이 무엇이겠어요? 그것은 다윗과 사람들 사이에 맺은 언약도 포함 되겠지만 그러나 이거 보다 더 큰 것은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 맺은 언약이예요. 시편에서 이야기 하는 이 악인의 외적인 특징은 하나님의 율법에 개의치 않고 사는 생활이예요. 하나님의 법이 외적으로 중요한 기준이 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과 상관 없이 자유롭게 사는 것이죠. 선한 사람은 자기 밖에 율법이 있을 뿐만 아니라 자기 안에도 하나님의 은혜가 있어서 그래서 율법이 우리를 하나님 사랑 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도록 그렇게 힘을 주지는 못하지만 그러나 사실 넓은 관점에서 보면 율법과 은혜가 모순을 일으키는 것은 보이는 것은 너 가까이서 본것이고 멀리서 보면 걸국은 하나님이 율법을 주신 목적으로 이어지고 은혜를 주신 목적은 우리로 하여금 창조의 목적을 따라 살게 하시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결국은 넓은 면에서 보면 이 율법과 은혜는 용도적인 연속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에요.
근데 그 율법을 없는 것 처럼 살아 가는 들이라면 그 속에 하나님의 은혜도 없는 사람들이라 이 애기죠. 이 악인이 바로 그렇게 하나님과의 언약 관계를 해치면서 사는 사람이예요. 하나님의 언약 관계는 율법 속에 나타나 있는데 율법과 성경의 진리는 악인에게 언약 백성으로써 이렇게 살아 서는 안된다는 것을 가르쳐 주는거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악을 행하게 되었죠. 그러면서 이제 그 내면의 세계를 들여다 보면 전쟁인거예요. 그런데 결국은 ‘마음이 우유 기름보다 미끄러워도 ’그 마음은 우유 기름이 뭔지 전 잘모르겠어요. 그런데 팔레스타인에 있는 이 사람들은 유제품을 많이 사용 하던 사람들 이였습니다. 그래서 뭐냐면 성경에 보면 번역이야 차이가 있겠지만 버터 이야기가 나오고 그다음에 요쿠르트 라고 나옵니다 요쿠르트 라고 나오는건 아니지만 그렇게 발효된 유제품들 또 그런 것 들을 많이 썼어요. 그러니까 아마 여기에 나오는 우유 기름도 아마 그런 유제품인 기름을 가르키는 걸거예요. 이런 기름의 특성은 아주 미끄럽잖아요? 그런 그 입이 우유 기름보다 미끄럽다 이게 뭐냐면 너무 자연스럽게 선한 말, 사람들의 마음을 좋게 하는 표현, 그런 것들이 익숙해진 사람들이여서 무엇인가 저들이 지어내고 있다 그런 마음과 느낌이 안드는 거죠. 그렇지만 그 마음에는 전쟁이 일어나고 있다 그 전쟁은 이 시인과 벌이는 전쟁이예요. 그건 전쟁이 일어나고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보면 바탕이 선하고 은혜로운 사람은 뭔가 거짓을 말할 때 금방 표가 나요. 근데 이제 이것이 거짓인데도 진실인 것 처럼 그렇게 기가 막히게 말을 해 낼수 있는 사람은 본성 속에 아주 철저하게 자연스럽게 깃듣 것을 의미 하는 것이죠. 그러니까 악인은 사람이 거짓말도 자꾸 하다 보면 분명히 거짓을 말하면서도 눈물을 펑펑 흘릴 수 있는 거죠. 이게 심리학적으로 증명이 돼요.
그게 뭐냐면 자기 자신도 의식 속에서 속는 거예요. 거짓말이라는 것을 연기 하는 사람들이 가능한 바로 그거예요. 연기력 이라고 하는게 바로 가상에 세계 잖아요. 그속에 자기가 들어 가면서 자신의 본래의 자기 인듯한 느낌을 받는 것이죠. 그러면서 확~ 그 쏟아져 나온 것이죠.
그러니까 그것이 자연스러울수록 그 악인에 악함은 그 마음 속에서 휠씬 더 깊은 것이라고 말 할 수 있는 것이죠.그렇게 해서 그 입은 우유기름보다 미끄러워서 사람들의 귀에 듣기 좋고 그리고 사람들이 볼 때 그 사람을 흠잡을 수 없는 자연스러움이 있는 것이죠. 그런데 그 마음은 전쟁이 듯이 말은 기름보다 유하여도 실상은 뽑힌 칼이로다. 두가지가 아니라 동일한 사실을 말을 바꿔 가며 강조 하고 있는 것이예요. 병행법 이라고 해요. 근데 그게 뭐냐면 입과 말 우유 기름과 기름 미끄러워도와 유하여도 그 마음은 전쟁 실상은 뽑힌 칼 이렇게 되는 거죠.
자~ 무사가 칼을 뽑았습니다. 그럼 어떻게? 한번 이렇게 해보고자 뽑는 것은 아니죠. 무사가 칼을 뽑았다 하는 것은 그냥 한번 해보기 위해서 뽑은 것이 아니라 누군가를 죽이고자 하는 그의 마음 곳에 적의를 드러 낸 것이에요. 그러니까 그 ‘뽑힌칼’ 이다 겉으로 그렇게 유하게 해서 사람들을 속이고 방비 하는 마음을 누그려 뜨린 다음에 그 다음에 공격 하게 이미 마음 속에 뽑고 있는 칼로 그를 찌르는데 그런 일을 바로 이 시인 다윗에게 이 사람들이 행하였던 것이죠.
이것은 어떻해 보면 그들은 자신에게 악을 행하기 위해 준비 하고 있었지만 시인은 이 사람들을 많이 믿었던 것을 보여 주는 거예요. 신뢰 했던 것을 보여 주는 것이예요. 그래서 어떠한 대비책도 세울 수가 없었던 것이죠. 뭐라고 설명 할순 없습니다만 다윗이 그 압살롬의 반역을 받을 때 자기편에 섰던 많은 충성스런 신하들이 그렇게 자기를 향해 발꿈치를 들고 악을 행하는 것을 보면서 그 일이후로 다윗이 굉장히 현명해 집니다. 그래서 이제 사람을 쉽게 믿지를 않고 아주 지혜로와 져요. 그게 바로 사울의 자식 무비보셋이나 일행이나 이런 사람들을 그 후에 관리 하는 것에 잘 나타납니다.
근데 이런 것도 또한 하나님의 섭리다 이렇게 말 할 수 있는거죠. 그래서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이렇게 악인들이 베푸는 그 끔직한 악과 눈물을 통해서 어떻게 보면 하나님을 의지 하게 될 뿐아니라 지헤로와져 가게 되는 것이죠. 우리의 일생을 살면서도 이런 일들은 언제나 일어 납니다. 시인은 잘못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섭리 속에 징계를 받았지만 굳이 이 일이 아니고서 라도 하나님은 또 우리를 연단 하시기 위해서 알 수 없는 섭리 속에서 당신의 뜻들을 성취 하시기 위해서 그렇게 가슴 아픈 일들이 많이 일어 납니다. 그 때에 우리는 악인의 실상을 아주 분명하게 배우게 되요. 부드러운 말 우유기름 보다 미끄러운 그들의 입넘어에 있는 정체를 보게 되는 거예요. 그리고 악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 사람들에게 나타 났을 때 우리는 그 악이 얼마나 끔찍한 것인지 발견 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매순간 이 악인들이 의지 하지 못하는 하나님을 의지 하고 순종 하는 그런 사람들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