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를 위한 깃발
“하나님이여 주께서 우리를 버려 흩으셨고 분노하셨사오나 지금은 우리를 회복시키소서. 주께서 땅을 진동시키사 갈라지게 하셨사오니 그 틈을 기우소서. 땅이 요동함이니이다 주께서 주의 백성에게 어려움을 보이시고 비척거리게 하는 포도주로 우리에게 마시우셨나이다 주를 경외하는 자에게 기를 주시고 진리를 위하여 달게 하셨나이다”(시 60:1-4).
간략하게 말하자면 다윗의 시대에 그 속국으로 있었던 소바왕 하닷에셀이라는 사람이 독립전쟁을 일으킨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 유르라데 강으로 갈 때에 다윗이 저를 쳤는데 그 마병 일천 칠백과 보병 이만을 사로잡고 병거 일백승의 말만 남기고 그 외에 모든 말들의 다리의 힘줄을 끊어버리는 승리를 거두게 됩니다. 그 다메섹 아람사람들은 북쪽에 있는 꽤 큰 세력을 가진 사람들이었는데 이 사람을 도우려고 왔는데 또 다윗이 승리를 합니다. 그래서 아람군대 이만 이천 명을 죽이고 다메섹아람이라고 하는 전략적 요충지에다가 아예 수비대를 두어서 북방의 경계를 튼튼히 하게 됩니다. 이런 사건이 일어났을 때에 이 모든 것들이 평정되고 나서 다윗이 오늘 우리가 읽은 이 시편을 쓴 것 같아요.
한 나라를 다스렸지만 철저하게 그는 그 나라의 모든 형편들이 그냥 순수하게 정치와 외교 군사에 의해서 움직여지는 나라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오히려 그 나라와 그 정치와 그 모든 것들이 되어가는 것이 그 나라가 하나님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가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 땅의 백성들을 기뻐하시면 하나님이 그 나라에 여러 가지 많은 일들에 복을 주십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 그 백성을 싫어하시게 되면 오늘 성경이 기록하고 있는 바와 같이 버려 흩으시고 분노하시게 됩니다. 결국 언약 백성들의 기업은 이 세상 나라가 아니라 하나님입니다. 이 세상 나라는 껍질일 뿐이고 진정으로 상속해야할 나라는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지는 하늘나라에요. 하나님의 백성들의 소명은 어떻게 하든지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하늘백성으로서 살아가는 것이고 그 두 나라가 이 지상에서 완전히 일치할 수는 없겠지만 그러나 온 마음을 다해서 자기가 하늘나라에 통치를 받으며 살아가는 백성으로서 이 땅의 나라에서 그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도록 이바지하면서 사는 것이 그게 하나님의 백성들인 것입니다.
최근에 마이클 호튼이라는 사람이 책을 썼는데 그 책에 보니까 이런 이야기가 나와요. ‘많은 외국 사람들은 진정으로 하나님의 나라가 자신들에게 이루어지는 것과 그 나라가 기독교국가로서의 어떤 표를 가지는 것을 혼동하고 있다.’고 말했어요. 저는 가보지 않았습니다만 미국의 대법원 앞에 조상 대대로 십계명이 붙어있었답니다. 그것을 이제 자유주의자들이 시비를 건 것이지요. 미국은 완전히 자유로운 국가인데 무엇 때문에 특정종교의 계명을 그 법원 앞에다가 비석으로 세워놓느냐고 소송을 걸었어요. 그래서 결국 그것을 떼라고 해서 철거가 된 것이지요. 온 미국교회의 교인들이 괴로워하고 분노하고 그래서 항의를 하더라는 것이죠. 그렇게 분노하고 항의하는 사람들 중의 대부분이 십계명을 외우지도 못한다는 것이에요.
중요한 것은 그런 것이 아니에요. 대통령이 취임할 때에 성경에 손을 얹는 나라가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는데 대단한 것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그러한 형식이 아니에요. 하나님의 나라는 그렇게 국가가 의례를 행할 때 기독교 예식을 택하고 여기저기에 기독교 유적의 흔적들이 남아있는 그것이 곧 내용이 그 사회에 가득하다는 것 하고는 전혀 다른 이야기에요. 유럽을 여행해보십시오. 가는 곳마다 수많은 기독교적인 유적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신, 구교가 싸우고 교파끼리 싸우고 정치가 거기에 가세해서 휘말리고 하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죽는 일들이 일어나게 됩니다. 영국과 프랑스 사이에 있었던 백년전쟁, 신교와 구교 사이에 얽혀 싸웠던 30년 전쟁, 이 수많은 전쟁이 유럽을 초토화 시킵니다. 그러니 안 믿는 사람들이 볼 때에 종교의 광기라고 말하지 않겠어요? 그러한 기독교 국가가 되는 것들이 이상이 아니라 중요한 것은 한사람, 한사람이 내적인 자기의 세계 속에서 그리스도를 통해 복음을 말미암아 하나님을 만나고 경건의 능력이 심겨지고 온 힘을 다해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그렇게 정직과 공평으로 살아가는 사회, 그런 사람들이 다수를 이루어서 그래서 내용상의 하나님의 통치를 가득 채우는 그것이 진정한 하나님의 나라에요.
오늘 성경에 보면 ‘주께서 땅을 진동시키사 갈라지게 하셨사오니 그 틈을 기우서소 땅이 요동함이니이다.’ 마치 지진이 일어난 것과 같은 묘사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여기에 나오는 땅을 민족, 혹은 국민이라고 번역하기를 좋아합니다. ‘주께서 우리 백성을 진동시키사 갈라지게하셨사오니 그 틈을 기우서소 백성들이 요동함이니이다.’ 라고 말입니다. 땅을 가리키는 말 히브리어 ‘에레쯔’는 거민 혹은 국민이라는 말로도 번역됩니다. 그만큼 땅과 거기에 사는 사람이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축복하신 이 땅에 왜 저주가 들어오게 되었는지 생각해보십시오. 하나님이 축복하신 이 땅에 저주가 들어온 것은 땅에 잘못이 있어서가 아니라 땅에 사는 인간이 하나님께 불순종하고 하나님께 악을 행하자 땅에 재앙이 임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구속이 완성되는 그 날에 이 땅도 치료될 것이라는 전망이 성경에 나옵니다. 그래서 만물이 탄식하고 신음하며 그 인간의 몸의 구속을 기다리는 것이죠. 이처럼 땅과 그 위에 살아가는 인간은 떼어놓을 수없이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이죠.
그래서 하나님이 진노하실 때에 하나님의 사랑으로 하나 되었던 언약백성들이 찢어지고 그 틈새가 많이 벌어져서 화합을 이룰 수 없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이것을 추억하면서 다윗은 그 틈을 기워달라고 호소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가 바로 그렇습니다. 그 틈과 틈이 너무 많이 벌어져 있어서 가까이 하기에 불가능할 정도로 틈이 벌어져 있어요. 가진 자와 갖지 못한 자 사이에 벌어진 틈, 그리고 통치하는 자와 지배를 받는 자 사이에 벌어진 틈, 이 사상과 저 사상을 택한 사람들 사이의 한없이 갈라진 틈, 이것이 바로 오늘날 우리의 나라입니다. 그래서 이러한 틈을 기우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합치되어야 합니다. 제가 이런 설교를 했더니 어느 교수님이 그것을 읽고 논문을 썼어요. 그러면서 강력하게 비판을 하면서 도대체 통일을 하자는 이야기냐? 말자는 이야기냐? 하면서 설교가 너무 감상적이라고 비판했어요.
나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우리 누구에게도 정치적인 견해가 없겠어요? 잘은 모르지만 경제정책에 대한 견해가 우리에게 없겠어요? 보건, 사회, 그리고 의료제도에 대한 견해가 왜 없겠어요. 그러나 그것은 그야말로 견해일 따름이에요. 그것은 여기에서 외치고 선포하고 할 그런 어떤 절대적인 진리의 성질이 아니에요. 설교자는 그런 것들에 대한 견해를 한 시대를 살아가는 시민으로서 어떤 것들은 보다 완전한 형태로 어떤 것들은 덜 완전한 형태로 가지고 있지만 그것은 시민으로서의 자기의 견해일 뿐이에요. 교인들 가운데는 보수적인 견해를 가진 사람도 있고, 극우적인 견해를 가진 사람도 있고, 또 이러저러한 정책에 대해서 저러저러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이러이러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도 있어요. 그것은 그야말로 아디아포라에요. 어느 것을 선택하든지간에 그것은 개인의 자유일 뿐이에요. 그것을 여기에서 선포하고 확정짓는 것은 강단에서 할 일이 아니에요.
다만 우리는 신앙적인 시각에서 남북의 문제를 보고 그리고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교훈의 터 위에서 이 민족이 하나님 앞에서 인정을 받음으로 버려 흩으시고 분노하셨던 땅이 다시 하나님이 그 틈을 기우셔서 복되게 하시는 길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말할 뿐이죠. 그리고 그러한 성경진리의 가르침을 마음에 받아서 극우에 속한 사람들은 우파에 맞도록 적용하고, 좌에 속한 사람들은 좌파에 맞도록 적용하고, 중립인 사람들은 중립에 맞도록 적용하고, 의료제도든지 경제 정책이든지 교육정책이든지간에 그 복음의 총체적인 정신에 따라서 살아가면 그게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오늘 이 시인은 바로 이러한 사실을 알았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그 틈을 기워달라고 호소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주님의 백성들에게 어려움을 보이시고 그리고 그들로 하여금 잠시 실족하는 것처럼 버려두셨습니다. 그러나 시인은 오늘 고백합니다. ‘주를 경외하는 자에게 기를 주시고 진리를 위하여 달게 하셨나이다.’ 이 깃발은 군대의 깃발이에요. 깃발이 휘날리고 그 깃발이 높이 들리는 것은 전쟁이 끝난 후에 승리한 것이에요. 전쟁에 나갈 때는 그 깃발을 흔들며 군대를 모으고 기수를 중심으로 기단을 따라서 전투를 지휘하는 상관의 의지를 읽지만 진정으로 이 깃발이 휘날리는 것은 승리하고 난 뒤에요. 그래서 어느 나라든지 전쟁을 하고 이기고 나면 제일 먼저 그 땅에다가 깃발을 꽂아요. 그 기를 주시고 그것을 달게 하시는 하나님, 결국은 전쟁에서의 승리를 의미하는 것이죠. 어떤 사람들에게 그런 승리를 주십니까? 주를 경외하는 자에게……. ‘주를 경외하는 자에게 기를 주시고 진리를 위하여 달게 하셨나이다.’ 고백하는 것이죠.
우리의 삶은 끊임없는 영적 전쟁의 계속이에요. 그래서 이 땅에 있는 개인은 싸우는 신자이고 교회는 전투하는 교회에요. 거기에서 하나님은 당신을 경외하는 사람들에게 승리의 깃발을 주셔서 그래서 그것을 달게 하십니다. 세상 나라는 자기의 이름을 내기 위해서 승리의 깃발을 펄럭이지만 하나님의 백성들은 진리를 드러내기 위해서 그 깃발을 매답니다. 결국은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죠.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는 곳에 진리의 비췸이 있고 진리가 찬란하게 승리하는 그곳에 하나님의 영광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진리는 곧 하나님을 보여주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우리들이 몸으로는 사라지는 세상나라에 속하였으나 우리의 영혼과 정신으로는 흔들리지 않는 나라에 속한 백성들이에요. 힘 있는 대로 이 세상에 사는 동안 그 나라를 위해서 이 나라에서 주님의 이름이 높아지기 위해서 사는 사람들이에요. 여러분들이 이렇게 오늘 하루도 살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