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를 기다리는 시온의 찬송
“하나님이여 찬송이 시온에서 주를 기다리오며 사람이 서원을 주께 이행하리이다”(시 65:1).
시편 65편 1절입니다. 하나님이여 찬송이 시온에서 주를 기다리오며 사람이 서원을 주께 이행하리이다 아멘. 다시 한 번..하나님이여 찬송이 시온에서 주를 기다리오며 사람이 서원을 주께 이행하리이다 아멘
전체적으로 찬송시에 해당하는 시편입니다. 1절은 이 65편은 첫절에 결론을 내놓는 방식으로 시작을 하고 있습니다. 찬송시의 많은 부분이 먼저 시인의 가슴 벅차오르는 감격과 감동을 먼저 이야기를 하고 그 가슴 벅차 오르는 감격과 감동의 결론을 먼저 이야기하고 그 다음에 의무를 제시한 후에 왜 우리가 그래야 하는지를 찬송의 방식으로 진술하면서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는 이런 형태를 이 시편 속에서 그려내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 이제 이 65편도 역시 그런 것입니다. 이 1절은 우리에게 찬송이 시온에서 주를 기다리며...사람이란 말은 원래 히브리어 성경에는 없는데 ..서원을 주께 이행하리이다..나옵니다. 이것은 전체적으로 음 그 주어가 언약백성이라고 보아도 상관이 없습니다. 그래서 찬송이 시온에서 주를 기다린다라고 하는 것은 무슨 뜻이냐 하면 하나님이 행하신 많은 일들, 하나님이 언약 백성들에게 행하신 일들 뿐 아니라 또 하나님이 이 세상에 있는 모든 피조물들에게 행하신 그 놀라운 모든 일들이 결국은 일들이 결국은 하나님의 백성들에 의해서 제일 먼저 경배와 찬송을 받습니다...그리고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행하신 일이기 때문입니다...이렇게 진술해 나가는 방식이에요. 도표로 그려 보자면 하나님의 하나님의 시온과 그 백성들이 그 있는데, 이제 그들이 바라보고 있는 거예요. 두 개의 원을 마음 속에서 그려 보세요. 두 개의 원을 그리면 가운데 있는 원이 언약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이에요. 그리고 바깥에 있는 원이 언약백성들이 아닌 이 세상에 있는 인간들에게 인류들에게 그리고 피조물들에게 행하시는 하나님의 일이에요. 언약백성들에게 행하시는 일은 그것이 결국은 어떻게 하나님의 아름다운 성품, 공의롭고 정당한 그분의 속성이 바깥의 더 넓은 세계로 퍼져 나갈지를 보여주는 것이구요. 그리고 그렇게 바깥으로 퍼져 나가는 하나님의 그 사랑과 그리고 자비와 공정하신 성품은 다시 또 안쪽으로 수렴하면서 그 하나님의 성품의 진수를 언약백성들이 맛 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는 이러한 두 개의 원으로 설명할 수 있는 거예요. 그런데, 가운데 있는 그 작은 원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이 그 하나님을 한없이 경배하고 찬송하는 이유가 둘이 있는데, 그것은 뭐냐하면 영적인 공급과 그 다음에 자연적인 공급이에요. 다시 말해서 육체를 위한 자원의 공급과 영혼을 위한 자원의 공급이에요. 영적인 자원의 공급은 다시 둘로 나뉘어지는데 하나는 하나님의 죄의 용서에 의해서 언약백성들과 막혔던 담을 허무시는 것이고, 또 하나는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자비와 사랑을 베푸시는 것이에요. 그리고 자연적인 공급은 바로 그들에게 필요한 물질과 이 땅에 있는 것들을 때를 따라서 하나님이 그들에게 공급해 주시는 거예요. 이 두 가지는 구분 되지만, 그러나 정상적인 언약백성들의 경우에는 이 두 가지가 모두 하나님의 넘치는 자비와 사랑을 알게 하는 방식으로 그들에게 주어지는 것이에요. 우리들이 한 사람의 영적인 깊이가 무엇인가라고 할 때, 그것을 잴 수 있는 아주 중요한 척도가 있어요. 그것이 뭐냐면 얼마나 그 사람이 하나님의 일반섭리와 영혼의 직접 부여하시는 영적인 축복, 하나님의 일반섭리의 복 안에서 영적인 복을 읽어 내는가 하는 것이에요. 더 정확하게 말하면 하나님이 인간에게 내리시는 복은 영혼을 직접 어루만지시는 복이 있고, 사물들의 질서를 움직여서 우리에게 베풀어 주시는 일반섭리의 복이 있어요. 신앙이 깊을수록 사물들을 움직여서 자신에게 베풀어 주시는 이 일반섭리의 복 안에서 영적인 복을 읽을 수 있는 사람이에요. 즉, 하나님께서 나에게 사물들의 질서를 움직여서 내게 복을 주실 때, 그 복 속에 담겨져 있는 하나님의 사랑과 또 하나님의 뜻을 읽으면서 그것이 하나님이 자기의 영혼을 직접 어루만지시는 축복으로 바뀌도록 혹은 이어지도록 그렇게, 얼마나 그것을 밀접하고 친밀하게 잘 할 수 있느냐...이것에 의해서 그 사람의 영적인 깊이는 깊어지고 또 변화되어 나아가는 것이에요. 그겁니다. 그러면 어떻게 그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있어서 하나님이 물질에 축복을 주시고 이 세상의 모든 일들을 잘 되게 해 주실 때에 그게 그렇게 영혼을 직접 어루만지는 복으로 다가오지 않는 것이 일반적인데, 어떻게 그러면 그런 일반섭리의 복과 영적인 복을 나눌 수 없을 정도로 그렇게 밀접하게 이어질 수 있을까...이게 뭐냐면 해석의 문제에요. 해석의 문제라 이거죠. 무슨 뜻이냐 하면, 엄마가 아이에게 무엇을 줘요. 그럼 아이들이 아주 어렸을 때에는 자기가 필요하다는 사실과 그리고 그것을 엄마가 자기에게 주었다는 사실, 두 개 밖에는 몰라요. 필요한 것을 자기에게 준 사람도 사실은 정확하게 잘 기억을 못 해요. 그래서 자기가 배고파서 막 울고 있는데 빵 먹을 것을 주면 그게 엄마였던지 아빠였든지 지나가는 행인이었든지 문제가 안 돼요. 그럼 그것을 먹어 버려요. 만족해요. 그럼 행복한 거예요. 근데 쪼끔 더 크면 아이가 낯을 가리게 되죠. 그래서 같은 장난감인데도 엄마가 주면 받는데, 얼굴 모르는 낯선 사람이 주면 안 받아요. 그렇잖아요? 그런데, 이제 그 아이가 훨씬 더 성숙해 지게 되면 엄마가 무엇을 주게 되면 그 속에서 엄마의 마음을 해석하게 되는 거죠. 배가 고파서 막 들어왔는데 집에 아무도 없어서 굉장히 실망했는데 엄마가 이제 그 맛있는 반찬을 뚜껑을 잘 덮어놓고 그 다음에 따뜻하게 먹을 음식은 따뜻하게 국을 데워놓고 그러고 그렇게 놓고 갔다... 근데 그걸 하나하나 열면서 아..엄마가 내가 이런 걸 먹고 싶다고 그랬더니 일부러 해 주고 갔구나...그러고 해석을 느끼면서 아 엄마 참 고맙다...그런 마음을 갖게 되는 거죠. 그게 바로 인간 자신이 성장하는 거거든요. 그럼 하나님에 대해서도 역시 마찬가지야. 그래서 어떤 작은 것을 통해서라도 그 사람의 마음을 주는 사람의 마음을 읽을 수 있을 때, 그 해석은 그 물질이 우리에게 주는 유익을 훨씬 뛰어넘는 어떤 영적인 감동이나 은혜의 변화를 우리에게 가져다 주는 거죠. 그렇지 않아요? 쫌 더 설명하고 싶은데 아침 시간이 가니까, 이해할 수 있겠죠 그죠? 똑같은 거예요. 그럼 만약에 여러분들이 하나님이 이런 저런 물질의 축복을 주시고 환경을 열어주시고 그럴 때 그것이 그저 그것으로만 다가오면 그 만큼 신앙이 유아기 상태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거예요. 유아기 상태라는 것을 보여주는 거예요. 그래서 그 이제 그것도 얘기하면 굉장히 긴데, 그래서 이제 이 사람의 영혼의 상태가 어떤 상태이고 그 사람 안에 어떤 성향이 형성되었는가에 따라서 해석의 방향이 달라지는 거예요. 그래서 이것을 존 오웬 목사님이 자기의 책 속에서 마인드드니스라고 하는 글을 씁니다. 스피리철 마인드드니스라는 논문인데..그건 뭐냐면 사물에 대한 모든 해석과 그 다음에 이해가 자신 안에 있는 영적인 마음의 기울어짐, 마음이 기울어진 방향이 어느 쪽이냐에 의해서 그것이 해석된다는 거예요. 뭐 당연하잖아요. 그러니까 사람이 스피리츄얼 마인드드니스..마인드라고 하는 건 원래 이렇게 마음이 간다...그런 뜻인데, 디드니까 누군가가 힘을 가해서 마음이 이렇게 기울어진 거예요. 기울어져서 마음이 자기와는 방향이 마인드드니스..그러면 스피리츄얼한 쪽으로 기울어지든지, 아니면 반대로 영적인 쪽으로 기울어지든지, 아니면 육적인 쪽으로 기울어지든지 뭐 절대적으로 나눌 순 없지만 성향을 그렇게 나눌 수 있잖아요 그죠? 사람이 뭐 은혜가 하나도 없는 미끄러진 사람이 어디게 있겠으며, 또 죄가 하나도 없는 은혜 가운데 있는 사람이 누가 있겠어요? 그렇지만 대체적으로 볼 때, 은혜 가운데 있든지 은혜로부터 멀어졌는지 자신이 알잖아요. 그런 마음의 방향이 이것들을 해석하는 것을 결정하도록 만들어 주는 거예요. 그것이에요. 그래서 그것이 아주 훌륭하게 될 때, 그 때 우리는 그렇게 될 때 우리는 현실들 속에서 작은 것들을 보면서 나를 향한 하나님의 큰 사랑을 읽어낼 수 있고, 또 다르게는, 하나님께서 나에게 허락하신 역경이나 고난에 가득찬 상황들이 그 속에서 영적으로는 매우 풍부한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 이런 것들을 읽어낼 수 있게 하는 하나의 그 통로가 되는 것이에요. 그런 것이에요. 그런 것들이거든요. 그럼 어떻게 해서 그런 것들이 올 수 있느냐...그게 이제 크게 두 가지로 그 원인을 나눠볼 수 있는데, 첫째는 믿음과 두 번째는 은혜에요. 믿음이라는 것은 뭐냐하면 일회적으로 행사되는 그 마음의 작용과 힘을 가리키는 경우도 있지만 훨씬 더 많은 경우에 이 진정한 의미의 믿음이라고 하는 것은 믿고자 하는 성향이에요. 그거에요. 믿고자 하는 성향이에요. 그것이 믿음의 정의에요. 그러니까 우리가 믿음 가운데 있을 때에는 믿고자 하는 성향이 계속 발동을 하는 거예요.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그렇잖아요. 저 사람이 굉장히 내가 저 사람을 상당히 믿고 신뢰해요. 그 때까지는 시간이 좀 필요했겠죠 그죠? 근데 일단 믿고 나면 저 사람에 대해서 안 좋은 이야기가 들릴 때, 저 사람에 대해서 안 믿는 감정을 가지고 있으면 그 얘기를 들을 때 빨리 믿지만, 믿는 감정을 가지면...아 그건 잘못 안 거겠지, 아니면 누군가가 그 사람을 모함하려고 하는 거 아냐? 또 그렇지 않으면 비슷한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지만 그걸 악의적으로 해석한 거 아냐? 예를 들자면 돈가방을 들고 가시죠...그러고 이렇게 들어줬는데 뭐 뺏어가려고 했다든지, 똑같은 사건에 대해서도 해석을 달리하면 막 굉장히 나쁜 사람이 되고 어떻게 보면 굉장히 나쁘지 않은 선한 사람이 되고 하는 그런 상황 얼마든지 있을 수 있잖아요 그죠? 그런 거 아냐? 하는 마음이 생겨나게 되거든요. 믿고자 하는 성향이에요. 최초의 중생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영혼 안에 그런 성향을 심으시는 거예요. 그래서 중생한 사람은 믿고자 하는 성향이 있는 거예요. 그것이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향하여 우리에게 일어나는 수많은 일들을 다르게 해석하게 만들어 주는 거예요. 그러면 그러면 그 어떻게 그렇게 해석을 할 수 있느냐...간단해요. 뭐냐하면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는 거예요. 하나님의 선하심,..그래서 자신에게 나쁜 일이 일어났을 때도 이것은 더 좋은 곳으로 나를 데려 가시기 위한 과정이다....과정이다...설령 내가 잘못해서 이 일을 당할 때에도 아주 주저앉지 않는 것은 하나님이 나를 더 좋은 곳으로 데려 가시기 위한 과정이다...그리고 이것은 내게 지금 나쁜일이 일어났지만 그러나 이 나쁜 일을 하나님께서는 나쁜 일로 내게 갚지 아니하시고 나쁜 일은 나 때문에 일어났지만, 이 나쁜 일을 통해서 하나님의 더 좋은 곳을 나를 이끄실 것이다...그런 마음을 갖게끔 그런 마음으로 해석을 하도록 그렇게 만들어 주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항상 여러분들에게 말씀을 드리잖아요? 어떠한 도탄에 빠져 있든지간에 두 가지 사실을 굳게 붙들면 이길 수 있어요. 첫째가 뭐냐면 하나님이 선하시다는 사실, 어떤 식으로든지 하나님은 내게 악을 행하실 수 없는 분이시라는 사실, 그러니까 어떻게 보면 하나님의 선은 그 분 존재의 필연성과 같이 하나님은 절대적으로 선하신 분이에요. 그리고 두 번째는 어떤 경우에서든지 하나님은 나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건져 내신다는 이 두 가지 사실만을 놓치지 않으면 어떠한 위기에 빠져도 우리는 거기에서 헤어 나올 수 있는 것이에요.
두 번째가 뭐냐하면 은혜에요. 이 은혜는 사랑하고자 하는 성향이에요. 어떤 경우에든지 주님을 사랑하게 되는 거예요. 그래서 고난과 어려움이 만나게 되면 그 현실이 나에게 아무리 하나님과 나 사이에 대해서 이간질을 해도 내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성향이 있는 한 그 해석에 굴복하지 않는 거야. 때로는 그 해석은 아주 논리적이고, 나는 그 논리적인 해석을 방어할 수 없어도 그 사랑하고자 하는 성향이 우리에게 있을 때에는 설득되질 않는 거예요. 나는 몰라...그런 거 난 몰라...그렇지만 나는 하나님을 사랑할거야...이 성향이 생겨나는 거예요. 이것에 의해서 모든 해석들이 달라지게 되고, 마음의 정동과 의지의 행사들이 달라지게 되는 거죠. 그것을 가리켜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신앙으로 산다고 평가하시는 거예요. 우리가 아무렇지 않게 일어나는 일 같아도 우리의 영혼과 마음 안에서는 아주 엄격한 나름대로의 법칙을 가지고 우리 안에서 일들이 일어나게 되는 거예요. 그래서 주님을 바라보게 되는 거예요. 그래서 여러분, 놀랍게 고난과 시련을 당할 때, 하나님의 말씀이 쏙쏙 들어오고 기도가 그렇게 잘 되는 때가 있잖아요. 뭐냐면 마음의 방향이 그렇게 바뀌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이 세상에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보면서 우리는 마음이 하나님을 믿고자 하고 사랑하고자 할 때, 그 하나님이 행하신 일 가운데에는 나쁜 것이 아무것도 없고, 선하지 않은 것이 아무것도 없는 거예요. 때로는 우리가 악을 행했어도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과 신실하심을 나타내는 아주 중요한 하나의 그 도구가 되는 것이죠. 이런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며 사는 것, 먼저 알아서 하나님을 찬송하는 것, 이것이 시온에 사는 언약의 백성들의 의무인 동시에 또한 특권인 것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