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선포할 때
“모든 사람이 두려워하여 하나님의 일을 선포하며 그 행하심을 깊이 생각하리로다 의인은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그에게 피하리니 마음이 정직한 자는 다 자랑하리로다”(시 64:9-10).
시편 64편 9절과 10절입니다. 64편..모든 사람이 두려워하여 하나님의 일을 선포하며 그 행하심을 깊이 생각하리로다. 의인은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그에게 피하리니 마음이 정직한 자는 다 자랑하리로다. 아멘. 다시 한 번 읽습니다. 모든 사람이 두려워하여 하나님의 일을 선포하며 그 행하심을 깊이 생각하리로다 의인은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그에게 피하리니 마음이 정직한 자는 다 자랑하리로다. 아멘.
사람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한다는 것은 일반적인 의미에서는 좋은 일이죠. 왜냐하면 사람들이 죄 가운데 살면서 하나님을 무시하기 때문이죠. 하나님께 대한 두려운 감정이 먼저이고 그 다음에 하나님께 대한 사랑의 감정이 생겨나는 것이죠. 64편에서 악인들이 시인을 이렇게 괴롭히고 고통스럽게 하는 악을 행하게 되는데 이 모든 미움과 악, 그리고 여러 가지로 짓는 많은 죄들이 결국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데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들을 심판하시고 그들이 엎드러지자 많은 사람 악인들이 그것을 보면서 하나님을 두려워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악인들에게는 경고가 되고 그리고 하나님을 따르고 사는 사람들에게는 위로가 되는 장면이죠. 하나님은 당신의 공의로우신 성품을 자기의 백성들에게 보이실 때에는 그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자비와 사랑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그 공의의 베푸심이 큰 위로가 되는 겁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나타나시는 그 공의로우심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뜻을 펼치시는 그 질서의 작용이기 때문이에요. 그러면 그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사람들에게는 위로가 있겠죠. 그렇지만 악인들에게 그것은 자신들이 하나님의 질서를 대적해서 구축하려고 하는 모든 악과 잘못의 근원적인 도전이 되는 것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이 시간도 당신의 백성들에게 이러한 악인의 심판을 통해서 위로를 주시고 또 같은 악인들에게는 공정히 갚으심으로 두려움을 심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오늘 10절에 보면 그 악인과 관련된 의인의 대조가 나와요. 의인은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그에게 피하리니 마음이 정직한 자는 다 자랑하리로다.라고 나옵니다. 의인은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합니다. 그리고 그에게 피합니다. 마음이 정직한 자는 다 하나님을 자랑합니다. 왜냐하면 억압받고 악인에게 고통을 받을 때에는 슬퍼하면서도 하나님을 의지하였는데 그 악인을 하나님께서 멸하실 때에는 의인에게는 하나님의 큰 위로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어떤 식으로든지 당신께 붙어 있는 사람들에게 자기의 성품을 보이실 때, 당신의 백성들로 하여금 즐거워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짧게 끊어놓고 보면 이익을 받는 사람과 해를 입는 사람이 바뀌는 것 같아서 믿음으로 사는 사람이 손해를 보는 것 같은 때가 있지만 주님 편에 선 사람이 희생을 하는 것 같지만 그러나 하나님 앞에 공정하게 놓고 보면 이것은 그 하나님이 결국은 자기의 성품을 이 세상에 펼치시는 과정이거든요? 그것을 지금 짧은 순간에는 모순이 되는 것 같아도 긴 시간을 놓고 보면 반드시 모순이 아니라 아름다운 질서일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그 사실을 굳게 붙드는 것이 믿음으로 산다는 것이에요. 그것은 사람의 논리로 설명할 수 없죠. 없을 때가 많죠. 그렇지만 이 인생의 모든 사건들을 주장하고 계시는 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그 하나님이 이 모든 것들을 붙들고 계시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틀림없이 이 모든 것들을 붙들고 계시기 때문에 선하신 하나님이 당신을 따르는 자들에게는 자비를 보이시고 악인들에게는 당신의 의로움을 보이실 것이라는 사실을 믿는 것, 이게 신앙이에요. 이게 신앙이죠. 그래서 오늘 성경도 의인은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할 것이다고 말합니다. 악인을 심판하는 일은 즐거운 일이 아니지만 그러나 그런 심판의 과정에서 드러나는 하나님의 아름다운 성품 때문에 의인은 여호와를 즐거워하고 모순과 고난 속에서 당신을 전심으로 의지하고 믿었던 그 사람이 결국은 하나님의 그 뜻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면서 행복해한다라는 그런 뜻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성경이 이른 바와 같이 끊임없이 고난이나 어려움을 만날 때마다 그 분께 피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주님은 우리가 어떤 처지에 있든지 피할 만한 바위요 산성이시기 때문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