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복된 사람
“주께서 택하시고 가까이 오게 하사 주의 뜰에 거하게 하신 사람은 복이 있나이다 우리가 주의 집 곧 주의 성전의 아름다움으로 만족하리이다”(시 65:4).
어제 아침에는 언약 백성들의 특권을 비록 죄가 자신을 이겼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우리의 죄과를 속해 주시는, 그 언약 백성의 언약 백성에 대한 사랑으로써 자기를 구해 주신다는 찬송을 우리들이 들었습니다. 그러면서 갑자기 3절과 4절 사이에 무슨 큰 단절이 있는 것처럼 주께서 택하시고 가까이 오게 하사 주의 뜰에 거하게 하신 사람은 복이 있나이다...이렇게 노래를 합니다. 그래서 4절 이 전체는 두 토막으로 나뉘어지는데 그 두 문장으로 되어 있죠? 그래서 하나님께 복 받은 사람 그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전반부에 나오고 그 다음에는 그렇게 하나님께 복 받은 사람들의 진정한 행복이 어떤 것인가 그것이 하반부에 나옵니다. 그러니까 상반부에서는 주께서 택하시고 가까이 오게 하사 주의 뜰에 거하게 하신 사람은 복이 있나이다....그랬거든요? 여기에서 삼중으로 축복을 묘사하는데 첫째는 하나님의 선택이에요. 그래서 이것은 이 세상의 수많은 인류가 살고 있지만 하나님이 특별히 당신과 언약을 맺으심으로써 특별한 관계로 불러 들인 사람들을 가르키는 겁니다. 그 특별한 사람들은 복되다...선택된 특별한 사람들은 복되다...두 번째는 뭐냐면, 당신에게 가까이 오게 하신 사람...뜻입니다. 이건 하나의 친교를 보여주는 거죠. 친교...그러니까, 동일한 언약 백성들에 대한 묘사인데 그것을 이제 어떤 측면에서 묘사하느냐를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가까이 온다라고 하는 것은 큰 영광이에요. 여러분, 사극에서 보시면 알겠지만, 왕이 있으면 양쪽에 문무백관들이 도열을 합니다. 그럴 때, 그 도열하는 순서가 정일품부터 시작을 해서, 쭉 도열을 하게 되는 거예요. 그것은 왕 가까이에 있을수록 가까이 도열할수록 그것은 영광스러운 것이죠. 이것은 왕과의 친교, 혹은 왕으로부터 받는 은택의 정도를 나타내는 거죠. 중국 역사에 보면, 그 사람의 직위에 따라서 그래서 황제 가까이에 올 수 있는 거리가 지정돼 있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보다 훨씬 더 멀리 그래서, 아주 직위가 높은 사람들만이 황제 가까이 올 수 있고, 그리고 그 등급에 따라서 황제 가까이 올 수 있는 거리가 정해지는 거죠. 그리고 그 왕을 모시는 사람들이 아니면 아예 대전에는 출입할 수 없는 거죠. 그리고 궁궐도 출입하지 못 하게 되는 것 아니겠어요? 근데 가까이 오게 하셨다...이것은 뭐냐면 대단한 영광과 특권을 가리키는 거죠. 하나님과의 친교죠. 그래서 하나님은 이러한 친교의 현실적인 경험에 의해서 우리가 하나님과의 관계가 어떤지를 알 수 있도록 그렇게 만들어 주시죠.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 앞에 정결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간절히 의지하고 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면 우리가 하나님 매우 가까이 있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근데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그 하나님으로부터 매우 멀어져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죠. 그러는 거예요. 그럼 이제 같은 표현이 한 번 더 반복되는데, 주의 뜰에 거하게 하신 사람은 복이 있나이다....여기서 주의 뜰이라고 하는 것은 결국, 성전 이 때는 성막이죠. 성막을 생각하시면 돼요. 그가 주의 뜰에 들어왔다라는 것은 무슨 뜻이냐 하면, 거기에서 이제 들어온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 제사를 드릴 수가 있는 거죠. 제사를...이것도 역시 뭘 가리키냐 하면, 하나님 앞에 죄의 씻음을 위한 제사, 혹은 자기가 받은 은혜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하나님 앞에 자기 자신을 헌신하는 희생의 제사, 이것을 받도록 하나님이 불러 주신 사람들이다...그런 뜻이에요. 결국은 이 3중의 묘사, 택하심, 가까이 오게 하심, 뜰에 거하게 하심, 이 모든 것들이 결국은 하나님의 선택과 친교에 관련된 것이에요. 이렇게 된 사람들은 복이 있습니다....할 때 여기서 씌어진 이 복을 히브리어로 말하면 이 복은 이렇게 세상에서 잘 먹고 그 다음에 돈이 많고 그런 복이 아니라, 성도들이 이 세상에서 누리는 복이에요. 그러니까, 그런 것들이 포함이 안 된단 뜻이 아니라, 복을 이렇게 볼 때, 그 관점 자체가 성도들의 측면에서 보는 복이에요. 무슨 얘긴지 이해되죠? 우리들이 “아우, 하나님이 널 참 복 주셨구나” 이렇게 이야길 할 때 그 때에 물질이나 이 세상에서의 번영이 포함이 제외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러나 주된 관점이 그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너를 참 복 주셨구나...이렇게 말하기 위해서는 그 사람이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가지면서 영적인 은택을 충분히 입는 가운데, 그것의 외적인 확장으로서 그런 외형적인 것들을 포함을 하는 거죠. 그것이 바로 시편 1편에 복이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고.....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고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며....라고 했을 때, 그 복이에요. 그러니까, 하나님을 경외하고, 사랑하는 가운데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누리는 그런 복이에요. 이건 명백하게 성도의 복이죠. 그런 사람이 복이 있다는 거죠. 그러니까, 진정한 복의 그 원천이 외연에서 내면적으로 본질적으로 파고들면 파고들수록 거기에는 하나님과의 친교가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거예요. 하나님의 선택과 친교, 이것이 복의 진원지라고, 원천이라고 보는 거예요. 그러면서 이제 우리가 주의 집 곧 주의 성전의 아름다움으로 만족할 것입니다...이렇게 나오죠. 우선 여기서 만족합니다...이것이 뭐냐면, 언어적으로 배부르다는 뜻이에요. 우리가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배고플 때 시장을 보면, 별 걸 다 사게 되죠. 그죠? 근데, 이제 배가 부르게 됩니다. 그래서 옛 말에 무슨 말이 있냐하면 집이 부르면, 종이 배고픈 줄 모른다..그러잖아요? 그러니까 사람이 배가 부르게 되면 먹는 것에 대해서 일단 충분히 만족하게 됩니다. 그래서 배가 잔뜩 부른데 먹을 것을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어요. 배가 고플 때, 먹을 것 배부른 생각을 하게 됩니다. 무슨 뜻이냐 하면, 이러이러한 것을 인해서 우리들이 만족합니다....라고 할 때, 그것은 마치 우리의 몸의 음식처럼, 들어가서 충분히 우리를 배부르게 하고 그리고는 음식에 대한 생각을 잊어버리게 하는 것처럼, 그렇게 충분히 그 음식으로 우리가 배가 부르게 되는 것처럼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런 만족이 되신다..그런 이야깁니다. 인간의 모든 비극은 이런 영혼의 배고픔이 사실은 하나님과의 친교, 하나님의 선택과 친교의 부족 때문인데, 그것을 다른 것으로 채워 보려고 하는 데서 인간의 모든 비극이 나오는 것입니다. 우리가 육체적으로 볼 때는 그렇게 어리석지 않습니다. 배가 고픈데, 우리들이 노래를 부르러 가는 사람이 없고, 목이 마른데 다른 사람의 칭찬을 받아서 그 목마른 것을 해갈하려고 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데 영적으로는 우리들이 어리석어서, 영혼이 하나님 없이는 만족할 수 없는데 다른 것에서 만족을 찾고,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면, 이 목마름을 면할 수가 없는데 다른 것에서 이 목마름을 대신해 보려고 하는 어리석은 시도를 하게 되는 것이에요. 그것이 모든 인생의 비극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가장 큰 사명은 주님을 올바르게 알고 올바르게 사랑하고 그 분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영혼의 참된 만족을 누리는 그것이 바로 우리의 가장 중요한 본분이고 인생의 모든 행복이 거기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5절 하반부에 주의 성전의 아름다움으로 만족할 것입니다....라는 이 부분은 내일 아침에 계속 하겠습니다. 기도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