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이름의 영광을 찬양하라
“온 땅이여 하나님께 즐거운 소리를 발할찌어다 그 이름의 영광을 찬양하고 영화롭게 찬송할찌어다”(시 66:1-2).
전체적으로 찬송시라고 분류되는 시입니다. 표제에 시인은 시인이 누구인지는 안 나와 있지만, 다윗의 시가 아닐까 그렇게 추측들을 합니다. 시편 66편 초두에서 온 땅이여 하나님께 즐거운 소리를 발할지어다...그리고 찬송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여기에서 땅이라고 하는 것은 사람이라는 말로도 번역을 할 수 있습니다. 왜냐면, 이 땅이라고 하는 에레츠라고 하는 히브리어 단어가 땅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가리키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온 땅이여 하나님께 즐거운 소리를 발할지어다...시편은 여러 곳에서 사람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창조하시 만물들이 또한 하나님을 찬송하는 것을 노래하기도 합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향한 찬송과 그리고 인간이 아닌 자연만물이 하나님을 찬송하는 것 사이에는 아주 뚜렷한 차이가 있죠. 그것은 인간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은 하나님을 찬양한다고 하는 자기의식 속에서 그리고 의지를 가지고 하나님을 찬송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찬송을 통해서 더 많은 영광을 받으시는 것이에요. 이에 비해서 자연만물의 찬송은 그들이 하나님을 알고 그리고 의식 속에서 의지를 가지고 하나님을 찬송하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 모든 작용들은 영혼을 가진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작용이기 때문이죠. 그러면 그 자연만물들이 하나님을 찬송하는 것은 어떤 방식으로 하나님께 찬송을 하는 것일까요......그것은 자연 모든 만물이 자신을 통해서 하나님과 세계 사이에 있는 관계를 드러냄으로써 결국은 하나님을 찬송하는 관계가 되는 것이죠. 다시 말해서, 누군가가 아주 아름다운 예술작품을 남기면 예술작품은 의지도 없고 생각도 없지만 그 작품을 통해서 작가의 손길이 거기 묻어있기 때문에 그 작품을 보는 사람들마다 그 작품을 보고 감탄하는 사람마다 결국은 그 작품을 지은 그 작가를 생각나게 하듯이 똑같이 하나님이 창조하신 이 모든 만물의 세계는 그것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생각나는 효과가 있는데 이것이 시인에게는 하나님께 즐거운 소리를 발하는 것처럼 들리는 것이죠. 자연의 모든 만물들까지 일깨워서 하나님께 즐거운 소리를 발하라고 촉구하는 이것은 결국 자기 안에 이미 하나님을 향한 찬양이 가득하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 안에 이뤄진 하나님의 나라가 그 사람으로 하여금 다른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살게 하고 또 하나님의 아름다우심을 이 모든 세계 속에서 볼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자신이 은혜를 많이 받으면 하나님의 살아계신 증거가 자신의 삶 도처에 있고 자기가 하나님께 은혜를 받지 못 하면 그러면 하나님의 살아계신 증거가 잘 발견이 안 되는 것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오늘 이 시인은 온 땅이여 하나님께 즐거운 소리를 발할지어다...라고 노래하고 있는 것이죠. 자기 안에 가득찬 하나님께 대한 감사와 감격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에요. 그러면서 그 이름을 찬양하고 영화롭게 찬송할지어다...나옵니다. 여기에서 왜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하라고 이야기를 안 하고 왜 그 이름의 영광을 찬양하라고 했을까....라는 질문이 나옵니다. 그것은 이제 이 세상 하나님이 창조하신 이 모든 세계는 결국 하나님을 우리에게 보여주되 하나님을 직접 봄으로써 알게 되는 것이 아니라 피조물들과 맺으신 하나님과의 관계를 통해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 하는 것을 깨닫고 또 알게 되는 것이죠. 그래서 이제 봄이 옵니다. 그죠? 좀 갑자기 뭐 오늘 내일 추워진다고 하지만 완연한 봄은 이제 대세를 거스를 수가 없어요. 봄이 옵니다. 그 봄이 오는데 봄의 완연한 대세를 거스를 수 없는데 그런데, 그 모든 봄은 결국 봄볕과 함께 찾아와요. 결국 봄볕이든지 가을볕이든지 모두 태양으로부터 내려오는 빛이에요. 그 봄이 오면 얼음이 녹고 그 다음 이제 꽃망울이 터지고 그 다음에 새싹들이 자라나고 그리고 시냇물이 흐르고 그런 변화들이 찾아와요. 그러나 태양 안에는 시냇물도 없고 꽃망울도 없고 그리고 흐르는 녹는 얼음도 없어요. 눈에 보이지도 않는 태양빛이 이 땅에 있는 모든 만물과 관계를 맺으니까 다양하게 나타나는 것처럼, 하나님의 아름다우심과 그 찬란한 영광은 그 하나님이 피조물들과 관계를 맺으실 때, 바로 그 관계 안에서 나타나는 것이에요. 피조물들과 관계를 맺고 그 피조물들 안에서 그 모든 것들이 아름답게 드러나게 될 때, 그 때 결국은 하나님의 영광을 모든 피조물들을 통해서 발견할 수 있게 되는 것이에요. 그렇게 함으로써 결국 하나님은 그 모든 피조세계를 통해서 영광을 받으시는 것이죠. 시인은 바로 그러한 만물들이 모든 인간들이 높이고 아름답다고 인정하는 그것이 하나님의 이름이라고 보는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 자신은 하늘에 계시지만 당신의 이름을 이 세상에 두셔서 모든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이름을 통해서 용기와 위로와 힘을 얻도록 만드셨습니다. 그래서 한 사람의 하나님에 대한 태도는 하나님의 이름에 대한 태도와 완전히 일치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사랑한다는 것과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같은 것이에요. 그래서, 하나님의 이름이 모든 만물과 사람들 위에서 높이 여김을 받는 광경을 보면서 그의 이름의 영광을 찬양하고 또 그 분을 찬양함으로써 더 많은 사람들이 그 분의 영광이 어떠한지를 알게 되도록 그런 방식으로 하나님께 찬송을 돌리라고 시인은 노래하고 있는 것입니다. 티끌 같이 미약한 존재이고 그리고 이슬처럼 이 땅에 잠시 태어났다가 그 이슬이 정오의 햇빛에 사라지듯이 그렇게 사라져가는 인간으로 이 세상에 태어나서 가장 아름다운 이름, 영원토록 계신 그 하나님을 이 땅에 사는 동안에 찬송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을 통하여 하나님의 이름이 온 땅과 모든 만물 위에 높이 여김을 받도록 그렇게 이바지하면서 산다면 비록 티끄로가 같은 인생이라도 그 티끌과 같은 인간이 관계를 맺고 있는 영원하고 그리고 존귀하신 하나님 때문에 그의 인생도 복락에 참여하게 되는 것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