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을 단련하심 같이
"하나님이여 주께서 우리를 시험하시되 우리를 단련하시기를 은을 단련함같이 하셨으며."(시 66:10).
신앙을 가진 사람들에게 특징이 있다면 그 중에 하나가 신앙이 없을 때에는 절대로 그렇게 못했는데 자기 주위에서 일어나는 모든 시련이나 어려움들을 신앙이라는 시각으로 해석해 내는 거지요. 그것이 신앙이에요. 그 근거가 무엇인가하면 하나님께서 자기의 인생뿐만 아니라 자기의 인생 전체를 주관하시고 그것을 섭리하고 계시기 때문에 모든 일들은 하나님의 계획 없이는 일어나지 않는다는 이 신앙에서 그런 해석의 능력이 나오는 것이에요. 이런 해석의 능력은 그 사람의 신앙의 상태와 밀접한 관계가 있어요.
그래서 신앙이 충만해지게 되면 이런 해석이 잘 됩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과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많이 달라지게 된다. 그중에 대표적인 사람이 요셉이다. 형들이 요셉을 팔았기 때문에 아버지가 죽은 다음에 마치 자기들을 에워싸고 있던 벽이 무너져서 한 대가 되는 것 같은 그런 커다란 두려움과 위기를 느꼈잖아요. 그래서 거짓말로 '아버지가 당신보고 우리를 잘 돌봐주라고 했습니다'라고 두려움 가운데 거짓말을 했잖아요. 그때 요셉이 '걱정하지 마십시오. 당신뿐 만아니라 당신의 자녀들까지 내가 돌볼 것입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당신들은 나에게 악을 행하였지만 하나님은 그 악을 선으로 바꾸셨습니다. 그래서 모든 죽어가는 만민들을 살리려고 나를 애굽의 총리로 삼으셨습니다.'이런 고백이었어요.
만약에 그렇게 해석해 낼 시각이 없었다면 그 긴 세월 동안에 그렇게 고생하게 만들었는데, 죽을 고비를 수없이 넘기게 만들었는데 이가 갈리도록 밉지 않겠어요? 갈아 마셔도 시원찮죠? 그 어린나이에 부모와 떨어져서 얼마나 많은 세월을 그 많은 서러움 속에서 지냈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인생을 살아갈 수 있는 놀라운 힘들이 그 해석 속에서 나오는 거예요. 신앙이 깊어지고 해석의 능력이 생기게 되는 거예요. 하나님을 원망할 수밖에 없는 자리에서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고 사람에게 복수할 수밖에 없는 자리에서 오히려 그 하나님의 큰 계획을 보면서 그 사람들을 용서해 줄 수 있는 마음이 생겨나는 거예요. 그게 바로 신앙이 가지고 있는 해석의 능력이에요. 그래서 이런 해석의 능력을 가지고 있으면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는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이 정말 커다란 섭리 속에서 나에게 이런저런 괴로움과 고통을 주셨구나. 그렇게 될 때에 우리는 오히려 그 섭리 속에 담겨있는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는 거죠. 하나님의 새로운 성품들을 하나님의 돌보심 속에서 보게 되는 거예요. 그것이 바로 신앙생활이에요.
오늘 시인은 고백하기를 '주께서 우리를 시험하시되 우리를 연단하기를 은을 연단함과 같이 하셨나이다.' 그렇게 고백을 해요. 그것도 공동체적인 기도를 해요. 은을 연단한다는 것이 무슨 뜻이냐면 지금이야 새로운 첨단 기법들이 있겠지만 옛날에는 용광로에 은을 녹여요. 녹이면 그러면 쇠보다는 빨리 녹죠. 600도 정도에서 녹여요. 녹으면 액체상태가 되잖아요. 그러면 불타버릴 수 있는 것은 육백도 혹은 그 이상의 온도에서 쇠가 천이백오십 정도에서 녹으니까. 어쨌든 거기에서 불타버려. 그러면 액체 상태가 되니까 그 속에 들어있던 것들 중에서 비중이 무거운 것들은 가라앉죠. 그럼 그렇게 해서 은을 걸러내는 거예요. 따라 내면은 위에 것은 타버리고 가벼운 것은 타버리고 무거운 것은 가라앉잖아요. 마치 우리가 쌀 씻는 거처럼 조리질 하듯이 하는 거예요. 그러면 또 굳혀요. 굳혀서 또 한 번 하는 거죠. 그것을 되풀이 하면 되풀이 할수록 은은 순도가 높아지는 거죠. 순도가 높을수록 은으로써의 제대로 된 가치를 발휘하는 것이 아니겠어요? 그래서 그렇게 은으로 된 그릇이나 은으로 된 많은 물건들을 왕궁에서 지배자들이 사용하는 것을 많이 보았어요. 그것을 생각하면서 이런 글을 쓴 거죠. 그렇게 연단을 할 때 꼭 필요한 것이 불이죠. 그런 불을 통해서 은을 녹이고 녹일 때의 찌꺼기를 건져내는 모든 과정들이 마치 하나님의 백성들을 더 순전하게 하시려고 하나님이 시련을 주시고 시험을 주시는 것과 매우 유사하다 그런 생각을 하게 되는 거죠.
그래서 시인이 이렇게 표현하는 거죠. 그러면 은은 금속으로써 녹아서 가벼운 것들은 태워버리고 무거운 것들은 가라앉히는 방식으로 정결해 지지만 우리의 마음은 그 와는 다른 방식으로 하나님이 정결하게 하시는 거죠. 그래서 어떻게 하냐면, 시련을 하나님이 주시면 우리의 마음이 녹아내리는 거요. 그것은 은하고 아주 비슷하죠. 그래서 시련이 없을 때에는 참 가치 있고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자기를 매몰했던 일들을 태워버리는 거요. 그래서 평안했을 때에는 집착했던 것들을 시련이 닥치면 그 모든 것 들에 대한 사랑을 버리게 되는 거죠. 그래서 건불처럼 태워버려요 마음에 있던 욕망이나 혹은 무거운 죄들이 생각이 나요. 그래서 그것들이 마음에 단단해져 있을 때는 마음속에 알 박혀 있었는데 그것들이 마음이 녹아내리면서 자기 안에 그런 못된 것들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는 거죠.
그래서 오늘 내가 닥치게 된 시련이나 환란이 바로 이런 내 마음에 있는 악 때문이다 생각을 하게 되는 거죠. 그래서 하나님 앞에 내 삶 때문 입니다. 회개하게 되는 거죠. 그것들이 가라앉으면서 빠져나가게 되는 거죠. 그래서 새 마음이 되는 겁니다. 그래서 그렇게 하나님이 새로운 마음으로 우리를 연단시키셔서 정결하게 하기를 은을 그렇게 계속 연단해서 순전하게 하시는 것처럼 우리를 그렇게 하는 거죠. 똑같은 은인데 불순물이 빠져나가면 그 은이 비싸고 값진 순은이 되는 거요.
인간도 역시 똑같아요. 지위나 이 세상에서의 낮고 높음, 소유의 많고 적음이 의해서가 아니라 인간이 하나님 앞에 얼마나 순전한 존재인가 이것의 의해서 그의 가치가 결정되는 것이요. 그래서 하나님은 끊임없이 우리를 몹시 연단하셔서 그래서 당신의 성품을 드러내는 그런 거울들이 되게 하시려고 우리를 끊임없이 그렇게 순전한 사람으로 만들어 가시기 위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연단을 주시는 것이에요. 올바른 방법으로 이 연단을 감당할 때에 연단은 우리에게 커다란 도움이 됩니다. 왜냐하면 우리를 정결하게 하기 때문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