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난 때에 서원을 갚음
“내가 번제를 가지고 주의 집에 들어가서 나의 서원을 갚으리니 이는 내 입술이 발한 것이요 내 환난 때에 내 입이 말한 것이니이다 내가 수양의 향기와 함께 살진 것으로 주께 번제를 드리며 수소와 염소를 드리리이다(셀라)”(시 66:13-15).
이 부분은 이제 앞에 부분은 시인이 과거를 회상하는 것이죠. 그리고 이 부분은 현재에 시인이 과거의 은혜를 회상하면서 하나님 앞에 약속한 헌신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죠. 번제라고 하는 것은 어떤 제사의 종류의 이름이 아니라 하나님앞에 제사 드리는 방식에 따른 구분이에요. 태워서 드리는 제사 이것을 번제라고 불러요. 그래서 흔들어서 드리면 요제 곡식과 함께 드리면, 소제 등등 하니깐 제사의 목적을 따른 구분이 있고 방식에 따른 구분이 있는데 이것은 방식에 따르는 구분이에요. 그래서 번제에 올리는 거는 속죄제도 번제에 올리지만 자기가 하나님 앞에 서원을 하고 하나님앞에 드리는 감사의 제사등이 주중을 이루게 되요. 그래서 인제 그가 하나님앞에 이렇게 태워 드리는 제사를 올리는데 이거는 하나님을 향한 전적인 헌신의 마음이에요. 짐승이 불에 타서 말하자며는 연기가 되고 제가 되는 것처럼 자기 자신을 주님을 위해서 헌신의 제물로 바치겠습니다. 주님께 대한 헌신의 한 표시이죠. 그러면 이 시인이 과거를 회상하면서 마음속에서 불일 듯 하나님앞에 환란날에 두가지를 생각하게 된 거죠. 환란 날에 하나님앞에 서약했던 것 그리고 또 하나는 하나님앞에 그 서약을 따라서 자신을 드리는 상징인 제사를 하나님께 올려야 되겠다는 불같은 헌신의 마음 이 두가지가 동시에 일어났던 것이요. 그래서 진정한 감사는 회상과 밀접한 관계가 있어요. 그래서 매일매일 현실이 자기가 만족스럽게 되어야지만 겨우 감사 할 수 있는 것은 신앙이 아니어도 될 수 있어요. 그러니깐 진정한 신앙은 해석의 신앙이에요. 그래서 지금 과거를 돌아보면서, 과거에 하나님이 나를 위해서 베푸신 일들이 어떤 일이었는가. 그리고 베푸신 그런 일들이 오늘날 하나님앞에 내가 살아가는데 어떤 커다란 은택이 되었는가를 잊지 않고 생각하면서 하나님앞에 감사할때에 오늘을 살아가는 현실을 해석하는 힘이 거기에서 나오는 것이에요. 그런 해석의 작용과, 그리고 모든 과정을 통해서 우리의 신앙이 하나님앞에서 더욱 견고해 지게 되는 것이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나안땅을 주시면서 하신 말씀이 있어요. 그것은 뭐냐면, 너희가 이제 짖지 않은 집에서 살고 너희가 가꾸지 않은 포도원의 열매를 먹을 것이다. 그런데, 너희들이 오래도록 잊지 말아야할 한가지 사실이 있다, 그것은 너희가 의로워서 이 가나안땅을 준 것이 아니다. 이거에요. 그래서 하나는 그땅의 백성들이 너무 패역하였기 때문에 멸망시키시기 위해 너희에게 주셨다는 것과 또 하나는 조상에게 약속하신 하나님의 언약을 지키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 때문에 너희들이 이것을 유업으로 받게되었다는 두가지에요. 그거에서 구지 원주민들을 하나님께서 거론하시는 이유는 하나님이 진노하시는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보여주고 약속을 거론하신 이유는 하나님의 자비가 당신이 언약한 백성들에게 신실하게 시행된다는 것을 보여 주시는 거죠. 그러니깐, 죄에 대한 하나님의 공의와 언약에 대한 하나님의 신실하신 자비 이 두가지가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가나안 땅을 공로 없이 누리게 한 원인이었다 이뜻이에요. 그러면 그런 하나님의 자비에 대한 반응 역시 주님을 향한 두려움과 신실하신 하나님에 대한 카리따스의 사랑으로 나타나는 거죠. 그러니깐 주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이 아니면, 주님을 사랑하는 그 사람이 마음에 있는 그것이 사랑이 아니요. 주님을 향한 사랑이 참다운 카리따스의 사랑이면, 그러면, 그는 필연적으로 그 주님을 진실하게 사랑하게 되는 것이에요. 이것이 바로 기독교 신앙의 모습이에요. 그래서 우리는 끊임없이 지난날을 회상하는 것 그래서 그분을 송축하고 오늘 나의 인생이 그분의 수중에 있고 구분을 의지하는 자에게 그분은 당신과의 언약을 배반하지 않을 것 이라고하는 오늘 신뢰를 갖는 것 이게 신앙이에요. 그래서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잊지 말라는 말씀을 수없이 반복하십니다. 잊어버리지 말아라, 수없이 반복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고난과 시련을 만날 때마다. 즐겨 행하던 은혜의 방편이 회상이었어요. 저멀리로 하나님이 홍해를 가르시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구원해 내시는 구원의 역사와 그 모든 가나안 정복에 이르기까지 광야 생활의 여정을 회상하는 것이였어요. 그런 회상을 통해서 하나님만이 우리를 지키시는 신실하신 주님이시다 라는 고백을 하게 되었던 것이죠. 그러면, 이제 왜 이렇게 과거를 회상하면 우리 모두 감격하지 않고 기뻐하지 않을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를 받은 흔적을 가지고 있는데도 왜 우리가 그런 과거에 대해서 올바르게 회상을 하지 못할까? 그 가장 커다란 이유는 과거를 회상하는 그 자체가 오늘 그 사람의 마음속에 있는 어떤 성향과 연결이 되기 때문이에요. 무슨 뜻이냐며는요. 살아가면서 우리들이 어려움을 만나면 모두 고통을 받습니다. 그리고 오늘 어려움을 만나는 것은 미래에 대한 해석을 다르게 하게 만들어요. 그것에 극단적인 형태가 절망이에요. 그리고 그런 절망은 그런 과거에 대해서도 생각을 할 때 그렇게 내가 오늘 이길을 만났기 때문에 큰 능력으로 나를 도우신 하나님! 이라는 이런 모든 그 회상의 방식이 오늘 내가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아가는 마음이 있을 때 그런 방식으로 회상이 되는 거죠. 그래서 사람이 절망에 빠질려고 하면, 과거를 돌아봐서 우리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과거도 있고 고통스러워서 우리를 낙심시킬 수 과거도 있는데 모두 비관적인 것들을 회상하는 거에요. 그리고 앞에 대해서도 비관적이고 어두운 전망 속에 자기를 던져버리는 거에요. 그래서 마지막에 깊은 절망에 빠질 때에는 티끌만한 희망도 보이지 않는 거에요. 그거를 키에로케고와 같은 사람이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고 이야기 했던 거에요. 믿음이 완전히 사라진 상태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믿고자 하는 마음이 고갈된 상태에서 이런 일들이 벌어지는 거죠. 그래서 하나님을 신뢰하고자 하는 성향은 과거에 대한 해석과 미래에 대한 전망까지 바꾸어 놔요 그래서 믿음이 그렇게 중요한 거에요. 그래서 주님을 깊이 의지하고 그분을 신뢰하는 그 마음은 치열하게 어둡고 고통스럽던 과거를 돌아보면서 오히려 그 속에서 희망의 흔적을 발견하고 미래의 모든 전망을 오늘 현재의 내게 있는 비관적이고 어려운 것들만 해석하지 않고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어 해석을 하게 만들어 주는 것이에요. 그것이 바로 주님을 깊이 의지하며 살아가는 신앙의 근거가 되는 것이에요. 그래서 오늘 성경을 보니까 시인는 말합니다. 내가 나의 서원을 갚을텐데, 이것은 내가 환란때에 내가 약속한 것입니다. 환란때에는 위기를 만나고 고통스러우니깐 이렇게 저렇게 해달라고 하나님앞에 간절히 부르 짖을 수 있겠지만, 그렇게 부르짖고 하나님앞에 간절히 매달린바 그것을 염려와 걱정이 없는 환란을 면한 이때에 기억하고 하나님앞에 갚는 것은 또다른 신실한 믿음의 표현이죠 그래서 항상 환란이 겹칠때에는 하나님이 신실하게 인도하셨던 나의 과거를 회상하고 그리고 그것을 회상할 필요가 없이 하나님이 순적히 나의 인생을 인도하시면, 과거에 고난과 시련이 겹치던 때를 회상하면서, 그때주님앞에 약속한 것 무엇을 하나님앞에 약속하였는지를 기역하고, 하나님앞에 매달리면서 사는 것 이게 바로 신앙이에요. 그러면서 이제 시인은 수양의 향기와 함께, 살찐 것으로 주께 번제를 드리며, 수소와 염소를 드리나이다. 최상의 제물들을 거론하고 있어요. 특히 수소와 같은 것은 아주 돈이 많은 사람들이 드릴수 있는 제물이었어요. 그것을 거론하며 하나님앞에 드리겠다는. 그래서 자기가 가지고 있는 최선의 것을 하나님앞에 드리는 그런 헌신의 제사를 아버지 앞에 올리고 있는 것이에요. 이렇게 우리도 받은바 은혜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