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들이 주를 찬양할 때
“하나님이여 민족들로 주를 찬송케 하시며 모든 민족으로 주를 찬송케 하소서”(시 67:5).
앞에 나오는 열방 그리고 또 만방이라는 앞에 4절에 나오는 열방, 또 그 밑에 뒤에 다시 또 열방이라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렇게 열방이 나라의 개념이라고 할 것 같으면 여기 나오는 민족은 겨레 개념입니다. 겨레....그래서 한 나라 안에도 사실 오늘날에는 여러 민족이 있을 수 있잖아요? 또 애굽에서도 그랬고 그래서 이스라엘 민족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여러 민족들이 섞여서 사는 그런 나라들이 있었단 말이죠. 그러면 그들은 각각 문화가 좀 다르죠. 공유하고 있는 부분도 있겠지만 다르죠. 그래서 오늘날도 우리가 다문화 가정, 뭐 다문화 가정 그러고 이야길 하잖아요? 그게 뭐냐면 그들 모두 여기 들어와서 살지만 나라는 하나죠. 뭐 한국에 시집을 오면 귀화를 했으니까 한국사람임에는 틀림이 없죠. 법적으로....그런데 여기에서 한국국적을 가지고 한국나라의 백성이 되었다고 하더라도 여기에 모여 있는 베트남 민족이라든지 아니면 태국의 무슨 민족이라든지 뭐 각각 문화가 다르잖아요. 그러면 어떤 경우에는 기름이 물에 섞이지 않는 것처럼 같이 살고는 있지만 완전히 다른 생각을 하면서 살아갈 수가 있는거죠. 그렇기 때문에 이제 이 시인은 그 하나님을 찬송하고 경배하는 것이 열방 혹은 만방, 이렇게 나라의 개념에서만 하나님을 찬송하고 경배하는 것으로 충분치 않고 이제 그 나라를 구성하고 있는 민족의 개념으로 들어가는 거죠. 그러면서 모든 나라들이 하나님을 찬송하되 대체적으로 혹은 그 안에 있는 주류의 특정한 민족이 아니라 그 속에 함께 살고 있는 또 다른 작은 민족들까지도 거기에 하나님이 알려져서 그래서 하나님의 그 선하심과 인자하심, 위엄과 영광이 알려져서 그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것, 그래서 그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 그래서 주님을 마땅히 찬송하게 되는 것, 이것을 시인은 꿈 꾸고 있는 거예요. 여기 시편에 나오는 찬송하게 하소서, 경배하게 하소서, 이런 것을 좁은 의미의 찬양이나 예배, 경배 이런 걸 의미하면 안 돼요. 이것은 어떻게 보면 비유를 하자면, 식물이 있잖아요. 식물이...그러면은 그 식물이 마지막에 쭉 자라면서 꽃이 활짝 피잖아요. 그 꽃 속에서 사실은 그 식물의 특징을 우리들이 잘 보게 되잖아요? 그렇지 않아요? 그런 식물들의 맨 끝에서 꽃을 보게 되는데 그게 왜 이렇게 중요하냐면 그 꽃이 사실은 열매를 맺는 또 하나의 과정이거든요. 그러니까 뭐 풀 속에 물론 뿌리의 열매를 맺는 식물들도 있지만 대부분의 식물들이 꽃을 통해서 열매를 맺게 되잖아요. 그럴 때, 그 꽃이 그 씨를 그 식물이 씨를 풀 속에 줄기 속에 맺는 게 아니라 꽃 속에 열매를 맺는단 말이에요. 꽃을 통해서....그러니까 그 꽃 속에서 사실은 식물다움이 가장 독특한 특징이 드러나는 거죠. 그래서 줄기 가지는 비슷해도 피어나는 꽃의 모양은 전혀 달라서 그 꽃이 꽃의 개화를 통해서 그 식물들이 자기가 누구인지를 보여준다는 거죠. 그러면 하나님을 찬송한다라고 하는 이것은 말하자면 그 식물에 있어서 활짝 핀 꽃과 같아요. 그래서 나머지 모든 삶의 부분이 하나님께 복종된 가운데 그런 가운데 영혼과 마음의 활동으로서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는 그 헌신 속에서 나오는 자연스런 표현으로서의 찬양을 얘기하는 거죠. 그래서 마치 그런 것 아니에요? 어떤 사람이 재산을 자기 재산에 대한 기록을 담은 문서를 가지고 있고 만약에 도장이 찍혔다면 그 도장 하나가 그 모든 문서 속에 담겨져 있는 재산에 대한 목록에 대한 소유를 표현하는 것처럼 그렇게 하나님을 향한 진실한 마음으로부터의 찬양은 자신의 모든 것들이 이미 하나님을 위한 영광의 도구로 쓰여지겠다라고 하는 헌신이 그 속에 포함되어 있는 거란 말이죠. 그러면 그런 일들이 나라 단위로 일어나서 대체로 하나님을 인정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드리는 그런 것이 아니라 그 나라를 구성하고 있는 경우에 따라선 수많은 각기 다른 민족들이 있는데 그들에까지도 깊이 이 하나님을 지식이 스며들고 파고들어서 결국은 그들도 여호와께 무릎을 꿇고 헌신된 백성들이 되는 것, 그래서 이제 나라는 각기 다르고 민족들은 각기 상이하지만 하나님을 아는 지식의 깃발 아래 그 나라와 민족의 경계를 넘어서 모두 하나님을 공경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민족이 되어서 한 정신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게 되는 그런 날을 꿈 꾸는 거예요.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전망이죠. 어제도 시간이 없어서 다 못했습니다만 그러면 도대체 그 일들이 어떻게 일어나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그것은 간단합니다. 이렇게 요약됩니다. 그래서 뭐냐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통해서 그런 일들이 일어나는 거야. 이스라엘 백성들이 창칼로 민족을 지배해서 그래서 백성들의 목에 칼끝을 들이대고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게 하는 그렇게 해서 오는 나라를 여기에서 말하는 것이 아니에요. 그것이 아니에요. 자기도 어찌할 수 없도록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 사로 잡혀서 그래서 열방과 그리고 모든 민족들이 하나님 앞에 돌아오게 되어서 이제는 나라의 구분과 민족의 구분이 필요 없이 한 언약백성의 무리가 되는 것, 그것이 구약 시편 속에 나와있는 찬송하는 하나님의 새로운 백성들에 대한 전망이에요. 그래서 한 시대의 교회의 교회가 하나님 앞에 하여야 할 일은 그냥 가장 핵심적으로 요약하면 두 가지 밖에 안 남는 거야.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자기 시대에 전파하고 다음 세대에 물려 주는 것, 그것 두 개 밖에 안 남는 거예요. 마지막....그럼 한 번 보세요. 자, 처음 하나님을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 중생하고 회심하여 하나님의 백성들로 들어오게 되잖아요. 어떻게 해서 그런 일들이 일어나게 됩니까? 우리 교회 좋은 교회고, 아주 편리한 교회라고 홍보를 해서 사람들이 우르르르 교회를 찾아서 가득 메우는 것을 통해서 그런 영적인 이스라엘이 세워지는 것 아니에요. 중생과 회심을 통해서 일어나는 거죠. 중생과 회심이 무엇입니까? 결국은 하나님을 모르던 사람들이 하나님을 알게 되는 과정이에요. 거기에 사로잡히는 거죠. 그래서 그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대면하고 자기가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달으며 뉘우치는 것이 회개고 그 하나님을 아는 지식의 진수인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에 붙잡혀 그 분께로 돌아오는 것이 믿음이에요. 그게 바로 믿음이에요. 그리고 도대체 인간이 타락한 상태에선 이것을 알 수 없기 때문에 이것을 인식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그의 영혼을 살리시고 그래서 영적인 눈을 뜨게 해 주시는 것이 중생이에요. 그러니까 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그 시대에 전파하는 거예요.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그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전파하는 거예요. 그렇게 전파할 수 있게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돼요? 자신이 누리지 않는 것을 사람들에게 전파할 순 없는 거예요. 전파할 수 없는 거예요 네? 그런 말이 있어요. 뭐냐면, 제품을 아무리 선전해도 가장 강력한 선전은 그 제품을 써 본 사람들이 공정하게 이웃에게 감동을 받아서 말해 주는 것, 그게 가장 커다란 전파력이에요. 그게 가장 커다란 전파력이에요. 제가 지금부터 한 13년, 13년인가. 아니에요. 딱 15년 됐네요. 15년 전에 처음 책을 썼어요. 설교자는 불꽃처럼 타올라야 한다라는 책을 썼는데 그걸 쓰면서도 이걸 누가 읽겠나....도대체 우리 나라의 설교자가 몇 명이나 될까...그리고 그 사람들이 얼마나 생각이 높은 사람들인데 나 같이 무명의 그 변두리 신학교 선생이 쓴 이거를 누가 읽겠나...그러고 써서 두란노 출판사 줬어요. 근데 뭐 그러고는 잊었죠. 언제 나오는지도 모르고 그러고 언젠가 나왔다고 그래요. 1년에 한 2000권이나 팔리려나....그러고 이제 잊어버렸어요. 그러고 나서 얼마 지났는데 서점에서 책을 봤는데 계속 책을 찍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전화를 걸어서 물어봤더니 하루에 200권씩 나가는데 15일에 책이 3000권씩 찍히고 있는 거예요. 신문에 요만한 광고도 안 냈어요. 요즘은 그래도 광고라도 좀 내죠. 그 무명의 작가에게 무슨 그런 대우를 해 주겠어요? 그런데 불티나게 팔려요. 단번에 25000부 30000부가 팔리는 거예요. 그래서 어느 목회자를 만났더니 그래요.“ 목사님 ”요새 목사님이 아니었죠. 그 때 교수였죠. “교수님 요새 우리 목회자들이 만나면 인사가 야 이 책 읽어봤냐...이게 인삽니다.” 그래 뭐 사람들이 막 사가는 거예요. 그것이 바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전파되는 방법이에요. 그리고 재밌는게 뭐냐면 그렇게 읽고 감동을 받은 사람들은 추천할 때 굉장히 적극적이고 전투적이에요. 아직 안 읽어 봤다고 그러면 사람을 무시하면서 그렇게 하는 거예요. 그렇게 전파받은 사람들은 신문이나 이런 데서 보고 대대적인 홍보를 받은 사람보다도 서점에 갔을 때 그 책을 구입할 가능성이 아주 높아지는 거예요. 그러니까 그래서 그 때 한창 재밌는 유행어가 나돌았는데, 7000원이었어요. 지금 생각하면 참 싸죠. 거의 뭐 350페이지였었는데..7000원짜리 책에서도 베스트 셀러가 나올 수 있다는 기록을 세운 책이래요. 그 당시에는 만 원을 들고 가면 2권을 사고 싶어한다고 앙케이트가 나왔었어요. 그것이 바로 그러면 무슨 얘기를 제가 하고 싶어하는 거예요? 먼저 그러기 위해서는 교회 자신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누리고 있어야 되는 거죠. 이 하나님이 너무 소중하고 주님을 아는 이 지식 안에 붙잡혀 사는 것이 말할 수 없이 행복하고 그리고 기쁘게 느껴져야 되는 거죠. 그래서 교회가 영적 침체에 빠져 있는 것은 이것은 또 다른 의미에 있어서 죄에요. 잘못하고 있는...그 교회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누리고 그 안에서 정말 복 되게 살지 못할 때 우리들이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는 사람들은 이렇게 묻는 거죠. 그게 인생 살아가는데 도움이 됩니까? 당신 보니까 별로 도움이 안 되는 것 같습니다. 당신도 좋아하지 않는 제품을 왜 우리한테 팝니까? 이런 반응이 나오는....그래서 자신이 먼저 그것을 충만히 누리고 그것을 사람들에게 전파해 주는 거죠. 동네 나가서 그 일을 하는 것이 그 동네 전도에요. 여리고 전도에요. 병든 사람들에게 가서 하는 것이 병원 선교에요. 감옥 속에 갇혀서 내일이 없는 사람들에게 전하는 게 그게 교도소 전도에요. 문화가 다르고 있는 사람들에게 하는 것이 국내 선교에요. 먼 나라에 있는 사람들에게 전파하는 그것이 해외 선교에요. 그거에요. 그 교회에 대치할 수 없는 소명이에요. 그러면 생각해 보세요. 그것을 자신들이 먼저 누리고 그것의 가치를 알고 행복해 할 때 이 지식이 없는 사람들을 안타까워 하면서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전망을 갖게 되는 거예요. 그 하나님의 나라의 전망이 뭐에요? 이사야서나 혹은 예레미야에서나 에스겔서나 이런 곳에서 나오는 특별히 에스겔서나 이사야서에 나오는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전망이 뭐예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이 땅에 충만해 지는 것, 누구도 하나님을 모른다고 말할 수 없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편만하게 되는 것, 그것이 하나님의 나라의 본질이에요. 그것을 위해서 봉사하며 사는 거죠. 그러니까 그것을 자기가 누리고 그 다음에 그 누린 것들 속에서 한없는 행복을 경험하면서 그래서 그것을 사람들에게 전파하는 거죠. 그런데 자기가 뭘 누리냐 이거에요. 뭘 가지고 누리느냐 이거예요. 그것을 누리는 방법이 뭐냐 이 얘깁니다. 그걸 누리게 되는 가장 중요한 방법이 뭐냐 이 얘기에요. 그 누리는 방법이 무엇이냐, 가장 우선적인 것이 설교에요. 어제도 로이드 존스 목사님 책을 읽었는데 그 분이 얘기하는 거예요. 진정한 복음주의라고 하는 것이 이제는 다 기울어져 가고 있다...근데 참된 복음주의라고 하는 것이 무엇이냐...설교를 중시하는 거다...그래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그 설교를 통해서 쏟아부어지는데 이것이 바로 그 하나님께서 당신을 아는 지식을 당신의 교회에 편만히 보내시는 가장 중요한 방법이다...그러면서 아예 자기 책 속에서 이런 얘기까지 해요. 이것에 비하면 개인적인 성경읽기, 성경공부, 모든 교육 이런 것들은 부차적인 것이다라고 얘기해요. 절대로 설교를 제외해 놓고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교회 안에 편만하게 부어질 수 없는 것이에요. 그 사실을 역사적으로 성경적으로 굳게 믿는 것이 복음주의의 한 특징이에요. 그러면 생각해 보십시오. 그렇게 쏟아 부어지는 그런 진리들이 있기 위해선 자신들이 먼저 그것을 누려야 되는 거죠. 그러면 설교자들이 그것들을 누려야 되는 거죠. 줄리어스 킴 교수가 와서 교제를 하면서 그 참 놀라운 이야기를 들었어요. 그것 보면은 미국이 그렇게 전부 다 다 종교다원주의로 가고 이렇게 막 가는 것 같아도 놀랍게도 그 안에서 칼빈주의의 부흥이, 개혁주의의 부흥이 일어나요. 요번에도 이제 제가 6월달에 미국에 있는 신학교 섬김의 날 가서 만나뵙기로 했는데 우리 교회도 한 번 오셨어요. 조웰 비키 목사님...그 분 이야기를 하면서 내 그 분 만나기로 했다 그러니까 너무 좋아하면서 자기도 그 분 만나서 집에 간 적이 있는데 저기 지역교회 목사님이잖아요. 물론 학자이기도 하고 탁월하게 활동을 많이 하신 분이지만, 개인서재에 가서 자기가 충격을 받았다는 거예요. 뭐 이렇다고 해서 나 보고 여러분 보고 나 한테 책 사 내라고 내가 여러분들에게 독촉하는 건 아니에요. 개인장서가 65000권....뭐 어마어마...이 정도 공간이어야지 아마 들어갈 정도가 될 거예요. 그런 책 속에서 그런 지적 자산들이 나오는 거야. 그 분의 책이 끼치는 영향은 굉장합니다. 앨버트 몰러라고 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지금도 있죠. 남침례 신학교라는 것이 있어요. 아주 유명한 실천신학으로 유명한 학교에요. 신학교에요. 근데 이게 점차점차 자유주의로 기울었어요. 근데 앨버트 몰러라고 하는 사람이 총장으로 취임하고 나서 막 대대적인 개혁을 한 거예요. 자유주의 교수들 다 쫓아내고 그러고 막 엄격한 칼빈주의 전통을 다시 세우는 거야. 제가 아는 한 분이 그 분을 만나 뵙고 와서 혀를 내둘러요. 그 박식함과 그런 건 비교가 안 된다는 거야. 이론이 있는 칼빈주의에요. 그러면서 자기에게 개인서재를 보여 주는데 75000권...개인이...그런 속에서 지적인 자산들이 생산되는 것...그것을 많이 생산해 내어서 그래서 그것을 모든 방법으로 아이들이 만약에 환타지를 좋아하면 화타지의 방법으로,,,나니아 연대기 같이....아이들이 그림책을 좋아하면 그림의 방법으로, 아이들이 게임을 좋아하면 심지어 게임의 방법으로, 아이들이 노래를 좋아하면 노래의 방법으로 그렇게 문화의 옷을 입혀서 사람들 속에 스며 들어서 결국은 그들을 그 하나님을 아는 지식 앞에 무릎을 꿇게 만들도록 그것을 발전시켜서 그래서 그것을 후대에 물려 주는 것, 물려 주는 방식이 둘 인데 그런 것에 감동을 받은 사람을 세우고 그렇게 사람들을 변화시킬 수 있는 그런 놀라운 지적인 유산들을 후대에 남겨주는 거예요. 여기에 있는 여러분들의 목사가 이 시대에 다 태어나서 모두 다 같은 사람들 중에 하나인데 무엇이 특별했겠어요. 그런데 존오웬이나 조나단 에드워즈나 다 옛날에 죽은 사람들이에요. 한 사람은 300년 전 사람이고 한 사람은 400년 전 사람이고...그런 사람들이에요. 존 칼빈은 정확하게 500년전 사람이에요. 아우구스티누스는 정확하게 1600년 전 사람이야..그런 사람들이 남겨 놓은 지적인 유산이 없었더라면 저도 변화받을 수 없었겠죠. 아마 절대로 변화받지 못했을 것입니다. 아마 분명히 오늘날도 또 교회에다가 이런 학교 저런 학교 만들고 심리학 들여다가 마케팅 기법 들여다가 아마 그렇게 교회를 했을 거예요. 뭐가 달랐겠습니까? 그 시대에 태어나서...그래서 머리가 좋고 수안이 좋았으면 뭐 좀 더 큰 교회가 됐겠고 그게 따라주지 않았으면 다른 교회들하고 경쟁을 해서 졌겠죠. 그런데 나는 목회를 시작하고 나서 하나님은 안 그렇게 보실지 모르지만 내 마음의 양심으로는 이 세상에 있는 어떤 교회도 내가 경쟁상대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어요. 우월하단 뜻이 아니라 그들의 갈 길과 나의 갈 길은 각기 다르다...난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니까.....그래서 할 수 있으면 온 힘을 다 해서 그래서 그 지식들을 누리고 그리고 그것을 발전시켜서 다음 세대에 물려 주는 것, 그래서 그들도 우리와 같이 그 하나님을 아는 지식의 빛 아래서 살게 하는 것, 그것이 교회의 대치할 수 없는 소명이에요. 한 시대에 유행처럼 쓸려 지나가는 그런 것이 아니어야 한다...이 얘깁니다. 여러분, 물건이 있는데 상품과 작품이 있어요. 상품은 시간이 흘러갈수록 싸구려가 되는 거죠. 여러분들이 한 3년 전에 사 놓은 컴퓨터 들고 가서 이거 얼마에 사겠냐고 물어 보세요...그냥 가져 가라고 그럽니다. 차라리 놓고 가려면 쓰레기 수거 비용 놓고 가라고 그럴지도 몰라요. 그러나 무슨 피카소의 작품이나 그런 것들은 요번에도 1600억인가에 팔렸다고 그러더라구...그건 사 놓으면 떨어지는 법이 없어요. 얼마나 올라가나가 문제지..왜? 작품이니까....세월이 흘러 갈수록 그것은 점점 더 가치 있는 것이 되는 거죠. 그럼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에요. 상품과 같은 인생을 살려면 모든 사람들이 다 경쟁상대에요. 목회를 해도 마찬가지...작품과 같은 삶을 살아가는 거죠. 그것이 너무나 중요한 거예요. 어제도 제가 새벽 1시까지 여러분들 이거 교회와 하나님의 사랑 끝나고 하면 쓸 공과책을 만들었어요. 그러면서도 마음 속에 간절히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정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우리 시대에 충만히 누리도록 눈물로 기도하고 그리고 그것을 다음 세대도 누릴 수 있도록 그것을 아이들을 변화시켜야 돼요. 아이들 변화시키지 않으면 그것이 좋은 것인지 알 리가 없죠. 변화된 사람이어야지만 자기를 변화시킨 말씀을 소중히 여길 테니까...그리고 그것들을 남겨서 아이들에게 누릴 수 있도록 그렇게 살아가는 것,,,그게 바로 교회의 대체할 수 없는 소명이에요. 그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통해서 모든 민족으로 주님을 찬송하게 하는 것, 이것이 바로 오늘 시편의 전망이에요. 기도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