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실하신 하나님을 찬양함
“땅이 그 소산을 내었도다 하나님 곧 우리 하나님이 우리에게 복을 주시리로다”(시 67:6).
이제 다시 여기에서 우리에게 복을 주시리로다...우리 하나님이..우리에게 복을 주시리니...이런 표현들이 나오는데 다시 이제 1인칭으로 돌아온 겁니다. 그래서 이제 이스라엘에게서 열방에게로 그 다음에 많은 민족들에게로 그렇게 하나님의 도가 전파되고 그들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으로 돌아와 하나님을 찬송하게 될 것이라고 하는 그 전망을 한 후에 다시 현실로 돌아와서 그래서 다시 복수 1인칭으로 돌아가는 것, 우리 자신에게로....그러면서 하는 얘기가 “하나님 땅이 그 소산을 내었습니다” 땅이 소산을 낸 게 뭐 그렇게 대단해요? 뭐 야채가 자라고 그 다음에 곡식이 열매를 맺고 하는 게 뭐가 그렇게 대단해요? 그죠? 이제 그런 거예요. 차이가...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은혜를 많이 받으면 그러면 아주 사소한 속에서도 그 하나님이 나를 향해 베푸시는 그 호의와 넓은 사랑을 읽어내고 그리고 그 은혜가 사라지고 나면 그러면 모든 것들과 하나님이 관계 있다고 느껴지질 않는 거예요. 않는 거예요. 여러분, 이스라엘 백성들이 제일 처음 곡식을 거두어 하나님 앞에 드리는 그 때에 이스라엘 모두의 공통된 신앙고백이 있었어요. 그게 민족적 신앙고백이에요. 근데 그 고백에 처음 나오는 것이 뭐냐면 “하나님...우리는 유리하던 아람 사람들이었습니다. .....그 고백이에요. 우리의 조상은 유리하던 아람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 유리가 하나님께 소명을 받고 본토 친척 아비의 집을 떠나던 아브라함에게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소명을 받고 그리고 모세를 지도자로 하여서 애굽을 나온 후에도 이번에는 이제 가정적으로가 아니라 민족적으로 그렇게 유리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되는 거예요. 광야 생활이 바로 그것을 말해 주잖아요.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의 소명이라고 하는 것은 이제껏 우리들이 살았던 삶의 기저 전체를 흔드는 거예요. 이것이 사실은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믿음을 시험해 보는 것이기도 하다....이런 말씀이에요. 자, 우리 같은 경우 평안한 직장이 있고 살아가던 삶이 있었는데 근데 하나님이 소명을 주셔서 목회를 시작을 하게 돼요. 그러면 그건 어떻게 되죠? 삶의 기반 전체를 전부 다 흔드는 것이 되는 거죠. 그렇지 않겠어요? 오죽 했으면 제가, 신학교를 가겠다고 그러니까 돌아가신 저희 아버지가 ‘호적을 파 가라....나는 내 집안에서 네가 목사 되는 걸 못 본다....’삶의 기반 자체가 그렇게 파헤쳐지는 거야. 그리고 미래에 세웠던 모든 계획과 인생의 꿈, 바람 같은 것들을 다 접고 새로운 것을 찾아야 되는 것 아니에요? 바로 그런 것이에요. 그럼 여러분들이 이렇게 묻고 싶을 거 아니에요? ‘아..그럼 그거야 목사가 되셨으니까 그렇지 우리야 뭐가 흔들립니까?’ 그렇지 않죠. 왜냐하면 물론 이제 많은 여러분 같은 많은 사람들은 예수를 믿었기 때문에 오늘 뭐 화장품 가게를 하다가 내일은 무슨 무슨 아니면 취직을 하게 된다든지 그런 식으로 삶의 기반이 흔들리는 건 아니죠. 그러나 이제 어떻게 돼요....내적으로 기반이 흔들리는 거야...예전엔 무엇을 하든지 자기를 위해서 사는 사람들이었어. 그것이 생활의 원리였어요. 그리고 자기에게 위로 대하고 그리고 은혜를 베푸는 사람들에게 자신도 그렇게 갚을 수 있고 자기에게 악을 행하는 사람들을 원수로 여기며 미워하면서 살았어요. 그런데 은혜 안에는 이미 소명이 있는 거거든요. 왜냐하면 은혜 그 자체가 하나님의 계획을 염두에 두고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기 때문에 은혜를 받는다는 것 자체가 소명을 내포한다....그래서 그렇게 해 가지고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시니까 그 소명이죠. 그렇게 살면 안 돼요. 비록 식료품 장사를 하다가 땅을 파고 혹은 건축업을 하다가 무슨 곰탕집을 하고 하는 이런 식의 직업의 변화가 일어나진 않지만 삶의 근본적인 원리 자체를 다 흔들어 놓아서 완저히 새롭게 하지 않으면 안 돼. 그게 바로 은혜에 주어진 소명이에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로 그거죠. 우리들은 흔히 애굽에서 고생하는데 하나님이 건져 주셨지 않았냐...그러지만 우리 톡 털어놓고 얘기해 봅시다. 애굽에서 고생하는 것이 더 고생스러웠어요, 아니면 광야에서 고생하는 게 더 고생스러웠어요? 오죽했으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수없이 얘기하다가 그렇게 하나님 앞에 원망해서 하나님 앞에 벌 받고 하는 장면이 수없이 나오고 모세를 대적했던 그 수많은 인간들이 애굽에 대한 향수를 느꼈던 사람들 아니었어요? 더 고달팠어요. 더 더 더 고달팠지요. 왜 안 고달파요? 요새도 이렇게 살아가면서 보면 막 정신없이 바빠요. 어쩜 그렇게 해도해도 일이 끝이 없는지 마음이 요새는 두 가지 마음이 한 몇 달새 계속 교차를 해요. 한 가지 마음은 ‘내가 이렇게 해야 되나 그냥 기도도 좀 더 많이 하고 그냥 일을 다 그냥 없애버릴까’ 그런 생각을 하고 또 한편으로는 ‘이게 결국 하나님이 나에게 일하라고 주신 거고 그냥 한 10년 하면 이것도 없어지는건데’ 오라고 그러는 사람도 없어요. 근데 그런 확대되가는 일을 보면서 ‘이게 하나님의 인도를 받으며 가는 것 같은데 그럼 난 어떻게 해야 되나’ 이런 생각을 하게 돼요. 그러면서도 그런 살아가는 삶 자체가 옛날에 학교에 교수로나 있든지 아니면 뭐 직장이나 다니면서 살았으면 이렇게 힘들지 않겠죠. 근데 감사해요. 왜? 소명이 있잖아요? 하나님 앞에서 우리들이 살아가는 그 삶을 생각하고....이스라엘 백성들도 그 거기서 그 애굽에서 고깃국을 먹었다고 그러는데 누가 그렇게 고기를 많이 줬겠어요...종들에게...주인들이 먹고 남은 거 줬고 마늘 먹었다고 그러는데 그 마늘을 준 이유가 자기들이 이뻐서 준 게 아니에요. 그 당시에 이집트를 비롯해서 모든 나라에서 마늘을 일차적으로 막 먹인 거예요. 왜? 그게 뭐 엄청난 힘을 발휘하니까 그것 먹고 성 쌓고 길 닦고 노예처럼 일하라고 준 거예요. 그것을 그렇게 그리워하는....근데 거긴 소명이 없잖아요? 우린 소명이 있잖아요? 그런 사람들이었거든요..이제 말씀드리려고 하는 요지는 그게 아니에요. 그런 사람들이었는데 땅이 소산을 냅니다.....땅이 소산을 냅니다...영원한 찬송 제목이에요. 하나님이 우리에게 땅을 주셨다...그래서 우리는 유리하는 민족이 아니라 땅을 중심으로 중앙에 성소를 넣고 하나님을 섬기며 살아갈 수 있는 백성들이 되게 하셨습니다....감격이에요. 그래서 이 시인이 땅이 소산을 내었습니다....중요한 건 소산이 아니라 땅이야. 땅...하나님이 우리에게 땅을 주셨습니다...그래서 앨머 마틴스 같은 신학자는 이 땅에 대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감격을 결국은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것이라고 그렇게 주장했어요. 땅이에요. 땅 ...아...땅을 주셨습니다...하나님 우리가...이 속에 다 담겨 있는 거예요. 하나님 우리가 이제는 유리하고 방황하던 그런 아람 자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우리를 지극히 긍휼히 여기셔서 애굽에서 아무 기업도 없이 종살이를 하던 비참한 저희들을 건져서 그래서 이 복된 가나안 땅에 이르게 하셨으며 여기에서 이 땅을 누리게 하셨나이다 아멘.....아멘....아멘...그 감탄하는 거예요. 그렇게 하나님 앞에 감동을 받는 거죠. 그런데 더욱이 그 땅이 소산을 내었습니다. 성경에서 말이죠. 우리는 생각할 때 복...그러면 두 개를 심고 백 개를 거두거나 아니면 성경에 나오는대로 30배 60배 100배...그런 표현들만 좋아하는데 상당히 자본주의적인 정신들이 잠식돼 들어온 것이고, 성경이 우리에게 말하는 특별히 구약에서 우리에게 이야기하는 복은 뭐냐면 이런 정신이 신약에까지 이어져요. 그게 뭐냐면 손이 수고한 대로 먹는 거예요. 그게 하나님이 주신 큰 분복이에요. 근데 여러분,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사업을 하거나 농사를 짓는 사람이 추수를 하거나 아니면 그 장사를 끝낸 다음에 근로자들도 마찬가지, 뭐냐면 자기가 수고한 것 만큼 충분히 정당하게 받았습니다....그런 사람이 얼마나 되겠어요...그래서 성경은 네 손이 수고한 대로 먹을지니라....그게 여호와께서 주시는 분복이에요. 그래서 성경 속에는 여러 곳에서 하나님이 기적적으로 무엇을 보태는 것도 복이지만 자연적으로 있는 그대로 하나님의 법칙에 따라서 인간에게 주어지는 그 자체도 하나님의 큰 은혜에요. 우리들이 이것을 영적인 일에 대입해 보면 참 놀라워요. 여러분, 기도한다고 무릎을 꿇고 있으면 무릎을 꿇고 있는 시간만큼 기도가 됩니까? 되게 하시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죠. 전도를 나가 보면 그럼 전도 나가면 다 전도가 됩니까? 아니죠. 그렇게 해서 열매를 거두게 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시죠. 마음에 품은 욕구는 고사하고 그렇게 수고한 대로만 열매를 거두어도 하나님 앞에 너무나 감사한 거죠. 안 되는 적이 더 많은 거예요. 그래서 여기서 시인이 땅이 그 소산을 내었습니다....감격하는 이유는 뭐냐면 그 속에 신실하신 하나님을 보는 거예요. 자연의 모든 질서들을 순족하게 움직여서 손이 수고한 대로 먹게 하시는 그 하나님의 자연적 법칙을 통해서 언약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신실한 사랑을 경험하게 되는 거죠. 이뿐만이 아니죠. 뒤에 보면 솔로몬이 왕이 되어서 성전을 짓고 나서 하나님 앞에 드리는 기도가 역대하 7장에 나오잖아요. 그 속에서 나오는 간절한 기도가 뭐예요? 혹시 우리에게 재앙이 있을 때 깜부기가 있거나 역병이 있거나 전쟁이 일어나거나 막 이럴 때 이 성전을 향하여 하나님께 기도하면 하나님이 우리를 우리의 불의를 고치시고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시옵소서...라고 하는 것이 간절한 기도의 제목이에요. 그러면 땅이 소산을 내어서 이 시인이 왕으로 여기서 시인이 왕이니까 땅이 소산을 내어서 하나님을 찬송하게 될 때 이것은 자기네 집 앞 뜰에 곡식이 많이 맺혔다는 것 때문에 감탄을 하는 건 아니잖아요. 나라 전체에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 거잖아요. 이건 뭘 보며 주냐 하면 하나님과의 관계의 화목을 보여주는 거예요. 그러니까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하나님이 공정하게 땅에서 소산을 내어서 우리가 이것을 누리게 하셨는데 깜부기나 전쟁이나 역병이나 기근이나 이런 것들이 없었단 말이에요. 뭘 보여 주냐면 하나님과 샬롬한 관계 속에서 주님이 당신의 신실하심을 언약백성들에게 보여주신 것이에요. 그러니까 하나님 앞에 감격하는 거죠. 근데 그게 이스라엘 백성의 힘으로 산 삶이에요? 아니죠. 그러니까 무엇인가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올바로 살았어도 그래서 주님이 당신의 신실하심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보여주셨다 할지라도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 때문이었죠. 주님의 은혜를 입는 언약백성으로서의 행복을 그대로 고백을 하면서 하나님 앞에 경배와 찬송을 올리고 있는 것이죠. 그래서 이렇게 주님 앞에 깊이 감격하면서 그러면서 하나님이 내었도다...라고 하는 이게 뭐예요? 과거잖아요 그죠? 히브리어의 완결형이에요. 내었습니다...그것을 가지고 그 다음에 미래형이 나와요. 그게 뭐냐면 곧 우리 하나님이 우리에게 복을 주시리로다....이 복이 바로 언약관계 안에서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들이 누리는 그런 배타적이고 독점적인 복이에요. 다른 민족에겐 베풀지 않는 그런 독특한 복이에요. 그렇게 일반섭리 속에서 주어진 그 복은 곧 영적인 복으로써 우리에게 임할 것이라고 하는 고백 속에서 하나님 앞에 감격을 하고 있는 거...이게 이렇게 단순한 그림이 아니잖아요. 그럼 생각해 보세요. 우리들이 하나님 앞에 제가 청년들을 목회할 때 어느 청년이 그런 간증을 해요. 간증 시간이 있었는에 나와서 간증하는데 자기 신앙이 요즘 많이 식었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그 중의 하나가 뭐냐면 예전에는 만 원만 생겨도 하나님 앞에 그렇게 깊이 감사를 하고 그 만 원을 어떻게 쓰면 잘 쓸까를 생각했다는 거예요. 근데 요즘은 좀 풍족해지니까 돈이 들어와도 하나님 앞에 감사할 줄 모르고 사는 자신을 본다....그래요. 바로 그런 거예요. 아주 작은 것 속에서도 하나님의 숨결을 느끼고 우리와 같은 죄인들을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의 그 큰 사랑을 느껴요. 어떤 때는 커다란 영적인 일이 아니라 아주 사소한 일, 누구를 만나고 작은 물건이 생기고 또 어떤 기회가 생기고 하는 그런 작은 과정들을 통해서도 하나님이 그 내가 평범한 시간 동안에는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의 위로와 격려, 힘을 주시는 때가 있어요. 그런 걸 보면 참 신비해요. 그래서 어떤 때는 어떤 날은 성경을 읽으면서는 눈물이 안 나왔는데 그렇게 섭리 속에서 만나는 하나님의 그 크신 은혜와 사랑이 영혼의 감각을 일깨우는데 사용되는 것을 보면서 하나님 앞에 감격할 때가 있는 거예요. (찬송) 신실하신 하나님 실수가 없으신 좋으신 나의 주 주님의 은혜에 깊이 감격하면서 그렇게 아버지 앞에 살아가는 것이에요. 감사하죠...그죠? 기도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