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아와 과부의 아버지
“그 거룩한 처소에 계신 하나님은 고아의 아버지시며 과부의 재판장이시라 하나님은 고독한 자로 가속 중에 처하게 하시며 수금된 자를 이끌어 내사 형통케 하시느니라 오직 거역하는 자의 거처는 메마른 땅이로다”(시 68:5-6).
이제 앞에서 하나님의 통치를 이야기하고 있다면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에서는 그런 하나님의 통치 때문에 구체적으로 언약 백성들이 어떤 복을 받는지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언약백성들의 복은 다름이 아니라 외롭고 억울한 자의 하나님이 되어 주신다...그런 뜻입니다. 그러면서 그 거룩한 처소에 계신 하나님은 고아의 아버지시다...고아의 아버지시다....그래서 고아...그러면 부모가 없는 아이잖아요. 그러면 이 아이들은 외로운 사람들의 대명사예요. 보호해 줄 사람이 없는 사회적 약자죠. 그리고 혹시라도 이 고아에게 무엇인가 유산이라도 남아 있다면 다른 사람들에게 쉽게 빼앗길 수 있는 불쌍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이에요. 그런 사람들을 하나님께서 돌보아 주시는 하나님이시다...그게 바로 고아의 아버지시다...친아버지가 자기 자식들을 끔찍이 생각하고 돌보는 것처럼 이 세상의 육신의 부모를 가진 자식들 부럽지 않게 하나님은 그 고아의 아버지가 되신다...그런 뜻입니다. 뿐만 아니라 과부는 억울한 사람의 대명사죠. 그래서 남편이 없으면 사회적인 약자가 되고 사람들에게 무시를 당해.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까워서 이런 사람들이 늑탈의 대상이 되는 거죠. 그러한 상황에서 이 시인은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지게 되면 그러면 과부의 재판장이 되어 주신다...즉, 과부는 사회적 약자이고 억울한 일을 많이 당하는데 하나님은 공정하게 판단해서 과부들이 권력이 있거나 혹은 재력이 있고 혹은 일가친척들이 많은 사람에 의해서 억울한 일을 당하지 않도록 하나님이 공정히 재판을 내려 주신다는 것이에요.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과부의 재판장이 되어 주셔서 그들을 지켜 주신다...이런 이야깁니다. 이것은 결국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지게 되면 그것은 하나님의 뜻대로 나라가 다스려질 것이고 그 때에 놀라운 변화가 온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죠. 한 나라가 한 나라를 왕이 다스릴 때 그 왕이 어떤 사람이냐에 따라서 나라를 다스리는 모습은 현저히 달라질 거예요. 그렇죠? 우리 역사에도 보면 폭군과 같은 임금이 있고 그리고 성군과 같은 임금이 있어요. 폭군이 나라를 다스리면 나라의 법도가 올바로 서지 않고 폭력적이 돼요. 왕 자신이 법을 지키고 인자한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백성들을 통치하고 다스릴 때 폭압적으로 다스리는....그렇게 폭압적으로 다스리고 악한 일을 행하게 되면 그러면 그 나라의 백성들이 그대로 피해를 보는 거죠. 그런데 만약에 어진 임금이 등장하게 되면 그 임금은 나라를 그렇게 다스리지 않아요. 오히려 나라를 평화롭게 통치하고 법이 살아있지만 그러나 백성들을 화합하는 정신으로 돌보면서 나라를 통치합니다. 그게 바로 어진 임금과 악한 임금의 차이에요. 그러면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이 통치권을 행사하시는 그 나라는 하나님의 어진 성품을 반영하는 나라가 아니겠어요? 그래서 하나님이 통치하시는데 하나님이 법도로써 통치하셔서 악인을 벌하시고 그리고 교만한 자를 꺾으시지만 주님의 뜻대로 순종하는 사람들은 주님이 은혜로 통치하시죠. 그래서 하나님이 그들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시면 그들은 하나님을 사랑하게 돼요.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이웃을 사랑하게 되죠. 그래서 폭압적인 통치도 질서가 이루어지지만 인간의 내면을 굴복시키지를 못 해요. 그런데 사랑의 통치가 이루어지면 모든 사람들의 내면을 굴복시킬 수 있는 것이죠. 그가 누구든지간에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의 통치를 받게 되면 그 앞에 굴복하고 하나님을 깊이 사랑하게 되는....그래서 하나님께서 당신의 나라를 이끌어 가시려고 세우신 그 질서를 사랑하게 되는 거죠. 왕을 사랑하면 왕의 통치를 기뻐하듯이 하나님을 사랑하면 하나님의 사랑의 질서를 좋아하는 것이에요. 그것이 바로 하나님이 세우시고 통치하시는 나라와 세상의 임금이 통치하고 다스리는 나라와의 차이에요. 그렇게 하나님께서는 나라를 다스리시는 거죠. 그래서 같은 얘기가 6절에 반복이 되는데, 고독한 자로 가속 중에 처하게 하시며...무슨 뜻이죠? 외로운 사람들인데 하나님께선 그들을 당신의 가족으로 맞아주셔서 외롭지 않게 함께 사랑하고 의지하며 살도록 도와 주시고 또 수금된 자로 죄수로써 억울하게 갇혀져 있는 사람을 주님께서 다시 올바르게 재판을 해서 그래서 그를 감옥 속에 이끌어 내서 그래서 형통한 삶을 살도록 만들어 주신다는 것이에요. 마찬가지죠. 외롭고 고독한 삶을 살 때, 그 때 하나님의 집에서 우리가 은혜를 받을 때 우리가 외롭지 않은 사람들이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육신의 부모에게서는 사랑을 받지 못했어도 때로는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받고 육신의 동기간들에게는 버림을 받았어도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랑하는 형제들에게 따뜻하게 돌봄을 받으면서 그러면서 하나님의 사랑이 무엇인가를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에서 외롭고 상처 받은 사람들이 오히려 당신의 품에 들어와 안식과 기쁨을 누리도록 만들어 주시는 거죠.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해 주시지만 이런 하나님의 통치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하나님을 거스르는 사람들이 있어요. 이런 사람들은 메마른 땅에 거한다.....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를 여행했던 사람들이었어요. 메마른 땅은 그들에게 재앙과 같은 것이었어요. 언제나 거기에 풀밭이 있고 짐승들을 먹일 수 있고 물이 있고 그늘이 있어서 쉴 수 있는 환경이 절실하게 필요했어요. 그런데 메마른 땅에 거함, 요즘도 이스라엘에서는 종종 사고가 난다 그래요. 그래서 광야를 구경하러 갔다가 사람들이 길을 잃거나 해서 죽는다 그래요. 그래서 갈 때는 이제 특별히 광야를 구경하겠다고 물을 잔뜩 지고 그러고 이제 가는데 길을 잃어 버리거나 다치거나 하게 되면 광야에 갇혀서 연락도 안 되고 뭐 어디도 나무 그늘 하나 없으니까..그래서 종종 사고가 난다 그래. 메마른 땅은 재앙이죠. 하나님을 거역하는 사람들은 그런 메마른 땅에 거하게 된다...그런 뜻입니다. 주님을 의지하며 하나님 앞에서 매일매일 살아가는 그런 삶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죠. 하나님께선 오늘도 이렇게 당신의 통치 안에 들어오는 모든 사람들을 기뻐하시고 그리고 당신의 나라의 영광을 위해서 살도록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 안에서 유익을 누리며 사는 것이 우리 신자의 삶이에요.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