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택을 준비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이여 흡족한 비를 보내사 주의 산업이 곤핍할 때에 견고케 하셨고 주의 회중으로 그 가운데 거하게 하셨나이다 하나님이여 가난한 자를 위하여 주의 은택을 준비하셨나이다”(시 68:9-10).
이 하나님의 용사되심, 그러니까 애굽을 떠나서 광야를 행진하던 시대에 하나님이 강한 능력으로 용사가 되어주셔서 앞서 행하시면서 전쟁을 수행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그런 전쟁을 수행하시는 전사로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끄셨던 것이 하나님의 아버지되심 혹은 하나님의 강한 군사적 측면을 보여준다면, 9절과 10절은 어머니와 같이 자애롭게 이스라엘 백성들을 다루시는 그런 어머님과 같은 손길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 9절과 10절의 문맥은 농경사회 문맥을 그려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부분은 광야의 생활과 가나안에서의 정착 이 모든 것들이 함께 기억 속에서 오가는 가운데 마치 비단이나 직물을 짜듯이 실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입니다. 거기에서 말하는 것이 비입니다. 광야를 지나면서는 비의 소중함이 덜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광야를 이동하고 있는 중이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가나안에 들어가서 정착된 생활을 하면서는 목축도 하지만 농경문화 속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농경문화의 기본적인 토대는 농사입니다. 농사를 토대로 해서 산업들이 발달하게 된 것입니다. 예를들면 농사를 지어서 많은 곡식들을 거두어들여야지만 농사에 수입이 생기고 또 그 여유를 가져야지만 생활에 필요한 여러 가지 기구나 직물이나 이런 것들, 부분적으로는 이스라엘이 만드는 것도 있었겠지만 어떤 것들은 외국에서 수입해 와야 하는 것도 있었을 것입니다. 이런 것들을 재활을 교환하고 거기에서 이익을 남긴 사람들이 다시 그것으로 농산물을 구입하고 하면서 소위 경제라는 것이 돌아가는 것입니다.
오늘도 우리들이 유럽의 경제침체를 우려 깊게 보는 것이 전 세계 구매력의 1/4입니다. 전체 합한 것이 미국과 거의 맞먹습니다. 그 1/4의 구매력을 가진 사람들이 지갑을 닫고 일체 물건을 사지 않는다면 우리나라 같은 수출을 하고 먹고 사는 사람들에게는 치명적인 어려움을 가져오는 것입니다. 그러면 또 다른 나라에서 원자재를 수입할 수 없고 이렇게 되면서 경제 자체가 커다란 불황이 예고되는 것입니다. 그것보다는 훨씬 축소된 형태이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에 정착하고 난 다음에 농사라는 것이 그렇게 중요한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비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스라엘은 강수량이 그렇게 많은 나라가 아닙니다. 강수량이 부족하니까 전 세계에서 내리는 비나 강수량을 잘 재활용하는데 가장 탁월한 기술을 가진 나라들입니다.
그래서 비 이야기가 성경에 많이 나옵니다. 이른 비와 늦은 비의 이야기도 나오는데 두 번 오는 비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있어서 아주 소중하다고 합니다.
첫 번째 비는 그 비가 오면 파종을 하게 되는데 이른 비라고 합니다. 늘 오지만 부정기적으로 오겠지만 농사와 관련해서 오는 비는 늦은 비인데 늦은 비가 오면 그 비를 맞고 곡식이 마지막 결실을 하면서 곡식을 거두는 것입니다. 이러한 비를 제때에 내려주시느냐 하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서 아주 중요한 관건이었습니다. 그래서 여기에서 얘기하는 것은 ‘흡족한 비를 보내사 주의 산업이 곤핍할 때에 견고하게 하셨습니다’ 라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비가 흡족하게 오면 곡식들이 잘 자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풍년이 오게 되면 산업이 곤핍하다는 것은 이런 것들이 잘 안 되는 것인데 하나님이 비를 주셔서 산업들을 일으키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농사가 풍년이 되면 인심도 좋아지고 산업도 발달을 하게 됩니다. 그런 은총은 마치 전쟁에서 용사로 싸우는 것이 군사의 모습이라면 이것은 어머니의 모습이 되어서 집안에 있는 어린아이들에게 물건을 나누어주고 먹을 것을 주는 그런 엄마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원수들에게는 강력하시고, 담대하시고, 경우에 따라서는 무자비한 것처럼 그들을 심판하시는 하나님이시지만 언약백성들을 향해서는 어머니와 같이 자애로우시며 그들에게 필요한 것들을 주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여기에서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렇게 주의 산업의 곤핍할 때에 견고하게 하셔서 주의 회중들로 하여금 그 가운데 거하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당신의 회중들로 하여금 그런 곤핍한 가운데에서 견고케 된 풍부함 가운데 있게 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우리 일상생활을 돌보시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오늘날 번영신학들, ‘하나님 잘 믿으면 우리에게 많은 복을 주시고 우리가 건강과 부를 누리게 된다’는 이런 복음들, 사실 이런 것들을 복음이라고 말하지만 이것은 복음이 아닙니다. 오죽했으면 파이프 목사님이 ‘쓰레기다’라고 했겠습니까?
그래서 이제 성경의 철저한 관심은 인간의 있어서 고통의 문제의 근원을 다루는 것입니다. 그 근원이 무엇이냐면 하나님을 아는 것, 그 분을 믿는 것, 그리고 그 하나님이 정하신 창조의 계획과 마지막 이 완성의 목적을 이해하고 하나님께 순종하며 사는 것, 물론 그렇게 할 때 오늘 보는 바와 같이 하나님은 아버지와 같이 이 세상에서 용사로서 싸우시면서 우리 앞길을 개척하고 인도하시기도 하시지만 또한 우리들이 올바르게 살 수 있도록 때로는 우리를 책망하고 견책하기도 하시지만, 어머니와 같은 자애로움으로 우리의 필요한 것들을 공급하시고 날마다 우리의 삶을 인도하고 이끌어주시는 것입니다. 이런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과 은혜, 인도, 사랑, 돌봄 이런 모든 것들은 하나님의 어머니 되심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렇게 자애롭게 이끄시는 결과로 우리들이 부자가 되는 것만 하나님이 하시는 것이 아니고 호흡이 있고 먹고 사는 모든 기도하는 것 까지 주님의 은택이 아닌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어디에서도 그런 것들을 초점으로 제시하고 있지를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실 수 있는 최고의 행복은 그런 고통의 큰 문제를 근원적으로 고치시는 것이고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게 하시는 것, 그것이 신앙이고 그것이 바로 하나님을 바라면서 사는 믿음생활인 것입니다.
오늘 성경은 하나님이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서 은택을 준비하셨습니다. 이 은택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이 넉넉하게 곤핍하고 가난하고 고통 받는 사람들에게 자격은 없지만 하나님이 베푸시는 은혜입니다. 그것이 은택입니다. 그런 것들은 인간의 물질생활과 일반 섭리의 영역뿐만 아니라 정신적이고 영적인 영역까지도 모두 포괄해서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살게끔 만들어주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이 당신의 백성들에게 베푸시는 복이요 행복인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오늘 이 시간에도 당신의 그 크신 사랑과 은혜 속에서 하나님을 향하여 살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염려할 것이 없습니다. 주님이 우리를 다루시는 손길에 복종하면서 주님께 온전히 순복하면 하나님이 우리의 인생을 책임져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좋은 어머니와 아버지를 만났다면 그 좋은 부모님들이 우리를 날마다 이끌고 돌보시면서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들을 공급해 주셨던 것처럼,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보다 더 아버지 되시고, 우리의 어머니보다 더 어머니 되셔서 우리의 인생을 이끌어 주시는 것입니다.
결국은 믿음의 문제입니다. ‘내 인생의 어떠한 시련과 환란이 있어도 여호와는 내 편이시다, 하나님은 내 곁에 계시다’, 때로는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 가운데서 곤핍한 땅을 지나게 하실 때도 있습니다. 영적으로 그렇게 곤핍한 시기를 지날 때도 있고, 육적으로 그렇게 곤핍하고 괴로운 시기를 지날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하나님을 깊이 의지하면서 주님을 바라보면서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채우시는 하나님이시다. 신뢰하고 의지하며 그렇게 믿음으로 나아가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