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기도를 들으실 때
"내가 내 입으로 그에게 부르짖으며 내 혀로 높이 찬송하였도다 내가 내 마음에 죄악을 품으면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리라 그러나 하나님이 실로 들으셨으며 내 기도 소리에 주의하셨도다."(시 66:17-19).
시인은 자신이 환란의 날에 어떻게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지 17절에서 보이고 18절에서는 그 과정을 통해서 깨닫게 되는 하나님의 성품을 노래하고 있고 마지막 19절에 하나님께서 자기를 어떻게 대해주셨는지를 묘사하고 있습니다. 우선, 17절에서는 부르짖고 찬송하였다고 나오는데 앞에 부분 부르짖는다는 것은 기도를 가리키는 것을 말하고 뒷부분 입술로 찬송하였다는 것은 그 기도를 들으셔서 그래서 응답해 주셔서 하나님을 높여 들이는 감격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시인은 환란의 날에 하나님 앞에 기도를 배운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했더니 우리가 여러 날 동안 살펴보았던 8절부터 15절까지의 간증이 생겨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 하나님은 찬송 받으실 만하며 또 그 찬송소리로 모든 사람들에게 들려 드릴만한 그런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고 특별히 하나님의 언약백성들에게는 영혼을 살려두시고 또 우리의 실족함을 허락하지 않으시는 주님이시라는 사실을 깊이 깨닫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이름을 높여 드리고 하나님을 찬송하였는데 그가 이런 모든 간구의 과정을 통해서 깨닫게 된 것은 하나님의 성품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내가 내 마음의 죄악을 품으면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리라는 선언인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그가 하나님 앞에 깨달은 하나의 사실이었습니다.
그런데 결국 시인이 환란을 당할 때마다 정결했던 사람이었다고 우리가 상상할 수 없잖아요? 사람인데... 그러면 시인이 이런 고백을 할 때에는 우리가 어떻게 생각할 수 있겠어요? 환란과 연단 그 자체가 인간의 신념을 정화하는 효과가 있다는 것입니다. 환란 그 자체의 그런 힘이 있다는 것이 아니라 환란을 당할 때 하나님의 의지하는 마음이 이렇게 인간을 정화시키는 효력을 발휘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렇게 정화하는 효력을 발휘한다는 것은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질까요? 지난 주일에도 하나님께서 우리가 올바로 살지 않을 때 환경을 때려주시는데 환경을 때려주시는 이유는 우리의 마음을 때리시기 위함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 앞에 교정이 되는 것입니다.
성경이 특히 시편이 우리를 하나님이 연단하실 때 우리의 마음이 정화되는 것을 은을 연단하는 것으로 비유한다. 원래 도가니는 흑연으로 만드는데 흑연은 연필심이 흑연인데 무른 것이 있고 단단한 것도 있는데 단단한 것이나 무른 것은 녹지 않아요. 거기에 금을 넣고 불을 지피는데 그러면 천이백오십도 정도 되면 쇠가 녹기 시작하죠.. 은이나 금은 그보다 훨씬 더 낮은 온도에서 녹기 시작하죠. 녹는데 원래는 금이 아니라 철광석을 넣는데 그것이 끓으면 모래나 불순물들은 타버리고 그리고 타지 않는 것은 금속이 액체상태가 되니까 가라앉고 그러면 그걸 다시 따라내요. 그리고 다시 새로운 곳에 담고 이것을 반복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만큼 더 많이 찌꺼기는 타버리고 그 다음에 액체 상태에서 비중이 높은 것들은 가라앉고 하는 것을 되풀이 하면서 은이 순도를 더해 가는 것이다. 그때에 그것이 값어치 나가는 순은, 혹은 금을 함유하는 철광석일 경우에는 순금이 되가는 것입니다. 알다시피 십사 금이나 십팔금은 가격이 순금하고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싸지요. 그 만큼 순도가 높은 것을 높이 쳐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이 금이나 은을 순결하게 만드시는 것처럼 우리의 마음을 단련하십니다.
그것을 통해서 이 시인은 자신의 마음을 환란 속에서 정결케 하시는 하나님을 뵈 온 거죠. 자신의 마음을 정결하게 하나님 앞에서 기도했다는 것을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죄악을 품으면 주께서 듣지 않는다는 그 한 가지 하나님의 거룩한 성품을 경험하게 된 것이죠. 그러니까 혹시 만약에 시인이 환란을 당하면서 하나님 앞에 매달려 기도할 수 없을 정도로 마음에 품은 죄가 있었다면 그것을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하면서 회개하여 정결하게 하셨겠죠. 그게 사실은 보다 일반적인 방법이 아니에요? 그랬더니 그런 거룩한 성품의 하나님이신데 내 기도소리의 주의하셨도다. 그러니까 그 시련의 과정을 통해서 하나님 앞에 매어달리면서 자신이 정결하게 되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런 방법으로 하나님은 우리를 다루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무엇을 안주시겠어요? 그렇지만 하나님이 모든 것을 주실 수 있지만 주님의 관심은 우리가 사람다운 사람이 되는 것이에요. 당신의 자녀다운 백성이 되는 것이에요. 그것이 하나님에게서 가장 중요한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그를 정결하게 하시기위해서 주님이 부르시는 것입니다. 그게 하나님의 목적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관심은 환란을 당하지 않고 편안하게 이 세상을 사는 것이지만 주님의 관심은 우리를 당신의 백성답게 만들어서 모든 사람들에게서 보여주시는 것이죠. 그래서 주님의 자녀답게 사는 모습을 모든 사람이 볼 수 있도록 드러내 보여 주시는 것이죠. 이렇게 함으로써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높이는 이것이 바로 신앙생활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