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를 들어주신 하나님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저가 내 기도를 물리치지 아니하시고 그 인자하심을 내게서 거두지도 아니하셨도다”(시 66:20).
다른 모든 시편에 나오는 대부분의 예 같이 이렇게 하나님을 향한 찬송으로 끝을 맺고 있습니다. 저가 내 기도를 물리치지 아니하시고...그랬습니다. 내 기도를 물리치지 아니하시고...그랬습니다. 여기서 어떤 것을 보여주죠? 하나님께서 결국은 자신의 기도를 들어주셨는데, 그것이 자신의 의로움이나 자신이 하나님 앞에 받아 들여질만한 존재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자기의 기도를 들어주신 것이 아니라 자신은 하나님 앞에 이러한 기도의 교통을 나눌 수 있을 정도의 사람이 못 되는데 하나님이 자신을 자신의 기도를 이렇게 들어주시는 것은 하나님의 전적인 은총이다...라는 고백이 이 속에 담아 있는 것잉요. 그렇게 놀랍게 하나님이 응답해 주시고 그리고 인생의 위기에서 악인들을 물리쳐 건져 주셨는데 기껏해서 나오는 찬송이 내 기도를 물리치지 아니하셨다...그런 정도의 고백이 나오는 이유가 무엇일지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이것은 결국 하나님 앞에 이 모든 기도의 과정, 응답의 과정을 통해서 이 시인이 하나님의 은총이 자신으로 하여금 이렇게 어려움 속에서 하나님과 교통할 수 있었다 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죠.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은혜의 방편 모두가 그렇지만 이 기도는 특별히 우리가 하나님께 대한 절대적인 의존을 보이는 방식으로 표현한 가장 대표적인 하나의 모습이에요. 그래서 하나님께 자신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을 하나님께 고하고 그리고 하나님 앞에 간절히 매달리는 그런 간구의 과정을 통해서 그의 마음이 하나님께로 더 많이 기울어지고 의지하게 되는 것이에요. 그런 의존의 감정이 결국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감정이에요. 그래서 기도를 많이 하는 사람들, 인격적으로 주님을 깊이 사랑하게 되는 사람들의 기도가 깊어지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는 것이에요.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종종 기도 제목들을 주시죠. 그래서 기도하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드셔요. 우리의 영적인 감각이 무디어져서 우리의 내면의 세계를 살피는 능력이 없을 때조차도 하나님은 우리의 삶의 질서를 움직여서라도 하나님 앞에 간구하고 매달리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들어 주십니다. 그렇게 해서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 앞에 간구하지 않을 수 없도록 도와 주시는 것이죠.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이렇게 우리가 당신을 전적으로 의지하는 가운데 인생을 살기를 원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종종 우리에게 기도 제목들을 주시고 우리가 기도 제목이 없는 것 같아도 실제로 기도를 하면 기도할 것이 굉장히 많다는 것을 발견하게 돼요. 그 이유는 무엇이냐 하면 실제로 기도해 보면 하나님을 의존하는 마음이 생겨나게 되고 하나님을 의존하는 마음을 갖게 되면 더 많이 하나님을 의존해야 할 우리의 삶의 제목들을 발견하게 되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기도를 접으면 할 것이 거의 없어지고 기도를 실천을 하면 기도해야 될 제목들이 너무나 많고 시간이 없다는 사실들을 발견하게 되는 거예요. 그러면서 시인이 결정적인 고백을 덧붙여요. 그 인자하심을 내게서 거두지도 아니하셨도다......기도가 이루어진 모든 과정이 하나님이 자기를 불쌍히 여기신 그 인자하심 때문에 가능했다는 고백이에요. 여기에 나오는 이 인자는 바로 헤세드예요. 그래서 하나님께서 언약관계 속에서 자기의 백성들에게 베푸시는 특별한 호의요, 은총이에요. 성도라는 말이 바로 이 헤세드에서 나와요. 하씨드....그래서 헤세드의 사랑을 입은 사람....이게 성도에요. 성도라는 이름 그 자체가 하나님의 은혜로 된 자라고 하는 것을 보여주는 거죠. 그것을 하나님이 내게서 거두지 아니하셨도다...하나님이 사랑하실만한 어떤 좋은 점이 있어서라기보다는 하나님 자신이 끊임없이 사랑과 자비를 베푸시고자 하는 그 완전한 속성 때문에 자기가 혜택을 입은 것을 보여주는 것이에요.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로 시작되는 사랑과 인간의 욕정으로 시작되는 사랑의 차이가 그런 거예요. 인간의 욕정으로 시작되는 사랑은 자기가 필요하기 때문에 찾는 사랑인 반면에 하나님의 성품에서 시작되는 그 사랑은 하나님 자신의 완전한 성품 때문에 이루어지는 사랑이에요. 그래서 자기 인생에 소용되는 사람을 사랑하는 사랑은 자기 인생에 도움을 주지 못 하는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보다 열등한 거예요. 무슨 뜻인지 아세요? 다시 한 번....자기에게 이익이 될 수 있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자기에게 아무 도움도 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 보다 열등한 종류의 사랑이에요. 오히려 온전한 사랑은 후자의 사랑이죠. 하나님의 사랑은 그런 사랑의 극치를 보여주는 것이죠. 그래서 당신 자신의 완전한 성품 때문에 우리에게 발현되는 그 사랑은 결국 관계를 맺고자 하는 사랑이에요. 그리고 그 관계를 심화시키고자 하는 사람이에요.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공의로운 원칙을 가지고 우리를 대하신다면 벌써 버리셨어야 할 사람들을 하나님께서 지극히 사랑하셔서 그래서 말할 수 없는 인자하심을 더 이상 베푸실 필요가 없을 정도로 우리가 잘못되었을 때 조차도 하나님이 그 인자하심을 거두지 아니하심으로써 사랑하는 그 대상을 치워버리시는 대신에 오히려 고쳐서 그래서 사랑하는 하나님의 그 은혜 속에서 살도록 주님이 붙들어 주시고 도와 주시는....이것이 바로 신앙생활이고 이것이 바로 믿음 생활인 것입니다. 이것을 평소에 늘 가슴에 새기면서 살아가는 것, 이것이 바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신앙생활의 기저를 이루게 되는 것이에요. 그래서 할 수 있으면 우리들이 더 많은 시간을 기도하고 그리고 우리가 아직 하나님 앞에 아뢰지 않는 삶의 많은 영역들, 그리고 우리를 둘러싸고 일어나는 많은 일들에 대해서 주님께 더 많이 간구하고 기도한다면 그러면 더 많은 이러한 하나님의 죄인들을 용납하시는 인자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사랑을 충만하게 경험하게 될 때 마치 달이 태양의 빛을 받아 지구에 두루 비추는 것처럼 우리도 또한 주님의 그런 사랑의 빛을 받아 우리도 그렇게 사람들에게 그런 사랑의 빛을 나타내 보여줄 수 있으리라고 이렇게 믿는 것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