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향해 손을 드는 사람들
방백들은 애굽에서 나오고 구스인은 하나님을 향하여 그 손을 신속히 들리로다 땅의 열방들아 하나님께 노래하고 주께 찬송할찌어다(셀라) (시 68:31-32)
녹취자: 윤은정
이 31절과 32절에서는 바로 그 앞에 하나님이 어떻게 만민의 송아지를 꾸짖으시고 은조각을 밟으셨는지를 구체적으로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만민의 송아지들을 꾸짖으시는 방법은 두 가지인데, 소극적인 방법으로는 그들과의 전쟁에서 이기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함께하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으면서 그 민족의 위대한 힘이 그 사람들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그들과 관계를 맺고 계신 전능하신 하나님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을 알게 하시는 것이 바로 만민들의 송아지를 꾸짖으시는 소극적인 방법입니다. 그게 만약에 소극적인 방법이라면 적극적인 방법들은 선교적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로 하여금 감화를 받아서 그들이 적극적으로 하나님을 인정하는 신앙을 갖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성경에 보면은 이렇게 말합니다. ‘방백들은 애굽에서 나오고’ 여러 가지 해석들이 있습니다 만은, ‘방백이 애굽에서 나온다’라고 하는 것은 크게 두 가지로 해석이 되는데, 하나는 후에 이스라엘 사람들의 방백이 된 훌륭한 인물들이 애굽에서 종살이 하던 처지에 있었는데, 그들이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인물들 중에서 방백이 나왔다. 그런 의미가 있을 수 있고, 또 하나는 뭐냐면은 애굽에서 무엇인가 애굽에서 지도적인 위치에 있는 이런 사람들이 이스라엘백성들이 출애굽을 할 때 함께 따라 나왔다. 이 두 가지 해석이 나올 수 있는 것입니다. 저는 이 두 가지 해석 중 어느 것이라고 확정지을 맘은 없습니다. 그게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 라고 생각되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뒤에서 나오는 ‘구스인들은 하나님을 향하여 손을 들리로다.’ 구스는 오늘날 에티오피아 사람들입니다. 그러니까 흑인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손을 들리로다. 왜?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향하여 찬송을 올리는 장면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느 쪽으로 해석하든지간에, 30절은 하나님이 만민의 송아지들을 꾸짖으시는 커다란 그림을 보여준다면, 31절은 하나님이 꾸짖으시는 그 방법 중에서 전쟁뿐만이 아니라, 선교적인 방식으로 이 사람들을 하나님 인정하도록 만들어주는 광경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제 출애굽기 12장에 보면은 증거가 나오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탈출할 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 중다한 잡족들이 따라 나왔다고 되어 있습니다. 히브리말로 ‘애레블 애브‘인데 이것은 무슨 뜻이냐면은, 사람들이 많이 따라 나왔다는 것과 함께 종족들이 그렇게 수없이 많이 따라왔다는 뜻입니다. 그러면은 그게 무슨 뜻이냐 면은 애굽의 역사를 보면은 고왕국 시대, 중왕국 시대, 신왕국 시대 이렇게 나뉘어 집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여러 가지 이설들이 있기는 합니다 만은 가장 표준적인 학설은 뭐냐 하면은, 토착민족인 애굽 나라가 왕조가 끊어지면서 그 사이에 왕조가 하나 세워지게 됩니다. 그것이 이민족에 의해서 세워지는 왕조입니다. 역사적으로 힉소스 왕조라고 하는데, 그랬기 때문에 사실은 토착민족들이 정권을 잃어버리고 이민족들이 쳐들어와서 애굽의 왕권을 세우고, 잠시 애굽이 토착민에 의한 지배가 끊어집니다.
그런데, 힉소스 왕조가 말하자면은 그런 왕조입니다. 그러니까 이때에는 애굽에서 종살이를 하던 많은 노예들에 대한 처우가 좀 달라지는 것입니다. 그 노예들을 아주 높였다라는 뜻이 아니라 애굽에 있었던 토착민족들이 아니라 어차피 이민족이 들어와서 세웠으니까 정치적으로 어떤 노선을 택했겠어요? 토착민족들이 바로 하지 못하도록 누르고, 이민족들이 할 수 있으면 공정한 기회를 얻어서 관직에도 나아가고 권력들을 분점해서 토착세력들을 누르려고 했던 것 아닙니까? 가만히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면은 옛날에는 이런 혈통이나 품계 같은 것들을 훨씬 중요시 했는데, 어떻게 일계 노예로 있던 그 사람들이 히브리사람들은 부정하게 생각할 정도로 말하자면 그렇게 얍잡아 봤습니다. 불결하게 생각할 정도로,,, 그런 사람이 아무리 큰 일을 했다고 하지만 어떻게 한 번에 국무총리에 까지 그렇게 등용을 할 수 있겠는가? 이상하게 여겨지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런 말하자면은 토착민족에 의한 지배가 잠시 끊어진 시대였기 때문에 그것이 가능했다라고 보는 것입니다.
그렇다면은 충분히 애굽에서 하나님께서 펼치셨던 그런 열 번의 위대한 재앙을 보면서 ’하나님을 향해 회심한 사람들이 노예들 속에만 있었고 방백들 속에는 없었다‘ 우리는 그렇게 말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얼마든지 그럴 수 있는 가능성은 존재하는 것이고, 그래서 그들이 애굽을 탈출하는 그 많은 노예들과 함께 자신들이 새롭게 믿게 된 여호와 신앙을 따라서 이스라엘 공동체 속으로 들어오게 된 것입니다. 이스라엘 공동체는 생각보다도 혈통에 의한 공동체가 아니라 믿음에 의한 공동체입니다. 그래서 그 믿음을 통해서 이제 공동체 속으로 들어오게 되면은 그들이 이스라엘 백성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졌던 것입니다. 하나의 역사의 아이러니가 있지만은 갈렙 같은 경우는 가나안에 들어가서 전쟁을 하는데, 혈통적으로 보면은 가나안 족속의 후손입니다. 그니스 족속의 후손입니다. 유다지파의 배속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어느 지파에 소속되어 있다는 것이 직계적인 혈통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열린 교회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다 개척교인이 아닌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게 하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공동체가 선교적 성격을 가졌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 선교적 성격 안에서 이제 애굽의 방백들도 주님을 찬송할 수 있고, 흑인들이 구스의 백성들도 손을 들고 하나님을 찬송할 수 있게 되는 이런 역사를 보여주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정치적으로 한 나라인 이스라엘과 함께 하셔서 그래서 혁혁한 승리를 이루시는 이 정치적인 승리, 군사적인 승리, 심지어는 가나안의 정복의 모든 과정들이 사실은 선교적인 모적을 이루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었다는 사실을 우리들이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에게 이러한 축복의 개념들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구속사적으로 그대로 전승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의 모든 삶의 복을 주시고 은혜를 주시지만은 그러나 그렇게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이 모든 복과 그리고 놀라운 은혜는 내적으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서 이루고자 하시는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 영적인 축복, 그래서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게 하시고자 원하시는 하나님의 선교적인 동기와 목적, 이런 것들을 아주 잘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육체의 껍질 속에 영혼이 있는 것처럼, 외적인 축복 속에 하나님의 영적인 축복들이 담겨있어서 그 의미들을 공정하게 이해하고 신앙생활 하는 것이 아주 아름다운 것이다. 이런 결론에 우리들이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다양한 복들을 주실 때 그 자체가 이제 우리로 하여금 그렇게 주신 복들을 흘려보내고, 그 안에 많은 사람들이 함께 신앙으로 들어와서 선교적인 목적을 이루게 하시는 것,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복을 주시는 이유고,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가 온전히 이루어 졌을 때의 그림도 바로 그렇게 수 많은 백성들이 하나님을 경배하고 높이는 그런 광경이라는 것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