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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실하신 하나님
주의 교훈으로 나를 인도하시고 후에는 영광으로 나를 영접하시리니 (시73:23)
녹취자: 박은경
앞 절에서 시인이 자신의 무지함을 깨닫게 되었고 그렇게 무지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함께 해주시고 주님께서 자신의 오른 손으로 붙드셨다고 고백을 합니다. 그러면서 깨닫게 된 한 가지 사실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은 신실하신 분이시다라는 것이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은 자기를 일생동안 자신이 자기의 믿음을 가지고 신앙생활한다고 생각을 했는데 그게 아니라 사실은 하나님이 우리를 굳게 붙들고 계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자신을 굳게 붙들고 인도하신다는 사실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무엇으로써 인도하냐하면 하나님이 교훈으로써 인도하십니다. 결국 이 시인의 고백에 의하면 자신은 악인이 형통한 것을 이 세상에서 보면서 결국 그 악인 때문에 걸려 넘어지고 방황하고 그랬지만 그것은 자기 자신이 하나님을 멀리 떠나 이루어졌던 방황과 회의라고 하는 사실들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악인들의 형통함을 보기 전까지는 시인이 그렇게 믿음이 없는 사람인 줄 몰랐습니다. 그러나 어느 날 악인의 형통함이 하나님의 의로우심보다 강력하게 호소력을 가지고 파고들었을 때에 시인은 자신이 얼마나 믿음이 없고 하나님 앞에 짐승과 같은 인간인가 하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이 버리지 않으시고 성소에 들어갈 때에 깨닫게 하신 것은 자신은 하나님과의 관계에 신실하지 못했지만 하나님은 자신과의 관계에 얼마나 신실한 분이셨는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은 자기를 인도하시는데 교훈으로 인도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를 교훈으로 인도하시는데 그 교훈이 무엇이냐 하면 바로 이렇게 깨닫지 못할 때 깨닫게 만들어 주셔서 알지 못하던 진리에 눈을 뜨게 만들어 주시는 하나님의 이 은혜를 이 시인이 하나님 앞에 깊이 감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자기의 자녀들에게 주실 수 있는 최고의 은혜는 자기의 자녀들을 깨닫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무지하고 어리석은 자를 깨닫게 하시고 또 깨우치게 해 주셔서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도록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이런 하나님의 깨우침이 없다면 사람들은 성도라고 할지라도 짐승처럼 살아갈 수밖에 없을텐데 하나님이 깨닫게 해주셔서 순간순간 이끌어 주십니다. 그러면서 이 시인이 고백을 하는 것은 하나님이 그러한 교훈으로 자기를 인도하십니다. 그러니까 자신은 인간들은 자신들이 가야하는 인생길에 대해 모두 아는 것처럼 생각하지만 모두 알지 못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를 붙들어 인도해 주십니다. 그래서 정말로 하나님께서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길로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자신이 악인의 형통함을 보고 주저앉았을 때는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온 것을 오히려 후회하고 막 살아버리고 말걸하고 자신의 지나온 삶에 대한 보람을 전혀 느끼지 못했지만 하나님께서 인도해주셔서 이 시인을 깨닫게 할 그 때에 자신이 얼마나 무지하고 짐승같은 존재인지를 깨닫게 되었고 하나님의 공평하심은 우리의 짧은 구간의 인생 속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인생 저편에 이르기까지 광대하게 펼쳐져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뜻을 좇아 살 수 있게끔 만들어주신다는 사실을 깊이 터득하면서 하나님 앞에 정말 온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 앞에 감사하며 매달리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 시인은 하나님께서 자기를 그렇게 인도하신 후에는 영광으로 자신을 영접하실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이 사건을 통해서 자신은 하나님께서 버리신 사람이 아니며 오히려 자신은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 있는 언약의 자손임을 깨닫게 되었던 것입니다. 악인들의 형통함을 보면서 그들은 번성하고 악을 행하면서도 번영하는 것을 보면서 자신은 이렇게 버림을 받은 것 같고 하나님께로부터 소외된 것 같았는데 사실은 영원이라는 관점에서 보니까 형통한 그들은 아무것도 아닌 사람, 던져져 파기처럼 부서진 그릇과 같은 사람들이었고 자신은 하나님 앞에 정말로 사랑받는 사람이고 이 세상의 어떤 변화무쌍한 환경 속에서도 주님이 기억하고 계시며, 영원을 잇대어 살도록 만들어 주신 사람이라는 사실을 깊이 깨닫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신실하신 은혜와 자비는 결코 이 세상에 있는 물질의 형통함과 부요함으로 구별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의 신실하신 사랑과 은혜, 그 자비를 힘입어서 매일 살아갈 때 우리는 비로소 우리가 비록 이 세상에서는 고난을 당하고 손해를 보는 것 같지만 믿음의 눈으로 보면 하나님이 우리를 영원토록 붙들고 계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 시인은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찬송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이해를 초월하시는 하나님의 함께 하시는 은혜를 생각하면서 어떠한 경우에도 하나님이 자신에게 준 분복, 즉 하나님을 사랑하고 의지하며 사는 이 분복을 잃어버리지 않겠다고 다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영광으로 나를 영접하실 것입니라는 영광으로 영접하신다는 의미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의미는 악인이 형통하고 번성하고 자신은 하나님께 질책을 당하는 것 같고 악인의 형통함을 통해 누리는 것 이 자기에게 없는 것 같아서 사람들 보기에는 그 번성하는 악인이 더 영광을 누리는 것 같이 보이지만 그것은 잠시 일어나는 현상이고 영원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모순처럼 보이는 이 세상의 일들이 지나고 나면 자신이야말로 하나님 앞에 정말 고귀한 사람이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보여주십니다. 시인이 성소에 들어갈 때 악인들의 종말에 대하여 눈을 뜨면서 바로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면서 자기가 얼마나 부족하고 모자라는 사람인가 하는 것을 깊이 깨달으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말할 수 없는 사랑과 은혜로 자기를 붙들고 인도하시는 것을 경험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이런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들이 이해할 수 있을 때뿐만 아니라 이해할 수 없는 환경에서 하나님의 공정하심이 의심되는 것 같은 상황 속에서도 오히려 우리는 이 시인처럼 회의에 빠지기 보다는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생각을 초월하시는 분이지만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수시로 변하고 요동치는 신실하지 못한 인간이지만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를 향해 미쁘고 변함없으신 분이라는 사실을 붙들면서 나아가게 될 때 오히려 그런 환경 속에서 주님의 필요를, 자비와 은혜를 더욱 절실하게 의지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를 매순간 붙들어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오늘 이 말씀을 의지하며 하나님 앞에서 사는 성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