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승 같은 자와 함께하시는 하나님
내가 이같이 우매 무지하니 주의 앞에 짐승이오나
내가 항상 주와 함께하니 주께서 내 오른손을 붙드셨나이다 (시 73:22-23)
녹취자: 박지성
성소에 들어갈 때 시인은 깨달았습니다. 인간 세상에서 모순처럼 보이는 그것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죽음 너머에 또 다른 세계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바로 하나님이 죽음을 통해 사람을 이 세상과 하직하게 하신 이후에 영원에 대한 전망을 보이신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인생 안에서 모순인 것이 인생 바깥에서는 모순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한줄기 섬광과 같은 찬란한 빛이 이 시인의 심령 속에 들어왔고 그 한줄기 찬란한 빛을 힘입어 그는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얼마나 무지한 인간인가 하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성경에서 짐승이라는 것은 비이성적인 행동이나 생각을 은유적으로 대변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기에서 자신이 짐승과 같다고 하나님 앞에 고백하고 있는 것은 바로 다름이 아니라 자신의 삶과 생활이 얼마나 비이성적이고 하나님 앞에 보여준 특별히 악인의 형통을 보며 낙심했던 이 태도가 얼마나 비이성적인 태도였는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어디 그의 생각만 그러했겠습니까? 악인의 형통함을 보고 깊이 낙심했기 때문에 그는 감히 하나님이 매일매일 말씀을 통해 자신을 깨닫게 하시고 인도해 오신 그 모든 과정을 헛된 것이라고 여겼고 또 심지어는 하나님께 순종하며 살아왔던 날들을 후회하며 ‘막 살아 버릴 걸….’하는 막말도 마음속으로 거침없이 토해 놓았습니다. 이 일련의 모든 행동들은 그야말로 이성이 없는 짐승 같은 행동이었습니다. 그래서 시인은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는 순간 자신이 정말 아무것도 아닌 아주 더러운 짐승과 같은 인간이라는 사실을 깊이 고백하며 하나님 앞에 자신을 토설하였던 것입니다.
인간이 하나님의 뜻을 떠나 짐승과 같은 삶을 사는 것은 우매 무지하기 때문입니다. 많은 지식이 그를 하나님 앞에서 사람답게 살게 하지만 분명한 판단력을 잃어버릴 때 그 많은 지식은 그의 인생을 하나님 앞에 성결하게 사는데 도움을 주지 못합니다. 이 시인이 오늘 그렇게 살았던 자기 자신을 한 마디로 표현하며 “짐승이오나”라고 했습니다. 어찌 이것이 시인만 해당되는 것이겠습니까? 오늘 우리도 비록 이 시인처럼 일생을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깨닫고 하나님께 책망을 받으며 손을 씻어 정결하게 하나님 앞에 살아간다 하더라도 만약 우리에게 매일매일 찬란한 진리의 빛이 비추어 우리를 깨어있게 하지 않는다면 우리도 언젠가는 이 시인이 탄식했던 것처럼 하나님 앞에 “우리가 깨닫지 못한 짐승과 같습니다.”라고 고백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므로 여기서 우리는 다시 한 번 우리를 하나님 앞에 사람답게 살게 하는 지식의 중요성을 발견하게 됩니다. 한편으로는 우리가 인생을 사는데 있어서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올바르게 아는 이성적인 지식이 필요하고 또 한편으로는 언제나 심령의 상태가 깨어있어서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분께로 비치는 찬란한 오성의 빛에서 사는 것이 절실하게 필요합니다.
무슨 의미입니까? 이 시인이 언제는 모든 것을 다 안 사람이었겠습니까? 하나님께 깨어있고 그분을 사랑할 때에는 모두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이 있어도 하나님을 향한 인격적인 사랑 때문에 하나님을 신뢰했고 그랬기 에 이런 것이 문제가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악인이 형통하고 번영한들 어차피 하나님 앞에서 나의 인생은 악인들의 그것과 같지 않은데 무슨 문제가 되겠습니까? 신앙이 식고 오성과 총명이 흐려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그는 하나님의 성품을 오해했고 하나님이 사랑으로 우리들을 깨우쳐 당신 앞에서 살게 하시려는 친절하신 돌봄을 공연히 자신을 책망하시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버지의 인격은 느껴지지 않고 아버지의 꾸지람만 느껴질 때 반발하는 아이들처럼 이 시인은 하나님 앞에 짐짓 그런 마음을 품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내가 주의 앞에 짐승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여기서 “주의 앞”은 히브리어로 “리페니 아도나이”라는 구절로 예배에서 많이 사용되는 구절입니다. 하나님의 면전에서, 하나님 앞에서, 주의 낯에서, 주님의 임재를 느끼며 드리는 예배에서 많이 사용되는 단어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 빛 앞에서 그는 짐승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로부터 찬란한 진리의 빛을 자각한 사람들의 자신에 대한 인식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우리 편이기 때문에 쉽사리 우리가 우리를 객관적으로 볼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람 아우구스티누스도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람은 진리의 빛 아래 살지 않는 한 자기를 사랑하되 육체만을 사랑 할 수밖에 없는 인간이다.”라고 말입니다. 이 시인도 역시 똑같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일생을 주님 의지하고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산 사람이었지만 총명의 빛이 떠나자 현저히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누구인지를 깨닫는 자각의 빛도 함께 사라졌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의 참되신 사랑, 참되신 은혜의 인격을 깨달은 그러나 자신만큼 하나님의 말씀을 모르는 사람만도 못한 사람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시인은 오늘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항상 주와 함께하니 주께서 내 오른손을 붙드셨나이다” 내가 이같이 우매 무지한 짐승이지만 내가 항상 주와 함께하니 주께서 내 오른손을 붙드셨나이다. 우리는 이 구절에서 얼핏 보는 느낌은 “그래도 내가 항상 주님과 함께했기 때문에 그 공로로 주님께서 자기를 붙들어 주셨다.”라고 읽기 쉽습니다. 그러나 이 구절의 의미는 전혀 그런 것이 아닙니다.
성경에서 특히 구약성경에서 하나님이 함께한다는 이 사상은 아주 오래된 사상입니다. 그래서 존 오웬 목사님은 “구약에서 성도들에게 주실 수 있는 하나님의 최고의 복이 바로 동행하는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이것입니다. 이 “함께 한다” 혹은 “동행 한다”라는 말은 사실 경건의 최고의 표현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동행하던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하늘나라로 들려 올라갔고 하나님이 어디 가든지 함께할 것이라고 약속해주셨던 여호수아는 결국 가나안을 정복하고 말았습니다. 다윗이 이후에 이어지는 이스라엘역사의 모든 임금들의 본보기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커다란 토목공사를 해서 업적을 남겼거나 혹은 전쟁에서 승리해서 부강한 나라를 만들었기 때문에 이후에 이어지는 임금들의 표준이 될 수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유다 역사 중 다윗처럼 하나님이 함께 하신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이것은 이 땅에 있는 자신의 자녀들을 향한 최고의 사랑의 표현이고 은혜의 표현입니다. 가슴시릴 정도로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이 놀라운 동행함,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당신의 마음에 합당한 사람들에게 베풀어 주시는 가장 커다란 은혜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구약성경에서 “하나님이 함께 한다, 동행 한다”라는 표현은 언제나 동행함을 당하는 사람들에게 주체성이 있는 것이 아니라 동행해 주시는 하나님께 주체성이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인간이 어떠어떠한 일을 하면 마땅히 하나님이 동행해 주시는 기계적인 것이 아니라 그가 비록 매우 탁월한 삶을 살았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은 그와 동행해야 할 의무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동행해 주시는 것은 언제나 은사입니다. 은사. 선물로 그에게 주시는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이와 같은 사실은 바울의 자기 인식에서도 잘 나타납니다. 바울이 고린도교회에 보내는 편지에서 자신이 극도의 시련과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이 함께해 주셨던 것을 간증하면서 그것을 자신들에게 미친 하나님의 은혜의 증거로 들고 있는 것입니다. 언제나 이것은 하나님의 선물이지 인간의 공로가 아닙니다. 그래서 오늘 이 시인은 이렇게 말하고 있는 셈입니다. “주님이 나와 항상 함께해 주셔서 주께서 내 오른손을 붙드셨습니다.”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이 동행함은 구약성경에서 특별히 두 가지 의미를 내포합니다. 그것은 첫째, 하나님과 온전한 평화입니다. 이 평화도 사실은 하나님이 주도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어느 순간에도 죄가 없고 순결한 때가 없지만 하나님이 우리를 용납하시고 당신의 지극히 큰 자비로서 우리를 하나님의 사랑으로 불러주십니다. 그래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과의 평화를 누리며 살게 하시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들이 하나님 앞에 평화를 누리며 살아갈 때는 우리가 하나님께 순종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의지합니다. 그러나 언제나 거기에도 결함이 있고 우리의 가장 아름다운 행동조차도 그분에게는 불결하기 짝이 없는 더러움입니다. 그래서 항상 거기에도 그리스도 예수의 중보가 있고 하나님이 우리를 용납해 주시는 그의 자비하신 사랑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매일매일 살아가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갈망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사람의 인격적인 특징입니다. 그렇게 놓고 보면 오늘 이 시인은 이렇게 자기가 무지해서 짐승과 같이 깨닫지 못하는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었습니다. 예전에도 그러했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이 은혜로서 자기와 함께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동행 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평화를 누릴 수 있었고 그 부족한 지식의 빛 아래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 수 있었습니다. 그때에는 주님이 이 시인의 오른손을 꼭 붙들고 계셨습니다.
성경에서 이 오른손은 힘의 상징이고 선택의 상징이고 은총의 상징입니다. 그래서 성경 여러 곳에서 “주께서 나의 오른손을 붙드셨습니다.”라는 고백이 여러 번 등장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그의 오른손을 굳게 붙들어 올바로 힘을 행사하게 하고 그의 오른손을 이끌어 하나님이 원하시는 곳을 따라 살아가고 이끌어가도록 만들어 주셨던 것입니다. 일들을 행하는 주된 동작의 주체인 오른손을 주님이 붙잡으심으로써 그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과 함께하도록 비록 그가 때로는 미처 무지하여 의도하지 않을지라도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것을 선택하도록 인정하시는 길을 가도록 하나님이 날마다 붙들어 주셨던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은 캄캄한 어둠속을 더듬으며 걷는 것과 같은 시기가 있습니다. 그때마다 우리가 주님께 누릴 수 있는 최고의 복은 이 세상에서의 번영이 아닙니다. 그 캄캄한 어두움 속에서 우리의 오른손이 주님의 손에 붙잡히는 것, 그래서 우리는 갈 길을 알지 못하나 주님의 손에 이끌려 매일매일 우리보다 더 그 어둠속에서 우리의 갈 길을 잘 아시는 주님의 손에 이끌리는 것, 이 이상의 축복이 없습니다.
(찬양)
폭풍우 흑암 속 헤치사 빛으로 손잡고 날 인도 하소서
인생이 힘들고 고난이 많이 겹칠 때, 때로는 우리의 믿음이 흔들려 우리가 의심하지 않았던 것을 의심해서 우리의 인생에 어두운 회의의 그림자가 드리울 때, 그 때 우리는 주님의 손에 붙잡히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강할 때도 있고 약할 때도 있지만 좋으신 우리 하나님아버지는 언제나 우리 가장 가까이 계셔서, 충만한 믿음으로 당신을 바라 볼 때뿐만 아니라 흔들릴 때조차도 우리의 오른손을 붙들어 주님께 이끌기를 원하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손에 이끌려 우리가 가는 길을 알지 못하지만 매일매일 우리를 붙잡은 그분의 손의 온기를 느끼고 신뢰하며 걸음을 떼어 놓을 때 우리의 가는 길을 알지 못하지만 그분의 손에 이끌려 간 후에 걸어온 길을 후회하는 법은 한 번도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회의 속에서 혹은 신앙의 어두운 시기를 지날 때마다 그 시기가 때로는 고통스럽고 혼자 버려진 것 같지만 거기서 우리가 빛 가운데 계속 살았더라면 미처 깨닫지 못했을 놀라운 진리들을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그분의 손을 꼭 붙들고 우리가 가는 길이 우리의 눈에 보일 때나 보이지 않을 때나 다름없이 그분을 의지하며 가는 신앙생활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 눈으로 볼 수 있다고 그분의 손을 놓아서도 안 되고 우리의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그분의 인도를 의심해서도 안 됩니다. 언제나 주님의 손을 꼭 붙들고 걸어가야 합니다. 세상이 나를 속일 때도 있고 내가 의지하고 사랑하던 사람들이 나를 배신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신실하신 주님은 언제나 우리를 사랑하신 첫 번째 하나님이시며 우리를 끝까지 버리지 아니하시는 마지막 하나님이십니다.
(찬양)
예수 내 친구 날 버리지 않네. 온천지는 변해도 날 버리지 않네.
그러면서 하나님 앞에 고백을 하게 됩니다. 나는 오늘 여러분들에게 말씀을 드립니다. 이렇게 시인이 짐승 같은 사람인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라 언제나 그랬지만 주님을 의지하고 신뢰하는 동안에는 주님이 그분의 손을 붙들고 계신 것이 시인에게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다시 깨닫고 하나님 앞에 돌아올 때도 느껴졌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의 손을 굳게 붙들고 생사 간에 우리가 의지하여야 할 유일한 분이며 생사 간에 내가 신뢰하여야 할 유일한 분, 그 주님을 놓지 말고 그분의 손에 꼭 붙들려 우리의 남은 인생의 날들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찬란한 지식의 빛, 어린아이 같은 주님을 향한 사랑. 이것이 언제나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