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의 반석이신 하나님
내 육체와 마음은 쇠잔하나 하나님은 내 마음의 반석이시요 영원한 분깃이시라 (시73:26)
녹취자 : 이하영
시인이 먼저 인생의 유한함 내지는 허무함을 직시합니다. 그러면서 나의 육체와 마음은 쇠잔합니다라고 고백을 합니다. 육체의 쇠잔함은 세월의 흐름 속에서 늙음으로 혹은 육체가 기력이 약해지는 때를 통하여 한계를 경험하게 됩니다. 여기서 육체가 쇠잔해진다 라고 하는 것이 둘 중 어느 것 때문에 쇠잔하게 되는지 이야기하고 있는지는 우리가 쉽게 결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아마 제 생각에는 두 가지 의미를 모두 포함하고 있지 않을까 생각이 됩니다. 이 시인이 성소에 들어갈 때에 죽음을 직면하게 되었고 그리고 인생이 끝난 후에 있는 영원한 하나님의 심판에 대해서 눈을 떴으니 당연히 그의 죽음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것은 곧 인생에 있어서 쇠약함과 늙음으로 이어지는 개인적인 종말을 의미하는 것일 겁니다. 그러면 여기에서 이 쇠잔함은 죽음에 이르도록 나이가 들면서 육체에서 생명의 기운이 빼앗겨지는 그런 때를 가르키기도 하는 것 이지요. 또 하나는 앞에서 이 시인은 마음고생을 많이 하였습니다. 비록 자신의 불신앙때문 이기는 하였지만은 그러나 악인의 형통함을 보면서 깊이 괴로워하게 되었고 그것이 적잖이 마음고생을 불러 일으켰고 그 속에서 육체도 함께 쇠약해 갔을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두 번째를 배재할 수 없는 이유이지요. 사실 그것은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어쨌든 이 시인이 깨달은 것은 나의 육체는 쇠잖합니다. 뿐만 아니라 마음도 쇠잔하여 간다고 고백합니다. 마음이라고 되어있는 이 단어는 정신이라고도 번역할 수 있는 단어입니다. 혹은 지력, 알력, 신경 뭐 어떻게든지 번역될 수 있는 단어입니다. 아마도 이 시인은 이러한 회의의 과정을 통해서 아주 처절하게 자기가 얼마나 부족하고 연약한가 하는 것을 아주 절실하게 깨닫게 되었고, 이러한 과정에서 이 시인은 자기가 얼마나 연약하고 부족한 인간인가 하는 것을 깨닫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 속에서 그의 정신은 쇠약해지게 되었습니다. 굳건하리라고 믿었던 자신의 신앙도 약해지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이러한 육체와 마음의 쇠잔함을 통해서 이 시인은 자신의 어떤 상태를 의지하며 산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부질없는가 하는 것을 절실하게 깨닫게 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 것만큼 우리는 자신을 의지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세상을 의지하는 것이라고 말하지만 세상을 의지할만한 것이라고 판단하는 자신을 신뢰하는 것이기 때문에 세상에 대한 의지도 자신을 의지하는 것의 또 다른 한 형태일 뿐입니다. 이는 마치 신자가 세상을 사랑하는 것은 자기사랑의 한 형태이듯이 그러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성경이 내 육체와 마음은 쇠잔합니다. 결국 이 시인은 이 모든 시련의 과정을 통해서 육체를 신뢰하며 사는 것이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가를 경험하게 되었고 더 정확하게 말하면 자기를 신뢰하면서 사는 것이 얼마나 덧없는 것인지를 아주 절실하게 체험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와같은 것을 고백하고 나서 이 시인은 자기의 영혼의 시선을 하나님께로 옮겨갔습니다. 그리고 고백합니다. 하나님은 내 마음의 반석이시오, 영원한 분깃이십니다 라고 말입니다.
구약성경에서 이 반석 히브리말로 '추루'라고 하는 이 단어가 여러번 등장합니다. 이 반석이라는 단어가 등장할 때 함의하고 있는 의미는 크게 두가지입니다. 하나는 독특하게 이 '추루'라고 하는 반석의 단어가 구원과 연결이 되는 것입니다. 이 반석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서 영원히 지워질 수 없는 강인한 기억을 그들의 마음속에 새겨둔 어떤 사건과 관련이 있습니다. 그 사건이 무엇일까요? 그건 다름이 아닌 모세의 반석사건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물이 없어 고통을 당하고 하나님께 불평과 원망을 쏟아놓을 때에 모세가 하나님의 명을 받들고 반석을 명하여 반석을 쳐서 물을 쏟아지게 한 사건입니다. 거대한 반석이 쪼개졌고, 쪼개진 그 사이로 생수가 쏟아져 나와서 수백만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마실 수 있는 물이 되었던 것입니다. 이 사건은 이스라엘 백성들 속에서 잊혀질 수 없는 구원사건이 되었던 것이죠. 이 모세의 반석사건이 함의하고 있는 바가 몇가지 있는데 우선 첫째는 무엇이냐 하면 인간의 생각과는 다른 방법으로 우리에게 구원의 길을 여시는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을 보여 준 사건이었습니다. 물을 얻으려면 축축하고 습기있는 계곡을 팠어야 되는데 전혀 그것과는 상관이 없이 반석을 통해 물을 내셨기 때문입니다. 사건의 두 번째 의미는 그리스도의 고난과 관련이 있다는 것입니다. 즉 고린도전서 10장에서 바로 그 사건을 메시아적으로 해석하면서 그리스도 예수께서 고난을 당하심으로써 모든 신약의 백성들이 그 피로 구원을 얻게 된 것을 구원에서 반석이 쪼개지는 생수가 쏟아지는 사건으로 예표화 하였다고 해석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찢으신 옥체를 통해 흘러나오는 보혈의 피로 수많은 사람들이 구원을 얻은 것처럼 또한 그것을 바라보는 예표적 사건으로 반석을 깨뜨려 물이 쏟아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세 번째 의미는 이 사건이 개인적인 사건이 아니라 공동체적인 사건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린도전서 10장에서 우리는 다함께 '다함께' 라는 표현이 등장합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자기를 찢어 그 피로 모든 사람들을 구속하실 때 공동체적으로 그들을 구속하실 것을 함께 마시게 함으로써 반석사건을 통하여 경험하게 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내 마음의 반석이십니다. 라고 하는 이것은 하나님의 강력한 구원과 관련되어 있는 사건이라는거죠. 구원과 관련되어 있고, 공동체와 관련되어 있고, 메시아와 관련된 사건이다 라고 하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주님은 내 마음의 반석이십니다 라고 할 때 이 글을 쓰고 있는 이 시인의 가슴에 큰 파도처럼 밀려오고 있는 한 장의 그림은 하나님은 나의 구원이시다 라고 하는 거죠. 죽을 수 밖에 없는, 목말라 죽어가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을 그 반석에서 살리신 것처럼 한나님은 내 마음이 죽을 위경에서 건져 내시는 구원의 하나님이십니다. 라고 하는 의미에요.
구약에서 이 반석이 함의하고 있는 또 하나의 의미가 있습니다. 그것은 이 독특한 구원사건과는 좀 별개로 반석이 가지고 있는 이 의미를 사용한 예입니다. 아시다시피 이 반석은 넓게 평평하게 퍼져있는 바위를 뜻하는 것입니다. 이 반석에 대한 메타포는 신약에까지 계속됩니다. 예수님이 산상수훈을 모두 가르치신 후에 결론처럼 말씀하신대도 거기에 반석이 등장합니다. 만약에 나의 이 교훈을 듣고 행하는 자는 반석위에 집을 짓는것과 같지만 그래서 바람이 불고 창수가 나도 흔들리지 않을 것이지만 만약에 내 말을 듣고 행하지 않는 자는 모레위에 집을 짓는 것과 같을 것이다. 그래서 평소에는 가만히 있지만 비가 나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면 무너지게 되리라고 하는 말씀 속에도 이 반석이라는 그림을 구약 전반에서 가지고 오시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예수님의 이 반석에 관한 비유는 예수님이 즉석에서 생각해내신 것이 아니라 구약에 이미 면면히 흐르고 있는 반석에 대한 메타포에서 가져오신 것이고 그래서 이 반석에 대해 이야기할 때 듣는 모든 유대인들이 아주 충분히 그 반석이 가지고 있는 의미와 예수님이 그것을 말씀하시는 이 반석과 관련된 의미들을 충분히 이해하는 가운데 이 비유를 공감할 수 가 있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구약에서 이 반석은 근거, 토대, 흔들리지 않는 확고함을 가르키는 것이죠. 반석이 바로 그런것과 관련이 있는 것이죠. 집을 지을때 말입니다. 큰 빌딩을 짓잖아요. 그러면 뭐가 문제가 될까요? 빌딩을 60층, 70층, 혹은 100층 이렇게 올리게 되면 무엇이 문제가 되느냐 하면 빌딩 자체의 무게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어마어마해요. 그러면 뭐가 문제가 되냐면 그 자체가 누르는 힘이 어마하기 때문에 아무리 깊이 땅을 파고 건축을 해도 이 땅 자체가 탄탄하게 이 건물을 지탱해주지 않으면 통째로 기우는 거에요. 우리나라 한강변을 따라서 지어진 건물 가운데 가장 난공사중에 하나가 63빌딩을 건축하는 것 이었어요. 왜냐하면 아시다시피 강 한 가운데 있는 땅에 63빌딩을 지은 거에요. 그러면 가서 지형을 잘 보시면 양쪽으로 물이 흘러요. 그리고 매우 가까이 있어요. 그것이 무얼 의미하냐면 땅이 무르다는 것이에요. 그 무른땅 위에 그 어마어마한 빌딩을 세울 때 굉장히 어려웠다고 합니다. 이럴 경우에는 예외없이 파일을 박아요. 그 파일은 전봇대처럼 생긴건데 그것을 수백개 혹은 수천개를 박아서 그래서 위에서부터 타공을 해서 위에서부터 해머라고 하는 기계로 두들겨서 계속 땅속으로 집어 넣는 거에요. 사정없이 집어넣어요. 집어넣고 그 위에 다시 파일을 박아서 집어넣고 하면서 계속 집어넣는데 집어넣다가 더 이상 안들어가는 때가 있어요. 그러면 이제 지질학적으로 이미 벌써 조사를 해 보면 몇미터 위에 표토층이 있고 표토층 위에 진흙층이 있고 진흙층 밑에 굵은 모레층이 나오고 모레층 아래 바위가 있고 라는게 나오잖아요. 그러니까 바위에 닿은거에요. 그래서 계속 더 두들입니다. 그런데 바위에 박혀서 더 이상 안내려가요. 그러면 위에 부분은 그냥 잘라버립니다. 더 이상 박을 수도 없고 박을 필요도 없죠. 왜? 반석으로 연결이 되니까... 그렇게 해가지고 이 파일을 밑에 반석이 나올 때까지 혹은 반석이 안 나오면 파일 자체를 깊이 박아서 그 자체가 바위의 힘을 발휘하도록 밑에를 평탄하게 단단한 반석처럼 만든 다음에 그 위에 집을 짓는 거에요. 예외없이 그런 공법이에요. 그게 바로 반석이라는 말이 갖는 의미에요. 그러니까 흔들리지 않는 확고한 근거를 가르키는거죠. 시인은 말합니다. 하나님은 내 마음의 반석이십니다. 이 시인이 하나님은 내 마음에 반석이십니다. 그는 자신의 믿음을 의지했지만 믿음도 확고한 근거, 기반이 될 수 없는 것을 이번에 깨달았습니다. 악인의 형통함을 보며 뿌리채 그 믿음이 흔들렸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이 시인은 하나님은 내 마음의 반석이십니다. 한편으로는 하나님은 나를 구원해주시는 구원자이십니다. 또 한편으로는 하나님만이 내 정신의 흔들리지 않는 확고한 근거가 되시나이다라고 고백을 하는거에요. 얼마나 놀라워요. 오늘날은 사상과 생각의 근거가 없는 시대를 지나고 있어요. 근거가 없어요. 왜 그렇게 해야 하는지 근거가 없어요. 왜? 그 근거를 전부 다 부정해버렸어요. 그래서 근거가 없어요. 그래서 삶이 한없이 가볍고 요동쳐요. 그리고 그것 자체를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아요. 그러나 시인은 하나님은 내 마음의 반석이십니다. 자기를 구원해주신 반석이실 뿐만 아니라 흔들리지 않고 자기의 믿음과 신앙을 그리고 그 모든 지식들을 자신의 삶을 구축할 수 있는 유일한 기반이 되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 거죠. 악인의 형통함을 보고 신앙이 흔들리고 혼미하게 되었을 때 그 때 이 시인은 비로소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나님만이 자신의 흔들리지 않는 근거가 되신다는 사실을 깊이 터득하였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누릴 수 있는 최고의 복은 하나님이 있어 든든하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 감당할 수 없는 시련과 고난이 넘칠 때 죄악의 물결이 창일할 때에도 그분이 우리의 구원이 되십니다. 우리가 심령이 목말라 죽을 것 같을 때에도 우리는 다른곳에서 나오는 물로 목을 축이지 않습니다. 반석이신 그분에게서 쏟아져 나오는 그 물로 우리의 목을 축입니다. 어디 그 뿐 이겠습니까? 주님은 우리가 의지할 수 있는 모든 근거가 되십니다. 하나님을 기반으로 생각하고 하나님을 기반으로 우리의 지식의 체계를 구축하고 하나님을 기반으로 우리의 삶의 교훈들을 세워가고 그리고 우리가 힘들고 고통을 받을 때마다 그 하나님을 의지하며 아버지 앞에서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신앙입니다. 주님은 오늘 이 시간에도 우리들이 이렇게 하나님을 기반으로 삼아 살아가는 사람들이 되기를 원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시인은 하나님이 영원한 분깃이십니다 라고 고백을 합니다. 이 분깃은 다름이 아닌 제비를 뽑아서 할당된 몫을 가르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을 정복하기 전 먼저 땅을 그리고 제비를 뽑아 자신들의 기업을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정복하면서 그 기업을 차지하였던 것입니다. 이게 바로 분깃의 개념입니다. 하나님이 영원한 분깃이십니다 라고 이야기 할 때 신앙이 없는 사람들은 웃었을 꺼에요. 왜나하면 이 분깃은 대개 토지를 중심으로 이루워지는 것이기 때문에... 그런데 하나님은 보이는 분도 아니고 손으로 만질수도 없는 분이기 때문에 나누워 가질 수도 없는 분이기 때문이죠. 그런데 바로 하나님이 이들의 영원한 분깃이 되어주셨습니다. 이것은 바로 하나님 자신이 그들의 기업이 되시겠다는 의미였던 것입니다. 이것은 바로 하나님이 그들의 모든 것을 책임져주실 뿐만 아니라 그들이 이 땅에서 누리는 모든 행복의 근원이 되시겠다는 말씀을 우리에게 가르쳐주시는 것이에요. 그것이 바로 하나님은 내 마음의 분깃이십니다 라고하는 이 고백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의 분깃이신데 이 분깃에 대해서는 다음시간에 계속하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