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분깃이신 나의 하나님
내 육체와 마음은 쇠잔하나 하나님은 내 마음의 반석이시오 영원한 분깃이시라. (시73:26)
녹취자: 장현수
지난시간에는 ‘하나님은 내 마음의 반석이시오’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은 나의 영원한 분깃입니다. 구약에서 분깃이라는 이 말은 맨 처음 유래된 것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을 정복할 때에 가나안 땅을 정복하기에 앞서서 하나님의 분부를 좇아서 그들이 각 지파별로 자신들이 거하게 될 그 땅을 제비를 뽑게 됩니다. 그렇게 제비를 뽑게 되고 그 뽑은 그 땅이 이제 그들에게 분깃이 되는 것이죠. 그렇게 분깃이 되어서 가나안을 정복한 후에는 정복한 땅 마다 원래에 계획된 대로 추첨하였던 그 지파에게 그 땅을 주어서 누리게 한 것 이게 바로 분깃의 민족적인 시초에요. 그 전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런 분깃이 없었습니다. 비록 애굽에서 매우 번성하여 큰 민족을 이루었지만 그들이 학대 받았던 것도 바로 이 분깃이 없었기 때문에 남의 분깃에서 살았기 때문에 땅을 중심으로 노예생활을 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고, 광야를 지나면서 여러나라를 통과해야 했고 그러면서 수많은 전쟁을 치르게 된 것도 자신들의 분깃에 위협을 느꼈던 이 민족들이 이스라엘을 경계하였기 때문에 이런 전쟁을 피할 수가 없었던 것이죠. 그러니까 이스라엘 사람들의 마음에는 이 분깃에 대한 사상이 거의 한처럼 맺혀 있는 거죠. 그러기 때문에 철저히 이 분깃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곧 생명이었다 라고 하는 말씀입니다. 자 그러면 여기서 하나님은 영원한 분깃이십니다. 이것은 앞에 나오는 내 마음의 반석이요 내 마음의 또 내 마음에 영원한 분깃이십니다. 이렇게 걸리는 것으로 해석을 할 수 가 있을 것입니다. 뭐 그 내 마음의 라고 하는 소유격이 있든지 없든지 결국은 뜻은 마찬 가지에요. 이것은 우선 제일먼저 분깃에 대한 이러한 사상을 살펴보자면 이것은 이 시인이 이러한 분깃에 대한 사상, 다음에 토지를 중심으로 하는 분깃에 대한 사상을 가지고 하나님을 비유적으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설명하고 있는 것이죠. 땅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에서 차지하게 된 그 땅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영원한 분깃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예표일 뿐이고 실체는 바로 신약의 백성들이 그 안에서 안식을 누리게 될 그리스도를 유업으로 얻는 것이었어요. 그래서 엘머마튼스 같은 학자는 이제 이 구약시대 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여서 가나안땅에 들어가게 하시는 것은 곧 신약의 성도들이 그리스도 안으로 이끌려 들어가는 것을 예표 하는 것이며 그 안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안식을 누리는 그 삶은 신약시대에 성도들이 그 안에서 누리게 될 안식의 삶이라고 말했습니다. 그 안에서 일어나는 각양 전쟁과 그 다음에 여러 가지 많은 투쟁과 갈등들은 그리스도 안에 있지만은 아직까지 구원이 완전히 성취되지 않은 그런 신자들의 투쟁의 모습이라고 이렇게 본거죠 결국은 그것을 완전히 완성하실 그 때에 우리는 구원의 최종적인 극치를 보게 되고 그것이 바로 우리들이 그리워하고 있는 영화의 상태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인제 두 번째로 생각해 보면은 이것을 땅으로 연결시키지 않아도 여러분들이 아주 은혜로운 해석을 만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열두지파가 제비를 뽑아서 가나안 땅을 나눌 때 열두지파가 제비를 뽑은 것이 아니라 열한지파가 뽑고 땅을 전혀 받지 못한 지파가 하나 있었습니다. 그 지파가 바로 레위지파에요. 레위지파가 땅을 받지 못했던 것은 땅이야 기와 있는 땅이니까 열하나로 나눌 걸 열둘로 나누면 될 텐데 굳이 이 레위지파에게 하나님이 땅을 주지 말라고 말씀하신 것은 하나님이 그들 지파의 직접적으로 기업이 되시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자기들이 경작한 땅에서 나오는 소산으로 먹는 것이 아니라 그들은 땅을 경작하는 대신 이스라엘 백성들의 신앙, 종교를 경작해야 될 사람들 이었고 이렇게 영적인 사역 그것을 위한 댓가로써 하나님이 열한 지파에게서 십일조를 들여 레위지파 사람들을 부양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니 이제 그렇게 십분의 일씩 받게 되면 레위지파가 열한목이 되고 나머지 사람들은 아홉목이 되겠죠. 그러니까 오히려 다른 지파 사람들 보다도 조금 더 나은 삶을 살면서 그들은 이 땅에 주어진 기업에서 자신들의 유업을 찾지 않고 보이지 않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유업을 찾았던 사람들 이었습니다. 물론 이스라엘 백성들이 땅을 유업으로 갖느냐 하나님을 유업으로 갖느냐 이렇게 이분법적인 생각을 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당연히 신앙적으로 하나님의 자신의 분깃이었다고 믿었지만 이 레위사람들은 농사짓고 밭을 일구는 대신 온전히 하나님께 헌신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의 영적인 번영 종교에 있어서 변영을 이루도록 헌신 하게끔 온전한 마음으로 헌신하게끔 부름 받은 사람들 이었습니다. 그렇게 볼 때에 이 시인이 하나님은 나의 영원한 분깃 이십니다 라고 말한 이것은 하나의 레위적 고백을 하나님 앞에 표명하고 있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다른 지파 사람들은 땅을 기업으로 받아 그 땅에서 나오는 소산을 얻기 위해 경작하고 노동하면서 살지만 나는 나의 인생과 생명에 필요한 모든 것은 하나님 자신에게 있사옵 나이다 라고 하는 하나님께 대한 구별된 헌신 완전한 의존의 정신이 이안에 묻어 있는 것이에요. 그래서 이 시인이 하나님 앞에 하나님은 나의 영원한 분깃 이시옵나이다 하고 고백을 하고 있는 것이죠. 이게 바로 죽음에 직면 했을 때 죽음의 경험을 통하여 죽음 이후에 들어가게 될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전망에서 본 현실이었어요. 이 시인은 나머지 것들은 모두 파기와 같이 없어지고 그리고 전멸하게 된다. 마지막에 남는 것은 하나님밖에 없다. 하나님과 하나님 앞에 서 있는 나의 영혼밖에 없다. 라고 하는 것은 아주 절실하게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은 영원한 분깃 이십니다 라고 고백을 하였습니다. 이 세상에 아무것도 영원한 분깃이 없습니다. 부모가 유산을 잘 물려줘도 3대를 가는 유산이 없다 그러지요. 자식들이 그것을 지키지 못합니다. 그러나 시인에게 있어서 이 하나님은 누구도 빼앗아 갈 수 없는 기업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시인은 잠시 회의에 빠져 있는 동안 자신에게 이 세상 사람들은 결코 가질 수 없는 기업이 자신에게 주어졌다는 것과 이 세상 사람들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큰 기업이 자신에게 있어서 이 기업을 인하여 자신이 행복을 누릴 수 있다는 사실을 몰랐었습니다. 그러나 성소에 들어 갈 때에 저 악한 사람들의 결국을 깨닫고 거기에서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후에는 하나님의 심판과 상급이 있다는 사실을 깊이 깨달으면서 이 시인은 시간 속에만 있는 것들에 의하여 흔들리며 시간과 영원 모두에 있는 것을 쉽게 잃어버렸던 것을 회개하고 그리고 하나님이 악인의 번영은 시간 안에만 있지만 하나님은 시간과 영원에 걸쳐서 무한하신 분이라는 사실을 깨달으며 하나님 앞에 깊이 통회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시인이 하나님 앞에 깨달은 내용이었습니다. 어찌 이것이 시인에게만 있는 일이겠습니까? 매일매일 우리의 마음의 눈을 닦아 깨끗지 하지 않으면 우리도 이 영원에 대한 감각을 잃어버리고 시간 안에서 영원에 대한 생각을 잊어버리고 하나님 앞에 낙심하거나 좌절하거나 영원히 있는 것보다 잠시 있는 것들을 더 사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시인이 고백한 바와 같이 우리는 바로 이렇게 하나님 자신을 영원한 분깃으로 삼는 레위의 자손들입니다. 그리고 베드로 사도는 말하기를 너희는 왕 같은 제사장이요 하고 말하였습니다. 거룩하게 뽑아낸 하나님의 백성들 그리스도의 아름다운 덕을 이 세상에 선전하기 위하여 빛 가운데로 들어가게 하신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렇게 하나님을 영원한 기업으로 삼고 사는 사람들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