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핍한 자의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
여호와는 궁핍한 자를 들으시며 자기를 인하여 수금된 자를 멸시치 아니하시나니 천지가 그를 찬송할 것이요 바다와 그 중의 모든 동물도 그리할찌로다 (시 69:33-34)
녹취자: 윤은정
이 시인은 앞에서 그 고난을 당하는 가운데에 그 악인들의 대해 하나님이 갚아주시도록 탄원하는 가운데 이제 마지막부분에 와서 자신이 하나님의 속성에 관해서 깨달은 것을 노래를 하고 있습니다. 이 시편에서 전편에 흐르는 하나의 그 언약백성들의 하나님경험에 대한 패턴이 있습니다. 그것이 뭐냐하면은 자신이 겪는 그 생사간의 많은 그 고락들을 먼저 노래합니다. 그렇게 해놓고 그 모든 속에서 자신에게 선대하는 사람들을 축복하기도하고, 자신에게 악을 행하는 사람들을 향해 하나님이 갚아주시도록 탄원하기도 합니다. 거기에서 모든 눈물과 기쁨, 슬픔과 고통, 환희, 이런 것들이 발생합니다. 그것은 사실은 그 언약백성이 아닌 사람들이 경험하고 살아가는 인생과 별로 다르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제 그렇게 개별적인 사건들 속에서 희노애락을 경험을 하고, 그것을 모두 그 안에서 발견하게 된 많은 사실들을 가지고 하나님과 연결을 시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어떠한 속성이 자신에게 이러한 고통과 기쁨, 슬픔과 고난, 이런 것들을 주셨는가 하는 것을 해석을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석을 할 때에 어떤 결과들이 나타나게 되냐면은, 하나님은 언제나 선하신데 그래서 결국은 자신들을 하나님이 선대해주시는데, 그렇게 선하게 대해주시는 과정에서 많은 인간들이 의지를 가지고 하나님의 경륜에 참여하게 됩니다. 그때에 거기서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커다란 선하신 뜻과 인간들의 하나님을 향한 불순종들이 만나게 됩니다. 그런 것들이 자신에게 악과 고통을 가져다 주는 것입니다.
비유를 하자면 빛이 똑바로 공기 중에 비치다가 다른 매질, 예를 들자면은 물을 만난다면은 그 빛이 꺾입니다. 그것을 우리는 굴절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만약에 물층을 다시 통과하고, 그리고, 다시 또 공기가 나오면은 다시 그 빛은 꺾어진데서 다시 또 바르게 굴절을 하게 됩니다. 그런 식으로 결국은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데, 그래서 하나님은 좋은 것을 통해서만 좋은 것을 주실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나빠 보이는 것을 통해서도 좋은 것을 주시는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것들이 하나님의 속성에 대한 노래로, 찬송으로 돌려지는 것입니다. 그런 것들을 경험하고 나서 시인이 성숙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 사람이 신앙 안에서 성숙해진다고 하는 것은 결국은 예전에 잘 모르던 하나님의 속성을 잘 알고 그래서 눈에 보이는 사람들과의 관계, 세계와의 관계에서의 출렁거림이 이게 전부가 아니라, 이것을 뛰어넘는 변함없고 일괄적인 하나님의 존재와 속성에 대해서 깨닫게 되는 것, 그것에 의해서 자신의 삶이 안정되고 일관성을 갖는 것, 이것이 바로 성숙입니다. 그러니까 사실 아무리 성숙을 부르짖어도 하나님에 관한 앎이 없이는 성숙이라는 것 자체가 존재할 수 없습니다. 그런 패턴들을 이 시편의 기록자들이 거의 똑같이 따르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에 대한 앎이라고 하는 그것이 고통하는 인간의 이 모든 세계에 대한 공통적인 답변입니다.
그래서 오늘 시편에 보니까 ‘궁핍한자를 들으십니다.’ 그랬습니다. 궁핍한자를 듣는다는 것은 기도와 관련된 것입니다. 그래서 물론 궁핍한 자들이 궁핍하기 때문에 고통하는 그 소리를 들으신다는 그 이야기도 되겠지만은, 하나님은 그러신 분입니다. 그러니까 기도가 없어도 세상이 너무 고통으로 신음하면 그 고통의 부르짖음이 하나님의 귀에 상달되고, 하나님이 이 땅을 살피십니다. 그런데 여기에서는 그런 포괄적인 의미보다는, 이 시인이 여기에서 악인들로 인해서 많은 고통을 받으면서 하나님 앞에 호소하는 것을 배웠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궁핍한 자를 들으십니다.’ 고백을 했던 것입니다. 자연적으로 궁핍해서 가난한 사람들도 하나님이 귀를 기울이시지만, 그러나 좀 더 고유한 의미에서는 심령이 가난한 사람, 자신의 마음이 누구도 의지할 수 없어서 하나님께 쏠린 사람, 그 모든 고통과 괴로움의 힘겨워하면서 하나님을 전심으로 의지하는 그런 사람의 기도를 하나님이 들으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궁핍한 사람들에게 귀를 기울이신다’라고 하는 의미인 것입니다.
그래서 마음으로 하나님을 의지하는 신앙, 그리고 세상에 있는 것들을 의지하기 때문에 하나님을 바라보는데 방해를 받지 않는 믿음, 이것은 모든 상황과 여건을 초월하는 주님과의 만남의 조건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은 그것이 굉장히 어렵습니다. 왜냐하면은 어떤 행위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작용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몇 주 전에도 말씀 드렸습니다만은, 마음이 몸에게 명령하면은 말을 듣는데, 신기하게 마음이 마음에게 명령을 하면 마음은 또 다른 마음의 명령을 듣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한 사람이 마음이 깊이 낮아지고, 그래서 하나님 앞에 주님의 은혜를 간절히 구하게 되는 마음의 가난함, 그 자체가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입니다. 넓은 의미에서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입니다. 그런 간절한 주님과의 만남을 위한 그런 마음의 가난함과 궁핍함, 그래서 진정으로 하나님 앞에 가난한 마음은 하나님이외의 것으로 부유해지기를 거절하는 마음입니다. 그것이 바로 신앙이고, 그리고, 그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궁핍한자에게 귀를 기울이시고 또 자기를 인하여 수금된 자를 멸시치 아니하시나니’ 그랬습니다. 수금되었다는 것은 옥에 갇혔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을 위해서 속박을 받는 사람, 뭐 실제로 감옥에 간 사람도 있겠지만은, 그런 이야기도 되겠지만은 어쨌든 하나님 때문에 속박을 받는 사람, 악인을 인해서 속박을 받고,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 살다가 환경에 그 억압을 받는 이런 사람들을 주님께서는 멸시하지 않을 것입니다. 왜? 그것은 ‘언약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신실함때문 입니다.’ 라고 고백을 합니다. 그러니까 잠시 악인 때문에 하나님의 정의가 굳는 것 같고, 그리고 자신이 마치 하나님의 도움에서 소외된 것처럼 악인에게 핍박을 받는 때는 있지만, 이것은 결국은 공기 중의 빛이 물을 통과하면서 굴절되는 것과 같아서 불변하도록 세상을 계속 통치하고 계시는 하나님의 다스림을 막거나 변경시키지는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다양하게 당신의 뜻을 이루어 가시면서 이 세계를 통치하고 다스리고 이끄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면서 시인은 ‘천지가 그를 찬송할 것이요. 그 중에 모든 동물도 그리할 것이다.’ 이렇게 노래합니다. 결국은 뭐냐하면은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하게 되는 것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실은 하나님께나 적합한 영광입니다. 그런데 인간에게 있을 부요한 것은 뭐냐하면은 하나님 편에 서서 의를 위해 박해를 받고 마음이 가난해져서 하나님 앞에 억압받는 자로서 주님을 의지하고 부르짖는 모든 사람들을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영광의 어느 정도 참여하게하신다라는 것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의 가장 존귀한 사명은, 주님을 알고, 그리고 주님께로 비치는 그 속성의 빛을 자신과 관계하는 모든 인간들과 세계에 흘려보내는 것입니다. 그래서 악인들에게는 하나님의 그 공평한 빛이 굽어져서 나타나지만은, 의로운 언약백성들은 자신이 고난을 당하더라도 하나님의 그 속성의 빛을 그대로 비쳐주는 것입니다. 속성의 빛을 비쳐준다는 뜻은 무슨 뜻입니까? 사람들을 하나님을 볼 수도 없고, 알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삶은 보고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삶이 주님의 어떠하심을 그대로 반영하는 그런 삶이 되어야한다는 것입니다.
속성에 관해서 여러 차례 말씀을 드렸습니다만은 하나님 안에서 속성들이 이렇게 구획이 지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은 아주 지극히 단순하시고, 어떤 구성으로 이루어지신 분도 아니지만은, 그 하나님이 가난한 자들과 관계를 맺으시면 풍부하신 하나님으로, 불의한 자들과 관계를 맺으시면 엄정하고 공평하신 하나님으로, 죄를 지었지만 회개하는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실 때에는 용서하시는 하나님으로, 이렇게 다양하게 나타납니다. 그것을 그대로 굳게 하지 않고, 하나님의 그 속성이 올곧게 나타나는 것처럼 자신이 사람들과 관계하면서 그렇게 하나님의 사랑을 올곧게 나타내 보여줄 때, 그 때에 사람들은 언약백성들의 삶을 통해서 하나님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그것이 바로 주님을 섬기는 최고의 섬김의 삶입니다. 그것이 어떻게 되어 나오냐면은 그 사람이 사람됨과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삶은 사람에게서 흘러나오고, 그리고 사람에게서 흘러나온 그 삶은 다시 사람을 만듭니다. 자신에게도 그러하고 다른 사람에게도 그러합니다. 그렇게 하면서 살아가는 신앙생활, 그것이 바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신앙생활이요, 또, 믿음인 것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