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주권을 믿는 신앙
내가 모태에서부터 주의 붙드신 바 되었으며 내 어미 배에서 주의 취하여 내신 바 되었사오니 나는 항상 주를 찬송하리이다 나는 무리에게 이상함이 되었사오나 주는 나의 견고한 피난처시오니 주를 찬송함과 주를 존함이 종일토록 내 입에 가득하리이다 나를 늙은 때에 버리지 마시며 내 힘이 쇠약한 때에 떠나지 마소서
(시71:6∼9)
녹취자: 조봉수
I. 본문해설
하나님의 주권을 믿는 태도입니다. 그러니깐 욥 같은 사람은 시련을 당할 때에, 자기가 태어난 날을 저주하였고, 한탄하였고, 어미 뱃속에 있을 때에, 자신이 그냥 낙태되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하고 하나님 앞에 낙심 가운데 토로한 적이 있습니다. 그에 비하면 이 시편의 기록자는 훨씬 더 깊은 신앙을 가지고 하나님의 주권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언젠가 한번 그 칼빈의 주권사상에 관한 논문을 한 편 읽었는데, 논문이지만, 정말 깊은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 분이 고백하는 것이 무엇이냐면 인간의 의무라고 하는 것은 인생을 살면서 일어나는 모든 크고 작은 시련과 고난, 이런 것들이 있지 않나요? 그것을 견디는 것이 인간의 의무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힘으로 피할 수 있는 것도 있지만, 우리의 힘으로는 도저히 피할 수 없는 것도 있습니다. 그렇지 않나요?
II. 피할 수 없는 고난 앞에서
A. 피할 수 없는 고난 앞에서
언젠가 5월 달인데 비서실로 담임 목사실 2층으로 예고도 없이 어느 연세 지긋하신 분이 문을 벌컥 열고 들어오셨습니다. 그때 비서실에 있던 간사가 깜짝 놀라서 막으면서 무슨 일이시냐고. 아니 그러지 말고 들어오시게 둬라. 눈물을 확 쏟으시는데, 연세가 거의 60은 되어 보이시는데, 그래서 ‘왜 그러십니까?’ 하니 목사님 하고 눈물을 확 쏟으셨습니다. 그 때 아마 어버이 주일로 섬기던 때였습니다. 저는 일평생 우리 어머니 아버지를 증오하며 살았습니다. 왜 그러셨어요? 난지 1주일 만에 저를 버렸습니다. 그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나중에 또다시 부모를 만나게 되고, 그런데 오늘 설교를 들으면서 그래 나도 우리 부모처럼 하나님을 몰랐더라면 그랬을 수 있었겠구나 하는 마음이 들더라는 것입니다. 안 없어집니다. 나이가 60이 다되었는데, 그분도 다 지나간 일이라고 하지만,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그런 것은 우리 힘으로 어떻게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개념이 없는 부모를 만나서 부모가 부모로써 똑바로 못되어서 자식이 그렇게 가슴에 피멍을 들고 고통을 받는 것입니다. 어떻게 할 수 없잖아요?
B. 고난을 대처하는 방법
그런 것들이 우리의 인생을 살면서 아주 많습니다. 그런 것들을 맞이하면서 인간의 가장 큰 의무는 그런 시련과 고통을 그대로 당하는 것입니다. 묵묵히, 그 이야기는 아무런 방법도 써보지 말고 그냥 소 잡아먹은 귀신처럼 미련하게 모든 것을 당하라 그 뜻이 아니라, 그런 뜻이 아닌 것은 아실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기본적으로 우리의 인생에서 피할 수 없이 일어나는 시련과 고난을 당하는 것. 어떠한 경우에도 자살을 생각하지 않는 것. 그래서 칼빈의 시대에는 자살을 죄악시 했습니다. 그리고 자살을 하면 유산을 모두 시정부에서 몰수해버렸습니다. 그건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도전이라고 보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가만히 두지 않는 것입니다.
(찬양)
고난도 슬픔도 이기게 하옵시고
주 말씀 따라서 용감하게 하소서
C.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한다는 것
살아가는 것. 그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가만히 보면 요즘은 사람들이 너무 인내심이 없습니다. 못 참습니다. 직장도 조금 다니다가 집어치워버리고, 목회를 하다가도 조금만 힘들면 그냥 하다가 집어치워버리고, 교회에서 심지어 직분을 줘도 맡으면 가슴앓이를 해야 되지 않습니까? 하다못해 걸레질을 해도 맡았으면, 맡은 자리에서 3년이고 4년이고 꾸준히 하면서 가슴앓이를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안 합니다. 그러니깐 하나님의 주권을 말로만 하나님의 주권이지, 실천적으로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거의 기도도 안 해보고 교회 훌쩍훌쩍 옳기고, 그렇게 하면서 인생의 아주 중요한 일들을 별로 기도도 안 해보고 덜컥덜컥 그렇게 자기가 견딜 수 없으면 아주 손쉽게 결정을 해버리는 것입니다. 그 열매는 너무너무 고통스럽고 쓴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는 안 됩니다.
그런 속에서 때로는 자신이 잘못되어서 고난을 당하는 적도 있습니다. 그것도 그대로 당해야 하는 것입니다 피하고 싶겠죠. 그렇지만 그게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주권은 태양빛과 같이 찬란하게 한 방향으로 빛나고, 그 주권의 효과가 그 햇빛처럼 다양하게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찬란하게 빛이 비취면서 그러면서 하나님의 주권의 효과가 나타는 것입니다. 햇빛이 비취면 얼음은 녹여서 물이 되게 만들고, 물은 증발하고 하고, 꽃은 피어나게 하고, 병균은 죽이고, 이렇게 다양하게 나타납니다. 하나님의 주권이 쭉 비췰 때, 그 주권을 의지하며 하나님 앞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고난이 닥쳐서 신앙이 없는 사람들에겐 한이 맺히지만, 신앙이 있는 사람들은 그 고난을 통해서 하나님 앞에 더 가까이 가게 되는 것입니다.
III. 하나님의 주권을 믿은 시인 다윗
A. 시인의 삶
아까 그 분은 그랬지만, 다윗이 똑같은 처지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머라고 했습니까? 내 부모는 나를 버렸으나 여호와는 나를 영접하시리로다. 저는 이 구절을 읽으면서 얼마나 위로를 받았는지 모릅니다. 그렇구나. 내 부모는 나를 버렸으나, 여호와는 나를 영접하시리로다. 그런 주권의 효과가 나타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입니다. 너무너무 중요한 것입니다. 다윗이 범죄를 했습니다. 그래서 그 끔찍한 망신을 당하고 커다란 재앙을 만났습니다. 좋은 것 아니고, 나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나쁜 것을 통해서 그의 영혼은 노년에 아주 순결해지고 정결해 지는 것입니다. 물론 사람들은 그 당시에는 다윗 죽을 때까지, 죽은 다음에도 욕을 하고 실망했다고 그러고 손가락질 했을 것입니다.
그런 일이 안 일어났으면 참 좋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일어났습니다. 어떻게 해야 하나요? 그러면 피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미 발생한 일인데, 그러면 그에 따른 모든 일들이 일어날 때, 그대로 견디는 것입니다.. 아마 다윗의 그런 사건들이 있고 나서 더군다나 불순종해서 온역이 일어나서 7만 명이나 죽는 인구조사의 사건 같은 것이 있고 나서 명망을 많이 잃어버렸을 것입니다.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니깐 마지막에 압살롬의 반역을 받아서 도망갈 때, 시므이라는 사람이 흙은 뿌리면서 다윗을 욕 했습니다.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명망을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래도 그것도 하나님의 주권인 것입니다. 그러니깐 주님을 온전히 바라보는 것입니다.
B. 하나님이 원하는 신앙
참 이번에 저는 죄인을 부르시는 하나님 열 한번을 하면서 이제껏 잘 보지 못했던 복음을 새롭게 보는 기회였습니다. 그게 머냐면 죄인을 부르실 때, 하나님이 한 번도 그들의 죄를 묻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그 죄가 사소하다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관심은 그 비참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이 자신을 얼마나 믿느냐 하는 것이, 무슨 죄를 지었냐 하는 것보다 더 큰 관심사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인간은 그렇게 생각 하지 않습니다. 여러분 죄로 소문난 사람들은 많이 봤지만, 회개로 소문난 사람을 봤습니까? 아무리 회개를 많이 해도 소문 안 납니다. 죄는 충분이 납니다. 한번 사람들이 마음에 낙인을 찍으면 영원이 따라 다닙니다. 그러나 그런 경우에도 주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사람에게도 명망을 얻고 하나님에게도 사랑을 받는 것이 최선의 삶입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그렇게 될 수 없어서 그때 주님을 깊이 의지하면서 그 모든 주권 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온전히 순종하며 걸어가는 것입니다. 그게 신앙입니다. 그게 믿음이고 그것이 바로 우리 신앙의 표다 이런 이야기입니다.
C. 시인의 고백
오늘 다윗이 그런 주권을 하나님 앞에 고백하는 것입니다. 고난과 시련을 당하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그런데 머라고 말합니까? 내가 모태에게 주의 붙드심바 되었으며, 어미 배에서 주의 취하여 내신바 되었사오니, 나는 항상 주를 찬송하리이다. 그 앞에 보면 여호와는 나의 어릴 때, 의지시라 그랬습니다. 이번엔 어릴 때가 아니라 더 거슬러 올라가서 모태에 내가 잉태되었을 그 때에, 주님이 나의 씨로 어미의 배에서 떨어지지 않도록 굳게 붙들어 주신 분이 주님이시다는 신앙의 고백인 것입니다.
IV. 결론
그래서 다윗에게 있어서 뿐만 아니라, 고난당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서 주님이 자신을 아신다고 하는 것은 커다란 위로였습니다. 주님이 자기를 아신다고 하는 것은 아주 커다란 위로였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매순간마다 우리를 붙드셔서, 그래서 당신의 주권아래에 살도록 날마다 붙드시고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주권 사상이 정말 아름다운 것입니다. 그래서 고난과 시련을 많이 닥치면서도 이 주권 신앙을 굳게 붙들면 우리가 현세와 내세의 균형을 잡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난과 시련이 가득할 때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주님을 섬기면서 살아가고 있지만, 이 세상이 영원한 집이 아니고, 하나님 의지하고 살아야 되는 나그네 길이라는 것도 배우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나의 인생, 나의 모든 시대가 주님의 손에 있나이다라는 신앙을 갖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되나요? 주님을 온전히 의지하는 마음이 됩니다. 주권이 주님께 있다라고 믿을 때, 주님을 온전히 의지하는 그런 신앙이 됩니다. 그게 믿음입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원하고 기뻐하시는 믿음 생활입니다. 이 이야기는 운명론에 빠지라는 이야기도 아니고, 자기가 실수하고 사고 쳐놓고 하나님의 뜻이다고 이렇게 변명하라는 뜻도 아닙니다. 최선을 다해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애를 쓰고 말씀을 붙들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인생이 애쓰고 노력해도 주권이 주님께 있다고 믿고 그 결과들을 그대로 받아드리면서 하나님 앞에 신앙으로 사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은혜를 주십니다. 왜냐하면 간절히 주님을 의지하면서 살기 때문입니다. 그런 주권 사상의 마음을 가지고 우리에게 맡겨진 삶의 자리를 한번 돌아보십시오. 그러면 거기 피했다고 해서 우리에게 더 편안하고 안락한 삶이 오냐면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그래서 거기서 견디는 거죠. 그러면서 고난과 시련을 겪고 아픔을 겪을 때에, 그 출렁거리는 모든 사물의 변화 너머에 있는 하나님의 위대하고 높은 주권을 함께 바라보면서 그러면서 믿음으로 하나님 앞에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신앙생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