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를 찬송할 때
나는 무리에게 이상함이 되었사오나 주는 나의 견고한 피난처 시오니 주를 찬송함과 주를 존숭함이 종일토록 내 입에 가득하리이다 (시 71:7-8)
녹취자: 이한슬
오늘 성경에 보면 이제 이 시인이 자기에게 악을 행하는 무리들에게 자신이 어떤 존재가 되었는지에 대한 고백과 그렇게 사람들로부터 따돌림을 받을 때에 시인의 마음속에 있었던 결심을 여기에서 노래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무엇이냐 하면 무리에게 이상함이 되었다고 하는데 그것은 같지 않다는 것입니다. 무슨 뜻이냐 하면 이 시인이 사람들에게 악을 당하고 고통을 당하는 것이 결국은 자신과 자신에게 악을 행하는 사람들이 사이에 혹시나 다른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많은 위험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악인들은 자신들과 같지 않아 보이는 선한 사람들 혹은 의로운 사람들이 있을 때 그것은 빛과 같아서 그 사람들의 존재 자체가 자기를 꾸짖습니다. 그러니까 미워하는 것입니다.
(예화)맨 처음에 교회를 세우려고 하는데 하나님이 교회를 개척하라고 하셨지만 어디다가 어디가면 교회 세울 자리가 있다고는 말씀을 안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여기저기 얻으러 다녔는데 어느 병원 옆인데 썩 좋지는 않았는데 그렇다고 썩 나쁘지도 않았습니다. 지하실에 예배공간이 하나 났다고 해서 거길 보러갔는데 지하실에 한쪽에는 가게가 있고 한쪽에는 텅 비어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게를 얻으러 왔다고 하니까 옆에 사람이 반색을 하면서 뛰어나옵니다. 아 여기 굉장히 사람도 많이 오고 너무 좋은데라고 뭐하는 가게인가 보니까 퇴폐이발소입니다. 우리보고 그러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 가게를 얻어서 뭐 하시려고 그래요? 교회를 하려고 그럽니다 그러니까 교회는 들어오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왜 들어오건 말건 그거는 건물주인이 결정하면 되지 자기가 건물 주인에게 연락해서 교회 못 들어오게 할 거라는 것입니다. 그러더니 마지막에는 뭐라고 하냐면 교회가 들어오면 건물주인에게 이야기해서 자기는 나가겠다고 한다는 것입니다. 왜 그러는 것입니까? 만약에 그 옆집이 음식점이었어도 그랬을까? 자신들은 욕하고 비난해도 그 옆에 교회가 있어서 찬송소리가 들리고 사람마다 바르게 살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것이 퇴폐이발소에게는 영업방해인 것입니다. 들어오는 사람들마다 자신들이 이런 곳에 들어가는 것이 잘못됐다는 것을 십자가 간판이 말해줄 것 아닙니까? 이런 이유 때문에 악인은 의인이 자신들에게 자신들을 해코지 하지 않아도 그 의인들을 싫어하는 것입니다.
오늘 시인이 이상함이 되었다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을 의지하고 모태로부터 하나님께 취한바 되어서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하신 그 모든 하나님의 주권을 의지하며 살아가는 것이 자신들에게 직접적인 해를 끼치는 것이 아닌데도 미워하는 이유는 그렇게 주님을 의지하며 살아가는 시인의 삶 자체가 이미 자기만을 의지하며 살아가는 그들의 삶 자체를 정죄하고 미워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이 시인의 고백이 의미하는 바입니다. 왜냐면 무리에게 이상함이 되었지만 주님은 나의 피난처이십니다. 사방을 둘러봐도 모두 악인들 뿐 입니다. 그렇게 악인들과는 구별된 삶을 살아가는 그 사람의 모습이 하나님께로 돌아오려는 사람들에게는 커다란 도전이 되고 자신의 삶을 하나님 앞에 돌아보는 계기가 되지만 회개하지 않으려고 하는 사람들에게 그러한 인간의 모습은 하나의 커다란 말하자면 거침돌이 되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그 거침돌을 치워버리려고 하지 않겠습니까? 여러분은 교회오는 길에 마당에 돌맹이가 하나 있어서 오는 사람마다 자꾸 걸려서 넘어진다면 아무리 힘들어도 그 돌맹이를 뽑아버리지 않겠습니까? 악인에게는 의인이 거침돌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방식으로 시인이 잘못한 것 없이 악인들에게 미움을 당하고 고통을 받는 그 때에 가져야 되는 신앙이 바로 주는 나의 피난처 견고한 피난처 이십니다 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견고한 피난처라고 하는 것은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사람들이 화살을 쏘거나 공격을 해도 그래서 자기를 충분히 막아줄 수 있는 바위로 된 굴 같은 것 아니겠습니까? 높은 꼭대기에 있는 그런 바위로 된 요새 같은 것들 그것도 피난처입니다. 아주 견고한 무엇에도 흔들리지 않는 그런 견고한 피난처입니다. 그러한 피난처입니다. 주님은 나의 견고한 피난처 이십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악인들은 살아있고 그 위협은 현실적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무데도 안보입니다. 그렇지만 신앙을 가진 사람에게 하나님은 견고한 피난처가 되십니다. 잠시 악이 이기는 것 같고 악한자들이 승리하는 것 같지만은 하나님을 의지하며 사는 사람들은 결국은 마지막에 하나님께서 그 모든 사물들의 질서를 되돌려 놓으실 때에 그때에 비로소 선과 악이 어떤 것인지 의롭고 그리고 불의한 것이 어떤 것인지 하나님께서 아주 또렷하게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악인들에게 고통을 받고 핍박을 받을 때에 어떻게 할지를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복수를 하고 더 큰 악을 행해서 자신들에게 악을 행하는 사람들을 해를 끼치는 그 일들을 하도록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지시하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을 더 의지할 기회로 삼도록 하나님이 부르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을 배워가는 신앙을 가지면 선한 사람들만 우리의 신앙을 촉진하는 것이 아니라 불의하고 악한사람들 조차도 우리의 신앙을 촉진합니다. 불의하고 악한사람들 조차도 우리의 신앙에 유익을 주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아마 기억할 것입니다. 마음이 녹듯이 하나님 앞에 간절히 매달립니다. 의지하며 기도하던 그 때 중 상당히 많은 때가 우리에게 불행이 닥치고 시련이 닥치고 어려움을 당할 그 때에 오히려 하나님을 더 간절히 의지하게 되는 것이 우리의 마음이지 않습니까? 모든 것이 형통하고 모자라는 것이 없었을 때에는 우리는 몰라도 하나님 보시기에는 교만했는데 어려움을 당하고 나니까 우리의 마음이 주님을 의지하는 것 밖에는 아무 희망이 없다는 그런 단일한 믿음을 가짐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영혼에 빈 잔을 하나님의 은혜로 가득 채우고 싶은 열망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어떤 인간은 이 세상에 태어나서 혹은 교회 다니면서도 단 한 번도 이런 거룩한 갈망을 못 느낀 채 인생을 하직하는 인간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주님의 은혜를 간절히 사모하고 그리워 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얼마나 놀라운 우리의 영혼과 마음에 변화를 가지고 오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그래서 이 세상에 인간으로 태어나면 누구든지 행복하고 싶어 하지만 불행을 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런데 사실은 잘 먹고 잘 사는 행복을 통해서 보다는 고통과 괴로움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우리의 영혼에 더 좋은 많은 것을 하나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예화) 어제 새벽기도에 왜 못 나왔냐면 이동수 장로님이 있는 제주도에 갔다왔습니다. 갔는데 요새 제주도에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표를 구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어떻게 구해가지고 6시 20분 비행기를 타고 갔는데 도착했더니 안계셨습니다. 그래서 한참을 기다렸습니다. 치료에 들어가셨는데 몸이 한 9kg정도가 빠지셨습니다. 그런데 지금에 와서 이렇게 돌아보고 나니깐 대부분 그 상황에서 돌아가신다고 합니다. 대부분 한 50% 정도는 돌아가신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균이 들어와서 피를 썩힌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속도는 엄청납니다. 불과 한 이틀 사이에 사람들이 죽곤 합니다. 그런데 아주 적절한 때에 그래도 병원에 옮기셔서 치료를 받았는데 이제 거의 다 잡혔습니다. 그래서 이번 주말이나 다음주 초쯤 서울로 올라 오시는데 눈을 바이러스가 핏줄을 타고 눈까지 침투한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안과 치료하고 다니시는데 시력이 많이 안좋아 지셨습니다. 그런데도 가가지고 몇마디를 하는데 계속 눈물을 흘리시는 것입니다. 그게 뭐냐하면 정말 이제는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며 사는 것 밖에는 정말 이상에 믿을만한 아무것도 없구나 젊음도 건강도 물질도 이 세상의 지위도 사람이 죽음 앞에 딱 서보면 견고하고 좋아보이는 것들이 얼마나 우리가 의지할 수 없는 것인가를 깨닫게 됩니다. 그런데 어느때보다도 병상에서 기도 많이 하시고 하나님 의지하시고 요즘에는 많이 위로해 드리고 그리고 점심때 올라 왔습니다. 외과적인 치료를 거의 기적적으로 병원의 의사들이 거의 기적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빨리 나빠지는 경우도 처음이었고 이렇게 빨리 치료되는 경우도 처음이었답니다. 그래서 의사들이 좋아합니다.
그러니까 우리들이 인생을 이렇게 돌아보면 좋고 평안한 것을 통해서 우리의 영혼도 함께 좋아지는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시련과 고난속에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좋은 일을 행하시고 이 시인도 그렇게 악인들에게 이상히 여김을 받는 이 삶의 고통스러운 상황을 통해서 오히려 하나님을 자신의 견고한 피난처로 삼았던 것입니다.
(찬양)
우리 죄와 강퍅함 주님께 기도하니 우릴 불쌍히 여기사 치료의 은혜 허락하시네
그래서 시인이 고난당한 것이 나에게 유익입니다. 고난당하기 전에는 그릇 행하였더니 아 이제는 주님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습니다. 고백을 하는 것입니다. 그 고난속에서도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은 양심에 ?(5:13) 맞은 사람들, 마음에 하나님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이 시인이 그렇게 고난을 자신의 유익한 기회로 삼는 것입니다.
(예화) 여러분 꽃밭에 가면 꽃들이 냄새를 확 풍깁니다. 향기롭습니다. 그게 뭡니까? 벌레나 이런 것들이 공격을 하면 꽃냄새가 더 많이 납니다. 그래서 이렇게 막 괴롭히면 냄새가 더 납니다. 그게 뭐냐면 자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 벌래나 해충들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향기를 뿜어내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시밭에 백합화가 향기가 날린다라는 의미가 그렇다고 바람에 흔들리면 가시에 툭툭 찔리지 않습니까? 그러면 살겠다고 몸부림 치면서 향기를 뿜어내는 것입니다. 그래서 백합화가 핀 계곡에 향기가 진동하는 것입니다. 참 신비한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늘 말씀드리지만 인간은 좋은 것을 통해서만 좋은 것이 온다고 믿지만 하나님은 나빠보이는 것을 통해서 오히려 좋은 것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시인은 말합니다. 주를 찬송함과 존숭함이 종일토록 내 입에 가득할 것입니다. 이게 무엇입니까?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라는 고백입니다. 그런데 참 신기한게 이 세상에 있는 것을 많이 주실 때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내게 부족함이 없습니다 라고 고백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영혼의 빈 잔을 가득 채우실 때 그 때 비로소 우리가 내게 부족함이 없습니다 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이유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하나님이 못하시는 것이 있습니다. 인간의 욕망을 채우는 것은 하나님이 못하십니다. 능력이 모자라서 못하신다기 보다는 하나님의 성품에는 맞지 않는 것을 인간이 요구하기 때문에 하나님 자신이 그것을 행하실 수 없는 것입니다. 인간이 악을 원하는데 하나님이 악을 행해서 인간을 만족시키실 수 있겠습니까? 또 얼마나 악을 행하면 인간이 그 악이 더 이상 원하는 것이 없을 정도의 만족을 누릴 수가 있겠습니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인간이 원래 하나님을 닮은 존재이기 때문에 인간의 욕망의 세계는 끝이 없습니다. 그 욕망이 무엇인가하면 하나님의 지복을 흉내 내는 것입니다. 그것이 행복하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인간의 욕망을 채우심으로써 인간이 이렇게 내 잔이 넘치나이다 이렇게 고백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주님이 은혜를 넘치게 하심으로써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런 것들이 필요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마음에 넉넉함과 풍요함을 한없이 느끼는 것, 이것이 진정한 신자의 만족입니다. 그러니 만족을 누리고 나니까 주님을 찬송하는 것 주님을 높이는 것 이것이 하루 종일 내 입에 가득합니다. 입에 가득한 것은 마음에 가득합니다. 마음에 저주와 불만이 가득한 사람은 끊임없이 욕지거리를 쏟아냅니다. 그리고 마음에 헛된 것으로 가득 찬 사람들 그 입에서 허탈한 말을 쏟아냅니다. 그러니까 입에 가득합니다. 하나님을 향한 찬송과 주를 높임이 가득합니다 이 이야기는 마음속에 그렇게 하나님이 소중하게 여기는 것, 그분을 높이 여기는 것, 그분의 존귀함과 위엄을 찬송하는 것이 마음속에 가득 찬 상태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하나님을 깊이 찬송하고 경배하며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들에게 당신의 크신 사랑과 위엄을 보여주시고 그 능력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믿는 자들의 삶이다 라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