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을 섬기는 백성들
저희가 생존하여 스바의 금을 저에게 드리며 사람들이 저를 위하여 항상 기도하고
종일 찬송하리로다(시편 72:15)
녹취자: 강은혜
이 구절은 조금 어렵습니다. 이유가 뭐냐 하면은 ‘저희가 생존하여 스바에 금을 저에게 드리고’ 그랬는데, 저가 누군지 불명확합니다. 그래서 만약에 ‘저희가’ 라는 거는 번역을 의역한 거고, 앞에 나오는 ‘저’가 왕이 라면 뒤에 나오는 ‘저’는 왕 자신이 되든지 아니면 하나님이 되든지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문맥에 잘 안 어울립니다. 그래서 이제 여기 ‘저’ 라고 단수로 되어 있지만 그것을 백성들을 통칭할 때 단수로 받을 수가 있습니다. 흔하진 않지만 불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아마 이 번역자가 ‘저’라고 하는 것은 백성들 전체를 하나의 단일 집단으로 보고 ‘그 백성이 살아서’라고 한 것입니다. 근데 이 번역이 어울리는 이유가 뭐냐면 앞에서 강한 자들에게 압제를 당해서 죽을 지경에 있는데 왕이 가서 구해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들이 그 위기에서 왕의 판단력과 의로운 통치로 말미암아 살아나서 그래서 스바의 금을 왕에게 드리며 이렇게 번역이 되는 것입니다.
스바라고 하는 것은 당시의 나라인데 아마도 금이나 이런 보화들이 많이 나던 그런 장소 이었다고 믿어집니다. 근데 그런 것들을 스바 뿐만 아니라 욥기에 보면 오빌의 금이라는 이야기도 나오고, 그래서 우리로 말하자면 개성산삼 뭐 이런 것처럼 금이 어디서나 조금씩 나지만, 그러나 아주 양질의 금이 나는 그 산지의 금을 이야기하기 때문에 금이 특별한 좋은 금이라고 하는 것을 장소하고 연관 지어서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제 죽을 위기에 있는 백성들을 왕이 잘 건져내니까 그들이 열심히 사업을 하고 돈을 벌고 이렇게 부자가 되어서 그 금을 왕에게 바치는 것입니다. 우리로 말하자면 이제 세금을 낸다든지 이렇게 나라에 바치는 것입니다. 나라의 부강을 위해서. 그렇습니다. 이렇게 이야기 하는 것이지요. 여기서 우리가 발견하는 것은 나라가 어쨌든지 부강해지려면 백성들이 국가에 많이 헌신해야 합니다. 세금을 내는 것은 아주 성경적 입니다. 그래서 이런 세금을 포탈하고 부정직한 사회를 만드는 것은 옳지 않은 것입니다. 그 대신 정부는 합리적으로 법을 만들어서 그래서 그 법을 온전히 집행하여 이렇게 정부의 세금을 바치는데 있어서 불공평한 사람이 없고 더욱이 정직하게 세금을 내는 사람들이 손해를 보는 일이 없도록 그렇게 올바르게 국가를 이끌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나라가 강해진다고 하는 것은 두 가지 측면입니다. 하나는 뭐냐 하면은 사회는 조금 뒤떨어져도 나라가 아주 강한 나라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것을 가리켜서 사회학에서 ‘국가발전모델’이라고 하는 것이지요. 예를 들자면 일본이나 미국 같은 나라들이 그렇게 하는 것이지요. 이런 나라들을 강대국을 지향합니다. 그래서 함부로 넘보는 나라가 없게끔 그렇게 다스리는 것이지요. 미국 같은 나라가 아주 대표적인 국가발전 모델을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정된 의료보험법이 미국에서 통과되기 전까지만 해도 2억 5천만 명 정도 되는 미국 사람들 중 의료보험 혜택을 전혀 받을 수 없는 사람이 4천 5백만 명이었습니다. 그러니까 그래서 하는 말이 미국 가난한 사람은 한국 가난한 사람보다 더 비참하다는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그 대신 강대국이 됩니다. 국방비를 지출하는데 중국이 저렇게 군사력을 팽창한다고 미국에서 그렇게 욕을 하고 비난하는데 자기네는 중국의 거의 3배를 씁니다. 그러니까 미국에서 쓰는 그 국방비가 일본, 한국, 중국, 러시아를 합친 것보다 더 많습니다. 어마어마한 돈을 씁니다. 어쨌든 굉장합니다. 그러니까 강대국을 이루어나가는 것이지요.
그러나 또 이제 유럽이나 이런 나라들을 보면 나라가 그렇게 강해지는 것보다는 사회가 잘 살게 되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국민들로부터 세금을 아주 많이 걷어서 소득이 높으면 10억 원을 벌면 5~6억 정도를 걷어갑니다. 더 걷어 갈 것입니다, 아마. 그래서 그것을 모두 골고루 복지에 사용을 해서 잘 살게 하는 것이지요.
오늘날 논쟁이 벌어지는 게 우리나라에서도 ‘국가발전모델’을 택할 것이냐, ‘사회발전모델’을 택할 것이냐 입니다. 저는 캐나다나 호주 같은 곳을 가면서 느끼는 것이 뭐냐 하면은 물론 이제 기후 문제도 있겠지마는 나라가 그렇게 가난하게 느껴집니다. 길도 다 낡았습니다. 근데 백성들은 부자입니다. 우리는 그러니까 미국식 모델을 따르는 것이지요.
어떤 쪽을 택하는 것을 우리들이 절대적으로 좋다 나쁘다 이야기 하거나 판단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은 아니지만은 그러니 이제 둘 다 뭐 장점도 있고 단점도 있겠지마는 그러나 분명한 것 하나는 이제 좋은 것은 뭐냐 하면은 나라가 백성들의 민복을 위하여 힘쓰고, 정의와 공평을 확고하게 할 때에 그래서 백성들이 예측할 수 있는 환경 속에서 살면서 산업을 하고 돈을 벌게 되면 그것이 국가가 먼저 해야 할 일이고, 그렇게 해서 나라에 세금을 내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백성들을 수탈하는 그런 나라의 체제가 되지 말고 백성들을 행복하게 하고 잘 산업을 하게 해서 그것을 거두어 나라가 이루어지게 되는 이것을 위하여서 필요한 것이 무엇이냐면 하나님이 왕에게 판단력과 하나님의 의, 이사야서 5장에 의하면_ 공평과 의(공의). 이것을 하나님께서 누리면서 살 수 있도록 그렇게 국가를 다스려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국가가 정말 잘 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나라 보면서 분통 터지는 게 너무 부정직합니다. 그리고 부패합니다. 근데 이것은 용납하지를 말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이런 속에 살면서 그런 것들을 대충 야합하고 그러면서 자신도 그 속에서 이익을 얻고 그렇게 살아가면 나라가 희망이 없습니다. 그런 것들을 우리가 여기서 한 번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백성들이 이렇게 공평하고 안정된 가운데 생업에 종사하고 그럴 수 있도록 도와주고, 그리고 백성들은 국가에 자기의 수입의 일부를 바쳐서 국가로 하여금 이러한 공평과 의를 모든 백성들에게 골고루 펼칠 수 있도록 그렇게 해야 되는 것은 너무너무 당연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일을 아주 중요하게 생각을 해야 되는 것이지요.
(예화) 최근에 외국에서 선박사업을 해서 수조원의 돈을 번 사람이, 단 십 원도 세금을 내지 않았다고 해서 발칵 뒤집혀서 국세청에서 벼르고 도전을 하는데 그건 잘못된 것이지요. 교묘한 방법으로 탈세를 하는 것이지요. 한국의 기업이 없었고 한국에서 벌어들인 수입이 아니기 때문에 한국에서 세금을 안낸다 말했습니다. 그러면 외국에 나가서 LPGA 같은데서 골프 해서 상금을 탄 사람들은 에누리 없이 한국에 와서 세금을 냅니다. 그러니까 어디서 사업을 했느냐가 문제가 아니라, 내가 한국 사람이라는 이유 때문에 소련에 가서 돈을 벌어왔어도 반드시 세금을 내야 하는 것이죠.
그런데 이러한 것들을 보면서 우리들이 어떠한 생각을 하냐면 ‘정말 그 나라와 그 국민의 관계가 어떠해야 하는가.’ 이런 것들을 우리가 생각하게 되는 것이죠. 많은 사람들이 나라에 세금을 내는 것을 강탈당하는 것처럼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근데 그것은 옳지 않습니다. 그 대신 정부가 합리적으로 올바르게 이런 세금의 정책들을 펼쳐야 하는 것이지요.
한 가지는 이제 이건 어떤 경우 입니까? 아주 기쁘게 나라에 헌신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라가 아주 공평하고 정직해야 합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에게 잘 해주고, 어떤 사람에게 잘못해주고 그럴 수가 없잖습니까. 그러니까 공평하고 정직하게 나라를 경영하고 그 안에서 백성들이 예측 가능한 행복한 삶을 살게 해야 합니다. 그래서 그렇게 살아서 나라로 말미암아 자신의 안정된 삶이 가능하고 혜택을 입는다는 느낌이 들 때에 그때에 즐거운 마음으로 헌신할 수 있는 것이지요.
두 번째는 뭐냐 하면 ‘항상 기도하고 종일 찬송 할 것입니다.’ ‘항상 기도한다.’ 라는 것은 왕을 위해 기도한다는 것이겠지요. 항상 그런 왕을 위해 기도할 것이며. 그러니까 정치 지도자가 국가와 사회에 미치는 영향은 너무너무 큽니다.
(예화) 그래서 이에이치카 라고 하는 역사가가 그런 말을 했습니다. 역사에는 무슨 법칙이 있는 게 아니라 역사의 전개는 한 지도자의 우연적인 성격적 특성과 관련된다. 그랬습니다. (옛날에는 무슨 법칙이 있다고 믿었습니다.) 히틀러 같은 경우 보십시오. 유대인에 대해서 그렇게 증오심을 품고 발작적인 성격을 가지고 전쟁을 일으키잖습니까. 그래서 전쟁에 위협이 되던 소련과 미국을 잠재우고 체코, 폴란드, 프랑스 등과 전쟁을 합니다. 그러니까 2차 대전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런 것을 이렇게 보면 무슨 생각을 하게 되냐면, 무엇인가 나라가 올바르게 돼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 사람이 왜 그렇게 미친 듯이 유대인을 600만 명이나 학살 하냐 하면은 우연적인 것입니다. 어렸을 때, 첫 사랑에 빠집니다. 그런데 그는 아주 가난하였습니다. 그래서 우리로 말하자면 공장 같은 곳을 다녔는데, 성폭행을 당하고 아주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받았습니다. 근데 그 사람이 사장이었는데 유대인이었습니다. 그 뒤로 이 어린 상처가 자라면서 폭력적인 성격으로 변해서 완전히 유대인을 말살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무슨 법칙이 있는 게 아니라, 장구한 무엇이 있는 것이 아니라 씨를 말려 죽여야 하겠다는 증오감이 우연적인 특성이 역사의 방향을 결정하는 것입니다. 그런 게 문제입니다.
그래서 한 지도자가 정말 올바르게 된다는 것은 너무너무 중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내가 동의하는 사람이든지 동의하지 않는 사람이든지 간에 누군가가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현실적인 것이잖습니까. 그렇지요? 대통령만을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요. 그렇기 때문에 그들을 위해서 기도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기도해서 하나님이 통치자를 붙들어 주시도록. 그래서 하나님을 의지할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하나님이 일반은총의 차원에서 우리의 생활에 주실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 좋은 지도자입니다. 그게 중요한 것입니다.
마지막 세 번째는 ‘종일을 찬송할 것입니다.’ 그랬습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아주 중요한 깨달음을 줍니다. 그것이 뭐냐 하면 왕에게 열광하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그 모든 왕의 선한 통치, 국가의 부강을 통해서 마지막 영광을 받으셔야 할 분은 하나님이시지요. 그래서 하나님께 찬송하는 것입니다.
교회가 정치에 깊이 관여하는 것은 좋은 것이 아닙니다. 더욱이 절대적인 판단을 내릴 수 없는 문제에 대해서 교회가 개입하는 것은 바보 같은 행동 입니다. 어제 말씀드렸지만 성경과 교회가 가르치는 가르침을 위반하여 우리에게 강요하거나 현저하게 공평과 정의의 법칙을 위반하여 법을 제정하고 그리고 백성들을 억압할 경우에는 하나님이 백성들에게 저항할 수 있는 권세를 주신 것입니다. 지킬 필요가 없습니다. 그게 ‘저항권’입니다. ‘국민저항권’이지요. 그러한 것들이 백성들이 가지고 있는 권한인 것입니다. 항상 유보해야 되는, 아무 때나 나서서 그러면 안 됩니다.
(예화) 이번에도 보면 그 무상급식 문제를 가지고 서울시에서 투표를 하는데 교회 지도자들이 예배시간에 그 중에 하나를 교인들에게 하도록 설득을 하는 겁니다. 그건 바보짓 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상대적인 것이어서 어떤 사람은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고, 어떤 사람은 저렇게 생각할 수도 있고 둘 중에 어느 하나를 택해도 그것은 현저히 공평과 정의에 어긋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가 A는 잘못됐다, B는 잘못됐다 그러고 정부를 향해서 삿대질을 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국민 저항권에 해당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교회가 슬플 정도로 그런 판단을 잘 못합니다. 정말 저항하고 분명히 일어서야 할 지점에서는 안하고, 야합하고, 나서서는 절대 안 되는 지점에서는 나서서 교인들의 마음을 찢어놓고 교회를 갈라놓습니다. 그것은 옳지 않은 것이지요. 왜냐하면 교회 안에는 이런 생각 저런 생각 가진 사람들이 모두 모이고 곤고한 그 사람들이 하나님께 은혜를 입어 신앙을 따라서 자신이 확신하는 길을 걸어가려는 사람들입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좀 많은 생각을 해야 되는 것이지요. 왕이 하나님 앞에 간절히 판단력과 의를 구한 것은 그렇게 백성들을 건져내서 화합하는 국가가 되고, 그리고 그들이 영적인 생활에 충실해서 그래서 이 독특한 이스라엘 나라를 위하여 하나님 앞에 기도하지 않을 수 없도록 그런 나라가 되고, 그래서 결국은 통치를 통해서 백성들이 하나님을 더 잘 알게 되는 나라가 되도록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나라를 위해서 기도를 많이 해야 합니다. 물론 대통령도, 국무총리도, 대법원장도, 심지어는 저 말단 공무원에 이르기까지 모두 예수를 믿게 해달라는 기도도 필요하지요. 근데 국가에게 기대해야 하는 바는 그들이 모두 예수 믿는 것. 그것도 우리가 기도해야 할 바이지만, 더 중요한 것은 국가로써 올바르게 나라를 정직과 공평으로 다스릴 수 있는 그런 용기와 지혜를 갖도록 하나님 앞에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라를 위해서 많이 기도하고, 하나님을 더 많이 의지해야 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