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영을 주시는 하나님
산 꼭대기의 땅에도 곡식이 풍성하고 그것의 열매가 레바논 같이 흔들리며 성에 있는 자가 땅의 풀 같이 왕성하리로다. (시 72:16)
녹취자: 이태경
어제가 백성들이 왕을 공경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는 것이라면, 오늘 우리가 읽은 이 16절에서는 왕이 그런 의로운 판단과 하나님의 의를 가지고 백성들을 다스릴 때 하나님이 어떻게 그 나라를 복 주시는지 산업에 대한 이야기가 등장하고 있습니다. 원래 어디든지 곡식을 많이 거두기 위해서 지형이 고르지 못한 곳에서는 땅의 소득을 극대화하기 위해서 언덕은 물론 산꼭대기에도 작물을 심습니다. 산꼭대기에 있는 지형은 사실 하늘만 바라보고 농사를 짓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우리도 그러한 논을 ‘천수답’ 이라고 불렀습니다. 그야말로 운명에 맡기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무도 산 아래서부터 물을 길어날라서 산꼭대기에 있는 그 밭이나 논에 물을 댈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하늘이 비를 제때 내려야만 모종을 내고 씨를 뿌리는 것이고, 또 뿌린 후에도 제때 비가 와야지만 자라는 것이니 추수할 때까지 온전히 하늘만 바라보고 농사를 짓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에 보면 ‘산꼭대기의 땅에도 화곡이 무성하다.’ 그렇다면 산 아래의 평평한 땅에는 어떻겠습니까? 상상할 필요도 없겠지요. 하늘만 바라보고 농사를 짓는 척박한 산꼭대기에도 곡식이 풍성하다면, 아래에 있는 평평한 땅에서의 농사는 말할 필요도 없을 것입니다. 아무리 기가 막힌 아이디어로 나라를 다스린다 하여도 일단 나라에 백성들이 먹을 것이 풍성하지 않으면 사회는 각박하여지고 험한 범죄가 그치지 않는 것 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곡식, 식량의 문제는 두말 할 필요 없이 너무도 중요한 생존의 문제입니다. 지금은 무역도 활발하고 농업도 대규모화되어서 이 나라의 양식이 없으면 여러 나라에서 사올 수 있도록 양식이 흐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옛날 사회에서는 자기네가 농사지어서 자기네가 먹을 뿐 국제 무역이라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어떤 사람은 중국의 인구가 13억이라는데 저 나라가 배불리 먹고 사는 게 전 세계의 행복이라고 말합니다. 만약에 저 큰 나라가 굶주린다든지 어떤 문제가 생기면 전 세계적으로 얼마나 어려운 일이 생기겠느냐 라는 말입니다. 이스라엘은 굶주림의 역사를 많이 가지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하나님이 좋은 통치자를 세우셔서 그에게 하나님의 판단력과 의로움을 주셔서 나라를 통치하게 하실 때에 하나님께서는 일반 섭리 속에서도 그 나라에 복을 주어 잘 먹고 잘 살도록 하신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역사도 마찬가지 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왕이 공평과 정직을 떠나 불의하게 폭압적으로 나라를 다스리는 것 보다는 오히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왕이 공평과 정직으로 나라를 다스릴 때 하나님은 그 나라에 더 큰 복을 주실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우구스티누스가 로마의 큰 번영을 일구었던 오현제의 시대를 생각하면서 그들이 공평과 정직으로 나라를 다스렸기 때문에 비록 일반 섭리이었지만 하나님이 그들을 복 주신 것이라고 역사를 회고하는 이야기가 ‘신국론’에 나옵니다. 바로 그런 복을 하나님께서 주셨다는 것입니다. 이 ‘열매가 레바논 같이 흔들린다.’ 이게 무슨 뜻일까요? 히브리어 성경에서도 ‘레바논 같이 흔들린다.’ 라고 나오는데, 이 레바논은 땅의 이름이고 원래 히브리어로 레바논이라고 하는 것은 ‘하얀 산’ 이라는 뜻입니다. 산이 흔들릴 리는 없으니까 산지를 이야기하는 것일 텐데 아마도 이 레바논에서 나는 곡식 혹은 나무들이 열매를 풍성히 맺어서 바람에 풍성하게 흔들리는 것처럼 산꼭대기에서도 그렇게 될 것이다, 그러니까 간신히 곡식이 자라는 정도가 아니라 풍성한 소출이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성에 있는 자가 땅의 풀같이 왕성하리로다.’ 라고 나옵니다. 이것은 그 성에 거하는 거민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 거민들이 성 밖에서 농사를 짓습니다. 그때에 성 밖의 곡식들이 자라기를 산꼭대기에서도 풍년을 거둘 정도로 무성히 자라고, 성 안에서는 사람들이 땅의 풀 같이 왕성하리라는 것입니다. 풀이라는 것은 이사야에서 나오는 것 같은 ‘하찌르’라는 단어인데 일년생 풀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흔한 풀이나 잔디, 잡초 풀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구약에서 풀은 생명력의 상징입니다. 이것은 성안에 백성들이 사는데 왕이 하나님의 판단력과 의를 가지고 통치할 때 백성의 번성함을 주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당시의 나라는 국가의 힘, 경제력이라고 하는 것은 농경사회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농사를 짓느냐에 달린 것이기 때문에 경제력, 군사력 할 것 없이 모두 국민의 수에 의존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강대국은 얼마나 많은 군사를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서 그 나라의 강성함의 정도를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백성들이 번성해서 자식들을 낳고 그들이 또 자식들을 낳으면서, 백성들이 눈에 띄도록 그 숫자가 늘어나는 것은 왕국의 커다란 명예였습니다. 그래서 임금들은 백성의 수가 많아지면 든든해지는 것입니다. 잠언을 보면 ‘왕의 영광은 그 백성들의 수에 있으며...’ 라고 나와 있습니다. 백성들의 수가 얼마나 많으냐가 왕의 영광과 관련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백성들의 수가 많아지게 되면 다른 나라를 정복할 때 전쟁에서 싸울 수 있는 군인의 수 또한 많아지는 것입니다. 옛날처럼 사람과 사람이 맞부딪쳐 싸우는 경우에는 당연히 숫자가 얼마나 되느냐가 좌우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의 제국을 형성하는 것입니다. 제국을 형성하려면 많은 사람이 필요합니다. 16세기의 마추픽추의 유적에서 보는 것처럼 잉카 제국의 역사를 보면 한창 때에 이 페루 쪽으로 약 4000km 정도의 영토를 만들고 마추픽추는 그 많은 방사형의 도시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그 나라의 인구가 8000만 명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지금도 8000만 명이라면 작은 나라가 아닙니다. 그 당시에는 그 나라가 엄청났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잉카제국도 마찬가지고 만주나 우리나라 그리고 캄보디아의 크메르 제국 같은 나라들의 유적지를 보면 정말 굉장합니다. 실로 어마어마합니다. 어떻게 이렇게 어마어마한 제국의 도성을 건설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또한 그들의 사상도 굉장히 깊이가 있습니다. 신기한 것은 이런 것들이 하루 아침에 역사 속에서 사라진다는 것입니다. 무엇 때문이겠습니까? 바로 질병입니다. 전염병 같은 것들이 도는 것입니다. 평민이고 왕족이고 할 것 없이 강력한 돌림병에 모두 목숨을 잃는 것입니다. 외부의 침임의 흔적이 하나도 없는 아주 아름다운 유적은 그대로 남겨두고 사람만 죽는 것입니다.
이스라엘도 그러한 역사들을 많이 보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왕이 나라를 잘 다스릴 때 하나님께서 그러한 재앙으로부터 막아주시는 것입니다. 오히려 다산의 축복을 주셔서 백성들이 계속 자손을 낳으면서 계속 번성해가는 것입니다. 마치 잡초와 풀이 웬만한 기후조건에서는 강한 생장력을 가지고 살아남는 것처럼 성의 거민들이 땅의 풀처럼 왕성하게 될 것이라고 시인이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주시는 복입니다. 그래서 어제 말씀드린바와 같이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라와 지도자들을 위해서 간절히 기도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국가가 하나님의 법에 어긋나게, 하나님이 주신 천부적인 인권을 약탈하고 현저하게 하나님의 공의에 어긋나게 통치한다면 백성은 그 통치에 굴복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래서 반란이 일어나는 것이죠. 지금 리비아에서 일어나고 있는 카다피 정권에 대한 반항은 정당한 것입니다. 카다피는 결국 쫓겨났고 세계적으로도 속속 반군정부를 인정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모습들은 성경적으로 봐도 옳은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가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며 살아갈 힘을 정치권력화해서 무엇인가 이 세상살이에 있어서 정치적 이득을 얻으려고 하는 시도들은 성경적으로 올바른 국가관이 아닙니다. 오히려 교회와 국가는 거리를 두어야 합니다. 그리고 오히려 한 발짝 떨어진 곳에서 국민으로서의 의무를 다하고, 국가가 올바르게 하지 못할 때 정치의 일환 혹은 교회를 정치·권력화 하는 것이 아니라 선지자적인 지적을 통해서 경고하고, 현저하게 하나님의 말씀에서 어긋나 통치하고자 할 때에는 저항을 해서 막아야합니다. 그리고 돌이킬 수 없이 정부가 악의 길로 갈 때에는 정복시켜서 새 정부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는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다스리실 때 국가를 통해서 일반은총의 질서들을 규율하고 다스리신다는 것을 분명히 인식하면서 나라의 어떠함, 정부의 도덕적이고 건강함 이런 것들이 그리스도인의 중요한 관심사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기도제목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사람들이 이 사회에 살기에 정부의 잘못된 정치로 인한 고통을 받지 않도록, 그렇게 하나님 앞에 기도하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또 예수를 믿는다는 이유 때문에 이익을 보는 나라도 좋은 나라가 아닙니다. 그래서 다른 종교가 박탈감을 느낀다면 결코 좋은 것이 아닙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의 정치 집단들이 뭉쳐서 권력이 부당하게 행사되고, 그것에 참여하는 그리스도인들이 정치적 이득을 얻는다면 그 모습들은 아주 추한 것입니다. 정부에서 그런 혜택을 준다고 해도 교회에서 거부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공평과 정직으로 나라가 다스려지도록 의연하게 살아갈 때에 그리스도인들이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는데 이바지 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