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로운 나라의 번영
저희가 해가 있을 동안에 주를 두려워하며 달이 있을 동안에 대대로 그리하리로다 저는 벤풀에 내리는 비같이, 땅을 적시는 소낙비같이 임하리니 저의 날에 의인이 흥왕하여 평강의 풍성함이 달이 다할 때까지 이르리로다
( 시 72 : 5 - 7 )
녹취자 : 이시내
그렇게 그 나라의 가치가 하나님의 의와 그리고 하나님의 의 올바른 정의를 이루는데 있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이렇게 올바르게 나라를 다스리게 되면 그러면 어떤 일들이 생겨나는가 이것을 5절부터 7절 사이에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의로운 나라의 번영에 대해서 가르쳐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이냐하면 제일 먼저 백성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 두려움에는 우리들을 종을 만드는 두려움이 있고 우리를 자유자로 만드는 두려움이 있습니다. 종을 만드는 두려움은 두려움을 느끼기 때문에 그 공포 속에서 복종을 하는 것입니다. 이런 삶은 사실은 하나님의 형상을 심각하게 파괴하는 삶입니다. 그런데 올바른 두려움은 그 두려움 때문에 종이 되는 두려움이 아니라 오히려 자유하게 되는 두려움입니다. 그러면 종이 되는 두려움과 자유하는 두려움이라고 하는 것이 무슨 차이일까 이런 것 아니겠습니까 우리들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아주 충만한 은혜가운데서 신앙생활 할 때에 아주 분명하게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두려움이라고 하는 것이 내가 이렇게 하면 하나님이 나를 벌주실지도 몰라 이런 종류의 두려움이 아니지 않습니까 내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내가 하나님께 사랑을 받는데 그런데 나의 이러이러한 불순종이나 혹은 주의 깊지 않은 행동들로 인해서 우리 하나님의 마음에 아픔을 드리면 어떻게 하나 이런데서 오는 관계가 깨뜨려질지도 모른다라는데서 오는 두려움입니다. 이런 두려움은 사실 은혜를 받기 전까지는 생겨나지 않습니다. 누군가 사랑하게 되기 전까지는 그 관계가 깨어질지도 모른다라고 하는 두려움이나 이런 것들이 생겨나지 않습니다.
그러면 그렇게 된다면 여기에서 이야기 하는 해 있을 동안에 달 있을 동안에 대대로 이런 이야기는 무엇이냐면 예외 없이 언제나 그런 뜻입니다. 밤이나 낮이나 혹은 애비가 죽고 자식으로 대가 이어지고 그 자식이 죽고 다시 손자로 대가 이어져도 언제나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그치지 않을 것이다 라고 하는 것이 이 시인의 마음속에 있는 전망이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위에 실현하는 한 가치입니다. 그래서 그렇게 왕이 하나님의 판단과 그리고 의를 받아서 나라를 올바르게 다스릴 때 첫 번째 효과는 백성들도 하나님을 함께 두려워하게 되는 것입니다. 자녀들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신앙의 실제를 입으로 가르쳐 주는 것은 쉽지만 실제를 보여주는 것은 부모의 삶입니다. 삶을 통해서 자녀들에게 아주 분명하게 하나님을 그렇게 두려워하고 사랑해야 할 존재라는 것을 자녀들에게 가르쳐주는 것 그것이 바로 그들에게 신앙을 심어주는 것입니다. 아무튼 그렇게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나라 안에 가득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럼으로써 이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뜻을 좇아서 생활하며 하나님의 뜻을 좇아서 믿음으로 살아갈 커다란 소망을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저는 벤 풀이 내리는 비같이 땅을 적시는 소낙비 같이 임하리니 여기서 저는 왕입니다. 왕이 벤 풀에 내리는 비같이 이제 풀이 성경에서 벤 풀이라는 표현이 여러 번 나오는데 이것은 무슨 뜻이냐 하면 생명의 근거가 잘리워져 버린 사람들을 가리킬 때에 벤 풀이라고 부릅니다. 그래서 아주 덧없고 허망한 것을 가리킬 때에도 벤 풀이라는 말을 사용을 합니다. 무슨 뜻이냐 하면 시골에서 자라신 분들은 잘 알지 않습니까 아침에 논둑에 나가서 풀을 막 벱니다. 왜냐하면 잡초가 많으면 어쨌든 땅의 지력을 자꾸 빨아들이니까 막 베어버립니다. 그 벤 것을 갖다가 꼴일 경우에야 그것을 베어서 다 묶어서 가지고 가서 짐승을 주지만 이것이 잡초여서 베어버린 경우는 신경 쓰지 않고 내버려둡니다. 그러면 막 길같이 시퍼렇게 자란 놈을 막 낫질을 해서 확 던져버리면 잘라놓은것이 산더미처럼 더미더미 쌓인 것이 보입니다. 신경도 쓰지 않습니다. 내버려둡니다. 내버려두어도 됩니다. 그러면 뜨거운 햇빛이 내리쬐고 저녁때가 되면 다 지푸라기처럼 말라버리고 그 다음날이면 그야말로 티끌 같은 지푸라기가 되어서 그런게 있는지 없는지도 보이지가 않습니다. 더군다나 오늘 여기에 뭐라고 하고 있느냐 하면 그렇게 벤 풀 위에 내리는 비같이 어떻게 됩니까 풀을 잔뜩 베어놓았는데 비가 확 쏟아지고 나면 썩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뿌리가 잘린 채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에게 왕은 왕이 임하기만 하면 그 위에 물을 붓는 것과 같아서 다 덧없이 말하자면 썩어서 사라져버리는 것입니다. 누구를 가리키는 것이겠습니까 악인들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어느 임금이 다스리는 시대에도 악인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악인들은 선정을 베풀고 하나님의 공의를 쫓아서 나라를 통치하시려고 하는 그런 왕국에서는 존속하지 못합니다. 그런데 왕이 부패하고 나라가 온통 타락했을 때에는 아주 거기에 깃들여서 기생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번성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나라를 다스리는 지도자의 정신이 얼마나 중요한가 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저는 벤 풀에 내리는 비같이 이것이 바로 뿌리가 잘린 악인들을 향한 급속한 멸망의 왕이 이바지하는 것을 보여준다면 뒤에 내리는 땅을 적시는 소낙비같이 라고 하는 이것은 번영을 가지고 오는 비입니다. 소낙비라는 표현을 썼지만은 아시다시피 팔레스타인에서는 강수량이 매우 적습니다. 매우 적어서 그래서 심지어 옛날에는 지붕을 개조해서 빗물이 쏟아지면 그 빗물을 받아서 땅속에 받아두었다가 그 물을 사용할 정도로 그렇게 물이 적은 나라입니다. 그러니까 때맞춰 내리는 이 비를 가지고 파종도 하고 또 농사도 짓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왕이 하나님께로부터 판단을 받아서 의롭게 나라를 다스릴 때에 한편으로는 악인들을 소멸하게 하고 또 한편으로는 하나님 앞에 올바르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번영을 주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의로운 나라의 영광입니다.
마지막으로 저의 날에 의인이 흥왕하여 평강의 풍성함이 달이 다할 때까지 이르리로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호되시라고 하는데 달은 아주 재미있는 물건입니다. 이스라엘 뿐만 아니라 근동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다 달을 신비롭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달이 동그랗지 않습니까 보름달에 그런데 이제 찌그러지기 시작합니다. 누가 와서 베어 먹는 것처럼 다 베어 먹으면 그 다음에는 다시 또 동그래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다시라는 히브리 단어가 새롭다 이런 뜻입니다. 그러니까 달은 어떤 것입니까 다함이 없는 것입니다. 짤라지는 것 같다가는 다시 또 새로워지고 그다음에 짤라지는 것 같지만 다시 또 새로워지고 그 이야기가 무엇이냐 하면 영원무궁하다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니까 이제 이 시인이 의인이 흥왕하여 평강의 풍성함이 번영하고도 만약에 평화롭지 못하다면 의미가 없지 않습니까 옛날에 그 누굽니까 이라크 사태에 개입을 했지 않습니까 전쟁을 했지 않습니까 사담후세인입니다. 죽고 그 다음에 아들들도 다 죽었습니다. 죽은 다음에 미군들이 가서 뒤져보니까 아들집에서 1억 달러가 나왔습니다. 어마어마한 미국 돈이 나온 것입니다. 그러면 뭐합니까 써보지도 못하고 죽었는데 그러니까 아무리 번영해도 평화가 없으면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오늘 성경에 보니까 의인이 아주 흥왕하게 될 뿐만 아니라 평강의 풍성함이 영원히 계속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되지 않았습니까 그러면 충분하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복이 평강이 아주 풍성하고 그리고 하나님의 주시는 그 번영이 가득한 나라가 되는 것 그러면서도 평강을 누리는 것 이 평강은 하나님과의 평화가 이 땅에서 사람들 사이에서도 이루어지는 것을 바로 평강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그것이 나라의 진정한 가치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 나라는 늘 인간의 욕망과 이기심들이 개입되기 때문에 완전한 나라가 아닙니다. 교회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인간의 타락한 부패성들이 남아서 완전한 나라가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결국은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와 율법 그리고 주님이 주시는 선한 뜻을 바라보면서 나라와 교회 모두 온전히 지기를 애쓰지만은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다스리시는 궁극적인 통치가 가져다줄 커다란 행복을 보여주는 그림자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땅에 있는 동안에는 주님이 직접 다스리시지 않으시니까 은혜를 통해서 다스리시니까 우리들이 교회가 하나님의 은혜를 많이 받고 각자가 하나님의 은혜의 지배의 통치에 복종하며 살아가게 될 때 그때 아름다운 열매를 많이 맺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힘을 다해서 이 땅에서 주님의 통치를 나의 삶속에 교회 안에 나라 안에 구현해 나가길 힘쓰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들이 이런 통치에 역행하는 삶을 산다면 그것은 넓은 의미에서 하나님께 대한 반역이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