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야에서 보호하심
“그가 자기 백성은 양 같이 인도하여 내시고 광야에서 양 떼 같이 지도하셨도다
그들을 안전히 인도하시니 그들은 두려움이 없었으나
그들의 원수는 바다에 빠졌도다“ (시78:52-53)
녹취자: 김유진
51절까지 하나님이 애굽에서 십대 재앙을 내리심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탈출하게 하신 사건을 기록합니다. 52절부터는 출애굽 후, 가나안에 정착하여 역사를 이어가는 내용이 끝까지 계속됩니다. 52절 이하의 내용은 51절 이전의 내용과 분명한 대조를 이룹니다. 하나님께서 애굽을 다루는 방식과, 이스라엘을 다루는 방법이 현저하게 대조를 이룹니다. 애굽은 하나님이 징벌하심으로 그들을 치심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인도하며 지도하시면서 다루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그들을 다루시기를 진노로 길을 닦으사 죽음을 면하지 못하게 하셨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을 다루시는 방법은 "양같이 인도하시고 양 떼 같이 다루셨습니다." 성경에서 양이 많이 등장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양이라고 부릅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동물들은 자기 보호 기능을 어느 정도 가지고 있는데 양은 자기 보호 기능이 전무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세계적으로 산양이 엄청 많았는데 멸종위기에 놓였습니다. 그래서 산양을 배꼽으로 만든 것을 '사양'이라고 하는데 굉장히 귀합니다. 세계적으로 협약을 맺어서 그것을 채취하지 못하게 하여서 우황청심환을 사도 이제는 사양성분이 없는 약이 대부분이 바로 그 이유입니다. 더군다나 여기서 양떼는 산양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대대로 목축업을 하면서 길러온 양을 말합니다. 하나님이 선택한 백성을 양이라고 하고 일반인도 양으로 비유하는 경우가 많이 있는데 이것은 다음을 지시합니다. 모든 짐승이 자기를 보호하는 기능을 가졌지만, 양은 그러한 기능이 없습니다. 양은 홀로 광야에서 자라는 짐승이 아니라 창조부터 인간 가까이에서 인간의 돌봄을 받으며 자라는 가축입니다. 양에 이스라엘 백성들을 비유하신 이유는 그들은 하나님의 도우심과 돌봄을 받으면서 살아야하는 존재라는 것을 보여주려고 '양 떼'라고 부른 것입니다. 그들이 너무 착해서 양 떼를 부른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양 떼를 돌보시는 마음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돌본다는 의미로 그들을 양이라고 부릅니다. 양은 맹수의 생활방식과는 다르게 삽니다. 맹수도 물론 무리를 지어 생활하지만, 수백 수천 마리가 무리를 이루지는 않습니다. 양 떼는 많은 숫자가 무리를 지어 사람의 돌봄을 받으면서 살아갑니다. 그것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특징이 되어야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양의 몇몇 특징을 살펴봅시다. 첫째, 양은 지독한 근시입니다. 그래서 멀리 있는 사물을 또렷하게 보지 못합니다. 길 잃어버린 양의 비유가 많이 나옵니다. 무리지어 가까이 살아야지 지독한 근시이기 때문에 외따로 떨어져 있다가는 돌아오지 못합니다. 둘째, 자기를 방어하고 남에게 해를 입힐만한 뿔 같은 무기가 없습니다. 그래서 당신의 자녀들이 혼자 자기 힘으로 살 수 있는 것처럼 씩씩하게 살아가는 것은 하나님은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 결과는 언제나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우리 신앙의 가장 진실한 표현은 하나님에 대한 의존입니다. 이 세상 끝에서, 모든 나라들에게서 영광 받으시기보다 당신을 의존하는 사람에게서 영광을 받으시기를 바라십니다. 하나님을 의존하는 마음이 사람에게 가득할 때 기도도 잘되고 헌신도 잘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위해 큰일을 하면서도 교만하지 않을 수 있는 힘이 의존함에서 나옵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하시고 이끄십니다. 양 떼 같이 인도하시고 지도하신다는 것은 목자가 양의 단점, 약점을 모두 알면서 -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서 목자는 아주 특별한데 - 양을 사랑하면서 인도했습니다. 그렇게 너희가 양을 소중하게 여기고 돌보고 이끄는 것처럼 하나님이 자기 백성 이스라엘을 그렇게 인도하셨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애굽의 탈출 때만이 아니라 그 이후에 광야에서 이끄시는 모든 역사를 염두에 두고 52절을 기록했습니다.
53절에서 다시 이스라엘 백성과 애굽의 사람을 대조합니다. 하나님이 그들을 인도하시되 안전하게 인도하시는데, 그 이유는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이 가야할 길을 아시고 인도하실 능력을 가진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을 안전하게 약속한 가나안 땅까지 인도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그들에게는 두려움이 없었지만, 그들의 원수를 징벌하셔서 이스라엘 추격하는 자들을 바다에 수장시키는 놀라운 역사를 이루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과 애굽의 백성을 인도하시는 놀라운 차이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특별한 은총을 받은 백성임을 보여주십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보호와 탁월한 인도 속에서 살았는데 -53절에서 동의가 잘 안되는데- 그들은 두려움이 없었다고 했습니다. 사실은 두려움이 없었던 것이 아니라 두려워 떨었습니다. 홍해 앞에서는 모세를 원망하며 폭동을 일으킬 기세로 대들어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두려움에는 두 종류가 있습니다. 첫째, 경건하고 건설적인 두려움이 있습니다. 이 두려움 때문에 하나님을 더 의지하고 기도하게 합니다. 둘째, 불경건하고 파괴적인 두려움이 있습니다. 이 두려움은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순종하게 만듭니다. 이 두려움이 처음부터 나뉜 것이 아니라 두려움을 받아들이는 사람의 마음이 어떤가 하는 것을 보여줍니다. 믿음이 있는 자는 너희를 잠잠히 있어 오늘 여호와의 행하심을 보라는 구절과 같이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날 기회라고 여깁니다. 역으로 믿음이 없는 자는 하나님이 여기로 우리를 이끌어서 수장시켜 죽이려고 이끌어냈다고 악에 바쳐 하나님과 지도자를 원망합니다. 매순간 살아가는 삶들이 합쳐져서 어느 결정적인 어려움이 올 때 서로 다른 믿음의 반응이 나오도록 만듭니다. 작은 일에 있어 매순간 믿음으로 사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보여줍니다. 그래서 나중에 쌓여서 결정적인 어려움이 올 때 파괴적이고 불경건한 두려움 대신 창조적이 경건한 두려움을 품고 하나님을 더 많이 의지하는 언약 백성의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하나님이 그들의 원수를 바다에 빠뜨리신 것을 보면서 하나님은 큰 영광을 받으시고, 이스라엘은 애굽을 재앙으로 치실 때 경험하지 못했던 더 큰 하나님의 능력과 권능을 체험하게 됩니다. 그 권능으로 이스라엘을 보호하심을 민족적으로 경험하면서 하나님이 이 모든 과정을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신앙을 점진적으로 성장시켜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까지 성장시키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양 떼처럼 지도하셨는데, 이것은 이후 광야의 모든 생활 속에서 하나님을 향한 절대의존의 마음속에서 살게 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우리의 신앙의 성공은 외적인 성취나 내적인 신념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살아가는 진실한 신앙생활에 있고 온 맘 다해 하나님 의지하며 살 때, 각자의 믿음을 따라서 광야에서 우리를 지도하시고 인도하십니다. 우리는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지만, 하나님은 다 아시고 인도하십니다. 저는 교회를 시작할 때부터 10년 후가 참 궁금했습니다. "20대에는 30대가 어떨까? 30대에는 40대가 어떨까?" 늘 10년 후가 궁금했습니다. 그런데 늘 예상을 빛나갔습니다. 지금도 "10년 후는 어떻게 될까? 생각을 확장해서 이 세상은 어떨까? 주님은 언제 오실까? 한 20년 후면 더욱 그리스도를 열심히 믿는 신앙이 될까? 아니면 기독교 신앙을 현저히 배반하는 나라가 될까?" 너무 궁금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과거는 기억나게 하십니다. 과거는 살펴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미래는 안보여주십니다. 점쟁이 같이 보았다고 말하는 자들이 있는데 진짜겠습니다. 과거는 다 보여주시면서 미래는 왜 안보여주실까요?
(예화) 최근에 어떤 여자가 투신자살을 했습니다. 쓰레기 버리려던 남자 위에 떨어져서 같이 죽었습니다. 이 이야기가 이틀 동안 내내 마음이 아픕니다. 쓰레기 버리러 나가면서 위에서 사람이 떨어져서 죽으리라고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이와 비슷한 사고가 약 20년 전에 있습니다. 88도로에서 차가 달리다가 동작대교에서 갈림길에서 난간을 뚫고 떨어졌는데 밑에 지나가는 프라이드에 떨어졌습니다. 떨어진 차 운전자는 살아남았는데, 프라이드에 탄 나들이 가던 온가족은 모두 죽었습니다. 나들이 가는 자들이 그런 일이 일어날 것을 상상하기나 했겠습니까?
이런 일을 10초 전이라도 알 수 있겠습니까? 바늘 끝만큼도 안 알려주십니다. 미리 보여주시면 두 가지 일이 일어날 것입니다. 좋은 일이 일어날 사람은 좋은 일이 일어날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을 것입니다. 반대로 나쁜 일이 일어날 사람들은 나쁜 일이 일어날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원망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전심으로 하나님 의지하며 살라고 하나님께서 미래를 안보여주십니다. 호기심을 가지는 것조차도 하나님은 안 기뻐하십니다. 그래서 미래는 알지 못하고 언제까지 살지 무슨 일을 만날지 어떤 상황에 접어들지 모릅니다. 작년에도 우리나라에서 유명한 신학교에 가서 채플시간에 그 학교 총장님이셨는데 식사하고 담소 나누고 채플시간에 활기차게 저희를 소개해주셨는데, 주일날 돌아가셨습니다. 이게 우리가 한치 앞도 못 보는 인간사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도록 그리하십니다. 우리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지만 하나님을 전심으로 의지하는 자에게는 두려움이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을 주님의 손에 맡기며 사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우리가 실망하고 낙심하지 않도록 우리의 인생과 그 이후까지도 이끌어주시고 도우시리라는 믿음을 가진 자들입니다. 그런 믿음으로 살기를 바라는 것이 이스라엘을 향한 주님의 마음이고, 우리를 향한 주님의 마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