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나안을 정복하심
그들을 그의 성고의 영역 곧 그의 오른손으로 만드신 산으로 인도하시고
또 나라를 그들의 앞에서 쫓아내시며 줄을 쳐서 그들의 소유를 분배하시고
이스라엘 지파들이 그들의 장막에 살게 하셨도다(시78:54-55)
녹취자: 김유진
53절까지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탈출시키시고 광야에서 보호하신 것에 대해 기록하고 있습니다. 54절과 55절은 하나님이 그들로 가나안을 정복하게 하시고 시온으로 안전하게 인도하신 은혜를 찬송하고 있습니다. 제일 먼저 54절은 그들을 성소의 영역 곧 그의 오른 손으로 만든 산으로 인도하시고 라고 말씀하십니다. 성소의 영역이라고 말하는데 곧 거룩한 곳의 테두리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나안으로 인도하셨을 때, 여리고 성을 함락하고 들어가서 위아래로 정복하면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을 정복합니다. 그 때 하나님이 이미 거기서 한 장소를 택하시고 그곳을 거룩하게 하시는데, 이것이 바로 소위 이야기하는 구약의 성소 사상입니다. 그래서 이 예루살렘을 둘러싼 산지를 가리켜 시온이라고 합니다. 히브리말로 '찌온'이라고 하는 시온은 요새 마른 땅이라는 의미입니다. 특별한 의미를 가진 곳이 아닌데 그 곳을 하나님이 선택하시어 거룩한 곳으로 구별하심으로 시온은 예루살렘과 함께 거룩한 산으로 인정됩니다. 그의 오른 손으로 만드신 산으로 인도하셨다고 나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인간이 아니시니 오른 손, 왼 손이 없습니다. 오른 손은 하나님의 선택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이 선택하신 것이라는 뜻으로 '오른 손으로 너를 붙들리라'고 하신 것은 하나님의 특별한 언약에 있고 그 언약을 따라 그들을 보호하신 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오른 손으로 만드신 산이라는 뜻은 하나님이 특별히 선택하신 거룩한 산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시온 뿐 아니라 예루살렘도 마찬가지인데 그곳은 원래부터 거룩한 땅이 아닙니다. 가나안 원주민의 터전으로 거기서 우상을 섬기며 패역이 벌어지던 곳이어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일으켜 그 땅을 심판하셨습니다. 그런데 무엇이 그곳을 거룩하게 만들었습니까? 하나님이 만드신 것 중에서 거룩하지 않은 것은 없습니다. 인간들의 죄와 우상숭배에 의해 이 모든 것이 더렵혀졌습니다. 그것을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심으로 성별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 구별하여 떼어 놓아 거룩히 구별됩니다. 예를 들어 돈을 십일조를 떼어 놓는 순간 거룩한 돈이 됩니다. 또 우리들이 하나님 앞에 그냥 살아가다 어느 하루를 -모는 날이 하나님이 날이지만- 특별히 구별하여 떼어놓으면, 거룩한 날입니다. 늘 같은 마음이지만, 하나님을 위해 특별히 어떤 일에 바쳐질 때, 우리의 마음은 구별됩니다. 그렇게 해서 하나님이 그 산을 거룩한 성소의 영역으로 만드십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성소의 영역을 만들어서 그들에게 시온 산을 주시고 나아가서 산 아래로 펼쳐진 비옥한 땅을 이스라엘에게 주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 성소의 영역을 주신 하나님의 정신에 따라서 이 세상을 그렇게 거룩한 곳으로 만들기 위해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성소의 영역을 주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런 성소의 영역을 주신 시온과 예루살렘이 이렇게 구별된 곳이라면 그렇게 구별된 곳의 정신을 따라 이스라엘 온 나라가 거룩해져야하는데 그것이 바로 가나안을 정복할 때, 우상숭배 하는 원주민과 교류하지 말고 내쫓고 멸하라고 하신 이유입니다. 하나님 앞에 이스라엘 나라가 온전히 구별된 나라가 되어 그 거룩한 영향력을 주변의 많은 나라에 끼치면서 살라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에서 인도해서 가나안에 들여보내신 것입니다. 당시에 가나안은 아주 발달한 문명을 소유했습니다. 물론 주변국들도 발달한 나라입니다. 지도를 보면 이스라엘의 지리 자체가 위쪽에서 이스라엘과 애굽으로 유통하는 아주 중요한 지정학적 위치였습니다. 그래서 온갖 문명이 거기에서 만납니다. 심지어 고고학적으로 애굽에서 온 외교문서도 발견될 정도였으니까 얼마나 활발하게 국제적인 교류가 있었는지 보여줍니다. 그런 곳에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두셔서 당신의 나라와 영광을 선포하게 하셨습니다. 우리를 이 세상에서 구별하여 자녀를 삼으신 원리도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그러면서 가나안 땅을 유업으로 주시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줄을 쳐서 그들의 소유를 분배하시고 지파들이 그들의 장막에 살게 하셨도다." 이미 가나안을 정복하기 전에 제비뽑기로 그 땅을 어떻게 구획지어서 지파별로 나눠주고 다시 족속별로, 디시 가족별로 세분해서 나눠주어서 어떻게 배분할지 결정했습니다. 이미 배분해서 주신 땅이지만 가져 취하여 얻어야하는 땅이었습니다. 그렇게 이스라엘 백성의 땅을 유업으로 주셨을 때 그 땅은 빈 땅이 아니라 나라들이 그 앞에 있었습니다. 맨 처음 이스라엘 정탐꾼 그 땅에 들어갔을 때 도저히 저들을 이길 수 없다고 했던 울며 낙심하던 무시무시한 사람들이 여전히 가나안에 살고 있었습니다. 이제는 이스라엘들이 좋은 신앙으로 예전의 두려움을 이기면서 가나안을 정복해가는 광경을 보여줍니다. 이것은 미래에 우리가 들어갈 하나님의 나라가 믿음으로 들어가는 거룩한 나라임을 보여줍니다. 어쨌든 이스라엘이 그 땅에 들어가기 위해는 전쟁이 필요했습니다. 이 전쟁 속에서 이스라엘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 기적적인 방식으로 가나안의 모든 족속을 파멸하고 승리하게 하십니다. 맨 처음 여리고 전투, 이어지는 모든 전투에서 하나님이 함께 하셨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어떻게 믿고 순전히 의지하는가에 따라 승리를 주시기도 하고 패배를 주시기도 하면서 가나안을 정복하는 전 과정을 통해 이들의 신앙을 성숙시킵니다. 이렇게 하나님이 이 크고 놀라운 일들을 행하시어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끄시고 하나님 앞에 살게 하십니다.
'그들을 장막에서 살게 하셨다.'는 말씀은 의미심장한 내용입니다. 예전에 그들은 장막에 산 것이 아니라 잠시 우거하는 나그네의 신분이었는데, 이제는 땅주인이 되어 정착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유리하고 방황하는 아람족속으로 알려졌고 심지어 강을 건너온 무리라는 뜻에 '히브리'라는 말로 불렸습니다. 그런데 나라를 건설하고 살게 하셨으며, 짖지 않은 집에 살고 심지 않은 포도열매를 먹게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그 모든 것을 누리며 하나님 앞에 복락을 얻게 하셨습니다. 이런 복락을 주신 이유가 무엇 때문입니까? 이스라엘이 의롭게 훌륭해서가 아니라 그 땅 원주민이 너무 패역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심판하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그야말로 하나님의 은혜로 그 땅과 그 기업을 얻게 하셨습니다. 그들이 거기 살며 나라의 부강을 꿈꾸며 먹고 살았지만 그들을 거기 심으신 것은 다른 나라 사람들과는 전혀 다른 이유 때문입니다. 그들의 삶과 말, 종교와 생활을 통해 다른 모든 나라들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그들을 거기에 심으셨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베푸신 모든 은혜 저 멀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요셉에게 약속하신 것부터, 가깝게는 애굽에서 중다한 무리가 되도록 번성시키신 것, 그들을 애굽에서 탈출시키신 것, 수없는 기적 속에서 광야 속에서 저들을 보호하신 것, 마지막으로 가나안에 들여보내 이 땅을 차지하고 하나님 앞에 살게 하신 이 모든 것은 이 계획을 위해 미리 베푸신 은혜였습니다. 이스라엘은 그 목적을 위해 부름을 받았습니다. 은혜는 항상 값없이 주어지지만, 은혜 안에는 반드시 계획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은혜는 그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 살 때 우리 안에서 그 은혜가 유지됩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의 경험을 보면 은혜는 받는 것도 어렵지만 유지하는 것도 매우 어렵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이처럼 계획을 가지고 우리에게 주어지고 이스라엘에게도 계획을 가지고 주어졌습니다. 이스라엘에게도 계획을 가지고 주어졌습니다. 하나님이 어떤 좋은 것을 우리에게 누리게 하실 때는 그 자체에 탐닉해서 만족하도록 주신 것이 아니라, 항상 은혜 뒤에 있는 하나님의 계획을 생각해야합니다. "도대체 하나님이 왜 내게 이런 은혜를 주셨을까? 이런 은혜를 주시면서 나에게 기대하시는 바가 무엇일까? "생각하면서 우리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려야합니다. 그러면 생각해봅시다. 하나님이 이런 은혜는 바로 우리로 하여금 그 뜻을 따라 살라고 주신 것입니다. 오스왈드 챔버스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육체의 어두움은 빛이 사라짐으로 찾아오지만, 영혼의 어려움은 불순종함으로 찾아온다." 계속 하나님 앞에 주신바 은혜를 따라 순종하면서 살아가는 것, 그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이고, 그렇게 할 때 하나님께서는 더 큰 은혜를 주시어 당신의 은혜를 따라 살게 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