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하소서
여호와여 이것을 기억하소서 원수가 주를 비방하며 우매한 백성이 주의 이름을 능욕하였나이다 주의 멧비둘기의 생명을 들짐승에게 주지 마시며 주의 가난한 자의 목숨을 영원히 잊지 마소서 (시 74:18-19)
녹취자: 임종찬
나라가 위기를 만나고 성소가 훼파되던 그 때에 이 시인은 하나님의 위대한 구원의 행동들을 묵상하였습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가 읽은 이 본문을 말하는 것입니다. 시편의 대표적인 저작방식인 대구법 혹은 평행법을 사용하고 있는 이 18절은 아마도 여기서 원수는 이스라엘을 침공하여 성소를 유린한 적군을 가리키고 뒤에 나오는 우매한 백성은 피해를 당한 이스라엘 백성을 가리키는 것으로 여겨집니다. 원수는 이제 쳐들어와서 이스라엘을 훼파하고 성소를 더럽히면서 ‘너희 하나님이 있다면 어떻게 우리에게 이렇게 짓밟힐 수 있느냐. 너희는 헛된 신을 섬기는 중이다’ 이런 식으로 하나님을 비방하였을 것입니다. 그들이 그런 말을 하지 않았다 할지라도 그렇게 주의 성소가 유린 당하는 것 자체가 바로 하나님을 향한 강력한 비방이고 부인이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처음부터 하나님에게 악의를 품고 이스라엘을 멸망시키려고 작정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떤 의미에서 피해를 당한 사람들 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그 백성이 주의 이름을 능욕하였습니다.”라고 노래합니다. 이것은 두 가지 점에서 사실인데 우선 첫째는 원수들이 예루살렘을 훼파하고 성소를 유린하게 된 것이 결국은 하나님의 심판 때문이었고 이것은 결국 그 백성들의 죄 때문이었다는 점에서 결국은 “주의 백성들이 주의 이름을 능욕한 것이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두 번째는 이렇게 하나님의 성소가 유린당하고 시온이 파괴될 때에 이스라엘 백성들의 행동을 염두에 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그 증거로 예래미아애가 1장에 따르면 바벨론이 쳐들어 와서 예루살렘을 함락하고 성소를 유린하였을 때 백성들의 반응입니다. 그들은 성소가 유린되었을 때에도 그들은 집안에 숨겨둔 자신의 돈을 가지고 나와서 천정부지로 치솟은 가격을 주고도 곡식을 사기위해서 서로 분주하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래미아 선지자가 너희에게는 내게 임한 것 같은 불이 없느냐고 외쳤던 이유도 바로 그것 때문이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교회와 그리스도의 나라가 이렇게 위기에 처했는데 자신의 일신의 양명을 구하고 그리고 자신의 일신의 안위를 구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이기적인 행동이 결국은 주를 능욕하는 행동이라고 시인에 의해 판단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을 공격한 자는 완전 불신앙의 원수들이었지만 이렇게 침공을 당하게 된 원인, 침공을 당하고 난 후에 이스라엘 백성들의 반응은 실천적인 무신론자의 반응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 시인은 하나님께 간절히 호소합니다. 주의 산비둘기의 생명을 들짐승에게 주지 마시며 주의 가난한 자의 목숨을 영영히 잊지 마소서. 산비둘기는 하나님 앞에 제사를 드릴 때 사용되는 제물이었는데 가장 가난한 자가 주 앞에 올리는 제물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산비둘기의 생명과 주의 가난한 자의 목숨이 병행법적으로 일치를 이루면서 그러면서 하나님 앞에 호소하고 있는 것입니다. 산비둘기라는 제물 자체가 가난한 자를 대변하는 것입니다. 누가 하나님 앞에 제사를 드리러 가면서 산비둘기를 가져가면, 이것은 정말 가난한 사람인데 하나님 앞에 제사를 드리기를 원하는 하나님의 착한 백성으로서 이 예물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 앞에 산비둘기를 가지고 나아가 하나님 앞에 드리는데, 오늘 시인은 이 산비둘기의 생명을 들짐승에게 주지 마시옵소서. 이 산비둘기는 가난한 자들이 하나님 앞에 드려야 할 제물입니다. 이런 뜻입니다. 이런 회화적인 어법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이냐 하면 산비둘기의 생명 그 자체가 어떻게 보면 이제 힘 없이 외적들에게 무방비로 노출되어 약탈당하는 이스라엘 자체를 가리키기도 하고 그나마 살아남아서 이러한 역사적인 상황을 두고 하나님 앞에 매달리는 이 시인과 같은 사람, 남은 자들을 의미한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아무튼 “이 산비둘기의 생명을 들짐승에게 주지 마시옵소서. 이 산비둘기는 가난한 자의 제물이지만 주님 앞에 바쳐져야 할 제물입니다.” 그런 뜻입니다. 그러면서 주의 가난한 자의 목숨을 영영히 잊지 마시옵소서 여기서 에비온이라고 하는 이 ‘가난하다’라고 하는 뜻은 물질이 없어서 진짜 가난한 것을 의미하기도 했지만 마음이나 심정이 가난하여 하나님을 바라보는 그런 말을 의미하는데도 사용되었습니다. 예를 들자면 다윗이 자신의 시편에서 하나님 앞에 간절히 탄원하며 ‘나는 가난하고 궁핍하오니’라고 노래합니다. 이 때에 사용된 단어입니다. 그는 하나님 앞에 외모로 볼 때는 한나라의 제왕이었지만 심정적으로는 하나님 앞에 거지와도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무엇인가 다른 사람으로부터 오는 도움을 받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는 아주 비참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간절히 몸부림치며 아버지 앞에 구하고 매달렸던 것입니다. 그러면서 주의 가난한 자, 주님을 향해 외적으로는 약탈을 당하고 버림받은 나라이기 때문에 가난한 백성이고 또 실제로 마음이 궁핍하여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는 가난한 자이기 때문에 그들의 생명을 잊지 말아 주십시오. 당신의 백성들은 이 땅에 더 살아야 합니다. 당신의 백성들은 이렇게 원수들에게 짓밟혀 주님의 이름을 능욕하기 위하여 빚어진 백성들이 아니라 당신의 나라와 그 이름을 높이기 위하여 세움 받은 백성들입니다. 하나님, 은혜를 내려주십시오. 이 백성들, 이 가난한 자들의 목숨을 영영히 잊지 말아주십시오. 여기 단수로 쓰여졌지만 이것은 시인 자신을 가리킨다기 보다는 하나의 대표명사로서 남아있는 이스라엘 백성 경건한 자들 모두를 가리킨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하나님 앞에 간절히 탄원하고 있는 것입니다. 모든 나라와 백성이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고 배교하는 것 같을 때 하나님이 당신의 교회에 불꽃을 유지하는 방식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남은 자들을 불씨 삼아서 다시 불을 일으키시는 것입니다. 어느 한 순간도 하나님은 자기의 선택된 백성들 아주 버리시는 법은 없습니다. 버리시는 것 같아도 정결하게 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과정이고 깨끗하게 하셔서 다시 흥하게 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배려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런 긍휼을 베푸시는 분이시기 때문에 오늘 이 시인이 하나님 앞에 산비둘기의 생명을 들짐승에게 주시지 마시며, (들짐승은 바로 하나님의 성소를 유린한 악한 백성들입니다.) 주의 가난한 자의 목숨을 영영히 잊지 마시옵소서. 결국은 여전히 모든 인간의 생사화복이 주님의 손에 달린 것처럼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평화와 안녕도 주님의 손에 달렸습니다. 이것을 보면서 이 하나님의 자녀가 아버지 앞에 간절히 탄원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영적으로는 이와 같은 상황 속에 있는 백성들이 아닙니까? 그래서 한 시대에 묻어가지 말고 그 한 시대에 그 무엇인가 하나님 앞에 매달리지 않으면 안 되는 그 무엇을 하나님 앞에 간절히 부르짖고 매달리고 주님을 의지하며 하나님 앞에 간구하는 그런 백성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