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포한 자들이 가득한 때
그 언약을 눈여겨 보소서 무릇 땅의 어두운 곳에
포악한 자의 처소가 가득하나이다(시 74:20)
녹취자 : 조원정
어제는 언약의 특성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시인들이 하나님의 징계를 받을 때에 회개하는 것은 바로 이런 언약에 있어서 쌍방적인 특성 자신들이 하나님과 언약 관계에 있으면서 언약의 당사자로서 의무를 온전히 이행하지 않았다는 것에 대한 회개요 뉘우침인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자신을 포함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과 언약관계 속으로 데려가 묶으신 것은 당연히 그것은 하나의 은총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언약 안에서 산다 라고 하는 그 차체가 생명을 누리는 것입니다. 그 자체가 의무만을 가져다주는 것이 아니라 커다란 특권이요 하나님의 은총이라는 일방성을 가지고 있는다는 것입니다.
만약에 여러분들이 큰 나라를 다스리는 황제가 여러분들에게 넓은 땅 덩어리를 떼어주면서 그 나라의 임금이 되라고 여러분들을 부른다면 물론 거기에는 의무도 뒤 따르겠지만 그 자체가 얼마나 커다란 은택일지 생각해 보십시오. 이것이 바로 언약 관계 속으로 백성들을 불러들이는 하나님의 은총에 대한 설명입니다.
사실은 이 안에 아주 놀랍게 구약과 신약이 함께 들어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 일방성의 은총이 복음적인 특성을 가졌다면 그런 언약 관계 안에서 의무를 행하고 살아야 하는 것이 구약적인 특성을 함께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언약관계에 있다는 사실을 하나님 앞에 의식하면서 당신이 우리와 맺으신 언약을 돌아보아주시옵소서 하나님이 이렇게 성소를 짓밟히게 하시고 예루살렘이 파괴되게 하신 것이 하나님의 정당한 징벌이었다 하더라도 우리가 그 언약의 의무에 충실하지 못하는 것은 사실입니다만 그래도 하나님께는 우리에게 베푸실 은총이 남아있지 않사옵나이까? 이것을 탄원하며 하나님 앞에 간절히 호소하고 있는 장면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제 이 시인이 땅 흑암한곳에 강포한자의 처소가 가득하였습니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처소가 가득하다고 말하는 것은 그들의 영구적인 지배의 형태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강포한자가 어느 시대에든 일어날 수 있고 그들이 종종 일어나서 사회에 나쁜 영향을 끼치고 사람들에게 자신의 사람됨을 따라서 악을 행하고 나쁜 짓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의 일시적이고 우연적인 것들인데 여기서는 “처소가 가득 하였나이다” 강포한자들이 보편화되고 세력이 일반화 되어서 아예 집까지 거하고 항구적으로 머물면서 강포한데로 살아가는 그런 포악함이 일반화된 상황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예화) 어느 시대에든 도둑이 있고 강도가 있고 범법자들이 있는데 사회가 맑으면 범법자들이 죄를 지어도 금방 발각이 나고 그것들이 발각이 나며는 사회전체가 범법자들에 대해서 항거하고 저항하기 때문에 모를 때는 그렇게 해도 알려지면 도망을 가고 이사를 가고 멀리 가야됩니다. 그런데 사회가 그런 것들을 용납을 하고 이해를 해주 면은 그래 내가 돈을 좀 훔쳤다 내가 법을 좀 어겼다 너희들은 다른 게 뭐 있어 이렇게 하면서 오히려 많은 사람들의 묵인 혹은 지지 속에서 그 부끄러움 없이 살아가는 겁니다. 오늘날 상황이 그렇지 읺습니까? 옛날에는 몰래 숨어서 하는 일들이 백주 대낮에 떳떳하게 이루어지고 이렇게 되어 가는 게 아닌가요? 어제도 선거하면서 경선에 부정 있었다. 그랬더니 다른 사람 다하는데 내가 재수 없게 걸렸다 이런 식으로 얘기하는 겁니다. 반성이나 후회 자기의 잘못에 대한 진정한 인정 이런 것들이 별로 없는 겁니다.
이런 상황이 되었기 때문에 이것은 어느 한사람이 용기를 가지고 도전을 한다고 해도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닌 상황인 겁니다. 그런 사람들의 처소가 항구적으로 거하는데 나그네가 집을 짓지 않는데 집을 짓는다는 것은 거민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것이 아주 가득하게 되었습니다.
(예화) 어느 나라든지 적군이 쳐들어 올 때면 그 안에 내통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일제시대 때는 거기에 부역했던 사람들이고 역사적으로 독일이 프랑스를 침공을 해서 7년 동안 프랑스를 식민지처럼 지배를 합니다. 그때에 자기네들의 독일 정권에 찬동하는 그런 정권을 세웁니다. 그 사람들은 배반자들입니다. 그래서 부역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라전체를 독일이 연합군과 전쟁을 하는 물자들을 공급을 하고 독일의 전쟁에 유용한 일들을 합니다. 나중에 노르만디 상륙작전 등등이 있고 다시 나라를 빼앗습니다. 빼앗기 전에도 히틀러가 잔일할 정도로 프랑스 파리를 파괴하라고 명령을 내립니다. 엄청난 파괴가 이루어집니다. 드골 대통령이 돌아와서 유명한 연설을 합니다. 파리는 상처를 입었습니다. 파괴 되었습니다. 고문당했습니다. 그러나 해방되었습니다. 유명한 연설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나서 7년 동안 단 한줄이라도 나치를 찬성한 글을 쓴 모든 신문과 잡지를 폐간합니다. 그리고 7천명을 사형을 시킵니다. 독일에 정권에 부역한 사람들, 사형시킨 사람만 7천명을 시킨 겁니다.
요즘 우리로 말하자면 과거 청산을 확실하게 줄을 그은 겁니다. 그때에 거기에서 레저스탕스에 가담해가지고 동유럽에서 일했던 사람들을 한없이 높입니다. 그런 역사청산이 확실한 겁니다. 우리는 그런게 안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정의의 개념이 무너지고 나라를 위해서 희생을 하고 죽고 한 사람들을 제대로 예우도 안해 주고 하니까 애국심이 현저히 없는 겁니다. 국가의 존립에 있어서 매우 잘못된 것입니다.
이때에도 바벨론이 이스라엘을 완전히 삼키기 전에 벌써 이스라엘 안에서 바벨론과 내통하면서 바베론에 빌붙어서 권력을 찾고 부를 누리고 백성들을 착취하는 인간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을 지칭 하는 것이다라고 저는 생각을 합니다. 여기에 강포한 자의 처소가 가득하여 나열할 때 이 강포한자가 그런 사람들과 아마도 예루살렘과 시온에 진군한 애굽의 군인들과 병사들을 가리키는 거겟죠? 그런 사람들이 떵떵거리며 사는 겁니다.
옛날에 우리나라가 일제한테 합병 되었을 때에 비굴하게 나라를 팔아먹고 한 인간들이 떵떵 거리고 살고 그렇게 호령하고 살듯이 그런 시대가 된 겁니다. 이것은 자신들의 힘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언약을 기억하사 큰 능력으로 이 역사에 간섭해주십시오 라고 하는 이야깁니다.
땅 흑암한 곳입니다. 캄캄한 땅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무슨 일일까요? 캄캄하다고 하는 것이 물리적인 어두움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진리 그들이 늘상 쓰는 표현에 의하면 율법이 완전히 사라진 그런 캄캄한 어둠속에서 살아가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진리라는 말 보다는 주의 법 믿고 지키며 살아야 할 하나님의 법이 그들의 발에 등이요 길에 빛이라고 고백했기 때문에 그 빛이 사라져서 캄캄한 곳이 된겁니다. 그 무지의 어두움 속에서 강포한자들의 처소가 가득한 상황으로서 이것은 언약백성이 아니라 하나님의 언약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백성처럼 되었을 때에 하나님이 간섭해달라는 간절한 탄원을 이 시인이 드리고 있는 겁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믿음 생활을 잘하고 있을 때에도 하나님이 복을 주시고 은혜를 주시고 커다란 영적인 은총을 내리시지만 악이 가득하고 아무 희망이 없어 보이는 그런 때에도 하나님께서는 간섭하셔서 당신의 자녀들과 맺은 언약을 상기시키십니다. 그럴 때에는 항상 누군가 먼저 깨어난 선각자가 있어서 하나님 앞에 간절히 탄원하며 몸부림치며 하나님 앞에 매달리는 사람들이 있어서 그들의 기도를 하나님이 상용 하셔서 당신의 위대하고 놀라운 일들을 행하시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