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추시고 높이시는 하나님
내가 오만한 자더러 오만히 행치 말라 하며 행악자더러 뿔을 들지말라 하였노니
너희 뿔을 높이 들지 말며 교만한 목으로 말하지 말지어다
대저 높이는 일이 동에서나 서에서 말미암지 아니하며 남에서도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재판장이신 하나님이 이를 낮추시고 저를 높이시느니라 (시75:4-7)
녹취자: 백지영
계속해서 하나님의 말씀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내가 오만한 자들에게 오만하게 행하지 말라 하며 행악자에게 뿔을 들지 말라 하였노니” 설명이 나오고 다시 하나님의 직접 화법이 나옵니다. “너희 뿔을 높이 들지 말며 교만한 목으로 말하지 말지어다.” 어떻게 보면 4절이 하나님의 직접 화법이고, 5절은 시인의 이야기라고도 해석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어떻게 해석을 하든지 큰 차이는 나지 않지만 문제는 의미입니다.
“내가 오만한 자더러 오만히 행치 말라 하며”, 성경에 나오는 이 ‘오만한 자’라고 하는 것은 ‘거만한 자’라는 뜻입니다. 거만하고 자기의 마음이 높아서 다른 사람들을 하찮게 여기는 태도를 말합니다. 그런데 의미가 새로운 것은, 여기서 나오는 오만한 자의 이 오만은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데서 오는 오만인 것입니다.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도덕적인 판단의 기준이 되고 근원이 되십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에 대한 의식이 없게 될 때 어떤 인간 존재의 선과 악에 대한 구별은 분명하지 않게 됩니다. 하나님이라는 존재를 제거해 버리고 나면 그 다음에 자기가 규율 받아야 할 어떤 객관적인 도덕의 기준이 없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인간이 ‘하나님을 인정한다’는 그것은 삶을 겸손하게 만들어 주는 요인이 될 것입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을 아예 신앙적으로 인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거기에서 ‘모든 사상에 하나님이 없다’고 하면서 도덕적인 부패내지는 해이가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구약에서는 오만한 자와 그의 악함을 연결시키는데, 시편 1편은 복 있는 사람에 대해서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고,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라고 서술하고 있습니다. 곧, 여기에 나오는 오만한 자가 죄인보다 더 나쁜 것이니, 무슨 뜻인가 하면 발전하고 있는 것을 보이는 것입니다. ‘악인의 꾀를 좇는다’는 것은 가끔 악인의 말을 듣는 것, 즉 유혹에 넘어가는 것입니다. ‘죄인’이라고 하는 것은, 히브리어에 다게쉬 포르테라고 해서 점이 찍혀 있는데, 죄를 짓는 것을 거의 업처럼 생각하면서 살아서 죄가 인격적인 특징이 된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 죄인은 윤리적으로만 문제가 되지만 오만한 자는 더 심각한 것이 신학적으로도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죄를 지으면서도 가책을 느끼는 사람은 그래도 희망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오만한 자는 ‘모든 사상에 하나님이 없다’고 생각하고 그런 사람의 자리에 항구적으로 주저앉는 것, 그런 사람과 동류가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오만한 자더러 오만히 행치 말라 하며”, 여기에서 나오는 이 오만한 자가 바로 그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대한 진정한 신앙이 없는 것이 모든 것의 문제의 궁극적인 원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악인에게 뿔을 들지말라 하였나니”, ‘뿔을 든다’는 얘기가 나옵니다. 여러 가지 해석들이 분분합니다만, 이스라엘 백성들이 살던 팔레스타인 지역의 문화적이고 환경적인 맥락과 관련이 있는 묘사라고 저는 생각을 합니다. 팔레스타인에는 사슴이 굉장히 많습니다. 그래서 사슴에 대한 이야기가 시편에도 많이 나옵니다. 이 사슴들은 가을철이 되어 교미기가 되면 뿔을 가지고 암컷을 놓고 처절한 투쟁을 벌입니다. 뿔을 높이 치켜들고 돌격을 해서 부딪치며 그 뿔로 엉켜서 서로 싸웁니다. 그러다 결국 어느 한 쪽이 패배하거나 혹은 피를 흘리며 쓰러지면서 다른 한 쪽이 암컷을 차지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 ‘뿔을 든다’는 것은 교만하다는 뜻도 되지만 상대방을 대적하여서 공격을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곧, “악인에게 뿔을 들지 말라 하였나니”, ‘악인들이 뿔을 든다’는 것은 그저 악인으로 남아 있는 것이 아니라 악인으로서 남아 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향하여, 언약백성들을 향하여 공격을 하기로 마음을 먹고 강하게 악의를 품고 대적을 하는 상태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일어나고 있는 일이었습니다. 하나님과 관계를 맺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대적하기 위해서 뿔을 높이 들고 공격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어서 “교만한 목으로 말하지 말지니라”는 것은 공격할 뿐만 아니라, 말로서 사람들을 무시하고 사랑의 원리를 저버리고 하나님을 안중에 없이 하는 삶의 태도를 이야기합니다. 그러면서 그 ‘높이는 것’에 대해서 나옵니다. 너희들이 오만하고 교만하여 뿔을 높이 들고 모든 사람들 위에 너희들이 뛰어난 것처럼 행동하지만 그러나 진정 높이는 일은 동쪽에서나 서쪽에서나 남쪽에서 말미암은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대저 높이는 일이 동에서나 서에서 말미암지 아니하며 남에서도 말미암지 아니하고”, 즉 무릇 높이는 일들이 자연적으로 혹은 우연히 혹은 사람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며, 진정으로 사람이 모든 사람들에게 영광을 받도록 높아지거나 멸시를 받도록 낮아지는 이 모든 것은 오직 하나님이 하시는 것이라는 평범한 사실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께서 낮추시고 높이시는 그 일을 어떤 자격으로 행하시느냐, “오직 재판장이신 하나님이 이를 낮추시고 저를 높이시느니라”, ‘재판장으로서 행하신다’고 합니다. 이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커다란 위로가 되기를 원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악인의 번성함은 어느 때에든지 볼 수 있는 일이고, 의인이 고통 받고 찌그러지는 일들도 우리들이 항상 만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영원한 일처럼 생각하지 말 것은, 마치 파도가 치면 물위에 거품이 일어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거품이 모두 물이 되어서 사라지는 것처럼 악인도 그러하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스스로 높아져 뿔을 들고 교만하게 되는 일이 있지만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이 인정하는 사람들이 아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낮추실 것이요, 진정으로 낮아지고자 하는 사람들을 높이시는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잠시 역사가 꼬이는 것 같고 잘못되는 것 같아도 하나님께서는 깊이 개입하시고 역사하셔서 언약백성들 속에 하나님의 공의가 실현되도록 만드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엇인가 인생이 어려움을 만나고 꼬일 때도 문제이지만, 형통할 때 이것이 하나님과 함께 하는 번영인지, 하나님이 함께 해 주셔서 우리를 높이시는 것인지를 깊이 생각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