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비하신 진노의 잔
여호와의 손에 잔이 있어 술거품이 일어나는 도다 속에 섞은 것이 가득한 그 잔을 하나님이 쏟아내시나니 실로 그 찌끼까지도 땅의 모든 악인이 기울여 마시리로다(시75:8).
녹취자: 이경순
이 8절에서 드디어 시인은 하나님이 어떻게 악인을 낮추시고 의인을 높이시는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마음과 사상에 하나님이 없다고 생각하며 오만하게 행하는 많은 악인들을 하나님이 어떻게 낮추시고 그렇게 모순된 시대 속에서도 신앙으로 하나님을 붙드시고 의지하고 살려고 하는 거룩한 성도들을
어떻게 붙드시는지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진노의 잔을 악인에게 쏟으심으로서 하나님이 그렇게 악인을 낮추시고 의인을 높이신다는 것입니다. 성경 여러 곳에서 하나님의 심판을 하나님의 손에 있는 술잔에 비유하였습니다. 요한계시록에서 나오는 진노의 일곱 대접은 바로 이런 구약의 비유와 은유들을 토대로 기록된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당신의 계획을 따라서 이 세상을 심판하시는 그 일이 진노의 잔으로 비유되는 것은 구약에서만의 문제가 아니라 구약과 신약 전체를 관통하면서 공통적으로 사용되는 은유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성경에 보면 하나님께서 손에 잔을 가지고 계시고 거기에서 술거품이 일어난다. 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이 충분히 그 잔을 채우고 계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것은 술잔을 따르는 그 광경을 보여주는 것이죠. 높은 곳에서 잔을 향해 충분한 포도주를 따를 때 포도주는 떨어지면서 공기방울을 불러일으키며 포도주는 잔에 가득 차게 됩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이 세상의 악인들을 심판하실 때 일체의 긍휼이 없이 충만히 당신의 진노의 잔을 쏟아 부으실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여기에 나오는 하나님이 무엇인가를 그 속에 섞은 것이 가득하다고 했는데 이것을 주석가들이 적절히 주석을 하지를 않습니다. 나의 해석으로는 아마도 이것은 진노의 잔이 그냥 평범한 포도주잔으로 비유되지 않고 여기에 약을 섞거나 독을 탄 술잔으로 묘사해서 그날에 쏟아 부어지는 그 하나님의 진노의 잔이 얼마나 엄중하고 무서운지를 보여주는 또 하나의 비유가 아닐까하고 조심스럽게 해석을 첨가해 보는 것입니다.
아무튼 이런 포도주 잔을 붓는 이 은유 거기에서 거품이 가득 일어나는 것이 무엇인지를 확증해 주듯이 그 잔이 그득하게 되었다고 묘사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그것을 쏟아내시고 그 찌꺼기 까지도 땅에 모든 악인들이 기울여 마시리로다. 라고 했습니다. 기울여 마신다는 것은 잔을 받아서 그 잔을 높이 들어서 그 액체인 술이 자기의 목구멍 속으로 들어가게 만드는 것이죠. 이것을 보면 결국은 악인들을 하나님이 심판하신다고 하더라도 그 심판이 악인들의 의지를 초월해서 오는 심판이 아니라 하나님이 악인들의 악한 의지를 사용하여 잘못된 것을 선택하게 하시고 그 결과로서 하나님이 섭리 속에서 그들을 심판하시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하나님을 경외하는 의로운 백성들은 물론이고 심지어는 악한 백성들조차도 항상 자신이 선택한 것을 그 결과를 그대로 발생하지 않도록 하나님은 다양한 방법으로 막아주십니다. 그리하여 이 인간사회가 더 큰 혼란과 매우 큰 고통에 휘말리지 않도록 하나님께서는 다양한 방법으로 보호하시고 지켜 주심으로서 당신이 원하시는 일들을 성취해 가시는 것이죠. 그래서 하나님은 의롭고 하나님을 향하여 사는 언약의 백성들에게만 자비를 베푸시는 것이 아니라 이교도들과 심지어는 하나님을 모욕하며 살아가는 이 세상의 모든 패역 자들에게까지도 이 은총을 베푸시므로 서 인류가 멸망하지 않고 유지되도록 도우시는 것입니다. 실재 우리의 삶을 보면 악인과 선한 사람들의 삶이 그물망처럼 함께 짜여 있어서 이와 같은 하나님의 섭리적인 배려는 당신이 사랑하는 백성들의 행복과도 밀접하게 관련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은 세계화 시대라고 합니다. 예전 같으면 아무런 관심을 가질 리가 없는 일들이 아주 중요한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프랑스에서 우파정권이 물러가고 18년 만에 좌파정권이 뜨게 되는 것 그리스에서 총선이 이루어졌는데 집권여당이 참패하고 야당에게 의석수가 더 많이 획득된 것 여기저기서 유럽의 구제 금융 그리고 그 모든 경제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해결책들을 동의하였던 집권 장들의 패배에 대해서 오늘이 이 구석에 있는 한국이 깊이 관심을 갖고 신문마다 대서특필하는 이유는 무엇 때문입니까? 이것은 현실적으로 그 사람들의 정치적인 상황이 우리가 먹고살고 행복해 지는 것 과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왜 수출을 해서 먹고사는 나라고 아직도 많은 물건을 수입해 들여다가 재생산을 해야 되는 나라이기 때문에 만약에 그들이 금융위기를 적절하게 극복하지 못하고 경기가 심하기 위축될 때 결정적인 타격을 우리 산업들이 입게 되는 것이죠. 그것은 많은 고용의 해고를 가져올 것이고 그리고 많은 기업체들의 도산을 가져올 것입니다. 그러면 그 수출을 위해서 물건을 납품하는 많은 작은 회사들이 다시 문을 닫을 것이고 그렇게 되면 그 많은 사람들에게 물건을 생산하도록 원료를 공급하던 원자재 생산업체들이 줄줄이 도산하게 될 것 입니다. 이렇게 되면 그 업체에 근무하는 근로자들이 해고될 것이고 해고되면 가족들이 돈을 쓸 수 없기 때문에 가족들에게 모든 물건을 팔고 재화를 생산하던 많은 업체들은 다시 위기를 당하게 되고 그 위기는 그 회사들에 간접적인 영향을 끼쳐서 대량 해고사태를 가져오고 그렇게 되면 국가 전체가 구매력이 떨어져서 경제의 위기상황이 더 심각하게 소용돌이치기 때문에 그렇게 먼 나라에 있는 경제에 대해서 밀접한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 이치로 악인들의 행복과 불행은 하나님이 선택하신 백성들의 행복과 불행 이것들과 아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고 이러한 밀접한 연관 속에서 하나님께서는 악인들의 행복과 선한사람들의 불행 이 모든 것들을 전체적으로 그물망처럼 돌보시면서 우리들이 다 설명할 수 없는 섭리의 지극한 지혜로움 속에서 이 모든 것들을 규율하고 통제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진노의 잔을 심판으로 쏟아 부으시는 일들을 아침에 한번 저녁에 한번 낼 아침에 한번 이런 식으로 행하시지 않습니다.
신앙이 없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고 묻고 신앙 있는 사람도 때로는 하나님은 자비롭고 의로우신 분이기 때문에 우리가 막살아도 된다는 식의 잘못된 인생관을 가져오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이 무능하거나 너무나 멀리 계시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지극한 지혜 속에서 이 모든 것들을 이끄시고 돌보시기 때문이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날마다 자기의 백성들을 보살피시고 긍휼이 여기시면서 이 모든 섭리의 그물망들을 지혜롭게 움직이시고 이 모든 것들을 통하여 그러면서도 당신의 계획과 뜻일 이루어 가시는 거십니다. 이 땅의 모든 악인들이 그 독주의 잔에 찌꺼기까지라도 모두 기울여 마신다는 결국 하나님의 진노를 아낌없이 회개하지 않는 악인들에게 쏟아 부으시는 다고 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8절이 우리에게 주는 강력한 도전은 이것입니다. 악이 창궐한 것 같고 진리가 모두 사라진 것 같을 때에 믿음으로 살아가는 하나님의 자녀들은 주님이 살아계심을 굳게 신뢰하여라. 합니다. 그리고 주님이 우리의 뜻과 같지 않아 우리가 원하는 시간표대로 당신의 진노와 혹은 당신의 사랑의 표현들을 우리에게 부어주시지 않으신다고 할지라도 더 정확하게 말한다면 진노와 부흥을 우리 원하는 시간표대로 주시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은 살아계셔서 가장 당신이 적합하게 여기시는 그때에 모든 인간의 지식을 초월하는 하나님의 탁월한 지혜 속에서 이 일을 행하시므로 공정한 속성을 이 세상에 펼쳐 보이시고 악인들의 행복과 의로운 사람들의 불행사이에서 혹은 의로운 사람의 불행과 악인의 행복사이에서 당신의 공정한 진리의 심판을 펼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때는 하나님의 때와 다르지만 하나님은 반드시 당신이 이 모든 세계를 통치하고 계시는 궁극적인 주관자이시며 당신의 위대한 영광을 보여주시는 분이시라는 사실을 분명히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때가 있다는 사실을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잘 기억하는 선지자 하박국은 원래 회의주의적인 하나님의 사람이었습니다. 악인들이 처처에 행하고 갈대와 사람들과 결탁하여 악을 행하는 사람들이 나라의 권력을 독차지하고 어떠한 심판도 없이 그들은 악을 행하면서도 번성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정말 하나님이 살아 계신가. 의심하였고 그리고 악인들의 번성을 보면서 그의 신앙은 심각한 상처를 입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오묘한 섭리와 주권을 깨달으면서 그는 가장 확고한 신앙을 가진 믿음의 선지자로 다시 태어나게 됩니다. 그러나 의인은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하는 고백이 마틴 루터에게 그토록 커다란 감화를 주었던 것도 바로 이러한 신앙 때문이었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악인이 번성하는 때가 있다는 것을 충분히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악인의 번성함은 벤 풀의 무성함과 같다고 했습니다. 시골에서 아침이 되면 혹은 저녁이 되면 사람들이 밭 가까이 있는 잡초들을 낫으로 제거합니다. 왜냐하면 보기도 싫거니와 그것들이 이 땅의 지력들을 많이 빨아먹기 때문이죠. 갈아엎거나 풀을 벱니다. 길같이 자란 풀들을 베면 그 풀을 가져가지 않습니다. 짐승에게도 줄 수 없는 아주 조잡한 풀이기 때문 이지요 .그냥 몇 지게씩 낫으로 베어서 잡초 밭위에 그냥 버려둡니다. 금방 베었을 때는 그렇게 베어놓은 풀잎의 단들이 커다란 지게에 실을 만큼 그렇게 풍성해 보입니다만 한 낮이 지나고 뜨거운 햇빛을 받고 나면 그것들은 이튿날 모두 검불이 되어서 잡초위에 흩어집니다. 그리고 며칠 더 지나면 다 부스러지고 바람에 날아가 버려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되어버리는 것이죠. 이것이 바로 악인의 종말이고 미래인 것입니다. 언제나 우리주변에 있는 모든 사물들의 질서가 우리 원하는 대로 일어나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신앙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나는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라는 그 신앙 말입니다. 이 신앙을 붙들고 사는 사람들에는 언제나 위로가 있습니다. 비록 그가 하나님께서 이 모든 악인들을 심판하는 것을 원하지 않고 오히려 그 악인을 위하여 기도한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정하신 그 때에 이 심판을 행하사 모든 일들의 질서를 하나님의 계획대로 돌려놓으시는 것입니다. 이 날은 악인에게는 재앙의 날이지만 의롭게 믿음을 지키면서 산 사람들은 기쁨의 날이요 신혼의 날입니다. 그래서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는 진정한 기쁨과 영광이 당신의 심판을 통해서도 이 세상에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굳게 붙들고 어두운 시대를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 이것이야말로 하나님께서 악인들에 의해 더렵혀진 공의와 무질서 속에서 고통 받을 때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하시는 방법이신 것입니다. 여기에 하나님의 자녀들의 소망이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