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과 고백의 힘
또 주의 모든 일을 묵상하며 주의 행사를 깊이 생각하리이다.하나님이여 주의 도는 극히 거룩하시오니 하나님과 같이 큰 신이 누구오니이까 (시77장12-13)
녹취자:이경순
11절에서 여호와의 일을 기억하며 주께서 옛적에 행하신일들을 기억하겠습니다. 라고 하는 것을 12절부터 구체적으로 어떤 방식으로 그렇게 하고 있는지를 이 시인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는 주의 모든 일을 작은 소리로 읊조리겠습니다. 주의 행사를 낮은 소리로 되뇌고 있습니다. 이런 뜻입니다, 병행법이예요. 그래서 같은 이야기를 두 번 반복해서 하는데 낱말을 바꾸어서 그래서 아주 부드럽게 우리에게 들리도록 이렇게 리듬을 타고 노래하고 있는 것입니다.. 시편을 읽을 때 항상 이것이 시라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됩니다. 그러면 여기에서 주의 모든 일이라는 것은 결국 주님의 행사, 즉 주님이 행하신 일들을 가리키는 것인데 이것을 작은 소리로 제가 읊조리겠습니다. 라고 하는 것은 무슨뜻일까요? 이것은 많은 사람들을 향해서 하나님이 이런 저런 일을 행하셨다고 하는 것을 선포하는 게 아니죠, 하나님이 이런 저런 일을 행하셨습니다. 라고 하는 것을 많은 사람이 듣도록 전파하고 외쳐서 그들에게 알리는 목적으로 하는 게 아니죠. 그것은 뭐죠, 자기 자신에 대하여 하는 말입니다. 그러면 무엇 때문에 이 시점에서 시인이 작은 목소리로 주님이 행하신 모든 일이라고 하는 것은 주님이 행하신 크고 놀라운 일들, 그래서 하나님이 자신들과 언약관계에 있으며 어떤 경우에도 자신들을 버리시는 분이 아니 시다고 하는 것을 일깨워 줄 수 있는 그런 종류의 하나님의 행하신 일들을 가리키는 것이죠. 자 이런 것들을 하나님께서 이 시인의 마음속에 넣어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들을 조용히 말하는 것은 자아와의 대화입니다. 내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네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이렇게 타일렀던 것처럼 네가 지금 하나님의 은총이 다했는가. 이제 하나님이 더 이상 나를 긍휼이 여기시지 않는가. 그 은혜는 모두 끝났는가. 라고 해석할 때 그때에 하나님이 우리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 이러저러한 일을 행하셨고 이렇게 은혜를 베푸시고 이렇게 긍휼을 베푸시고 그 백성들을 붙드시고 은총을 내리셨다 라고 하는것을 상기시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이제 이 시인은 자신의 마음 깊은 곳에서 이제 하나님을 의뢰하고 하나님을 말하지 못하는 자기 자신을 설득하는 거죠. 우리의 마음속에는 선한의지와 악한의지가 다투고 있을 뿐만 아니라 때로는 믿으려는 마음과 잊지 못하는 마음이 서로 다투죠. 혹은 성령의 도우심을 따라서 거룩하게 살려는 나와 나의 욕정을 따라 살려고 하는 내가 갈등을 일으키지요. 그때 자아와의 대화는 아주 훌륭한 기법입니다. 이것은 경건한 시인들이 시편 속에서 아주 자주 보여주는 경건의 기법 이였어요. 그래서 하나님을 믿는 신앙과 그리고 올바른 이성으로서 그렇지 못한 불신앙과 자기의 마음의 충동들을 다스리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눈에 보이는 환경보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더 신뢰하며 살도록 이 시인이 자기 자신을 다스리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의 자기고백입니다. 그리고 이 자기고백은 아주 커다란 힘이 있는 것입니다, 또 찬송은 바로 그러한 고백을 노래로 한 것입니다. 그 고백의 궁극적인 대상이신 하나님에게서 그 크고 위대한 일들의 원인을 찾는 것입니다. 그것은 아주 놀랍게 이렇게 찬송하는 사람을 회복시키는 아주 놀라운 힘이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이 크고 놀라운 일들을 행하셨던 것을 기억하면서 하나님이 자기 자신을 버릴지도 모른다고 하는 생각, 그리고 인자하심이 모두 끝났다고 믿는 어리석은 마음, 그리고 약속도 영구히 폐하셨는가. 라고 하는 생각 이 모든 것들을 물리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 시인은 하나님이 어떤 분 이신지를 13절에서 새삼스럽게 노래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도는 극히 거룩 하시오니 하나님과 같이 위대한 신이 누구십니까 라고 노래하는 거죠. 이렇게 과거에 하나님이 자신에게 행한 위대하고 놀라운 일들을 전부다 마음속으로 묵상하고 고백하고 나니까 마지막에 깨닫게 되는 것은 하나님의 도는 극히 거룩합니다. 하는 고백이 나오는 것입니다.
이 도라고 하는 것은 히브리어 성경에 데레크 라고 나오는데 원래 길이예요 길, 이 길이라고 하는 단어가 성경 속에서 다양한 의미로 사용이 됩니다. 그런데 여기에서는 대게 어떤 의미냐면 이 데레크가 인간에게 사용되었을 때는 인간이 마땅히 걸어가야 할 길, 혹은 그 인생의 길을 걸어가게 만드는 어떤 진리, 혹은 진리의 힘, 이런 것들을 가리킵니다, 그러면 여기서 시인은 주의 도는 극히 거룩합니다. 라고 하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요, 이것은 하나님이 행하신 크고 놀라운 일들을 제가 다시 기억해보니까 하나님은 분명하게 길이 있으신 분입니다. 일관성 있게 당신의 성품을 따라서 자기의 백성들을 대해오셨습니다. 그래서 주님이 우리보고 걸어가라고 마음에 품으신 그 도도 거룩하고 우리에게 실제로 어떻게 그런 삶을 살 수 있을지 율법을 통해서 보여주신 그 도도 거룩합니다. 왜냐하면 그 도를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자신이 거룩하시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고백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거룩하심과 함께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이야기 합니다. 온 땅과 모든 만물위에 뛰어나신 뛰어나다 하는 것은 그것보다 더 높다 이런 뜻이 아니라 온 땅과 모든 만물과 비교할 수 없는 초월적인분이시라는 뜻이 예요 모든 것을 대조해 놓고 높다 그런 것이 아니라 온 땅과 만물위에 아주 탁월하게 뛰어나신 분이 십니다. 이렇게 노래하고 있는 것이죠. 하나님이 이 세계를 다스리고 통치하시는 것은 이세상의 임금이나 왕들이 통치하는 것과는 다릅니다. 그래서 기독교에도 영향을 많이 끼치는 알 바자리라고 하는 이슬람의 철학자가 자기의 책속에서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신이 이 모든 세계를 통치하는 것은 이 세상의 임금들이 자기의 땅을 통치하는 것과는 다릅니다. 신이 이 세계를 다스리는 것은 마치 우리가 어떤 일을 하고자 할 때에 마음의 생각은 우리의 머리에 전달되고 머리에 전달된 것이 우리의 의욕과 욕구를 자극하면서 우리의 몸이 모두 움직여서 마지막에 그 일을 하게 하는 것처럼 예를 들어서 어떤 글을 쓰자 하면 마음에 쓰자는 생각이 뇌가 우리의 마음에 다시 전달되고 모든 기관들을 움직여서 결국은 글을 게 하는 것처럼 그렇게 우리 안에서 물질사이에 있는 원인과 결과와는 다른 방식으로 연결을 이루면서 그 일을 하게 하는 것처럼 신은 그렇게 이 모든 세계를 다스리십니다. 이런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은 이 모든 세계를 통치하고 다스리시되 이렇게 과학자들이 보는 사물의 원인과 결과의 관계들을 통해서 일하는 것처럼 그렇게 일하지 아니하시고 아주 독특한 방법으로 사람이 사물을 움직이거나 자연사물이 또 다른 자연사물에 부딪혀서 결과를 만들어 내는 것과는 아주 다른 방식으로 그렇게 이 모든 세계에 간섭하셔서 없는 것 같으면서도 사실은 거기에 계서서 이 모든 세계를 다스리시고, 안계신 것 같으면서도 사실은 그 중심에 계셔서 이 모든 역사와 인간의 마음을 통치하고 다스리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실제로 있는 어떤 왕 실제로 있는 어떤 임금보다도 더 오류 없이 아주 분명하게 자기의 세계를 통치하고 다스리는 것입니다. 그런 분은 믿음을 통해서는 매일매일 배울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충만하게 살아 계셔서 신의 사람을 통치하고 다스리신다고 하는 것을 충만하게 믿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우리의 다른 기준을 가지고 보면 하나님은 어디에도 안계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충만한 믿음으로 살아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시인이 환란 날에 잠시 그런 주님을 볼 수 있는 안력을 잃어버렸다가 다시 믿음에 호소하며 그러면서 자신과의 대화를 통해서 하나님이 행하신 이 위대한 일들을 통해서 그치지 않는 하나님의사랑 은혜 자비 그리고 신실하심을 묵상하면서 이 환란가운데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의 모든 문제는 이 세상에서 생기지만 해답은 이 세상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그 모든 인생의 해답 너머에 있는 하나님의 은혜 자비 이런 것들을 바라보면서 우리들이 새로운 힘과 용기와 새로운 은혜를 얻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믿음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현실적인 삶이라고 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