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유로 말할 지혜
내가 입을 열어 비유로 말하며 예로부터 감추어졌던 것을 드러내려 하니
이는 우리가 들어서 아는 바요 우리의 조상들이 우리에게 전한 바라(시78:2-3)
녹취자: 백진영
“내 율법을 들으며 내 입의 말에 귀를 기울이라”고 했던 시인이 2절과 3절 그리고 4절에서 그가 가르쳐 주고자 하는 그 말이 무엇인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곧 신앙의 지혜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신앙으로 사는 사람들이므로 신앙의 지혜는 곧 인생의 지혜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지혜를 이 시인이 소유하였고, 이 지혜는 그저 남에게서 주워들은 것이 아니라 자신 속에서 체화되어서 ‘내 율법’, ‘내 입’의 말이라고 불러도 좋을 정도로 자신 속에서 깊이 녹아져 있던 그 비유이고 그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그 신앙의 지혜라고 하는 것이 결국은 하나님께서 언약백성인 이스라엘과 어떤 관계를 맺으시고, 또 어떻게 하나님의 백성들이 살기를 원하셨으며, 그 백성들이 그렇게 살 때 혹은 그렇게 살지 못할 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를 이 시인이 보여주고자 하는 것입니다.
시인은 말합니다. “내가 입을 열어 비유로 말하며 예로부터 감추어졌던 것을 드러내려 하니”, 우선 예로부터 감추어졌던 것이라고 하는 것은 지금 이 시인이 ‘내 율법’, ‘내 입’의 말 혹은 ‘신앙의 지혜’라고 하는 이것이 자신이 개발하고 만들어 낸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과 언약을 맺은 날부터 전해 내려오던 아주 오래된 것이었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어떤 사람이 참으로 인생의 지혜를 터득하여 시련과 사연이 많은 인생의 길을 올바르게 살아간다고 할 때 그것은 도대체 무엇을 알고 있다는 것일까요? 그것은 인간이 어떻게 행하고 살아가야 하는 지에 대한 도리를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도리를 알고 있는 사람들은 비록 학식이 좀 모자랄지라도 그 도리를 굳게 붙들고 살아갈 때 보람 있는 인생을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불신자의 세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옛날에 우리 조상들 중에는 거의 교육을 받지 못한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럼에도 그 사람들이 인생을 살아가면서 조상들로부터 배우고 또 자신의 삶을 통해서 신앙이 무엇이며, 인생이란 또한 어떠하다는 것을 터득하면서 올바르게 살아간다면, 사람들도 그들을 칭찬하고 긴 인생을 살고 난 후에 크게 후회할 것이 없는 인생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교육을 많이 받지 못했을지라도 인생을 사는 도리가 무엇인지를 알아서 아내로서 남편에게, 남편으로서 아내에게 헌신하고, 자녀를 잘 기르고, 어른을 공경하고, 이웃에 대해서 신의를 지키면서 인생을 살아간다면,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 사람의 인생길에서 시련과 어려움을 안 만나는 것은 아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생을 살면서 크게 후회할 만한 일은 하지 않고 살아가는 것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불신세계에서도 통하는 일입니다.
(예화) 저는 가끔 저의 할머니 생각을 합니다. 77세에 돌아가셨는데, 지금 만약 살아계신다면 104세가 되셨을 것입니다. 이 분이 좋은 집안에서 태어나셔서 옛날 그 시절에 아들은 일본에 유학까지 보낼 정도로 교육을 시켰지만 딸이라서 교육을 별로 못 받으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할머니에 대한 기억을 더듬어보면 인생을 사시는 동안 누군가에 의해서 혹독하게 미움을 받아보신 적이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철이 들고 나서 할머니와 함께 오랜 세월을 살았는데, 저는 이 분 입에서 단 한 번도 누구를 원망하거나 험담하는 것을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심지어는 아주 명백하게 당신에게 커다란 상처를 주고 고통을 준 그 사람조차도 제 앞에서 원망하거나 미워하는 말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우리들이 흔히 인복이라는 말을 합니다. 그런데, 어디가든지 돕는 사람들이 있고 자기를 도와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그것이 그 사람의 사람됨과 상관없이 하늘에서 내려오고 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관계 속에서 자신이 뿌린 씨앗들을 거두는 것입니다. 어디에서든지 사람들을 잠시 만나고 헤어질 사람처럼 이용하려고 하지 않고, 자신과 오래도록 영원히 관계를 맺을 사람처럼 긍휼히 여기고 사랑하면서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사람들에게 메아리처럼 갚음을 당하는 것이 우리가 말하는 인복이라는 것입니다.
그런 것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아주 독특한 형태로 남아 있었는데, 율법이라는 형태로 남아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율법을 부정적인 의미에서 우리가 도저히 지켜도 지킬 수 없는 하나님의 명령이라든지, 어기면 죽음의 위협을 가하는 그런 율법만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대한 모든 총체적인 계시를 포함하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의 명령하시는 것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성품과 그분이 우리를 향해 어떠한 계획을 가지고 계신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명령과 지시는 지시하고 명령하는 사람의 본성을 깨닫게 해주는 가르침이 그 안에 있습니다. 그것을 통해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고, 그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살아가게 하시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많은 계명과 계시들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셨습니다. 바로 옛날부터 하나님이 조상들에게 주셨고 그리고 그 후손들에게 주셨지만, 이 세상 사람들에게는 감추어져 있었으며 그리고 하나님을 믿는 언약백성들에게도 각각 깨닫는 바가 다 다른 것입니다. “감추어졌던 것을 드러내려 하니”, 어떤 것들은 하나님이 이미 보여주셨지만 불신자들이고 언약 밖의 백성들이기 때문에 못 깨닫는 것도 있을 것이고, 또 언약백성들일지라도 그 주신 것들을 다 깨닫지 못했기 때문에 마치 감추어져 있는 것처럼 비밀스러웠던 것들도 있을 수 있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설교를 듣고 혹은 성경을 읽으면서 많이 깨닫는 비결이 있습니다. 그것은 공부를 많이 해야 많이 깨닫는 면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상태가 진리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그분을 의지할 때 이 하나님의 말씀이 잘 깨달아지는 효과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 것들을 내가 드러내려 하는데 “내가 입을 열어 비유로 말하며”, 비유의 방식으로 말하겠다는 것입니다. ‘입을 열어’ 라는 이 말은 마태복음5장 2절에도 나오는데, 예수께서 ‘입을 열어’ 가르쳐 이르시되 하면서 산상수훈이 쏟아져 나옵니다. 이 표현은 대개 하고 싶은 말이 마음속에 아주 많을 때, 특히 구약성경에서 자주 쓰는 표현법입니다. 평상적인 이야기를 할 때에는 잘 쓰이지 않고, 마치 저수지에 물이 가득 잠겼을 때 수문을 탁 열면 물이 확 쏟아져 나오듯이 입을 여는 것 그것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입을 열어’ 라는 것은 자신 안에 같은 시대의 백성들 혹은 후손들에게 가르쳐 줄 수 있는 “하나님 앞에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가르침의 내용들이 가슴에 꽉 차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비유의 방식으로 말하겠다고 합니다. 왜 직접 말하지 비유로 말할까요? 심지어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가르침에 의하면 “비유가 아니면 말하지 아니하시더라” 라고까지 말씀하십니다. 도대체 그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요? 비유로 말한다는 것은 상대가 자기보다 훨씬 더 수준이 낮거나 혹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마음에 가득 찬 생각들을 이해할 능력이 안 될 때, 그 사람의 눈높이에 맞추어서 이야기해주는 방식입니다. 이 비유의 묘미는 핵심을 찌르는 동시에 짧은 말이면서도 거기에 해석이라는 활동을 적용하게 될 때 엄청나게 많은 진리들이 쏟아져 나오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비유로 가르치지 않을 수 없던 이유이고 동시에 이 시인이 비유로 말하겠다고 하는 의미인 것입니다. 시인은 하나님의 지혜가 충만하여서 세상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니 가슴이 답답하였던 것입니다. “인생을 저렇게 살아가다니 정말 저들은 무지하구나, 지혜가 없구나, 그래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않는구나, 저것을 어떻게 해야 할까!” 이런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며, 그런 마음이 시인으로 하여금 “내가 입을 열어서 비유로 말하겠다”고 하는 이유인 것입니다.
그러면서 시인은 그것이 어디로부터 온 것인지를 설명합니다. “이는 우리가 들어서 아는 바요 우리의 조상들이 우리에게 전한 바라”, 이 신앙의 지혜 곧 인생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하는 지혜는 우리도 우리 스스로 생산해 낸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들려주셨고, 선지자들이 가르쳐 주었고, 또 우리의 조상들이 우리에게 전하여 준 바라는 것입니다. 아주 오래된 옛 교훈이라는 것입니다. 흔히 주위의 사람들 중에는 최근에 나온 책을 읽은 것을 자랑처럼 늘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지식은 늘 변하는 것이므로 물론 그것도 나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모든 지식의 궁극적인 목표는 지식 그 자체를 사람들에게 과시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얼마나 하나님 앞에 행복하고 복되게 그리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는 인생을 살아서, 그래서 나도 하나님 안에서 복되고 사람들을 복되게 하는 데 나의인생이 이바지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예화) 개혁신학자이고, 목사이고, 설교자이고 작가인 사람이 있습니다. 조나단 에드워즈의 연구가인 존 거스너라고 하는 사람의 제자인데 연세가 많이 드셨습니다, 한번은 어느 미국 신학교에서 강의가 끝난 후에 학생들이 이런 질문을 하였답니다. “목사님, 혹시 최근에 이런 책들을 읽어보셨습니까? 이런 책들에서는 이렇게 이야기하고 저런 책들에서는 저렇게 이야기합니다.” 그 질문에 그 분은 이렇게 답변을 하셨답니다. “읽어본 적이 없습니다. 여러분은 나보다 오늘날의 책들을 많이 읽었지만 나는 여러분이 읽지 않는 옛날 책들에서 하나님을 믿고 살아가는 지혜를 배우고 있습니다.”
문제는 지식의 양이나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새것이냐 옛것이냐가 아니라, 얼마나 정확하게 하나님 앞에 인생을 사는 지혜와 용기 그리고 현명함 이런 것들을 담고 있느냐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시인은 “우리의 조상들이 우리에게 전하여 준 바라”, 그것이 전하여지는 방법인즉 조상도 조상으로부터 받고, 주님께로부터 받아서, 그래서 그것대로 살아가면서 거기에 나의 고백이 더해지는 것으로 그것을 후손에게 또 전해주고, 다시 후손들에게 전해져서 후손들이 그 고백을 따라서 살아가면서, 거기에서 하나님의 명백한 객관적 계시의 말씀이 ‘내 율법’, ‘내 입의 말’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사람들에게 드러내려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교회에서 혹은 세상에서 이웃에게 베풀 수 있는 최고의 섬김은 진리의 떡을 나누어 주는 것입니다. 육신의 떡으로 구제하여 그들의 육신을 이롭게 하고 영혼의 떡인 진리의 말씀을 전하여 그들의 영혼을 이롭게 함으로써, 그들을 완전한 하나님의 자녀, 믿음의 백성으로 살아가도록 도와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시인처럼 입을 열어 많은 사람들에게 우리 안에서 체화된 율법과 체화된 말을 가르침으로써, 많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거룩한 지혜, 곧 “어떻게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인생을 살아야 할 것인가?” 라는 지혜를 가르쳐 줄 수 있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할 수 있는 한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깨닫고 또 실제로 삶으로써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지혜로운 삶을 사는 기쁨 속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많은 사람들을 빛 가운데로 돌아오게 하는 것, 그래서 그 지혜를 이 세상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어 그것을 받지 못했더라면 불행하게 살았을 사람들을 주안에서 온전하게 살게 하는 것, 이것이 바로 신앙이고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자녀들의 이 세상을 향한 최고의 섬김인 것입니다. 사람 자신을 돌이켜 하나님 앞에 살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의하면 천하를 주고도 살 수 없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것을 위해서 하나님 앞에서 사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