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앞에 사는 행복
“그들은 힘을 얻고 더 얻어 나아가 시온에서 하나님 앞에 각기 나타나리이다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여 내 기도를 들으소서 야곱의 하나님이여 귀를 기울이소서(셀라)”(시 84:7-8)
녹취자: 이병두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있는 사람이 누리는 축복을 6절에 이어서 7절에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두 가지로 요약이 됩니다. 그들은 힘을 얻는 다는 것과 하나님 앞에 나타날 것이라는 두 가지입니다.
힘을 얻는다고 하는 것은 눈물 골짜기, 히브리어 성경에는 울음 골짜기로 되어 있습니다. 울음 골짜기와 같은 인생의 골짜기를 지날 때 누리는 혜택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기 때문에 인생에 있어서 어떠한 시련도 오지 않고, 평화와 행복만이 깃들 것이라고 성경은 절대 그렇게 약속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성경은 하나님의 자녀들, 신앙을 가지고 살아가는 믿음의 사람들에게도 시련과 고난이 있다고 말합니다. 부분적으로는 이 세상의 불안전함 때문에 부분적으로는 자신의 죄와 불순종 때문에 또 부분적으로는 하나님의 말할 수 없는 큰 섭리와 계획 속에서 그들을 연단하고 다스리고 통치하시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시련을 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을 통해서 하나님은 다양한 방법으로 그들에게 하나님을 의지할 수 있는 신앙을 주시고, 자기 혼자 독립하여 살아가려고 하는 교만을 꺾으십니다. 그래서 주님이 베풀어 주신 많은 은혜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으로 살아가도록 격려하고 붙드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자녀들이 눈물 골짜기를 지나면서 누리는 하나님의 복이요 은혜인 것입니다.
이 힘이라고 하는 그 자체가 자신에게 일어나는 일들을 감당하고 소화하는 능력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시험을 주실 때, 피할 길을 주시거나 감당할 수 있는 힘을 주신다고 했습니다. 그 힘이라고 하는 것은 어떤 사태가 일어났을 때 그것을 자기 자신이 주체가 되어서 그 문제를 감당하고 해결하는 것이 힘입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베푸시는 복입니다. 그러니까 어떤 일이 일어났을 때, 일어나는 것은 언제나 일어나고, 사람이 어떻게 그것에 대해서 반응하는지에 상관없이 사태는 발행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련이 감당할만한 사람에게만 시련이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사람에게도 시련이 일어납니다. 그래서 감당할 수가 없어서 자살을 하든지, 아니면 폐인이 되든지 얼마든지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단지 살아남는 것만이 힘이 아니라, 인간은 자신에게 일어나는 수많은 사태들을 맞서고 해석하고 그것을 해결하고 해결이 끝났으면 거기에서 무엇인가 교훈을 얻고, 내적으로 다시 충만해져서 다음의 사태에 대비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처음에 어떤 사태가 일어나 어려움이 왔을 때는 거의 죽을 것 같고 사람들과의 관계가 끊어지고 마음속에 악한 성품도 나오고 그래었는데, 그런 것들이 반복되면서 좀 더 성숙해지는 사람이 되어서 인생을 관조할 줄 아는 그것이 진정으로 삶을 살아가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살아있다는 것과 살아간다는 것은 다른 것입니다. 원래 삶이라는 하는 것은 결국 살아있고 또 사람들을 살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살림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가정생활을 살림살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그것은 살림살이를 통해서 가족들이 모여서 계속 살아나는 것입니다. 다 죽은 것 같이 들어왔다가 가족들하고 어울리면서 밥도 먹고 생활 하다 보면 다시 살아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지 않은 가정이 있습니다. 밖에서 펄펄 살다가도 집에만 들어오면 죽어버리는 것입니다. 죽고 싶고 아무 희망이 없는 것 같고 그것이 죽음입니다. 가족 구성원들이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사태를 헤쳐나 갈 수 있는 힘이 없기 때문에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가족 중에 한 두 사람만 그렇고 나머지는 힘이 많으면 그 사랑으로 이해하고 받아주면서 그야말로 살림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럴 수 있는 능력이 서로가 없을 때에는 감당할 수 없는 사태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힘입니다. 그 힘은 단지 권력의 힘이나 물질의 힘이나 사회적인 지위의 힘이나 이런 것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인간으로 태어나 마주치는 수많은 사태들을 스스로 맞서고 해석하고 헤쳐 나가고 헤쳐나간 후 거기에서 교훈을 얻어서 나 자신이 변화된 사람이 되는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놀라운 길입니다.
(예화) 언제인가 한번 미국에 집회를 갔는데 끝나고 나서 한나절이 좀 비었습니다. 비행기를 그 다음날 타게 됐습니다. 그랬더니 곁에 있는 어는 공원에 저를 데리고 갔습니다. 거기 보니 한 대 여섯 명이 깔고 앉을 수 있을 만한 넓이의 나무 판때기 하나가 서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죽은 나무를 상처만 잘라서 세워 놓았는데 수백 년은 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나이테를 보면, 너무 신기한 것이 무슨 일이 세계사에서 미국과 관련되어 일어났는가 알 수 있습니다. 남북전쟁이나 2차 세계대전 이런 것을 겪었을 때 나무의 테 모양이 다릅니다. 평범한 사람이 봐도 알 수 있을 정도로 다릅니다. 다른 때에는 이렇게 나이테가 평안하게 되고 나무도 많이 자랍니다. 그런데 그 땅이 고통을 받을 때는 나무도 덜 자랐을 뿐만 아니라 테 자체가 이렇게 평화롭지가 않고, 선이 이렇게 달라집니다. 어째든 그것을 보면서 굉장히 신기한 생각에 잠겼습니다. 말없이 그곳 산 속에 서 있는 그 나무 앞에 폭탄이 떨어지는 것도 아니고, 제가 보니 심심산골에 2차 대전에 일어났다고 해서 미국 본토가 폭격을 당하는 것도 아닌데 수많은 미국 사람들이 전쟁에 나가서 죽고, 6.25 때 우리나라에서 죽은 미국인이 6만여 명에서 5만 명 정도 된다고 하니까 어마어마한 것입니다. ‘그런 것을 겪은 것이 그 나라의 땅에 고통을 주고, 그것이 저렇게 나이테에 반영이 되는구나!’하면서 굉장히 충격을 받은 기억이 납니다. 과학적으로 그것을 입증하기가 쉽지 않겠지만 사실은 사실입니다.
그러면서 생각을 했습니다. 한갓 미물인 나무도 그 땅에서 일어나는 고통스러운 일들이 발생할 때에 나이테와 성장에 저렇게 영향을 받는다면, 인간은 얼마나 연약한 존재일까? 그래서 인간의 몸의 75%가 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더 그런 것입니다. 일본의 어떤 사람이 물을 영하 2도인가, 2도와 1도 사이에 놓고, 물에다 대고 욕도 써놓고, 좋은 말도 써놓으면 물의 결정체가 변했다는 이야기는 널리 알려진 유명한 이야기입니다. 인간이 그런 사태에 대해서 과연 중립적일 수 있을까? 매일매일 아침에 눈떠서 여러분 무슨 생각을 하셨습니까? 우울하고 가슴 아픈 일을 생각하면 온몸에 기운이 없고 힘이 없는데, 기쁘고 감사한 일을 생각하면 이상하게 오늘도 살 수 있는 힘이 생기는 것입니다.
결국 인생의 문제는 힘의 문제입니다. 여러분! 가끔 역경을 헤치고 시련을 이긴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십시오. 그들이 우리와 무엇이 다릅니까? 돈이 더 많았습니까? 아닙니다. 그럼 무엇이 다릅니까? 얼굴이 예뻤습니까? 아닙니다. 키가 컸습니까? 등치 큰 사람도 인생의 두려움은 키 작고 작은 사람보다 더 클 때가 있습니다. 상관이 없습니다. 무엇이냐 하면 힘입니다. 자신이 처한 인생의 사태를 해결해 나갈 수 있는 힘, 정신과 영혼의 힘, 그것을 하나님 앞에서 시온의 대로가 있는 사람들은 그런 인생의 울음 골짜기를 지나면서도 거기에서 그것을 헤쳐나 갈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힘을 주시는 것입니다.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 힘, 미워할 수밖에 없는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 힘, 용서할 수 없는 사람을 용서할 수 있는 힘, 시련과 고난이 닥칠 때에 그 고난을 맞서고 해석하고 그것을 극복하고 마지막에 그것을 자신에게 적용할 수 있는 그런 힘들을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입니다. 그것을 우리들이 가리켜서 은혜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서 인생의 사태를 해석하는 그 자세와 방향이 달라집니다. 똑같은 새가 소리를 내도 마음이 슬픈 사람에게는 우는 소리로 들리고, 좋은 일이 있어서 기쁜 사람에게는 노래하는 소리로 들이는 법입니다. 그러니까 결국 힘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렇게 시온의 대로가 있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이 힘을 얻게 해 주신다 그랬습니다. 저는 이것이 하나님의 자녀로서 이 세상에서 누릴 수 있는 최고의 복이 결국 이 힘의 문제입니다.이 힘이 있는 사람들은 역경이나 시련을 만나면 오히려 그것을 극복해서 감동적인 일생의 기록들을 남깁니다. 이것이 바로 주님께로 부터 받는 힘입니다. 우리들이 흔히 위인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이런 사람들입니다. 돈이 많은 것, 그것을 가지고 우리들이 위인이라고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정신의 크기와 힘이 있어서 그 모든 것을 극복하고 나아가는 그 무엇, 이것이 바로 힘입니다.
두 번째는 ‘하나님 앞에 갔더니 나타날 것입니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 앞에서 사는 행복을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그들이라고 해서 모두 다 완전한 삶을 사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눈물 골짜기를 지나가고 그 눈물 골짜기를 지나가야 하는 것이 자신의 죄 때문일 수도 있고, 불순종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하나님 앞에서 나타날 사람들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이 그들을 만나주시는 사람들이다.’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면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느냐 하면, 우리가 인생을 어떻게 살든지 간에 참된 행복은 하나님께로 부터 나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떠나서 얻는 행복은 언제나 우리에게 고통의 열매들을 남기지만, 하나님 앞에서 주님의 선하심 때문에 누리는 진정한 그 행복을 통해서는 언제나 하나님의 돌보심, 은혜, 사랑, 이런 것들을 우리들이 누리면서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우리가 이렇게 하나님 앞에서 힘을 얻고, 또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행복과 즐거움, 이것을 누리면서 살기를 원하십니다. 이것을 하나님이 언약 백성들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시인은 자기의 기도를 들어달라는 탄원으로 이 축복을 마무리를 합니다. ‘야곱의 하나님이여 귀를 기울이소서’라고 하면서 말입니다. 여기서 야곱이라는 것은 선택된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외침입니다. 야곱의 그림 속에서 감사하지만 그래도 하나님의 선택을 받아서 야곱이 간사했지만 하나님의 선택을 받아서 하나님의 은혜의 붙들려 사는 그런 사람이 되면, 이것은 하나님의 어떤 일방적인 은총을 보여주는 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나의 기도를 들어주십시오. 나는 부족하고 모자라지만, 나는 그래도 하나님의 은총에 붙들려 사는 언약의 자손이 아닙니까? 나의 기도에 귀를 기우려 주시옵소서!’라고 호소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과의 언약을 의지하며 기도하는 장면이 나오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있는 사람에게 주어집니다. 그래서 이 시인이 그렇게 여호와의 궁전을 사모하며 쇠약해졌던 이유가 바로 그것 때문입니다.
‘이런 모든 복을 하나님의 집에서 주님과 함께 동거하면서 누렸었는데, 지금은 하나님께 예배할 수 없는 이방의 땅으로 추방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교회에서 내가 이런 행복을 누립니다.’라는 고백입니다. 여러분이 이 말씀을 꼭 붙들고, 주님 의지하면서 사는 사람들이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