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평을 말씀하시는 하나님
“내가 하나님 여호와께서 하실 말씀을 들으리니
무릇 그의 백성, 그의 성도들에게 화평을 말씀하실 것이라
그들은 다시 어리석은 데로 돌아가지 말지로다”(시 85:8)
녹취자 : 정유선
시인은 그런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의 불순종, 이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돌이키셔서 하나님의 백성에게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도록 구원의 은혜를 주시는 이 모든 과정을 회고하면서 하나님이 이것들을 통해서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이 있다 이것을 8절에서 말합니다. ‘내가 하나님 여호와께서 하실 말씀을 들으리니’ 한 것이 바로 그 의미입니다. 그것이 무엇이냐 하면 화평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이 얘기입니다.
그런데 먼저 그 화평을 누구에게 말씀하시냐 하면 그의 백성, 그의 성도들에게 하십니다. 이 세상 나라의 백성은 그냥 그 왕의 백성일 뿐인데 이스라엘은 왕의 백성이라기보다는 하나님의 백성, 그리고 진정한 의미에서 이스라엘의 왕은 하나님 한 분 밖에 안 계신 것입니다. 그런데 그 백성은 나라의 백성일 뿐만 아니라 또한 하나님께 속한 성도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거룩하심을 입은 무리들입니다. 그것이 바로 성도입니다. 구약성경에서 이 성도라고 하는 말은 하나님의 헤세드를 입은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성도라는 말 그 자체가 이미 그 성도된 것이 자신들의 거룩한 행실이나 노력으로 성도가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덧입혀져서 그래서 이 세상 사람들과는 구별된 것입니다.
그리고 이 하나님의 인자는 어떻게 나타나느냐 하면 언약을 통해서 나타납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이 특별한 이유를 가지고 이 세상에 있는 많은 사람들 중 어떤 사람들과 깊이 약정을 맺으시고 당신 자신을 그 성도들과의 관계 속으로 묶어서 그래서 그들을 구별되게 대하시고 그들에게는 그 이외의 백성들에게 보여주시는 않는 특별한 자비를 보여주셔서 그래서 그들에게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자답게 살아가도록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이게 바로 신앙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그들의 의식 속에서 하나님께 불순종한다고 하는 것이 별로 없습니다. 물론 하나님의 음성이라고 말할 수 있는 그 율법에 대한 의식, 양심 같은 것들이 있어서 자신이 그것을 거스를 때에 거스른다는 것을 느끼지만 그러나 인격적인 하나님을 그 안에서 그들은 발견하지 못합니다. 만약에 하나님이 그런 것조차 안주셨다면 아마 세상은 거의 짐승들이 모여 사는 세상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하나님이 인격적으로 당신 자신을 계시해 주시고 그들에게는 무엇을 믿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한 규칙과 교훈을 하나님이 주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규칙과 교훈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서 사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 백성들을 지극한 능력, 그 큰 손으로 붙드셔서 그 은총을 입은 자녀답게 살게 하시는데 그 사람들이 바로 성도입니다. 그러면서 그 성도들에게 화평을 말씀하십니다. 시인이 보기에는 역사적으로 일어났던 그 모든 하나님의 징계, 심판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떠난 이스라엘의 모든 불순종과 이에 대한 하나님의 책망, 이 모든 것들을 집약하면 결국 그것이 화평 즉 평화의 문제입니다. 무슨 평화? 하나님과의 평화, 이것의 문제라고 하는 것입니다.
인간이 이 세상에서 누릴 수 있는 최고의 복 가운데 하나가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입니다. ‘어디에 가든지 하나님이 다윗과 함께 하시니 다윗이 늘 이기더라.’ 하나님이 함께 하신 거죠. 요셉이 국무총리가 되기도 하고 그 전에는 옥에 갇히기도 했습니다마는 하나님이 요셉이 무엇을 하든지 요셉과 함께 하시더라고 했습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표현은 그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최고의 기쁨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요한복음 8장에서 ‘내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니 이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나를 기뻐하심이라.’ 그랬습니다.
그러니까 이렇게 하나님이 함께 해주시는 것, 그 동행함, 하나님과 함께 동행함 이것은 바로 두 가지로 이루어졌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냐면 하나님과의 평화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갈망이고 이것이 바로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의 현실적인 표입니다. 그러니까 결국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런 하나님의 각별한 사랑을 받는 백성들인데, 결국 시련을 만나고 또 포로로 잡혀가고 이러는 것은 모두 하나님을 진노하게 했기 때문이고 이것은 하나님과의 평화가 깨진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면 그 성도들에게 화평을 말씀하시는 하나님은 뭘 원하시는 것일까요? 평화가 깨뜨려지면, 한 번 깨뜨려지면 영원히 파괴되는 것이 아니라 이 평화는 다시 회복될 수 있는 평화입니다. 그래서 이 평화는 다시 회복될 수 있는 평화이고 하나님이 용서하시는 은혜를 베푸시고 또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 돌아와 고백하고 그 용서하시는 은혜를 의지함으로써 다시 회복될 수 있는 평화입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만약에 하나님과의 평화가 깨뜨려져서 그래서 하나님께 불순종하고 하나님을 멀리 떠나 있는 상태라면 돌아오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시인이 덧붙입니다. ‘그들은 다시 어리석은 데로 돌아가지 말지로다.’ 왜? 과거에 충분히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렇게 어리석은 일을 했고 어리석음 속에서 불순종하고 방황하고 고통 받는 일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이 하나님을 멀리 떠나고 불순종하고 죄짓고 악을 행하며 살았기 때문에 그들이 정말 다시는 그런 어리석은 데로 돌아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통해서 결국 하나님과의 평화가 깨뜨려지는 것은 가장 근본적으로 지혜의 문제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즉 명료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주님의 은혜 안에서 진리의 빛 아래서 살면 무엇이 가장 중요한가 하는 것을 압니다. 그러나 일단 이것이 무너져버리면 자신의 욕망이 눈을 멀게 하고 그래서 무엇이 중요한 것인가에 대한 판단이 흐려지게 됩니다. 그러면서 어리석은 자들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평화가 깨지고 그러면서도 얻을 수 있는 더 소중한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마는 막상 그렇게 어리석게 된 사람들은 그것이 가장 어리석다고 생각하지를 않습니다. 그래서 결국은 끊임없이 이런 시련과 고통 속에 직면하게 되는데 이것이 또 알고 보면 하나님 사랑의 표현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과의 평화가 깨뜨려지면 하나님이 손해 보실 게 뭐가 있습니까? 하나님 당신 자신이 완전하신 분이신데. 그런데 마지막에 잃어버리고 고통 받고 불행해지는 것은 하나님이 아니라 인간입니다. 사랑이 없으시면 그러거나 말거나 내버려 두실 수 있지만 사랑은 그렇게 무관심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한없는 연민을 느끼시면서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서 우리 자신이 하나님과의 평화를 깨뜨리고 멀리 떠나는 것을 안타까워하시면서 돌아오라고 부르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처럼 우리를, 이스라엘 백성들을 사랑하시고 오늘날의 교회를 사랑하십니다. 주님과의 평화 속에서 사는 것이 가장 훌륭하지만 이것을 잃어버렸을 때에는 자신의 어리석음에서 깨우쳐 다시 이 평화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돌아가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이 다시 그들을 사랑하시고 긍휼히 여기시는 은혜와 자비를 베풀어주시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