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들의 모임 가운데 서신 하나님
“하나님은 신들의 모임가운데에 서시며 하나님은 그들 가운데에서 재판하시느니라 너희가 불공평한 판단을 하며 악인의 낯 보기를 언제까지 하려느냐(셀라)”(시 82:1-2)
녹취자: 표 명 희
아삽이 누구인지 그리고 이 시가 언제 지어졌는지는 불분명합니다. 그러나 시가 암시하고 있는 내용은 있습니다. 그것은 뭐냐 하면 뭔가 사회가 매우 부조리하고 정의가 땅에 떨어진 상태에서 이 시인이 개탄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려주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 보면 "셀라" 라는 말이 나오는데 이 단어는 많은 학자들이 음악적인 부호일 것이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셀라"라고 하는 이 단어도 사실은 히브리 성경에도 잘 안 나옵니다. 근데 하나 암시하는 게 있는데 셀라해서 시옷 리을 발음이 옵니다. 모음은 히브리어에서 큰 의미가 없습니다. 얼마든지 바뀔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그런데 창세기에 보면 야곱이 밧단아람으로 가다가 베델에서 하나님 앞에 잠시 꿈을 꿉니다. 그때 사닥다리를 봅니다. 천사들이 사닥다리를 오르내리는 걸 봤다고 했는데 그 단어가 사실은 구약성경에서 한번 나오는 단어입니다. 그래서 이제 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사닥다리" 라기보다는 하늘로 오르는, 커다란 왕"의 길 하이웨이, 대로를 가리킨다고 봅니다. 그게 밑에서 위로 올라가는 겁니다. 그게 놀랍게 쏠라미"라는 단어입니다. 시옷 리을이 나옵니다. 뒤에 하나는 히읗 발음이고 하나는 미음발음이라는 차이가 있지만 그래서 저 개인적인 생각은 아마 이 단어가 같은 어근이 아닐까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이 셀라는 한음 높이시요라는 의미일거다 그렇게 봅니다. 그래서 노래를 부르다가 이 시점에서는 음을 높여서 부르는, 한 키를 높여서 부르는 것이라 봅니다. 이 사람들이 곡조를 가지고 노래를 하였던 것이기 때문에 그 흔적을 여기에 남겨놓은 것이라고 봅니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 성경을 읽을 때에는 이 셀라는 읽지를 않습니다. 그래서 이것이 셀라에 대한 설명입니다.
이 시의 시작을 이렇게 시작합니다. 하나님은 신들의 모임가운데 서시며 하나님은 그들 가운데서 재판하시느니라. 왜 이 이야기가 나왔을까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은혜에서 멀어지면 항상 우상을 섬겼습니다. 우상을 섬기며 불순종하였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마음 아파하셨습니다. 그들이 그렇게 하나님께 불순종하며 우상을 섬겼던 이유는 그들이 신이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자신의 삶에 아주 커다란 영향을 끼치고 자신들을 복 줄 수 있는 신이다 혹은 재앙을 내릴 수 있는 신이다. 라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만큼 하나님을 덜 의지하게 되고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게 되는 것은 너무나 분명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십계명을 주시면서 너희는 내 앞에 다른 신을 두지 말라. 이게 무슨 뜻이냐 하면 너희들이 생각하는 모든 신들 중에서는 나를 으뜸으로 여겨라 그런 뜻이 아니라 "내 앞에 다른 신을 두지 말라" 이게 무슨 뜻이냐 하면 하나님은 우리를 향해 계시고 그 앞에 신들이 있고 경배의 이야기는 그 두 번째 나오는 것입니다. 너희의 의식 속에서 신은 오직 나 하나라고 하는 생각을 확고히 하거라. 그 뜻입니다. 다시 말해서 그런 신들의 존재를 마음속에서 있다고 하는 자체가 하나님께는 커다란 모욕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상은 헛것이니라. 허무한 것 헛된 것 있는 것 같아서 손을 뻗어 보니까 아무것도 없는 것 이런 것들이 우상의 본질이라고 본 것입니다.
"하나님이 신들 가운데 서셨다"라고 하는 것은 신이라고 불리는 것들이 있다할 지라도 하나님은 그 모든 것들 가운데 서 계시고, 그것들은 하나님께 엎드려 있다 이 뜻입니다. 하나님은 그들 가운데서 재판하시느니라. 누구를 재판하신다는 뜻일까요 ? 신들을 재판하고 뿐만 아니라 그 신들을 경배하가나 혹은 그 신들 앞에 사는 모든 인간들 특별히 이스라엘 백성들을 재판하시느니라. 판단하시느니라. 고하는 뜻입니다. 결국 우상의 본질은 인간의 욕망이 신들의 세계를 투영한 것입니다. 그래서 지난 시간에도 말씀드렸습니다만 결국 하나님이 모든 신들보다 능력이 뛰어나시고 모든 이 땅에 있는 만물들의 주인이신데 왜 그분께 와서 복을 받을 생각을 안 하고 똑같은 종교행위인데 하나님께서 그렇게 미워하는 우상에게 가서 그에게 절하고 경배하면서 복을 받으려고 하는 이유는 무엇 때문이라고 했습니까? 하나님은 당신 앞에 나아올 때 우리 모두를 하나님 마음에 맞도록 고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우상은 그런 것이 없습니다. 자기를 경배하기만 하면 됩니다. 그리고 우상은 하나님처럼 고도의 도덕성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우상에게 재물을 드렸는데 이게 마음과 뜻과 성품을 다한 재물인지 묻지 않고 제사를 드리는데 네가 과연 이 제사를 드리기에 합당한 삶을 이제껏 살아 왔느냐 이런 걸 묻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상은 자기에게 아부하는 자와 충심으로 자기를 경배하는 것 사이에 그렇게 심각한 구별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그런 사회에서 하나님 앞에 제사 드리는 헌제자에게 "과연 네가 이 제사를 드리기에 적합하냐? 네가 이제껏 살아온 삶이 하나님을 공경하고 이웃에게 공의를 행한 삶이 아니면 이 재물은 나를 모욕하는 것이다"라고 쓸어버리는 이런 하나님의 발언은 당시 고대 근동에 신들에게 익숙해져 있었던 사람들에게는 가희 충격적인 발언이었습니다. 커다란 충격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런 고도의 도덕성을 요구하는 신들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신들 자체가 하나님처럼 모든 것이 풍족하고 넉넉한 신들이 아니라 많은 인간들이 노예처럼 끊임없이 섬겨야지만 먹고사는 그런 종류의 걸신들린 신들이었습니다. 부족한 것이 많은 신들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인간이 그 신들을 경배하고 제사를 드릴 때 네 마음을 다했느냐? 뜻을 다했느냐? 아니면 이게 정말 너의 삶과 일치하느냐? 이런 걸 묻기에 신들은 너무 배고팠던 것입니다. 그러니 그런 식의 고도의 도덕적이 관념이 나올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고도의 도덕적인 관념은 하나님의 만족에서 옵니다. 하나님은 자족하십니다. 누구에게 기댈 필요가 없는 분입니다. 그런 것에서 고도의 도덕성이 나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릴 보고 당신을 경배하라고 해도 그건 우릴 위한 것이지 당신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경배하지 않는 다고해서 하나님께 무슨 손해가 나겠습니까? 하늘에 떠있는 달보고 개가 꼬리를 흔들며 짓던 아니면 엎드려 마루 밑창에서 잠들건 달에는 변함이 없는 것처럼 하나님은 아무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하나님이 집요하게 당신을 경배하고 당신께 온전히 마음을 드리는 삶을 살라고 그러시느냐? 그렇게 살아야 인간이 행복하기 때문입니다. 건성으로 살아서는 하나님께 손해가 나는 게 아니라 인간이 진정으로 행복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그렇게 고도의 도덕성을 가지고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회개도 마찬가지입니다. 철저한 회개를 요구하시는 이유는 뭐냐 하면 철저한 회개만이 죄를 짓게 만든 그를 고칠 수 있고 죄를 짓게 만든 그 내면의 무엇을 고쳐야만 그가 새 삶을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신들 가운데 서셔서 그들 가운데서 재판하시는 이유입니다. 그러니까 신들이 있다할지라도 신들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는 없는 것과 같은 존재이고 하나님의 강력한 통치와 하나님의 재판아래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신들도 그렇게 통치해서 다스리시니 이 세계에 있는 인간들은 얼마나 잘 다스리시겠는가 하는 얘기입니다.
그러면 2절에서 너희가 불공평한 판단을 하며 악인의 낮보기를 언제까지 하려느냐? 그럼 하나님이 그렇게 고도의 도덕성을 지지고 모든 신들 위에 서계셔서 그들도 심판하시고 또 하나님의 도덕률을 따라 살지 않는 인간도 재판 하시는 분이시라면 왜 이렇게 시인이 한탄하며 불공평한 판단을 하며 악인의 낮보기를 언제까지 할 것이냐고 푸념하게 되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요? 이 대목에서 많은 사람들이 좌절하고 혹은 속는 것입니다. 왜요? 신이 있다면 이 세상은 왜 이렇게 불의하고 악하냐? 이렇게 묻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우스운 질문입니다. 왜 이 세상은 선하고 그리고 의로워야 하는가? 그건 누가 만든 법칙인가? 만약에 하나님도 없고 하나님의 절대적인 통치도 없다면 그런 걸 우리가 기대 할 수 없습니다. 그런 걸 기대한다는 것 자체가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는 사실이 인류의 마음속에 씻어낼 수 없을 정도의 강력한 원천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아무튼 하나님이 지금 책망하시는 것은 이것입니다. 인간을 하나님이 아주 독특하게 당신 닮은 존재로 창조하셨기 때문에 그리고 이 세계를 인간의 손에 맡기셨기 때문에 하나님은 인간이 판단하고 인간이 의지를 가지고 행동하도록 하나님이 놓아두시는 것입니다. 시시때때로 간섭하시지만 또한 하나님이 악인을 놓아두시고 그래서 그들의 판단에 따라서 행동하도록 하나님이 허락을 하시는 것입니다. 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불공평한 판단을 하며 이게 무슨 뜻이냐 하면 나라의 근간을 세우는 것이 재판입니다. 그 재판이 불공평하게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법이 있어도 나라가 재판을 불공정하게 해서 벌을 주어야 할 사람이 잘 살고 구제 받아야 할 사람들이 벌을 받는다면 잘못된 것입니다. 요즘 정부에서 지하경제를 찾아내서 세금을 내게 하겠다고 하는데 저는 박수를 치고 싶은 심정입니다. 저는 그런 면에 있어서 좀 극단적인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지하경제를 하려면 화폐를 없애자는 주의입니다. 길거리에서 고무줄 하나를 팔아도 어떻게 돈이 들어오고 나가는지를 투명하게 해서 모든 사람이 세금을 내게 해야 합니다. 그리고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세금을 낮춰야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자료 없이 현금으로 돈을 주고받는 것 자체가 처벌의 대상이 되어야합니다. 그래서 모든 것들이 거래가 되고 거래에서 이익이 발생하면 거기에 대해서 세금을 내게 하고 정당하게 세금을 내는 사람들의 세금을 깎아 주는 것 이것이 공평입니다. 그걸 누가 인정하겠습니까? 강남에서 병원을 하고 변호사를 하고 해서 돈을 억수로 버는 사람들이 동네에서 작은 구멍가게 하는 사람들만큼도 세금을 안내려고 할 때 누가 그 불공정한 사회에서 박탈감을 느끼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생각해 보세요 만만한 게 봉급생활자 이니까 유리알처럼 들여다보고 그것 벗겨먹느라고 정신없는 그런 나라에서 살면서 누가 이 나라가 공정한 나라이고 정직한 나라라고 하는 생각을 하게 되겠어요. 그런 불공평한 일들이 사라져야 합니다.
(예화) 저는 얼마 전에 터키 선교하고 오신 분하고 얘기하다가 터키가 굉장히 후진국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자신이 선교하다가 체포되어서 감옥에 들어갔는데 기독교를 선교하는 것이 헌법에 위반 되는 것이냐를 법원에서 심의를 했는데 마지막에 최종 대법원에서 판결이 나오기를 우리나라는 민주주의 국가이기 때문에 선교를 하는 것을 범법행위가 아니라고 판결을 내렸다고 합니다.
나는 그런걸 보면서 정말 대단한 나라다. 라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이슬람국가에서 보면 사꾸라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과연 그 나라가 그 정도의 나라냐? 깜짝 놀랐습니다. 법이 살아있고 공평한 판단이 살아 있는 것입니다. 그런 것들에 있어서 이스라엘은 세계 모든 열방에 모범이 되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것들이 이미 다 굽어버리고 짓밟혀 버렸는데 이런 식으로 하는 것을 언제까지 하겠느냐? "악인의 낮보기" 그랬는데 악을 행한 사람들이 뻔뻔스럽게 고개를 들고 돌아다니고 그런 인간들을 처벌하지 못했다는 것에 대해서 누가 고통을 느끼거나 죄의식을 느끼는 사람이 없는 그래서 사회가 악을 행하고도 떳떳하게 그 악을 자랑스럽게 여기면서 살아가고 있는 그런 불법한 사회가 되었는데 언제까지 내버려 두겠느냐?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여기서 우리가 깨달아지는 사실은 하나님나라의 전망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께 통치를 받을 뿐 아니라 또한 하나님의 통치가 이 세상에 드러나도록 그렇게 이 나라에 의로운 판단을 세우고 정의를 하수같이 공법을 물같이 흘려서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주님의 도를 따라 살아가려고 할 때 그 이유 때문에 억압을 받거나 손해를 보지 않고 오히려 그 때문에 하나님과 사람들의 인정을 받는 세상이 되도록 돌보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