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버려두시는 하나님
“그러므로 내가 그의 마음을 완악한대로 버려 두어 그의 임의대로 행하게 하였도다”(시 81:12)
녹취자: 서재임
이스라엘의 불순종과 반역을 하나님께서 회고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특별히 다른 신들을 경배하지 말라고 말씀을 하시는데 십계명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십계명에 나오는 내용들은 사실은 첫 번째부터 열 개의 계명이 있지만은, 사실은 첫 번째 계명에 순종하지 않고는 두 번째부터 열 번째까지의 계명에 순종 할 수 있는 모든 힘이 첫 번째 계명에 순종하는데서 나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게 결국은 마지막에 마칠 때에 탐심의 문제로 마치는데, 골로새서에서는 탐심이 곧 우상숭배라고 말씀합니다. 그러한 주기도문도 마찬가지고 십계명도 마찬가지고 이게 직선형의 구조가 아니라 원형의 목걸이처럼 되어 있어서 결국은 그 계명들이 마지막에는 첫 번째 계명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놓고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 이 계명을 받을 때에 주님이 십계명을 주시는데 두 번 십계명이 주어집니다. 한번은 출애굽기에 나오고 두 번째는 신명기서에 나오는데, 각각 그 십계명을 주시는 하나님의 자기소개가 다릅니다. 출애굽기에서는 하나님이 십계명을 주실 때에 그 근거를 당신이 이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이 계명을 지켜야 된다는 것으로 소개가 됩니다. 이에 비해서 신명기서에서는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 땅에서 종 되었던 곳에서 구속해 내셨기 때문에 이 율법을 이 십계명을 지켜야한다는 근거가 제시가 됩니다. 그러니까 창조로부터 구속으로 이행을 하는 것입니다. 창조로부터 구속으로 이행한다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하나님이 이 세계를 창조하신 것도 순종의 근거가 되지만, 그보다도 더 직접적인 것은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과 언약을 맺고 그들을 구속하여 내신 것이 십계명을 지키며 살아야하는 한 근거가 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이제 ‘다른 신을 두지 말고 이방신에게 절하지 말라, 나는 능력으로 말하면 너희를 애굽에서 건져내신 여호와니 무엇이 필요하면 네 입을 크게 열어라. 그리하면 내가 채우리라.’ 왜 이 말씀이 나오겠습니까? 이방신들을 섬기는 동기가 무엇입니까? 이방신을 사랑해서입니까? 아닙니다. 이방신을 진심으로 마음속으로 흠모하고 공경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러면 무엇일까요? 이방신을 통해서 자기가 부유하게 되기 위해서 세속적인 성공의 의도를 가지고 이방신에게 경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이방신이 너희에게 해주는 그것을 내가 해 주마. 그러니까 무엇인가 원하는 것이 있으면 너희들이 입을 크게 열어라. 원하는 것이 있으면 무엇이든지 나에게 말해라. 그리고 너희는 나를 사랑하고 나에게 순종하라. 내가 너희에게 필요한 것을 채워줄게’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 순종하지를 않았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왜 이 세상의 신과 이방신들에게는 자기의 성공과 번영을 빌면서, 그걸 그렇게 하지 말고 ‘나 여호와에게 빌어라’라고 말씀하실 때 거기에 순종하지 않았던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요? 그것은 아주 간단합니다. 무엇이냐 하면 이방신에게 비는 것은 이방신과 관계를 바르게 한다든지 그런 것 필요 없습니다. 그냥 빌면 되는 것입니다. 왜? 미신이니까요. 그런데 하나님께 빌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됩니까? 하나님과 관계를 바르게 해야 됩니다. 그리고 거룩해져야 됩니다. 하나님의 모든 계명과 말씀에 순종해야 됩니다. 모든 일에 있어서 온전히 순종하고 그렇게 해야 됩니다. 그러면은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자신의 전체의 삶을 하나님에 맞게끔 고쳐야 되고, 전체의 삶을 하나님에 맞도록 고친다는 것은 결국은 뭘 의미하냐 하면 하나님의 말씀 전체를 자신의 삶의 지표로 삼으면서 순종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쉬운 것이 아닙니다. 우상숭배는 쉬운 것 입니다. 똑같은 사랑인데 세상을 사랑하는 것과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 중 어떤 것이 힘듭니까? 부패한 죄인들에게는 세상사랑은 별로 노력하지 않아도 저절로 돼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사랑은 자신의 본성을 끊임없이 거슬러서 대항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의 이 태도에 대해서 ‘그들은 나를 원하지 아니 하였구나’ 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렇게 말씀하시면서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을 주님이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내가 그의 마음을 완악한대로 버려두어 그의 임의대로 행하게 하였도다.’ 구약에서나 신약에서나 이 완악이라는 단어가 나옵니다. 이게 히브리어로 ‘하자크’라는 단어인데 이게 무슨 뜻이냐면, 아주 질기고 강한 것을 의미합니다. 고기의 힘줄 같은 것이 있으면 잘 안 씹혀지고 안 잘라집니다. 그런 것을 얘기하는 것입니다. 마음이 그렇게 아주 완악하게 되었다라고 하는 것은 마치 북어 같은 것들이 딱딱하게 말라가지고, 원래 명태는 생선은 부들부들합니다. 그것이 오랜 세월이 지나서 명태로 말라서 딱딱해지면 방망이로 때리면 차라리 부러져버리게 됩니다. 막대기처럼. 그런 상태를 여기서 완악한 것이라고 얘기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은 나쁜 방향으로 굳어진 마음입니다. 그래서 웬만해서는 움직이지 않는 마음, 그러니까 하나님의 마음에 감동되지도 않고 하나님의 마음에 의해서 흔들리지도 않는 그런 상태를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의지에 의해서도 굴복되지 않는 그런 상태를 얘기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항상 인간의 마음이 특히 신자의 마음이 완전히 완악하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그들을 완전히 완악해지지 못하도록 붙들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억제하는 은혜라고 합니다. 완전히 망가지지는 못하도록 하나님이 은혜로 보호해주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신판하실 때가 되면 그걸 거두어버리십니다. 그리고 그 마음이 원하는 대로 흘러가게끔 하나님이 더 이상 간섭하지 않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로마서 1장에 보면 하나님이 무지한 인간들이 하나님을 멀리 떠나서 이루 말할 수 없는 악을 행하며 살아가는 그것을 가리켜서 하나님이 그들을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두셨다. 이것이 최대의 심판입니다.
(예화) 비유를 하자면 이런 것입니다. 자동차가 산동네를 올라가다가 짐을 부리기 위해서 세웠습니다. 물론 싸이드를 채웠지만 언제 풀어질지 모릅니다. 그래서 뒤에다가 돌멩이를 고였습니다. 그러면서 짐을 잔뜩 싣고 잠시 주차중인데 그만 덜컥하고 브레이크가 풀렸습니다. 그런데 뒤에 돌멩이가 있어서 딱 걸린 것입니다. 그런데 누가 와서 돌멩이 두 개를 확 빼버린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차는 뒤에서 짐도 무겁게 실었겠다, 그냥 밑으로 내려가는 것입니다. 내려갈수록 가속도가 붙어서 집을 들이받고 판자를 부수고 하면서 대형사고가 날 것입니다.
누가 그 차를 위에서부터 힘께 아래로 민 것이 아니라 스스로 무게에 의해서 아래로 내려갈 수밖에 없는 것을 그렇게 하지 못하도록 막고 있던 장애물들을 치우고 나니까 그 자체의 무게에 의해서 확 쏠려서 밑으로 내려가는 것입니다. 이 자체의 무게라는 것이 결국 인간의 욕망이고 죄에 대한 욕구이고 이런 것입니다. 그러면서 내려가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제 이 마음에 완악한데로 내버려두어 임의대로 행하게 하셨도다. 이건 하나님의 무슨 뜻이겠습니까?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이 그렇게 행하는 것을 원하시지 않는데 그렇게 하도록 아예 내버려두시는 임의대로 마음대로 행하게 내버려두시는 이유는 무엇 때문이겠습니까? ‘하나님이 이 모든 것을 몰아서 심판하시겠다.’ 라고 하는 의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 앞에 결국은 이렇게 훌륭한 명령을 받고 하나님 백성답게 살 수 있는 길을 제시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불순종하면서 살았기 때문에 결국은 하나님 앞에 악하게 되고 광야에서 멸망을 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두고두고 경고가 되어서 어떤 가르침을 주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냐 하면 ‘하나님께 순종하라.’ 그래서 여호수아가 모세에 이어 지도자가 되었을 때 가장 중시했던 것은 어디에 가든지 하나님을 전심으로 의지하고 순종하는 것, 이런 교훈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도자와 함께 배우게 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 안에서 가장 안전한 삶을 사는 것, 이것은 우리의 마음을 들여서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고 그 뜻을 좆아서 사는 것, 이것임을 우리에 마음에 새기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