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된 만족이신 하나님
“여호와를 미워하는 자는 그에게 복종하는 체할지라도 그들의 시대는 영원히 계속되리라 또 내가 기름진 밀을 그들에게 먹이며 반석에서 나오는 꿀로 너를 만족하게 하리라 하셨도다”(시 81:15-16)
녹취자: 정은숙B
여기서는 바로 앞에 나온 14절과 15절이 연결되면서 16절을 최종적인 결론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여호와를 미워한다 그랬는데 히브리적인 개념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무슨 뜻인가 하면 우리나라 어법과 아주 비슷합니다. 실제로 누군가를 미워하는 것도 미워한다고 표현하지만 궁극적인 사랑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그 궁극적인 사랑의 대상이 되지 못하는 모든 것을 미워하는 것입니다.
이런 화법이 예수님의 가르침에도 나옵니다. 예수님께서 당신을 따르는 사람들이 치러야할 대가에 대해 말씀하시면서 부모나 처자를 나보다 더 사랑하면 하늘나라에 합당하지 않다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그것을 미워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어법과 아주 비슷합니다. 애들이 두 아이가 있는데 한 아이를 많이 사랑해주다가 둘째 아기가 태어납니다. 그러면 온 가족의 시선이 둘째아이에게 쏠리게 됩니다. 이때 큰아이가 소외감을 느끼면서 엄마는 나만 미워해 라고 하는 것은 미워한다기 보다는 사랑에 있어서 자기 혼자 독차지 하던 사랑을 동생이 차지하게 되었고 자신은 소외되었다라고 하는 고백입니다. 똑같은 어법이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있습니다. 그러니까 여기서 여호와를 미워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진짜 미워한다기보다는 하나님 보다 더 사랑하는 것이 있을 때 그것은 하나님을 미워하는 것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미워하는 자는 하나님께 복종하는 척할지라도 그들의 시대는 영원히 계속되리라 그들의 시대가 뭐냐 하면 그 앞에 나오는 하나님의 말씀 내 백성이 내 소리를 듣지 아니하여 이스라엘이 나를 원하지 않았다. 내가 그 마음을 완악한대로 버려두어 임의대로 행하게 두었다. 이러면서 나오는 아스라엘 백성들의 고난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불순종할 때 그들에게 고난을 주셨습니다. 그것이 그들의 시대입니다. 그들의 시대는 영원히 계속될 것이다. 결국 이것은 긍정적인 이야기는 아닙니다.
그러면서 이제 그들의 이러한 하나님을 향한 반역과 대조되게 하나님이 어떻게 대하시는지가 16절에 나옵니다. 또 내가 기름진 밀로 그들을 먹이며 반석에서 나오는 꿀로 너를 만족하게 하리라 하셨도다 이것은 두 가지로 해석할 수가 있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렇게 불순종하던 길에서 돌이키면 하나님이 기름진 밀을 그들을 먹이고 반석에서 나오는 꿀로 그들을 만족하다 배부르다는 뜻입니다. 그렇게 하실 것이라고 하는 순종을 담보로 하는 축복으로 해석할 수도 있고 또 하나는 그들이 하나님께 계속 불순종하고 하나님을 미워한다 할지라도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먹이시고 또 반석에서 나오는 꿀로 저들을 만족하게 하실 것이라고 하는 아스라엘 백성들의 불순종과 하나님의 변함없는 사랑의 대조라고 해석을 할 수도 있습니다.
저는 어느 것이 틀렸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문맥상으로 볼 때도 후자의 해석이 더 어울리지 않는가 생각합니다. 자,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만나를 먹이셨습니다. 애굽에서 나와서 이제 곡식이 모두 떨어졌을 때 하나님이 만나를 내리시면서 이스라엘 민족의 식량문제를 해결하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언제까지 계속되었는지 아십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에 들어가서도 만나가 계속 내렸습니다. 언제까지 내렸는가 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거기에 들어가서 첫 번째 수확을 할 때까지 만나는 계속 내렸던 것입니다.
그러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 사는 동안에 얼마나 모질게 하나님께 대적하고 악을 행했는지 한 번 생각해보십시오. 불순종하고 하나님을 섬기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우상을 섬겼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적극적으로 모독하는 일들을 서슴지 않았습니다. 그런 때에도 만나는 그치지 않았습니다. 불순종해도 만나를 먹고 불순종했고 죄를 지어도 그것을 먹고 힘을 내서 죄를 지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다스리지 않는다 라는 것을 입증하기 보다는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보여주시는 하나님의 언약적인 신실하심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불순종하고 하나님을 대항해도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먹이시겠다는 하나님의 이 약속은 폐기되지 않고 언제나 하나님이 자비와 은총으로 공급해주셨던 것입니다. 안식일에는 만나가 내리지 않았지만 그 이외에는 그들이 어떠한 불순종을 해도 어떠한 하나님을 향해 반역을 해도 만나는 언제나 내려서 그들의 육신의 양식이 되었던 것입니다. 먹어야 살고 살아있어야 하나님을 향해 돌이킬 수도 있으니까 하나님께서는 불순종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슴아파하시면서도 계속해서 이 하나님의 만나를 계속 내리셨던 것입니다. 이런 사실을 미루어보더라도 이 하나님의 신실하심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불순종과 아주 훌륭한 대조를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반석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히브리말로 추르 라고 하는 것인데 반석은 그 개념이 구원입니다. 구원과 아주 직접적으로 연관이 되는 개념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도 베드로로부터 신앙고백을 받습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예수님이 반석 위에 교회를 세우리라 할 때도 이것이 결국은 구원의 개념과 연관이 있는 것입니다. 흔들리지 않는 튼튼한 기초라는 뜻도 되지만 결국 그것이 구원과 연결되는 개념입니다.
왜 반석이 구원과 연결되는 개념인가 하면 팔레스타인에는 돌산들이 많습니다. 시내산 같은 경우가 대표적이지 않습니까? 굴이 많습니다. 거기 숨으면 정말 사람을 찾을 수도 없거니와 찾는다고 할지라도 화살이 그 구멍으로 들어오지 않는 한 사람을 죽일 수 없는 그런 안전한 곳입니다. 그것이 바로 반석의 개념입니다. 그래서 성경에 보면 하나님을 반석이라고 칭송하는 찬양들이 많이 나옵니다. 그것이 결국은 구원의 개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구원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지키시는 자십니다. 라는 고백입니다. 거기에서 꿀이 나와서 너를 만족하게 하리라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의 참된 배부름과 만족은 하나님께로부터 옵니다. 세상에 있는 것들이 잠시는 우리를 배부르게 하고 만족하게 할 수는 있을지 모르지만 궁극적으로는 그것들은 우리의 영혼에 진정한 만족을 줄 수 없고 우리 영혼의 참되고 진정한 만족은 오직 우리 하나님께로부터만 온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참된 만족이 우리 하나님이신 줄 알고 그 하나님만을 전심으로 의지하며 사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