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던져라
녹취자 : 허 혜숙
(욘1:10-15)
가서 살아보라 이것입니다. 그런데 못 떠납니다. 그리고 교회에서 맴돌고 졸아도 교회에 와서 졸아야 속이 편한 것을 어떻게 합니까. 그러면서도 그 관계는 회복이 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십자가 짐 같은 고생입니다. 사실 십자가 짐 같은 것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고상한 것입니다. 그것은 진짜 가시나무를 뒷발질하는 것처럼 그렇게 고난스러운 길을 걸어가는 것입니다. 그 속에서 점점 우리는 무디어지고 더 깊은 죄악 속으로 빠져 들어 가는 것입니다. 해결로부터 점점 멀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제는 포기하고 체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말하자면 관계를 단절하고 살아갑니다. 그리고 모든 관계가 단절되는데 하나님과의 관계가 열려있다면 그것은 다 거짓말입니다. 그러니까 포기하고 그냥 스키 타는 재미로 살고, 해외여행 다니는 재미로 살고, 그러다가 심령이 파리해져가면서 죽어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또 내버려두십니까? 아닙니다. 여기에서 13절에 점점이 또 나옵니다. 계속 풍파가 지속됩니다. 결국은 요나를 토해놓을 때까지 요나가 ‘나를 집어서 던져라’ 이렇게 얘기를 했는데도 풍랑이 멎어야 되는데 아닙니다. 풍덩하고 들어가는 소리가 날 때까지 안 멎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접어놓을 수 있을 것이나 하나님은 안 접어놓으십니다. 여러분은 휴전하고자 하는데 하나님은 휴전하지 않으십니다. 그리고 몰아가십니다. 그러면서 이제 그 몰아가는 과정에서 막바지에 요나처럼 만이라도 이렇게 깊이 승복하면서 ‘주님’, 이렇게 부르면 그래도 소망이 있는데 거기서 독기를 품는 것입니다. ‘하나님, 정말 이러시렵니까?’ 그렇게 나가는 것입니다. 계란을 바위에 집어 던지면 어떻게 되는지...
찬송 한 장 부르고 조금만 더 하겠습니다.
(찬송가 509장 그 손 못 자국 만져라)
거친 세상에서 실패하거든 그 손 못 자국 만져라
고된 일 하다가 힘을 얻으리 그 손 못 자국 만져라
그 손 못 자국 만져라 그 손 못 자국 만져라
재미있는 것은 무엇인가 하면 ‘너희가 이 폭풍을 만난 것은 나 때문인 줄 아노라’ 무슨 이야기입니까? 한 사람이 하나님과의 관계가 잘못되고 사명을 받은 사람이 그 길을 가지 않으면 그 사람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고통을 받게 됩니다. 그러니까 어느 가정이든지 먼저 은혜를 받은 사람이 든든히 버티고 있으면,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불순종하면 상황이 어렵게는 되는데 그래도 파국으로는 안 갑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인들은 원래 그런 것입니다. 잘 나왔다, 안 나왔다. 이 교회에 갔다, 저 교회에 갔다 교인은 원래 그런 것입니다. 그런데 목회자 한사람이 탁! 버티고 있으면 교인들이 말을 잘 안 들어주면 교회가 좀 어려워지기는 하지만 훌떡 뒤집혀지지는 않습니다. 목회자가 훌떡 뒤집혀버리면 교회는 다 쏟아집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제가 얘기한 게 틀립니까? 정확한 이야기입니다.
그러니까 집안에 부인이 좀 철이 안 들어서 촐랑대도 그런 예는 좀처럼 많지는 않지만 남편이 기도 많이 하면서 딱 버티고 있으면 그 힘으로 가정이 버티면서 사는 것입니다. 위기는 만나도 파국으로는 안 갑니다. 또 남편이 정신 못 차리고 세상 물에 빠져서 허우적거린다고 하더라도 부인이 워낙 기도의 사람이라 십자가 튼튼히 붙들고 가는 사람이라면 그 덕분에 그 날개 밑에서 위기를 만나도 파국은 안 겪으며 사는 것입니다. 엄마 아빠가 정신 못 차리고 아직까지 머리털이 희끗희끗해도 철없는 아이와 같이 세상물정 모르고 그 속에서 세상 연락을 즐기고 사는데 아들 하나가 워낙 경건하고 뛰어납니다. 늘 부모를 위해서 눈물로 기도하고 하나님 앞에 간구합니다. 그러면 그 아들의 품에서 또 가족이 사는 것입니다. 하나도 없다면 뒤집어지는 것입니다. 집안이 전체 안 믿는 집안이면 갈 데로 가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믿는데 다 신통치 않게 그런 식으로 산다면 결국 뒤집어지는 것입니다. 뒤집어진 것을 누구 때문에 뒤집어졌냐고 하나님께 물어보면 하나님은 대답하십니다. 그것은 철 안든 네 아버지 때문에 가정이 뒤집어졌다고 말하지 않고 ‘내가 먼저 은혜를 준 네가 사명을 감당하지 못하니까 쏟아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무서운 것입니다.
그러니까 첫날 이야기한 것이 그게 의미심장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은혜를 주실 때는 거기에는 반드시 사명이 있는 것입니다. 남에게 안 주신 은혜를 주시고 남이 못 받은 은총을 받고 남이 소유하지 못한 믿음을 하나님이 주셨을 때, 거기에는 다른 사람에게 없는 커다란 사명이 있는 것입니다. 그거 하나 붙들고 하나님 앞에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믿습니까?
그런데 결국은 ‘너희가 이 풍랑을 만난 것이 나의 연고인줄 내가 아노라.’ 이것이 바로 요나가 당하게 된 큰 폭풍의 사건이 요나의 인생 그 자체를 삼키려고 덤벼들다가 이 고백을 기점으로 확! 꺾어지고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잡게 되는 것입니다. 풀어가는 것입니다. 신앙적으로 이런 폭풍 속에 있을 때 사람들은 대부분 ‘기도해야지’ 하는 생각을 하는데 기도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는데 그것은 무엇에 비유를 하게 되는가 하면 지금은 집에서 실을 쓸 일이 별로 없습니다. 떨어지면 버리니까. 옛날에 초등학교 때는 전구 다마 넣고 양말 깁는 것까지 시험에 다 나왔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기워 신는 사람이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떨어지지도 않고, 그런데 실을 옛날에 뭉치 실을 놓으면 그것을 푸는데 빨리 옷을 기워 입고 가야지 되는데 끝이 어딘지 몰라 막 잡아당기면 더 엉켜져서 그 실 전체를 못 쓰게 됩니다. 쓰려면 가위로 싹둑 잘라서 요만큼씩 뽑아서 쓰는 것밖에는 길이 없습니다. 그럴 때는 건드리지 말아야 합니다. 천천히 시간을 가지고 맨 끝이 어딘지를 살살 더듬어서 끝을 잡고 잡아당기면 그 실은 풀어 진 것입니다. 다시 걸리면 다시 거꾸로 돌리고 하면서 풀어가야 합니다. 믿습니까?
빠르다면 이런 속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제일먼저 이런 환란과 어려움을 만났을 때는 뜨거운 가슴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차가운 머리를 가지고 생각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교묘한 인간 속에 내재하고 있는 이런 마음들은 하나님이 인간의 마음과 생각을 감찰하시고 혼과 골수, 이 모든 것들을 분해 해 내실 수 있는 하나님의 음성,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면 우리 자신도 우리의 문제가 무엇인지 모릅니다. 죽을 때까지 나는 옳았고 ‘쟤 때문이다’ 이렇게 생각하다가 그러다 결국은 쓴물을 머금고 죽는 것입니다. 왜 그렇게 삽니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실 때 우리에게 겨우 그런 삶을 위해 주님이 죽으셨습니까? 그럴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냉정한 머리를 가져야 합니다. 그러니까 이 교회 세우고 나서 늘 반복하는 것이 말씀을 듣지 않으려고 하는 사람은 소망이 없는 사람입니다. 도와줄 길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교회를 세우시고 영혼들을 돌보라고 맡겨주신 이 사명들이 그렇게 고통 하는 요나에게 찾아가서 ‘나라도 그럴 수밖에 없었다. 하나님이 정말 그렇게 인정이 없으실 수 있는가’ 그러면서 막걸리 한잔 걸치기 위해서 목회자들을 부르신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들도 그런 식으로 사명을 감당할 수는 없습니다. 그건 사람도 아닙니다. 오히려 영혼을 파멸로 데려가는 것입니다. 아닌 것은 아닌 것입니다. 버거워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깨달아야 합니다. 정신을 차려서 말씀을 읽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 그리고 ‘하나님, 내가 알지 못하는 이 혼돈을 어떻게 해주십시오’. 하고 기도하면 하나님이 오죽 잘해주시겠습니까. 왜, 전심으로 돌아가기를 원하는데 ‘주님, 이 안개 때문에 도저히 갈수 없습니다. 라이트를 켜도 안 보입니다. 거두어주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제가 서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안개만 걷히면 제가 쏜살같이 주님이 원하시는 그곳으로 가겠습니다’. 하면 하나님이 안개를 안 거두어주시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품이 그런 분이 아닙니다. 네가 알아서 오려면 오고 말면 말아라. 그런 분이 아닙니다.
때리시고 어루만져 위로해주시는 우리 주의 넓은 품으로
어서 돌아오오 어서
밤마다 문 열어놓고 마음 졸이시며 나간 자식 돌아오기만
밤새 기다리신다오
주님이 안타깝게 기다리십니다. 그런 열망을 가지고 계신 분이 ‘주님, 가고 싶습니다. 순종의 길로 가고 싶은데 모르겠습니다. 이 무지의 안개를 거두어주십시오’ 하면 하나님이 얼마나 잘 가르쳐주시겠습니까. 꿈에라도 알려주실 것입니다. 문제는 왜 사람들이 그렇게 무지몽매하고 무지한 길을 걸어가는가 하면 마지막 주님이 원하시는 그 옥합, 그것 하나 안 깨뜨리고 싶어서, 우리가 원하는 것은 이것입니다. 둘이 싸우는데 이 사람 때문에 풍랑이 일어나는데 하나님이 오셔서 내 손을 잡으면서 ‘판 전 승,’ ‘너 왜 그랬냐? 얘는 애매하다 얘는 다 잘했고 넌 다 잘못했다’. 그러시면 눈물을 펑펑 흘리면서 ‘주님, 고맙습니다. 그런 것은 없습니다. 그렇게 결백한 사람이면 그 풍랑 가운데 들어가지 않습니다’. 그렇게 결백한 사람들은 풍랑 가운데서도 정말 사람이 찾아낼 수 없는 세밀한 죄 까지도 찾아내서 마지막에 고백하기를 ‘주여, 보배피를 흘리니 죄인 받으소서’ 그렇게 말합니다. 풀리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 사이에 이런 이야기를 주고받는 사이에 여전히 풍랑은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제 설교를 듣고 이런 설교는 다시 몇 달 동안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을 듣고 문제의 해결에 적용하면 여러분은 참석한 보람이 있는 것이고, 듣고 문제 해결에 적용하지 않으면 여러분들은 다시 한 번 하나님 앞에 한 번 더 포위망을 좁혔는데도 여러분들이 'No' 하고 뻗댕기는 것입니다. 그다음에 포위망에 대해서 난 책임을 안집니다. 그러니까 적용해야 하는데 적용을 하기 전에 이거 하나 분명히 합시다. 요나가 무엇이라고 했는가 하면 ‘너희가 이 풍랑을 만난 것은’ 함께 풍랑을 만났습니다. 요전 같으면 뭐라고 이야기하고 싶었는가 하면 ‘너희가 이 풍랑을 만난 것은 니느웨 그 놈들 때문이다’. 그렇게 말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두 번째로는 ‘너희가 이 풍랑을 만나 것은 하나님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요나가 ‘이 풍랑을 만난 것은 나 때문이다’. 이제는 모든 감정이 다 사라진 것입니다. 그게 무엇인가 하면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은 니느웨 사람들이 얼마나 악랄하게 이스라엘로 쳐들어 와 가지고 짓밟고 친족들을 약탈하고 부녀자들을 겁탈하고 내 형제 자매를 고통을 주는지 모든 과거, 이제 사실은 사실이지만 그것을 아무리 되씹은 것이 문제 해결의 도움이 안 된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입니다. 그러니까 내가 보인 것입니다. 이 자세를 취해야 됩니다. 계속해서 니느웨가 보이면 이제 여러분 아직까지도 배 밑창에 있는 것입니다. 흔들리는 것입니다. 결국 제비를 뽑는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하나님 앞에 직면하게 됩니다. 그렇게 직면하기 위해서 말씀으로 인도하면 다시 또 원점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4절로 다시 돌아갑니다. 언제 날짜는 정해져있고 사경회는 5일이면 끝나는데 인생도 곧 끝날 때가오는데 언제 자꾸 4절로 도망가고 13절, 14절, 15절 계속 나가야지만 2장에서 뻥 뚫리고 3장에서 이제 할렐루야! 그리고 물고기 배속에서 나와서 순종의 길을 걸어가서 하나님의 역사를 이룰 것인데 그런데 언제 고무줄처럼 계속 튕기냐 하는 것입니다. 해결이 안 됩니다. 그러니까 결심을 해야 합니다. 이거 없이는 적용이 의미가 없습니다. 그게 무엇입니까? 이제 나는 결심합니다. ‘하나님, 나는 오늘에서야 이 오해와 무지의 그림자가 걷혔습니다. 내가 이제 다시는 니느웨를 원망하지 않겠습니다.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겠습니다. 내 남편, 내 아내, 내 자식, 그리고 교회 모든 풍랑을 일게 해주었다고 생각했던 모든 요인들이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 내가 이제 깨달았습니다. 원망하지 않겠습니다. 주님, 내가 하나님 앞에만 서 있겠습니다’. 이 결심하면 적용이 시작되는 것이고 이 결심을 안 하면 좀 더 실수를 하겠다는 각오입니다. 정답을 찾아보십시오.
요즘 과외비가 비쌉니다. 13절에 '그러나 그 사람들이 힘써 노를 저어 배를 육지에 돌리고자 하나 바다를 그들을 향하여' 잘 주목하십시오. '바다가 저들을 향하여 점점 더 흉용해짐으로 능치 못함이라.' 무슨 이야기입니까? 그렇게 했습니다. 그러면 빨리 요나를 집어넣어야 하는데 이 사람들은 그래도 인정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아 그래도 배 값이라도 돌려주어야지 요금을 받고 태웠는데 승객을 승무원이 바다에 집어넣는다는 것이 말이 안 되잖아요? 비행기를 타고 가다가 항공기 승무원이 돈 내고 삼등석에 탔다고 해서 당신 이리로 오라고 왜 그러느냐고? 당신 때문에 비행기가 좀 무거운 것 같으니까 내리라고 그리고 밀 수 있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사실 인간으로서 그럴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해가 갑니까, 안 갑니까? 이해가 가는 대목입니다. 왜? 죽음이니까. 여러분들이 ‘나 때문이옵나이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는 것은 죽음입니다. 죽는 것보다 괴롭습니다. 차라리 그러니까 한을 품고 팍! 죽어버렸으면 천천히 푹! 죽는 것은 싫고 시간이 걸리니까. 팍! 죽어버렸습니다. 그러고 싶은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데려가실 수도 있지만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죽겠사옵나이다’. 그것을 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죽겠다는 각오로 니느웨 때문이라고 원망하던 그것을 ‘아니옵나이다’ 부정하고 ‘나 때문입니다’ 하고 회개를 하기를 원하십니다. 아무리 생명 걸고 ‘주님 내가 죽을 각오가 되어있습니다’ 그래도 하나님은 ‘잘났다. 내가 원하는 것은 죽는 것이 아니라 사는 것이다’. 믿습니까?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그대여 너희가 어찌하여 죽으려 하느냐' 그런데 풍랑 속에 쌓여있기 때문에 자살한 사람들은 믿는 사람들 가운데는 없습니다. 모든 신학자들의 공통된 견해는 스스로 죽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선택에서 제외된 사람일 것이라고 추측합니다.
그러니까 도저히 여러분 자신도 노이로제 걸린 정도로 도저히 살아남을 수 없는 풍파라고 하면서 벌써 살아왔습니다. 10년 5년 6년 8년 살아왔습니다. 제 말이 벌써 입증되었습니다. 살고 싶어서 살았습니까? 아닙니다. 죽는 것보다 사는 것이 훨씬 쉬어서 살았습니까? 아닙니다. 죽지 못해서 살아온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삶을 원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해결을 보고 끝장을 봐야 합니다. 우리가 언제 이 풍랑 속에 있으니 빨리 니느웨로 가서 사명을 완수해야지, 할렐루야! 그랬는데 이 사람들이 집어넣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요나를 실고 노를 저어서 피해보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좀 더 볼륨을 높이셔서 1단 넣다가 2단, 3단, 4단, 5단까지 갔습니다. 5단으로 들어가니까 어떻게 됐습니까? 바다, 물결이 골고루 치는 게 이게 당연한 것인데 갑자기 바다가 머리를 돌리더니 요나가 탄 배를 노려보는 것입니다. 모든 바다가 소리를 치는데 돌격! 하면서 밀려오면서 쾅! 하고 부딪힙니다. 이제는 도저히 안 되는 것입니다. ‘능히 못하리라’ 하나님이 요나를 토해놓으라고 흔드시는 것은 사람의 힘으로 막을 수가 없습니다. 환란이나 재앙이 하나님께로 말미암은 것이면 인간의 지혜와 인간의 모사가 필요가 없습니다. 어떤 것으로도 막을 수 없습니다.
여러분, 가끔 바닷가에 가보면 재미있는 일이 있습니다. 큰 폭풍, 저는 해일은 못 봤습니다. 해일이 무섭다고 그러는데 우리나라의 해일이 무섭다고 그러는데 지진 같은 게 일어나면서 바다 물결이 치는데 도시 하나를 쓸어버릴 정도로 그렇게 엄청나다고 합니다. 그런데 한번, 진짜 얼마나 파도가 치는지 선창 위에 차를 세워놓았는데 트럭을 파도가 때렸는데 그 트럭이 굴러서 저쪽으로 가서 빠져버렸습니다. 그 파도가 선창을 때리는데 조그맣게 때릴 때는 끄떡없습니다. 그런데 쾅! 하고 때리니까 바윗덩어리, 콘크리트 돌이 부서지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흔들어서 요나를 토해놓으라고 하는 것은 안 토해놓으면 계속 기아가 올라가는 것입니다. 1단 2단 3단 4단 5단 6단, 10도 100도 200도 800도 900도 1500도 막 올라갑니다. 언제까지? 토해놓을 때까지, 말릴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아무 것으로도 말릴 수 없습니다. 결국은 승복해야지만 문제가 해결됩니다. 포위망이 좁힐 때마다 단수가 올라갑니다. 그러니 결국은 능히 못하리라 하는 것입니다.
그 풍파 속에서 하나님과의 관계는 접어두고 어떻게 문제를 풀어보려고 애를 쓰는데 소용이 없습니다. 안 되는 것입니다. 결국은 그들이 부르짖는 장면이 나오고 나서 마지막에 15절을 보십시오. 그 앞에 '주 여호와께서는 주의 뜻대로 행하심이시니다' 이게 도저히 믿지 않는 사람들도 이제는 뭐라고 그런가 하면 하나님은 어떻게 우리가 막을 수 없다. 그 고백을 받아내는 것입니다. 그러니 안 믿는 사람들이 이 고백을 할 정도가 되었을 때 요나 속에서는 어떻게 하겠습니까. 체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나는 무슨 생각을 각오한 것인가 하면 내가 이제 바다 속으로 들어간다. 결국은 ‘내가 이렇게 딱 한번 불순종했는데 결국 죽음으로 가는구나. 한 번의 불순종인데 결국은 죽음으로 가는구나.’ 그렇게 생각하면서 요나는 드디어 뱃사람들에 의해서 분명히 틀림없이 배 삯도 지불했는데 배에서 퇴장하라고 지금 집어던지는 것입니다. 배 삯도 필요 없습니다. 무임승차해서 집어던졌으면 억울하지도 않지 그런데 분명히 배 삯을 냈는데 다시스까지 데려다주기로 해놓고 집어던진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떠나서 잘해보자. 손잡은 사람들이 하나님과의 관계가 무너지고 나면 다 대적들로 변하는 것입니다. 돌변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전부 다 하나님의 도구가 되어서 바다에 던져지는 것입니다. 풍덩 들어갔는데 재미있는 게 곧 그쳤습니다. 즉시, 한 시간 있다가? 아닙니다. 두 시간 있다가? 아닙니다. 그 다음날? 아닙니다. 즉시, 풍! 들어가니까 바다가 잔잔해집니다. 다시 다시스로 출발할 때의 바다처럼 된 것입니다. 언제? 즉시, 풍! 하고 들어가니까 금방 멈춘 것입니다. 내가 죽어야지 풍랑이 잠잠해지는 것입니다. 믿습니까?
그러므로 오늘날 길을 택하십시오. 내가 살아서 악악거리면서 ‘얘 때문이래요. 쟤 때문이래요’. 이것도 한두 번이지 하나님이 이제 귀가 아파서 듣지도 않으시는데 그것 붙들고 멱살잡이를 하면서 쓴물을 머금고 계속 범죄 하면서 살아갈 것인지 아니면 죽어지는 것인지. 죽는다는 것은 그냥 죽는다는 것인지 이제 보십시오. 내일 보면 알지만 풍랑 속에 풍! 하고 들어갔는데 들어가고 나니까 뭐가 기다리고 있었는가하면 물고기가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 물고기 속에서 하나님이 삼일 밤 삼일 낮을 두셨습니다. 왜 두셨습니까? 하나님 앞에 홀로 서기 위해서, 이제 그 속에는 니느웨도 없고 고래뱃속 밖에 없습니다. 거기서 하나님 앞에 홀로 서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그 고래 뱃속에 집어넣으셔서 거기서 철저하게 세상도 없고, 나도 없고, 오직 주님 앞에서 결단하는 그 시간들을 주신 것입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그러니까 어떻습니까? 우리가 그렇게 악악거리면서 ‘얘 때문이래요. 쟤 때문이래요’ 멱살잡이를 하고 이 사람, 저 사람, 동리 사람 끌어들이면서 ‘내 말이 맞지, 내 말 좀 들어봐. 내 사연 좀 들어봐. 내가 이러는 게 당연하지 않아’. 그래서 사람들이 수없이 ‘네 말이 맞아’. 그리고 얘기를 하고 가도 상황이 바뀌면 한번 좀 해보지, 안 바뀝니다. 그 모양이 그 모양입니다. 1년 2년 3년 10년 15년 이렇게 지내오는 것입니다. 결국은 풍! 하고 들어가니까 슉! 하고 풍랑이 지나가고 고요한 바다가 되었습니다. 우리들이 죽어야 됩니다. 그 풍랑 앞에서 우리가 하나님을 향하여 죽을 때 잔잔함이 오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씨름하면서 홀로 서서 그 다음에는 ‘하나님, 이제 제가 어느 길을 가야 되겠사옵나이까?’ 그러면서 잃어버린 사명을 찾아가는 것입니다. 그것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풍랑을 보내신 것입니다. 풍랑 속에 있는 인생의 신앙은 어떻게 하든지 이 풍랑을 피하고 벗어나는 것이지만 하나님의 희망은 우리가 풍랑을 벗어나거나 피하는 것이 하나님의 희망이 아니라 하나님의 궁극적인 목표는 우리로 하여금 받은 은혜에 합당한 우리들이 가야 할 사명의 길로 우리를 다시 돌려놓고 싶으신 것입니다. 그리고 집요하게 일을 하십니다.
우리가 주님께 은혜를 받았을 때 우리가 분명히 사명의 자리가 있는데 그 사명의 자리를 떠나서 우리가 불순종의 길을 가고 있는 한은 그 사명의 자리는 비어있습니다. 누가 대신 들어갑니까? 안 들어갑니다. 대신 들어가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대신 안 들어가고 비어있어 우리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고래뱃속에 집어넣어서 튀겨서라도 제자리에 갖다 놓으시는 것입니다. 완전한 항복을 받아서 결국 3장에서는 물에 쫄딱 빠진 생쥐모양을 해서 헥헥 거리면서 나와서 ‘니느웨를 향해서 가겠나이다’. 그러니까 하늘이 다시 열리는 것입니다. ‘두 번째 하나님의 말씀이 요나에게 임하니라.’ 막혔던 하나님과의 관계가 열리면서 빛이 비추고 말씀이 내려오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이제는 그런 뱃사람들한테 당하면서 배 밑창에 가서 쭈그리고 앉아서 한번 봐달라고 이럴 일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없습니다. 털고 가서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그렇게 해야지 내가 그렇게 빠졌었다고, 당했었다고 그러면 체면이 안서니까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회개하라. 하나님이 너희를 멸하시리라’ 할렐루야! 이 길로 돌아가시기를 바랍니다. 내일 봅시다.
(찬송가 338장 천부여 의지 없어서)
천부여 의지 없어서 손 들고 옵니다
주 나를 박대 하시면 나 어디 가리까
내 죄를 씻기 위하여 피 흘려 주시니
곧 회개 하는 맘으로 주 앞에 옵니다
전부터 계신 주께서 영 죽을 영혼을
보혈로 구해 주시니 그 사랑 한 없네
내 죄를 씻기 위하여 피 흘려 주시니
곧 회개 하는 맘으로 주 앞에 옵니다
나 예수 의지하므로 큰 권능 받아서
주 앞에 구한 모든 것 늘 얻겠습니다
내 죄를 씻기 위하여 피 흘려 주시니
곧 회개 하는 맘으로 주 앞에 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