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망에서 살리소서
“주께서 죽은 자에게 기이한 일을 보이시겠나이까 유령들이 일어나 주를 찬송하리이까(셀라) 주의 인자하심을 무덤에서, 주의 성실하심을 멸망 중에서 선포할 수 있으리이까 흑암 중에서 주의 기적과 잊음의 땅에서 주의 공의를 알 수 있으리이까”(시 88:10-12)
녹취자: 이시내
어떻게 보면 가슴 아픈 시입니다. 시인이 깊은 영혼의 침체에 시달리면서 이제 이 노래를 부르고 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주님께 묻는 이 질문에 나온 내용들이 사실은 이전에는 이 시인이 이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였습니다. 그래서 오늘 말하기를 죽은 자에게 기이한 일을 보이시겠습니까? 여기서 ‘기이하다’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만 하실 수 있는 놀라운 일입니다. 그래서 그것을 보고 나면 하나님을 찬송하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그런 하나님의 성품이 깃들여있는 놀라운 일입니다.
그러면 오늘 이 시인이 영적으로 깊은 침체에 빠진 사람들에게 과연 하나님의 그 기이한 일을 볼 수 있는 눈과 마음이 있겠습니까? 그것을 하나님 앞에 묻고 있는 것입니다. 이게 무슨 뜻인가 하면 똑같은 일이 일어났는데 영적으로 깨어있고 은혜 안에 있는 사람들은 그 놀라운 일을 이루신 분이 하나님이시다 하고 찬송을 합니다. 그렇지만 영혼의 깊은 침체 속에서 하나님과의 교제를 잊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그냥 그런 일이 일어나면 그런 일이 이루어지게 하나님이 사용하셨던 원인들에 주목을 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일들을 생각하며 하나님을 찬송하라고 한 것인데 하나님이 사용하신 사람들에게 영광을 돌리거나 혹은 그 사람에게 감사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자면 그렇다는 것입니다.
또 시인은 이렇게 묻습니다. 유령들이 일어나서 주를 찬송하겠습니까?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이 유령은 스올에 있는 상태입니다. 그러니까 거기는 그 당시의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생각으로는 아직 지옥이나 이런 개념들이 발달하지 않았기 때문에 무엇인가 음습하고 생명의 기운이 모두 박탈된 그런 상태입니다. 그런 상태에 있는 영혼이 어떻게 주님을 찬송하겠습니까? 그런데 평소에 이 시인이 즐겨하던 일은 범사에 하나님을 찬양하던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영혼의 침체 속에서는 이것이 불가능합니다 라고 하는 것입니다. 셀라는 음악적인 부호이기 때문에 읽지 않아도 됩니다.
그러면서 또 유사한 이야기를 반복합니다. 주의 인자하심을 무덤에서 성실하심을 멸망 중에서 선포할 수 있겠습니까? 사람이 죽어서 흙에 묻혔는데 어떻게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찬송할 수 있겠습니까? 주의 성실하심을 멸망당한 사람이 어떻게 선포할 수 있겠습니까? 불가능한 것입니다. 죽은 자는 말이 없는 것입니다. 마지막에 흑암 중에서 주의 기적과 잊음의 땅에서 주의 공의를 알 수 있겠습니까? 유사한 말의 반복입니다. 캄캄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가운데 하나님이 하시는 위대한 일을 두 눈으로 볼 수가 있겠습니까? 그리고 기적이 일어난들 우리가 그것을 알 수 있겠습니까? 또 모든 것을 잊어버린 망각의 땅에서 그것이 무슨 뜻인가 하면 기억을 못한다는 것입니다. 생명이 없으니까 사람이 죽은 자는 기억을 못한다는 뜻입니다. 그런 망각의 상태에서 하나님이 당신의 공의를 펼치신 들, 그것을 기뻐할 수가 있겠느냐고 묻는 것입니다. 여러 말을 반복하면서 노래하고 있지만 핵심은 이것입니다. 나의 영혼의 상태가 마치 육체적으로 죽은 사람과 같아서 볼 수 없고 말할 수 없고 찬송할 수 없고 감동받을 수 없고 주님께 영광을 돌릴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니 나의 영혼을 다시 소생시켜 주시옵소서 라고 하나님 앞에 빌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인생을 살면서 아마 그런 때가 있으셨을 것입니다. 기도만 할 수 있으면 살 수 있을 것 같다. 기도할 수 없기 때문에 살 수가 없는 것인데 기도만 할 수 있다면 살 수 있을 것 같다. 그런 때가 있을 것입니다. 주님은 오늘도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를 부르시고 또 우리를 당신의 자녀답게 살게 하고 싶어 하십니다. 그래서 한 신자가 영적인 침체를 피할 수는 없지만 너무 오랫동안 영적인 침체에 머물러 있는 것은 그것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일 수 없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사랑하는 자녀들을 영혼의 침체 속에 잠시 버려두시기도 하시는데 그것은 그러한 영혼의 침체 속에서 하나님과 화목한 관계를 유지하며 사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것인지를 알게 하기 위해서 종종 영혼의 어두운 침체에 들어가게도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렇게 하나님의 기이한 일을 보고 주님을 찬송하고 주님의 공의를 선포하고 인자를 노래하고 생명의 은혜를 찬양하기 위해서는 영적으로 충만한 상태가 되어야 합니다. 자신의 영혼의 진정한 회복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다시 한 번 굳게 각오하고 이런 영적인 침체의 물에 우리가 떠내려가지 않도록 주님께 굳게 붙들려 다시 사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빕니다.